fnctId=bbs,fnctNo=2245 기간검색 시작일 종료일 총 43 건이 등록되었습니다. 게시물 검색 제목 작성자 공통(상단고정) 공지 게시글 게시글 리스트 [43] 인도네시아 경찰 개혁: 1998년 레포르마시부터 2025년 8월 시위까지 | 풍키 인다르띠 새글 작성자 동남아연구소 조회수 207 첨부파일 1 등록일 2025.11.11 초록1998년 레포르마시(Reformasi)로부터 27년이 지난 2025년 8월,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다시 한번 인도네시아 경찰(POLRI)의 개혁을 촉구하며 거리에 섰다. 대중 시위 진압 과정에서 경찰의 과도한 폭력 사용으로 인해 발행한 인명피해는 개혁을 향한 오랜 여정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의 경찰 문화 개혁이 충분히 실현되지 않았음을 드러냈다. 경찰의 폭력적인 대응은 국회(DPR)를 해산하라며 거리로 나선 국민의 분노가 경찰을 향해 방향을 바꾸도록 만들었다. 지금이야말로 레포르마시 이후로도 완수되지 못한, 시민의 경찰 에 대한 국민의 오랜 염원을 인도네시아 경찰이 진지하게 받아들여 실질적인 경찰 문화 개혁에 나서야 할 때이다.전동연 이슈페이퍼 Vol43국회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대규모 시위2025년 8월,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국회의원들의 부실한 의정 활동에 분노한 대중이 국회의 해산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발발했다. 특정 조직의 주도나 지휘 체계 없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한 이번 시위는 불특정 다수의 대중이 국회 앞에 모여 공동 행동을 촉구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시위대의 핵심 요구는 월 1억 루피아(한화 약 862만 원, 1원=11.60 루피아)를 초과하는 과도한 의원 수당, 특히 월 5천만 루피아(약 431만 원)에 달하는 주거 수당의 지급을 철회하라는 것이었다. 주거 수당은 국회의원들이 더 이상 공관을 제공받지 않음에도 지급되는 것으로, 날로 빈곤해지는 국민들의 소득 수준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어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수많은 국민이 해고와 실업으로 빈곤에 허덕이는 상황에 아랑곳없이 국민을 대표해야 할 의원들이 막대한 수당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대중은 크게 분노했다.유권자를 경시하는 듯한 국회의원들의 오만한 태도 또한 시위를 부추긴 또 다른 원인으로 작용했다. 집권 연정의 나스뎀당(NasDem: Partai Nasional Demokrat) 소속 의원 아흐마드 사흐로니(Ahmad Sahroni)가 국회를 해산하라고 외치는 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들이다! 라고 발언한 일이나, 국민수권당(PAN: Partai Amanat Nasional) 의원 에코 파트리오(Eko Patrio)와 우야 쿠야(Uya Kuya)가 대통령-국회 간담회 후 흡사 의원 수당 인상을 기뻐하듯 춤을 추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된 일 등은 이를 한층 자극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한 나스뎀당 의원 나파 우르바흐(Nafa Urbach)는 의회 단지 근처의 비싼 임대료를 근거로 주택 수당 지급을 옹호하여 비난을 샀다. 이를 배경으로 발발한 시위의 요구 사항들은 일반 국민이 처한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지극히 정당한 것이라 여겨졌고, 그에 따라 시위는 대학생, 고등학생, 온라인 오토바이 택시 기사, 노동자 등 다양한 계층의 합류로 이어졌다.국회를 향한 대중의 분노는 빠른 속도로 확산하여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를 촉발하였다. 참가자의 대다수는 MZ 세대가 주축인 젊은 층이었다. 시위 참여 독려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루어졌고, 조직적 지도부 없이도 시위대는 국회 및 각 주 군 시 의회 건물을 향해 자발적으로 집결했다. 시위대가 기대했던 것은 대표자들과의 대화였지만, 이들은 아무런 응답도 받지 못했다. 응답 주체인 인도네시아 국회의원 전원과 직원들이 시위대를 피해 재택근무로 전환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일부 의원들이 시급한 국내 현안에 사용해야 할 국가 예산을 해외 출장 명목으로 유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시위대의 분노는 더욱 증폭되었다. 결국 시위대는 돌, 생수병, 목재 등을 국회에 투척하고 국회 단지 울타리를 파괴하였으며, 벽면에 항의 구호를 그려 넣고 국회 경호 경찰들을 공격하는 등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에 경찰이 강경 대응에 나서 시위를 진압한 이후에야 시위대는 해산되었다.8월 25일 월요일의 시위는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지만, 목요일인 8월 28일에 다시 시위가 재개되었다. 시위는 두 가지 형태로 전개되었다. 첫 번째는 사이드 이크발(Said Ikbal)1)이 주도한 노동자 시위로, 시위대는 아웃소싱(outsourcing) 폐지와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아침 시간대에 평화롭게 행진하는 방식으로 시위를 진행했다. 오후에 열린 두 번째 시위에서는 대학생, 고등학생, 그리고 플랫폼 기반 오토바이 택시 기사들이 주요 주체로 나섰다. 시위는 초반까진 평화롭게 진행되었지만, 국회 지도부나 의원 누구도 시위대의 면담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서 정오 무렵부터 폭력적인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정오부터 해질녘까지 과격한 양상으로 전개된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경찰은 물대포와 최루가스를 동원하였다.시위 과잉 진압과 경찰 개혁 요구의 대두국회의원들의 방만한 의정활동에 대한 분노로 촉발된 8월의 시위는 한 사건을 계기로 일순간 방향을 바꾸었다. 폭력적인 양상으로 치달은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경찰기동대(Police Mobile Brigade Corps)의 장갑차가 오토바이 택시 기사인 아판 쿠르니아완(Affan Kurniawan)을 치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무고한 시민의 죽음에 대중의 주요 비판 대상은 순식간에 국회에서 경찰로 전환되었다.이 사건을 계기로 인도네시아 경찰의 책임을 묻는 과격 행동이 나라 전역에서 발발하기 시작했다. 분노한 시위대는 경찰서를 공격하고 공공시설을 방화하는 등의 폭력적 대응을 전개하였다. 이 소요로 자카르타에서는 7개의 톨게이트와 7개의 버스정류장, 4개의 경찰초소, 1개의 경찰 지구대가, 동자카르타에서는 5개의 경찰서 등 여러 공공시설이 불길에 휩싸였다. 마카사르에서는 주의회 건물(DPRD) 방화로 직원 3명이 사망하였고, 혼란 중에 한 오토바이 기사가 정부요원이라는 의혹을 받아 대중에게 구타당해 사망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수라바야에서는 역사적 건축물인 동부자바 주지사 청사의 동쪽 측면과 여러 곳의 지구대 및 경찰 초소가 폭도들에 의해 불에 탔다. 족자카르타에서는 지방경찰청의 운전면허갱신소와 민원 구역이, 반둥에서는 서부자바주 의회 건물 맞은편에 위치한 국민협의회 건물이 방화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폭력 사태에 대한 대응으로 경찰은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시위 가담자로 추정되는 6,719명을 체포했고, 이 중 청소년 295명을 포함하여 총 959명을 피의자로 입건하였다.이처럼 대규모의 조직적인 혼돈 사태로 최소 10명이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라보워(Prabowo)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독립적인 진상조사단을 구성하라는 대중의 요구를 거부한 채 국가인권위원회(Komnas HAM)와 기타 국가 위원회들의 독립 조사만을 허용하였다. 이러한 결정은 국민들에게 깊은 실망감을 안겨주었는데, 대통령이 사태에 대한 공감 능력을 결여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가 이미 배후 세력을 인지하고 있다는 의혹까지 불러일으켰다. 인도네시아의 거의 모든 주요 도시에서 조직적으로 발생한 이 혼돈 사태와 공공시설 파괴의 배후에 군부가 통제 불가능한 대중의 분노를 핑계로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도록 유도함으로써 경찰로부터 치안권을 장악하려는 공작이 있다는 의혹이었다.이와 더불어 대중의 관심은 인도네시아 경찰의 시위 진압 방식에로 향하여, 시위대에 대한 구타와 발길질, 그리고 유효기간이 지난 최루탄 사용을 포함한 최루가스 발사 등 과도한 무력을 사용한 경찰에 대한 광범위한 비판이 쇄도했다. 경찰의 무력 사용은 시위대뿐만 아니라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행인들까지 패닉 상태에 빠뜨렸다. 무고한 시민들까지 최루가스를 흡입하여 호흡 곤란 등의 증상을 겪게 된 상황은 과잉대응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했다.8월 시위는 유명인사와 네티즌들을 포함한 사회 각계의 우려를 낳았으며, 이후 17개의 단기 요구와 8개의 장기 요구로 구성된, 이른바 17+8 요구사항의 도출로 이어졌다. 17+8 은 다양한 대중의 목소리를 집약한 것으로, 대통령과 국회, 정당 대표, 경찰, 군부, 그리고 경제 부처 장관들을 대상으로 삼았다. 요구사항의 이행 기한으로 단기 요구는 2025년 9월 5일을, 장기 요구는 2026년 8월 31일을 제시하였고, 이를 주도한 유명인사와 네티즌, 그리고 학생들은 모든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정기적으로 시위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17+8 요구사항 가운데 즉각적인 경찰 개혁을 요구하는 항목은 오토바이 택시 기사 아판 쿠르니아완의 사망 사건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에 응하여 프라보워 대통령은 2025년 9월 11일 대통령궁에서 신타 누리야 와히드(Shinta Nariyah Wahid) 전(前) 영부인과 종교 지도자 등의 주요 인사들이 결성한 국민양심운동 (Gerakan Nurani Bangsa)과 면담을 진행한 후 경찰 조직 쇄신을 위한 경찰개혁위원회 (National Police Reform Committee)의 즉각적인 구성을 약속했다.한편, 인도네시아 경찰은 대중의 요구에 응답하기 위한 자체 준비에 착수했다. 그중 하나가 2025년 9월 17일 경찰청장이 1999년부터 진행되어 온 경찰 개혁의 이행 과정을 평가하기 위해 52명의 경찰관으로 구성된 경찰혁신추진단 (National Police Transformation Acceleration Team) 설립을 골자로 한 훈령을 발표한 것이다. 경찰개혁위원회를 구성하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은 아직 이행되지 않았지만, 8월 시위는 1999년 이후로도 미완으로 남아 있는 인도네시아 경찰 문화 개혁이라는 오랜 과제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중요한 모멘텀을 제공하였다.경찰 문화 개혁의 중요성: 시민의 경찰 로의 전환인도네시아 경찰을 전문적이고 인도적인 시민의 경찰 로 변혁시키기 위해서는 경찰 문화 개혁을 다시 추진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하비비(B. J. Habibie) 전 대통령이 재임 시 국군(TNI)과 경찰의 분리를 명시한 「1999년 대통령령 제2호」를 발령하면서 시작된 경찰 개혁은 2025년을 맞아 26년차에 접어들었다.경찰 개혁은 크게 세 차원, 즉 국가 제도 내 경찰의 위상, 조직 형태, 구조 및 지위의 변화를 포괄하는 구조적 측면, 조직 철학, 강령, 권한 및 역량 면에서 혁신을 꾀하는 기능적 측면, 그리고 지도부와 구성원들의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의 변화를 의미하는 문화적 측면으로 구성된다. 이 세 가지 차원 중 경찰 문화 개혁의 핵심은 경찰 조직 전체를 전문적인 시민의 경찰 로 재편하는 데 목표를 둔다. 구체적으로는 경찰 지도부와 구성원들이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시민을 보호하며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는 데 최상의 목표를 두어 법을 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인권을 존중하여 과도한 폭력 사용과 군사주의적 행동을 지양하고, 호화로운 생활 방식과 시민에 대한 오만한 태도를 삼갈 것을 요구한다. 나아가 이러한 변화가 채용 시스템과 교육, 예산, 인사, 운영 관리 및 경찰의 작전 수행 전반에 이르기까지 조직 전체에 반영될 것을 요구한다.구조적 개혁의 실제 이행 성과는 확인이 가능하다. 지난 38년간 국군(ABRI)에 통합되어 국방부 장관 겸 국군 총사령관의 지휘하에 있던 인도네시아 경찰이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변경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구조적 개혁과 더불어 기능적 차원에서의 개혁 약속 역시 이행되었다. 경찰이 인도적이며 인권을 존중하는 시민의 경찰 임을 명시한 「인도네시아 경찰에 관한 2002년 법률 제2호」 및 여타 규정들을 비준한 것이 그에 해당한다. 그러나 경찰 문화 개혁은 착수하기는 했으나 실질적인 변혁에 이르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경찰 문화의 개혁은 단기간에 이뤄지기 어려운, 관점과 사고방식, 그리고 행동의 변화를 요구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개혁기 동안 인도네시아 경찰은 일정 수준 개선되어 대중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과도한 공권력 사용 사례들이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더욱이, 일부 경찰들이 여전히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하면서 시민들에게 오만하고 위압적으로 굴고, 심지어 부당한 금품 수수에 연루된 정황까지 드러나는 등 시민을 보살피고 보호하며 봉사하는 경찰이 되어주길 바라는 국민의 기대를 꺾는 일들이 종종 발생한다.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경찰들의 이러한 행태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경찰 문화 개혁을 추진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밤방 헨다르소 다누리(Bambang Hendarso Danuri) 청장 재임 시기(2008-2010)의 경찰 문화 개혁은 「공권력 사용에 관한 경찰청장 시행규칙 2009년 제1호」와 「인도네시아 경찰 임무 수행시 인권 원칙 및 기준 이행에 관한 경찰청장 시행규칙 2009년 제8호」, 두 건의 경찰청장 시행규칙을 제정하면서 구체화되었다. 이 두 시행규칙의 제정은 모든 경찰 구성원들의 행동을 크게 변화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개혁은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채 현재까지도 온전히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경찰 문화 개혁은 티토 카르나비안(Toto Karnavian) 청장 재임기(2016-2019)에 경찰들의 부패, 사치스러운 생활 방식, 그리고 과도한 폭력 사용이 계속되면서 다시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에 티토 청장은 대국민 서비스 관련 경찰의 전문성, 현대성, 신뢰성 제고를 목표로 하는 프로모터 (PRPMOTER: Professional, Modern, Trustworthy)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으로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고자 했다. 티토 청장이 추진한 프로모터 프로그램은 긍정적인 성과를 거두어 경찰 조직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도 점진적으로 높아졌다. 이를 입증하듯, 2016년까지만 해도 국민에게 가장 신뢰받지 못하는 3대 기관 중 하나였던 인도네시아 경찰은 이후 다양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가장 신뢰받는 3대 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콤파스 연구개발(Kompas Research Development)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경찰에 대한 국민의 만족도는 2014년 46.7%에서 2015년 51.2%, 2016년 70.2%로 지속 상승하여, 2018년에는 82.9%로까지 올랐다. 티토 청장은 경찰 문화 개혁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세 가지의 경찰청장 시행규칙을 내놓기도 했다. 「공직자재산신고(LHKPN)에 관한 경찰청장 시행규칙 2017년 제8호」, 「경찰 공무원의 사업에 관한 경찰청장 시행규칙 2017년 제9호」, 「사치품에 관한 경찰청장 시행규칙 2017년 제10호」가 그것이다. 이 프로모터 프로그램은 이드함 아지스(Idham Azis) 청장 재임기(2019-2021)에도 이어졌고, 이드함 청장은 지시공문2)을 통해 모든 경찰관이 호화로운 생활 방식을 과시하는 일을 금지하기도 했다.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리스트요 시깃 프라보워(Ristyo Sigit Prabowo) 청장(2021-현재) 재임 초기 정부의 코로나19 확산 방지 및 지역사회 경제력 강화를 포함한 공동체 회복력 증진 노력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보인 긍정적인 역할에 힘입어 높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인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2022년 경찰 고위간부(2성급)가 부하 직원 2명을 살해한 삼보(Sambo) 사건, 말랑의 칸주루한(Kanjuruhan) 경기장에서 경찰이 발사한 최루가스로 혼돈에 빠진 축구팬들이 경기장 출구로 몰리면서 135명이 압사한 칸주루한 참사, 그리고 2성급의 경찰 고위간부가 마약을 판매한 테디 미나하사(Teddy Minahasa)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사상 최저치인 48.5%로 추락했다.인도네시아 경찰의 문화 개혁, 1998년 레포르마시(Reformasi)3) 이후 국민의 염원경찰 조직에 대한 인도네시아 국민의 핵심적인 불만은 경찰들의 사고방식과 문화가 신질서(New Order, Orde baru) 시대4) 이후로도 개선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오랜 개혁 시도에도 불구하고 경찰 문화의 개혁만큼은 여전히 부진하다는 인식이 팽배한 것이다. 국민들은 여전히 경찰 구성원들의 부패와 과도한 폭력 사용, 비전문적 행태는 물론 일반 국민보다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심지어 현실 정치에 개입하는 행태까지도 목도한다. 게다가 2025년 138조 5천억 루피아(약 11조 9,400억 원), 2026년 145조 7천억 루피아(약 12조 5,60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할당받고도 그에 상응하는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국민들의 분노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인도네시아 경찰의 인적 자원 쇄신은 경찰 개혁의 첫 번째 과제로 꼽힌다. 이는 투명한 채용 과정을 통해 역량과 자질을 갖춘 인력을 선발하는 일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사실 채용 과정의 투명성 문제는 경찰 조직만의 문제는 아니다. 거의 모든 정부 부처의 채용 과정이 담합과 부패, 연고주의 등으로 얼룩져 있으며, 이는 오늘날까지 근절되지 않는 신질서 시대의 유산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 경찰 개혁이 이토록 어려운 것은, 이처럼 시스템 자체가 여전히 부패를 용인하고 있기 때문이다.인도네시아 국민 대다수는 경찰 채용 과정이 불투명하다고 인식한다. 채용에 합격시켜 주는 대가로 돈을 받는 뇌물 수수 관행은 공공연한 비밀이며, 건네지는 돈의 액수도 상당하다. 경찰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최소 1억 루피아(약 8백만 원)를, 경찰사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10억 루피아(약 8,600만 원)에 달하는 돈을 건네는 일도 횡행한다.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경찰 측은 이를 부인하며 베타(BETAH: Bersih[청렴], Transparan[투명], Akuntabel[책임], Humanis[인도주의]) 시스템 아래 채용이 투명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경찰이 되기 위해서는 막대한 금전적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믿고 있다.실제로 경찰 채용 과정에서 뇌물 수수가 적발되어 기소 절차가 진행 중인 사건은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건이 기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어서, 수면 위로 드러나 대중의 이목이 쏠린 경우에만 사법처리가 이루어질 뿐이다. 이러한 뇌물 수수 사건은 명백히 형사 범죄에 해당함에도 통상 가벼운 처벌에 그치는 윤리 강령 절차 를 통해 처리되며, 형사 소송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사건이 적발되더라도 뇌물로 받은 금액을 단순히 반환하는 선에서 마무리되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범죄 억제 효과는 미미하다. 비슷한 사례가 매년 되풀이되는 이유다. 뇌물수수 사건에 연루된 일선 경찰관들이 윤리 강령 절차에 따라 징계를 받기도 하지만, 징계는 대체로 하위 직급 수준에서 멈출 뿐, 상급 지휘선에까지 닿는 포괄적인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국민들이 경찰 채용 비리에 대한 소식을 해마다 접하게 되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러한 부정 채용 관행은 이후 경찰관의 배치 및 보직 발령을 포함한 전반적인 인사 과정에도 당연히 악영향을 미친다. 부하들을 감독해야 할 상급자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승진을 위한 자금원을 찾는 데에 더 몰두하며, 부하 직원들에게 금품을 상납하도록 강요하기까지 한다.국민들은 특히 경찰들이 시위 대응 과정에서 여전히 군사주의적 태도를 보이는 데 불만을 제기한다. 「인도네시아 경찰 임무 수행 시 인권 원칙 및 기준 이행에 관한 경찰청장 시행규칙 2009년 제8호」에도 불구하고, 경찰학교와 경찰사관학교의 훈련 과정에서 이 원칙에 대한 체득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교육 과정에서 인권 관련 논의와 실습의 부족은 경찰과 폭력이 지속적으로 연계되는 현상의 주된 요인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국민들이 여전히 2022년 칸주루한 참사와 2024년 렘팡(Rempang) 사건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시위대 해산을 위해 최루가스 사용을 고수하고 있는 데 대한 불만도 높다. 135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칸주루한 참사는 경찰의 최루가스 발포가 아레마니아(Aremania) 축구팬들의 혼란을 유발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렘팡 사건에서는 경찰이 산업단지 이전에 반대하는 렘팡 주민들의 시위를 해산시키기 위해 과도한 최루가스를 살포하는 바람에 11명의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실신하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하였다.수사 과정에서의 고문이나 사건 처리 과정에서의 금품 요구 관행도 경찰에 대한 국민의 주된 불만 사항으로 꼽힌다. 신질서 시대에는 인도네시아 형법 (KUHP: Kitab Undang-Undang Hukum Pidana)이라는 용어가 각 단어의 두문자를 그대로 딴 돈을 주면 사건은 끝난다 (Kasih Uang Habis Perkara)는 냉소적인 말로 회자되기도 했는데, 어떤 죄를 지었건 수사관에게 돈을 건네면 원만히 사건을 끝낼 수 있다는 뜻이었다. 국가경찰위원회(Kompolnas)의 자료에 따르면 연간 접수되는 전체 민원의 90%가량이 경찰 수사국의 업무 처리에 관한 민원으로, 연평균 4,000건에 달한다.이처럼 경찰에 대한 국민의 불만은 여전히 크지만, 이에 부응하는 감독 및 법 집행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로 인해 경찰들의 위법 행위는 계속해서 재발하고 있으며, 이는 온라인상에서 경찰의 직권 남용 사례를 다룬 게시물과 함께 #경찰에신고해봤자소용없다 (#percumalaporpolri)라는 해시태그가 광범위하게 확산하는 결과로 이어졌다.이러한 현상은 1998년 레포르마시 때 상황과는 극명하게 대비를 이룬다. 당시 국민들은 경찰이 군부(ABRI)에 통합될 경우 조직을 약화하고 전문성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하여 경찰의 독립을 강력하게 옹호했다. 지금은 다르다. 소방서에 대한 높은 평가와는 달리 경찰은 센트럴아시아은행(BCA) 은행 보안요원 에 비유할 정도로, 치안 담당 기관으로서 경찰을 보호하고 유지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경찰을 현재와 같이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유지하기보다는 특정 부처 산하로 재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경찰이 대통령과 정치 엘리트들의 정치적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하는 한편, 국방부 장관 산하에 있는 국군(TNI)과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논리에 기반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군조차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현실로 보자면, 특정 부처 산하로의 재배치가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는 방편이 되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렵다.결론레포르마시 이후 1999년부터 시작된 인도네시아의 경찰 개혁은, 경찰을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배치하는 구조적 개혁 , 관련 법률과 규정들을 개정하여 경찰을 전문적이고 인도적이며 인권을 존중하는 시민의 경찰 조직으로 만드는 기능적 개혁 , 그리고 시민의 경찰 이 되기 위한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의 변화를 꾀하고 군사주의적 행태, 부패 문화, 사치스러운 생활 방식과 오만한 태도를 청산하고 전문성을 높이는 문화 개혁 이라는 세 차원에서 추진되었다.올해 8월의 시위 사태가 말해 주듯 오랜 개혁 시도에도 불구하고 경찰 문화 개혁은 오늘까지도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지지부진한 경찰 문화의 개혁을 위해서는 지도부를 비롯한 모든 경찰 구성원이 국민의 요구와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사고방식과 문화의 총체적 변화가 요구된다. 특히 전문성을 우선시하는 투명한 채용 과정에서부터 교육, 보직 발령, 엄격한 지도와 감독, 분명한 보상과 처벌에 이르기까지 모든 측면에서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국민들은 이러한 변화가 진정으로 구현될 때까지 개혁의 과정을 지속적으로 감시해야 한다. 경찰이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보호하며, 법 집행을 통해 공공질서와 안보를 유지하는 임무 수행에 있어 전문적이고 청렴하며 인권을 존중하는 시민의 경찰 로 거듭날 수 있도록 새로운 경찰 문화가 확립되는, 바로 그날까지! 각주 1) [역주] 인도네시아근로조합총연맹(KSPI, Konfederasi Serikat Pekerja Indonesia) 노총 위원장.2) 「ST/30SXI/HUM.3.4/2019/DivPropam」3) [역주] 1966년부터 32년간 집권한 인도네시아의 제2대 대통령 수하르토(Suharto)가 1998년 5월 경제위기로 인한 폭동 및 민주화 시위로 사임하고 부대통령인 하비비가 대통령직을 승계하여 언론 집회의 자유와 정당 설립 허용 입법, 조기 총선 실시 등의 정치 및 경제 개혁이 이루어진 시기.4) [역주] 수하르토(Suharto) 정권의 명칭. 수하르토는 수카르노(Sukarno) 초대 대통령과의 정치적 차별화를 위해 수카르노 재임기를 구질서 (Orde lama)로, 자신의 정권을 신질서 로 명명함. [42] Against All Odds: Workers’ Resistance in Post-Coup Myanmar | Ma Cheria & Ko Maung 작성자 동남아연구소 조회수 1320 첨부파일 1 등록일 2025.08.18 역경을 딛고 선 저항: 쿠데타 이후 미얀마 노동자들의 투쟁초록이 글은 2021년 2월 군사 쿠데타 이후 강화된 군부의 탄압과 날로 악화하는 경제 상황에서 미얀마 노동자들이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분석한다. 미얀마 노동조합과 인권 단체들은 팬데믹 기간 이용했던 전략을 바탕으로 재빠르게 미얀마노동자연맹(Myanmar Labor Alliance)을 결성하였고, 이후 대규모 반쿠데타 시위와 공장 파업 을 주도했다. 이 글은 군부의 폭력적인 탄압과 경제 악화에 따른 복합적 위기 상황에서 미얀마의 노동자들과 노동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들을 노동 현장의 실태를 중심으로 설명한다. 여기에는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체포와 살해, 급격히 상승한 물가, 아세안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을 뿐만 아니라 2018년 이래 정체된 최저임금, 노동 강도의 증가 등이 포함된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도 노동자들의 저항은 지속되고 있다. 특히 쿠데타 이후 4년 간의 파업 사례는 미얀마의 노동운동이 지닌 회복력을 보여준다. 2024년 5월 미얀마일반노조연맹(FGWM)의 지원 아래 6천 명의 이상의 의류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선 양곤의 Sioen Myanmar Garment 공장 파업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들은 임금 인상과 근로 조건 개선을 요구했으며, 관리층의 위협과 군부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개선을 달성해냈다. 이처럼 쿠데타 이후의 정치적 탄압과 경제적 불안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상황에서도 미얀마 노동자들은 용기를 잃지 않고 있다. 이슈페이퍼 42호 바로보기 Following the Myanmar military coup in February 2021, people in Myanmar fought against the military and workers were one of the main forces to lead the struggles. The Civil Disobedience Movement (CDM) campaign started by medical workers on February 2 was the first move to encourage people to resist. It was spilt over to other groups such as, teachers, students, railway workers, and other government workers who are working for the Myanmar military and their linked business. Four days after the launch of the CDM movement, workers working in the garment factories took to the street chanting, We want democracy, we don t want the military dictatorship! on February 6. Their participation created a momentum to enlarge the protests. By the next day, Myanmar streets were full of people demanding democracy and the release of political prisoners. It has been four years during which the plights of people have been aggravated. According to a report in 2024, Myanmar military had already killed 5,712 people and arrested nearly 28,000 people. The Myanmar military increased a lot of restrictions and made sure to hold the power in a fascist manner. It is time to look into the experiences of workers: how they have organized their resistance and how they have continued to struggle against the oppression of the state and employers under the military dictatorship. 2021 Coup: Workers Responses and Military s Oppression One of the reasons for workers quickly to organize a sizable mass for the protests was that they had developed a group to connect different unions and labor organizations. During the COVID-19 pandemic, from late 2019 to 2020, the employers of garment factories in Myanmar dismissed workers for the workforce reduction. Not surprisingly the majority of dismissed workers were factory-level union leaders and members. To protect against this kind of union-busting technique, trade unions and labor rights organizations formed a watchdog group to monitor the union-busting cases. The watchdog group became the organized front of Myanmar labor movement for the country s democracy as a network when the military staged a coup in February 2021. This network of labor rights groups, later known as Myanmar Labor Alliance, quickly voiced demands for the immediate release of all political prisoners and showed their stand against the coup. Labor unions inside factories protested in their workplaces to show solidarity with the network s demands. Workers, who had played a remarkable role and shown commitment in various historic moments including the independence and pro-democracy movements, again initiated the massive strike on 6 February 2021. Federation of General Workers Myanmar (FGWM) and its allies played a crucial role in mobilizing the massive protests. Due to their power and capacity to organize, the unions were one of the first targets suppressed by the military. The military declared that 16 trade unions and labor organizations were illegal in March 2021, and arrested union leaders inside factories. Over 300 unionists and labor activists were arrested and 55 unionists were murdered. Workers Situation After the Military Coup The garment sector, which was hit by both the 2020 COVID-19 pandemic and the military coup, is still essential for the country s economy under the European Union s Everything But Arms (EBA) scheme which was reinstated in 2013. In post-coup Myanmar, the garment sector has faced severe instability with the closure of nearly 150 factories and the loss of more than 200,000 jobs. However, some factories remain in operation. According to the Myanmar Garment Manufacturers Association (MGMA), there were 530 active factories as of September 2023. At the same time, labor rights violations and poor working conditions have only worsened. The labor relations have reverted to authoritarianism under military rule. Employers have taken advantage of the political turmoil to oppress the workers and undermine the labor unions by siding with the military junta. Meanwhile, working conditions have been deteriorated further, and labor activism has been severely restricted under political oppression. Nevertheless, workers have continued to organize strikes and voice demands for better working conditions amidst political oppression although they violently suppressed. In some cases, the employers called the military to crack down on strikers. Therefore, some members of prominent trade unions such as FGWM went underground and continued their activities in exile while other unionists carried on working inside the country. In this section, we discuss the new labor movement landscape in post-coup Myanmar by exploring working conditions such as wages, working hours, gendered experiences exacerbated by the military coup, dispute resolution mechanisms, and changes in labor recruitment. Wage Workers have been hit hardest by economic instability, with rising prices of basic commodities and a stagnant minimum wage of 4,800 Myanmar Kyat (MMK) (approximately 1.48 USD) per day, the lowest in ASEAN countries. Workers demanded a higher minimum wage before 2020, but the process was stalled due to the COVID-19 pandemic and the 2021 coup. The rapidly increasing exchange rate of the US dollar has further worsened their livelihoods. Following the coup, the sharp depreciation of currency was the major factor of raising commodity price, making the current minimum wage inadequate. In 2023, the junta s directive mandated an additional 1,000 MMK to be added to the minimum wage. According to the Notification No. 2/2023 of the Ministry of Labor, Immigration and Population under State Administration Council (SAC), a ruling body of military junta, workers at private-sector employers with more than 10 employees were entitled to minimum daily wage of 5,800 MMK (approx. 2.77 USD) an increase of 1,000 MMK per eight-hour workday over the previous minimum wage of 4,800 MMK per day. The changes took effect on October 1, 2023. This was intended to ease the dissatisfaction of workers with the military regime. Even before the official notification, in some factories, workers successfully bargained to increase the wages to 5,600 MMK per day. After this announcement, most factories provided 5,800 MMK. However, a union leader said, even this amount is not sufficient for workers to provide their families. Importantly, the 1,000 MMK is not considered of the official minimum wage increase, thus, excluding from overtime calculations. Overtime pay is calculated on the statutory minimum wage of 4,800 MMK, resulting in an hourly overtime rate of 1,200 MMK (twice the base rate of 600 MMK/hour). Even worse, some factories continue to ignore the law. And other factories offset the wage increase by cutting other benefits such as professional fees and overtime pay. With wages falling short of living costs, many workers depend on experience bonus, attendance bonus and overtime wages. Some garment factories have withheld overtime payment, claiming workers failed to meet production targets on time. In August 2024, the regime increased the additional allowance by another 1,000 MMK bringing it to a total of 2,000 MMK. As a result, daily wage workers now earn 6,800 MMK per day. However, overtime pay is still calculated based on the statutory minimum wage of 4,800 MMK. Increased labor intensity and forced overtime Although labor exploitation was common before the coup, post-coup situations have worsened. Employers have increasingly violated the employment contracts (EC) and raised the production targets to unbearable levels, resulting in forced overtime. Ma Ei, a joint secretary and central committee member of FGWM told us; The employers used to assign more production targets in post-coup Myanmar. In a Chinese-owned factory, workers have to meet 120-150 targets per hour, which is unbelievably high for a worker to meet. To meet the target, workers have to work overtime, which is forcibly assigned by employers. However, the employers disguised it as voluntary by forcing the workers to give consent . Before the coup, production targets were around 60 pieces per hour. Since the coup, factories have arbitrarily raised them. A worker from E P Fashion, a Chinese-owned garment factory, described her experience to Myanmar Labour News, a local media outlet and labor right advocacy group in Myanmar; In our factory, we have to sew CUH-branded clothes with 100 workers. The employers required us to meet more than 100 targets per hour. Even though we are working without a rest or going to the toilet, it is impossible to meet the target. In that case, supers (leaders) shouted at us harshly. Similarly, Tianjin Fashion Milestone Garment factory, owned by a Chinese and located in Hlaing Thar Yar Township, presents another example of a sharp increase in production targets. The factory employs around 1,400 workers who have to work from 7:30 AM to 8:00 PM, without provided transportation for commuting. Even when workers skip toilet breaks to keep up, the target is impossible to meet. The employers also confiscate workers cell phones and continue to violate employment contracts. Gendered Experiences The garment sector, employing approximately 90% women workers, has long been notorious for sexual and verbal harassment by employers, managers, leaders, and male co-workers (ILO 2018). Even before the military coup women workers faced verbal and sexual harassment during their commute to and from the workplace partly due to the lack of employer-provided transportation. Since the coup, these gendered experiences have been compounded by diminished safety and security. Ma Ei and Ma Khin, executive committee members of FGWM, explained; Women workers are not only harassed in the workplace but also on their way from duty station to their places and vice versa. Factory s lack of transportation support and forced overtime, especially amidst the diminished safety and security as a result of the military coup, exacerbate the harassment. In addition to workplace harassment, the military rule itself long associated with sexism and patriarchy has perpetuated sexual exploitation of women workers. On March 25, 2023, two women workers from the No.11 Garment Factory located in Pakkhokhu, Magway Region, were raped by the soldiers and members of the Pyu Saw Htee (a military-affiliated militia group). According to DVB News, these women workers were stopped at the checkpoint while returning home. The soldiers and Pyu Saw Htee members claimed that they were carrying scissors, abducted them and later assaulted them. Both workers subsequently died by suicide. The Ayeyarwaddy Times, a local new outlet, also reported that unmarried women workers from a military-owned factory located in Hlaing Thar Yar Township, Yangon, were forcibly sent to work in the houses of the military generals in Nay Pyi Taw. One victim recounted; We have to do household chores that include washing and ironing their clothes. Sometimes, we have to massage them which sometimes includes sexual harassment . FGWM received the cases of sexual exploitation and rape cases as reported by the workers. Ma Ei and Ma Khin confirmed; A woman worker from a factory located in Hlaing Thar Yar, on the outskirt of Yangon, was raped on their way home. But the employers covered up the case and claimed that she had resigned. They further affirmed; In VIP (Very Impressive Prospects) factory, the Chinese employers committed sexual harassment against women workers. It happened after the coup. According to Ma Khin, many cases remain unreported, as employers exploit the absence of rule of law to silence victims. Despite the 2012 Social Security Law which entitles maternity leave, miscarriage benefits, paternity leave, and related expenses, women are denied these entitlements. To avoid providing them the factories prefer to recruit younger women and these women workers have to undergo pregnancy tests before and after employment. Since the military coup, the dismissal of pregnant women workers has become increasingly common. Another gendered hardship has been the growing difficulty in affording sanitary napkins. Low wage, soaring prices for basic goods, inadequate bathrooms, and restricted toilet breaks have worsened menstrual health conditions. A woman worker told her experience on the စက်ချုပ်သမ(Seik Choup Tha Ma) , a local blog which documents the struggles of women workers in the garment sector as follows; In our factory, there are no adequate toilets. Before the coup, I changed the menstrual pads three times a day. However, after the coup, I cannot afford to do so due to price increase and my low wages. the factory also began to limit the toilet time. When the management caught us looking for the pads, they scolded and shouted at us harshly. To avoid this, we used wasted fabrics as pads. We know that it is unhygienic but we have no other options. Currently, menstrual pads cost 1,500~2,000 MMK an amount increasingly unaffordable for workers. Restricted toilet breaks and inadequate facilities also undermine women workers reproductive health, leading to conditions such as uterine diseases. However, the right to access to medical benefits remains denied. In fact, these gendered struggles are not new. Women workers have long fought not only against the exploitative practices of factory management but also against patriarchal attitudes within some labor unions. In the years leading up to the military coup, some women unionists, frustrated and disillusioned with old-guard male union leaders who perpetuated gender inequality, established new labor unions such as the Solidarity Trade Union of Myanmar (STUM). Threat to Collective Bargaining and Dispute Resolution Mechanisms In November 2022, nearly two years after Myanmar s military coup, the Myanmar Garment Manufacturers Association (MGMA), the main employers organization in the garment sector, launched a Voluntary Labor Compliance Assessment (VLCA) tool and an accompanying grievance mechanism. The stated aim was to guarantee compliance with national labor laws among member factories. In other words, it aimed to ensure workers the rights to which they are entitled. However, labor law violations persisted in the garment sector and beyond. In January 2024, Myanmar s parallel government, the National Unity Government (NUG), blacklisted 64 senior members of the Union of Myanmar Federation of Chambers of Commerce and Industry (UMFCCI) for cooperating with the military regime to avoid penalties for labor law violations. Among those blacklisted was MGMA secretary general Khine Khine Nwe, which evidenced that the VLCA was largely ineffectual. However, NUG has no viable alternative to ensure labor law compliance in Myanmar factories. Under the 2021 Settlement of Labour Dispute Law, factories with more than 30 workers are required to form a Workplace Coordination Committee (WCC), consisting of two representatives each from employers and workers. The WCC is an important body to resolve disputes and facilitate collective bargaining. If the WCC fails to reach an agreement, cases can be filed to the Township Conciliation Body (TCB), then to the State or Regional Arbitration Body (AB), and ultimately to the National Arbitration Council (AC), if necessary. Even before the coup, the dispute resolution system was not effective. Many factories failed to establish WCCs and the employers often ignored rulings such as reinstating the unjustly dismissed workers for participating in strikes. Labor activists have long argued that the penalties for violations are too small to force compliance (BSR 2017). Since the coup, genuine labor unions have not been able to operate or form. Instead, employers and management increasingly replace them with yellow unions or fake unions, which work in favor of the employers. The WCC are also formed with representatives from these yellow unions to create the appearance of compliance and convince foreign brands. FGWM leaders Ma Ei and Ma Khin observed; Employers and management are trying to replace the labor unions and form WCC with yellow unions in every factory. For instance, in Saung Oo Shwe Nay (Golden Sunshine) Company, which produces for H M, MOHITO, and SMOG brands with around 1,800 workers, management sought to replace the functioning workers union with a yellow union. According to a unionist, A lot of workers rights violations are taking place in the factory such as breach of the employment contracts and union busting. The management ignored the workers demands and when the workers union tried to negotiate, they attempted to replace us with a yellow union by collecting workers loyal to them, Under the military regime, employers called in the military junta to intimidate striking workers rather than engaged in peaceful negotiation. On June 8 2023, at Hoseng Garment in Shwe Pyi Thar Township, which produces for Index and Zara, workers organized a strike to demand an increase in the minimum wage from 4,800 MMK (2.29 USD) to 5,600 MMK (2.67 USD). Management initially agreed to negotiate but on June 10, they dismissed seven union leaders involved in the strike. On June 14, the dismissed workers were summoned to the local office of the the Ministry of Labor, Immigration and Population (MOLIP) in Shwe Pyi Thar, located in an area under martial law. Instead of resolving the dispute, one of the seven dismissed workers was arrested. That same day, the workers continued the strike, demanding the reinstatement of the dismissed leaders. Management again called in the military. Video footage released by workers and published by Myanmar Labor News, showed a junta officer violently threatening the strikers; This is your choice to work in this factory, no one invited you to work in here. There is always give and take. Of course, the factory will cut your monthly wage and attendance bonus if you join the strike instead of working. When a worker replied; We don t want any trouble. We just organized the strike to demand increased minimum wage and to reinstate the dismissed unionists. In response, the officer shouted at her in a harsh and threatening tone.; Are these unionists your relatives? Know your life! Remember that this is under martial law. There is no such thing as a union under military rule. While FGWM continues to provide advice, support to the workers and disseminates the news by posting updates on Facebook, those who contact the union, face threats and pressure from management. The management prohibited the factory workers from contacting FGWM. According to Ma Ei; Although the workers got threatened and pressured by the factory and management team, they (the factory and management team) are really afraid of our news and other labor-related news in the media. When this news is widely spread, the authorities from the Ministry of Labor, Immigration and Population department (MOLIP), conducts investigations. So, we can say there are both positive and negative impacts. Ko Aung Gyi from Myanmar Labor News also confirmed; When we publish violation cases on our website, the MOLIP investigates. Nevertheless, employers only allow workers who are on their side to speak to these officials. Therefore, we cannot expect good results. Employers threatened the workers who contact and report to us. And sometimes, employers try to bribe us to delete the news. In other cases, workers are forced to say the reports are fake. Rather than genuinely protecting workers rights, ministry officials investigate mainly to prevent negative publicity that could scare off investors. Employers, for their part, use yellow unions and WCCs to maintain the illusion that dispute resolution mechanisms are functioning. Conscription and Labor On February 12 2024, the military activated the People s Military Service Law, the conscription law, a measure dating back to the previous military regimes under General Ne Win and later amended by General Than Shwe. The law stipulates that men aged 18-35, women aged 18-27, as well as men aged 18-45, and women aged 18-35 with specialized skills, are subject to conscription. Despite these stated criteria, citizens of all ages and genders are concerned and panicked as the military junta often disregards legal provisions and acts arbitrarily. Following the enforcement of the law, overseas migration of male workers increased sharply. According to Ko Aung Gyi of Myanmar Labor News, some employers have been involved in the forceful recruitment of male workers, collaborating with authorities to collect workers bio-metric data. Workers also told Western News that the Union of Myanmar Federation of Chambers of Commerce and Industry (UMFCCI), an organization to safeguard business interests, has been collecting the personal data of male workers and handing it over to the military. Initially, the garment sector was unaffected as factories replaced male workers with women in positions such as cutting and packaging. However, the female labor supply has also dwindled due to low wages and fears related to the conscription law especially 2 years after the coup. As a result, employers are now trying to retain female workers by engaging with unionists and offering wage increases. However, workers view these attempts as insincere. Some workers see this moment as an opportunity to push for higher daily wages. Many factories under the Federation of Garment Workers Myanmar (FGWM), along with others, have begun making such demands. Workers from different factories are learning from each other to raise their demands. When we demand wages, one thing to be cautious about is the legal-binding issue. What employers are trying to offer is to provide additional fees as financial support to the daily wages. It is not legally binding. So employers cut the fees from the daily wages on the other hand. The factories with strong unions can organize for demanding wages in solidarity and systematically with the employment agreements. Case Study Even with virtually no possibility of collective bargaining under the dismantled rule of law, workers in Myanmar continued to organize strikes until 2024 - three years after the military coup. Strikes demanding better working conditions and higher minimum wage were routinely met with dismissals, a common occurrence in every post-coup industrial action. Employers have also used threats of factory closure to suppress strikes. In many cases, employers shut down operations temporarily without compensation or notice. Nevertheless, workers never gave up as shown in the case below. (1) Dare to Fight: Workplace Strike at Sioen Myanmar Garment Workers at Sioen Myanmar Garment organized a workplace strike in May 2024. To better understand how the strike was organized and what changes resulted from it, we interviewed Ma Khin Thandar Moe, who was a former union leader at the factory. Sioen factory is owned by a Belgian company and produces its own brand, Sioen, which includes lumber jackets, hiking suits, and uniforms for US soldiers. The soldier uniforms have strict standards and require high quality. Before the coup, the factory operated with around 1,200 workers. In post-coup Myanmar, although the number has dropped to about 700 workers, the factory continues to operate, producing approximately 35,000 pieces per month. Ma Khin, a woman worker and union leader, was arrested on 24 August 2021 along with other union leaders for her involvement in the anti-junta movement and social media posts. Later, she was released and fled to the Thai-Myanmar border where she has continued her labor right activism under the Federation of General Workers Myanmar (FGWM). According to Myanmar Labour News, the factory used the political crisis to oppress workers. In 2022, three workers including a female leader were arrested by the SAC, for supporting the Civil Disobedience Movement (CDM). In February of that year 60 workers were illegally laid off. On 14 May 2024, Sioen workers began a workplace strike that lasted three and a half days, marking a bold act of resistance under repressive conditions. (2) Mobilizing the Workers in Post-Coup Myanmar Like many garment factories, the management of Sioen Myanmar Garment has made persistent union-busting efforts. Before the coup, the factory had an active labor union. However, following the arrest of four union leaders early in the coup, the union became largely inactive, although some union leaders remain engaged discreetly. The factory became the very first where workers demand for an increase from 5,800 MMK to 6,800 MMK, including the additional fees, was met. Before the military coup, it was relatively easier to organize the strikes. Nowadays, it requires discretion and careful planning. In the days leading up to the strike, former union leaders held over 10 secret meetings to discuss and strategize around the demand for a 6,800 MMK minimum wage. Then, workers were informed discreetly, often during lunchtime or outside the factory premises. Despite the risks, the former union leaders who had previous organizing experience believed that the workers would stand with them and join the strikes. And they were right. Approximately two-thirds of the workers joined the strikes on the first day by refusing to return to work and instead gathering in the dining rooms. According to Ma Khin, the former union leader at the factory, Even though the labor union at the factory remained relatively inactive, former union leaders are there and influential. Most importantly, the workers at Sioen have always shown strong solidarity. The labor union was militant before the military coup and consistently led the fights for workers rights. That history of activism earned the workers trust, which was crucial in organizing this strike. In addition, workers see the demand for a higher minimum wage was a collective right. (3) Without WCC, How Were the Demands Addressed? While many employers replaced genuine workers unions with employer-friendly yellow unions in other factories, this factory has no yellow union. From the start, workers informed the management that a labor union still existed at the factory, even though it temporarily paused its activities due to limited space for labor activism. Despite several attempts to form yellow unions by the employer, workers didn t accept them. Nevertheless, the employer could form a Workplace Coordination Committee (WCC). It is only a one-sided initiative by the employer, which does not represent the workers interests. The workers don t recognize this WCC and instead handle the disputes directly with the employers. To lead negotiations, the workers established their own group consisting of 10 leaders from 10 lines, who are recognized by the workers as legitimate representatives. These representatives are responsible for negotiating with the employer and ensuring workers compliance with employment contracts. In addition to the demand for a minimum wage increase, workers also raised other concerns such as expanding the dining room and setting defined lunch hours, improving toilet facilities, arranging additional buses for commuting, ensuring social security benefits, and addressing feedback submitted through the suggestion box. The strike lasted for three and a half days, during which many workers either stayed in the dining room or refused to return to work. After this period, the employer began negotiations and agreed to increase the minimum wage to 6,800 MMK. The employer also consented to compensate workers for one and a half day wage lost during the strike. However, other demands remained unaddressed. One of the reasons the employer agreed to increase the minimum wage was because the Sioen factory produces its own high-quality brand. So, the employer doesn t want to lose the current workers, who are familiar with brands standards and quality requirements. Hiring and training new workers would be costly explained Ma Khin. Before the coup, a piece of Sioen-branded clothing costs around 350,000 MMK. Each production line usually made 100 to 200 pieces daily and the factory had 10 lines in total. Ma Khin recalled, During our first strike in August 2019 when we demanded an increase from 3,600 MMK to 4,800 MMK, the strike lasted only one day before the employer agreed. Additionally, the labor shortage in the country exacerbated by the conscription law and economic instability, causing many workers to migrate to neighboring countries for work, likely influenced the employer s willingness to agree with the workers demands. (4) Resistance as a Solution The success of the Sioen strike serves as an encouraging example for other factories. Following this, several factories have began to demand higher minimum wages. According to FGWM, some factories have achieved their demands. Three years after the coup, skyrocketing commodity prices have severely affected workers. For instance, the price of oil costs around 17,000~18,000 MMK, while half a gallon (1.89 kg) of the lowest quality rice affordable to working-class families costs around 7,000~8,000 MMK significantly higher than the daily wage of 5,800 MMK. Personally, I believe that the oppression at the various levels have made workers strong enough to resist. They have no options left except resistance. They ve got nothing more to lose. An important lesson we ve learned is that when we fight in solidarity, we can achieve what we demand, reflected Ma Khin on the overall situation. Conclusion The garment sector in Myanmar has become increasingly notorious for exploitative working conditions, severely worsened by the dual impact of the COVID-19 pandemic and the military coup. Workers have been deeply affected by soaring prices of basic commodities, making their already precarious situation even more difficult. Despite the shrinking space for labor organizing caused by political oppression and aggressive union busting, workers continue to find ways to organize strikes and demand higher wages. The labor regulations under the military junta, which holds the de facto power, especially in the urban areas where the factories are mainly located, fail to protect the workers rights. Employers exploit the ongoing political turmoil to further oppress workers. Meanwhile, the Ministry of Labor under the National Unity Government (NUG), formed by the elected leaders in the 2020 election, has been unable to offer any meaningful protection for workers rights since the military coup. While broader political issues have dominated attention, workers concerns have largely been sidelined in both NUG s agenda and mainstream politics. As demonstrated by the case study of the Sioen strike, workers, who feel they have nothing left to lose, see organizing strikes as the only means to defend their labor rights when neither the current labor regulations under the military junta nor the NUG government can provide adequate protections. Against all odds, workers in Myanmar continue to courageously organize labor strikes to assert their rights. [41] 대 싱가포르 공공외교 사용법 2.0: 한국-싱가포르 수교 50주년을 맞이하여 | 홍진욱 작성자 동남아연구소 조회수 876 첨부파일 1 등록일 2025.08.13 초록 이 글은 2025년 대한민국과 싱가포르 수교 50주년을 계기로, 양국 관계의 발전 경로와 향후 협력의 전략적 방향을 고찰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양국은 정치ㆍ안보, 경제, 문화, 교육 등 다층적 영역에서 협력을 심화해왔고, 다자주의, 규범 기반 국제질서, 개방적 무역체제를 지향하면서, 첨단기술, 공급망 회복력, 디지털 전환, 지속가능발전 등 신흥 의제에서도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양국 간의 전략적 파트너십이 지속가능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부 간 협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양국 관계 발전에 대한 양국 국민들의 확고한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 긴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일관되고 체계적인 공공외교의 꾸준한 시행이 필수적이다. 2024년 주싱가포르 한국대사관이 싱가포르 언론과 공동으로 시행한 인식조사와 ISEAS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싱가포르와 동남아에서 문화적으로 높은 호감도를 얻고 있으나, 신뢰할 만한 전략적 협력 파트너로서의 인식은 아직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되, 단순한 문화상품의 소비 수준을 넘어서는 공공외교의 외연 확장과 함께 정부ㆍ진출기업ㆍ재외동포가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Team Korea 공공외교를 전개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현지의 주류 언론과 인플루언서들을 정책고객이자 협업 파트너로 활용하는 포괄적 공공외교를 꾸준히 시행해 나갈 경우 머지않아 한국은 싱가포르 국민들에게 가장 신뢰받는 전략적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이슈페이퍼 41호 바로보기수교 50주년을 맞이한 한국-싱가포르 올해는 대한민국과 싱가포르가 수교한 지 5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1975년 외교관계 수립 이후 양국은 정치ㆍ안보, 경제, 문화,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질적인 협력을 확대해 왔으며, 양국 간 협력 관계는 이제 일상적인 우호 관계를 넘어 전략적 동반자관계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한류의 확산, 경제협력의 다변화, 첨단기술 분야에서의 파트너십 강화 등은 양국 간 인적ㆍ물적ㆍ정서적 연결을 더욱 공고히 하는 토대가 되고 있다. 동남아 내 싱가포르의 전략적 중요성에 대해서는 모두가 잘 알 것이다. 싱가포르는 지정학적ㆍ지경학적으로 동남아시아의 핵심 거점에 자리하고 있으며, 세계 2위 규모의 컨테이너 항만과 글로벌 금융 중심지로서 국제 교역과 투자, 물류의 허브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한국 기업과 정부는 싱가포르를 통해 아세안 10개국 전체를 조망하고, 동남아 시장 진출 및 협력의 관문으로 삼아왔다. 또한 싱가포르는 아세안 내에서도 기술혁신과 경제 선진화 측면에서 가장 앞선 국가로 평가받으며, 디지털 전환, 스마트시티, 지속가능성 등 한국의 전략적 관심사와도 높은 접점을 지닌 파트너로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전략적으로 중요한 싱가포르와의 양국관계를 보다 지속가능하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양국관계 발전에 대한 양국 국민들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출발하여 주싱가포르 대한민국 대사관은 다양한 공공외교 활동을 수행해 왔으며, 2024년에는 싱가포르 국민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인식조사를 통해 향후 대(對) 싱가포르 외교정책 및 싱가포르 국민들과의 소통 강화 방안 마련을 위한 실증적 기초자료를 확보하기도 하였다. 이 글에서는 한국-싱가포르 수교 50주년을 맞아 양국 간 협력의 주요 성과를 정리해 보고, 향후 지속가능한 협력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토대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주싱가포르 대사관의 공공외교 활동을 평가하고자 한다. 아울러, 인식조사 결과를 토대로 향후 대 싱가포르 공공외교의 전략적 방향을 어떻게 추진해 나가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고자 한다.한국-싱가포르 양국관계 개요 (1) 전반적 양국관계: 전략적 동반자관계로의 진화한국과 싱가포르는 국제무대에서 유사한 외교적 지향성을 공유하고 있다. 양국 모두 다자주의, 규범 기반의 국제질서, 개방적 무역체제를 지지하며, 이를 토대로 ASEAN, EAS, APEC, RCEP 등 다양한 지역ㆍ국제협력체에서 활발히 협력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정상회담을 통해 첨단기술 협력, 공급망 파트너십, 스타트업 협력 등 새로운 협력의 지평을 열었다. 이는 양국이 전통적인 외교 영역을 넘어 신분야 글로벌 아젠다에 대한 공동 대응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협력의 폭과 깊이를 반영하듯 양국은 2025년 중 한국-싱가포르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Strategic Partnership)로 격상할 예정이다. 이는 양국 관계가 기존의 정치ㆍ경제ㆍ문화 협력을 토대로 사이버안보, 신기술, 지속가능발전 등을 포함하는 보다 포괄적이고 심화된 협력의 단계로 도약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2) 경제협력: 디지털ㆍ에너지 전환 협력의 중심축 싱가포르는 2024년 기준 한국의 10위 교역 대상국이자, 한국 기업의 동남아 진출을 위한 주요 거점 국가이다. 2024년 기준 양국 간 교역규모는 약 288억 USD에 달하며, 반도체, 석유 화학, 조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역이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2023년 발효된 디지털무역협정(DPA, Digital Partnership Agreement)은 데이터 이동, 전자상거래, 핀테크 등 디지털 분야 협력을 제도화한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또한 양국은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이라는 글로벌 아젠다에 대응하기 위한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수소 에너지, 스마트시티 네트워크 구축 등의 분야에서 협업이 본격화되면서 향후 미래세대를 위한 지속 가능한 경제협력의 모델로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3) 문화ㆍ교육ㆍ인적교류: K-컬처를 넘어 정서적 유대로 한국 문화에 대한 싱가포르 국민의 관심은 지난 10여 년 사이 눈에 띄게 증가하였다. K-POP, K-드라마, K-movie, K-food 등이 대표적인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았으며, 한국어 교육에 대한 수요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싱가포르 국립대, 난양공대 등 주요 대학에서도 한국학 강의와 교류 프로그램이 운영 중이다. 싱가포르를 방문하는 한국인이 연간 약 60만 명, 한국을 찾는 싱가포르인은 약 40만 명에 달하는 등 인적교류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청년층의 교류 확대는 장기적인 양 국민간 상호이해의 토대를 마련하는 중요한 축이 되고 있다. 싱가포르 국민 대상 최초의 한국 인식조사 이처럼 싱가포르 내에서 한국, 한국어 그리고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면서, 싱가포르 국민의 한국에 대한 인식을 정량적으로 분석해 보고자 주싱가포르 대한민국대사관은 2024년 7월에 최초로 인식조사를 실시하였다. 본 조사는 싱가포르 국영방송사 Media Corp 산하의 전문 여론조사 기관인 Media Research Consultants가 수행하였으며, 총 1,000명의 싱가포르 국민을 대상으로 온라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응답자는 성별, 연령대, 민족 구성을 고려한 대표 표본으로 구성되었고, 조사 항목은 한국의 이미지, 문화ㆍ관광 관심도, 국제협력 인식, 개인적 교류 경험 등 총 7개 영역이었다. 인식조사의 주요 결과를 살펴보면, 전체 응답자의 66%가 한국에 대해 긍정적 또는 매우 긍정적 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63%가 한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로 한류(K-Wave) 를 꼽았다. 특히 15 29세 청년층에서는 긍정 인식 비율이 70%를 상회하는 등 상대적으로 높은 호감도를 보였다. 또한, 응답자의 약 60%가 한국어 학습이나 한국 문화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어 한류를 중심으로 한 문화적 친밀감이 싱가포르 내에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한국 문화 콘텐츠 소비에 대해서도 조사를 하였는데, 최근 1개월간 한국 관련 콘텐츠를 소비한 비율은 TV/영상(54%), 음악(49%), 라이프스타일(40%) 순이었으며, 특히 청년층에서 K-POP과 K-뷰티 콘텐츠 소비가 두드러졌다. 이는 공공외교 콘텐츠 기획에 있어 연령별 콘텐츠 선호도 차이를 반영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해 주었다. 조사에는 싱가포르 국민의 한국 방문 경험에 관한 질문도 포함되었다. 응답자의 52%가 한국 방문 경험이 있으며, 이 중 23%는 최근 2년 이내 방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선호 방문 계절은 가을(51%), 봄(41%) 순이었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으로는 음식(56%), 문화유산 방문(50%), 테마파크(34%)가 꼽혔다. 향후 방문 의향은 93%로 매우 높았으며, 한국 음식(63%), 길거리 음식 (58%), 쇼핑(49%) 등이 주요 방문 동기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 양국 협력이 활발한 분야로는 기후변화(49%), 글로벌보건(48%), 경제불안정(44%), 기술변화(42%) 등이 지목되었으며, 다양한 연령대에서 예술ㆍ문화 교류 프로그램과 기술 분야가 향후 협력해야 할 영역으로 제시되었다. 이는 공공외교가 단순한 문화의 소개나 제품의 소비 단계를 넘어 양 국민의 실질적 교류 증진을 통해 서로를 실제적인 협력 파트너로서 신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전략으로 진화해야 함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또한, 싱가포르 외에 거주하거나 일하고 싶은 국가로 가장 많이 꼽은 나라는 호주(15%)였으며, 이어 뉴질랜드(12%), 일본(12%) 그리고 한국(8%) 순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국이 안정적이고 매력적인 생활 환경과 경력 개발 기회를 제공하는 국가로 평가받기 시작하고 있음을 시사하나, 한류의 열풍에도 불구하고 호주와 일본 등의 수준에는 못 미치고 있음을 확연하게 보여주는 결과이다. 개인 커리어 측면에서는 전체 응답자의 7%가 한국에 소재한 기업 또는 제3국 소재 한국 기업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며, 이러한 경험이 없는 93% 중 절반에 가까운 49%가 기회가 있다면 한국 기업에서 근무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하였다. 이는 한국 기업과 한국 사회 전반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가 확산하고 있으며, 특히 청년층을 중심으로 한국과의 실질적인 네트워킹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식조사가 보여준 긍정적인 결과는 한국 대중문화가 싱가포르 사회 전반, 특히 젊은 세대 사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번 조사는 몇 가지 한계점도 함께 드러냈다. 한류를 중심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은 반면, 한국의 정치, 사회, 경제, 기술 등의 분야에 대한 인지도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한국에 대한 관심이 단순한 한국 문화와 제품의 소비 행태에 국한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즉, 싱가포르 국민에게 한국이 문화 콘텐츠 수출국 으로는 인지되지만, 정책과 사회에 대한 이해 및 협력의 대상국 으로까지 인식되지는 않고 있는 현실을 확인할 수 있다. 싱가포르 소재 동남아 싱크탱크 ISEAS-Yusof Ishak Institute의 The State of Southeast Asia 설문조사5) 결과에서는 놀랍게도 일본이 가장 신뢰받는 협력 파트너로 선정되었다. 전문가들은 이 지역에서 잔혹한 식민 통치를 시행했던 일본이 역설적으로 가장 신뢰받고 있는 이유로서, 1977년 후쿠다 독트린 을 천명한 이래 상호 신뢰와 평등에 기초하여 진정성 있게 다져온 일본의 일관성 있는 동남아 정책을 꼽는다. 단기간의 구호나 캠페인이 아닌, 수십 년에 걸쳐 내각 교체에 상관없이 정부와 국민이 함께 노력해 온 일종의 공공외교 성과물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은 동남아 각국과 활발한 경제협력 및 인적ㆍ문화적 교류를 이어오고 있고, 한류 열풍이 이 지역을 휩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남아인들에게 전략적 협력을 기대하는 주요 파트너로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는 한국이 아세안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더욱 더 지속적이고 일관된 공공외교 전략과 고위급 교류 확대, 지역 맞춤형 협력 프레임워크 수립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타국을 침략한 적이 없고 K-컬처라는 독보적 소프트파워를 보유한 한국이 앞으로도 상호 존중과 신뢰에 기초하여 일관된 동남아 정책하에 공공외교를 강화해 나간다면 이 지역에 있어 우리 외교의 장래는 분명 더욱 밝아지리라 전망한다. 주싱가포르대사관의 공공외교 활동 이러한 인식하에, 주싱가포르 대사관은 양국 국민 간 상호이해와 우호 증진을 위해 다양한 공공외교 활동을 추진해 왔다. 특히 대사관은 문화, 교육, 디지털, 정책공공외교 분야를 아우르는 다각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싱가포르 국민에게 한국을 더욱 친숙하게 알리는 노력을 지속해 왔다.또한 주싱가포르 대사관은 대사관저를 수시로 개방하여 한-싱 청년간 스타트업 협업 지원 프로그램 등 양 국민 간 상호 소통의 장을 마련해 오고 있다. 아울러 GKS(Global Korea Scholarship) 장학생으로서 한국을 다녀온 싱가포르 청년들을 GKS 동창회로 영입하여 대사관저 등에서의 특별행사를 통해 싱가포르 공공외교의 든든한 우군으로 삼는 작업도 진행한 바 있다.이 외에도 K-서포터즈 프로그램, Korea Weeks 개최, 퀴즈 온 코리아 싱가포르 예선 대회 개최, 디지털 공공외교 및 SNS 채널 운영 등 공공외교 활동들을 해오고 있다. 여전히 개선이 필요한 부분들이 적지 않긴 하지만, 앞서 언급한 인식조사 결과를 반영하여 다층적ㆍ복합적ㆍ실질적 관계 구축을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 아울러, 우리 대사관은 인식조사 결과에서도 제시되었던 것처럼 보다 유기적인 네트워크 형성을 위해 정책고객 메일링 리스트 를 구축하여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는데, 이 리스트에는 공관장 및 공관원들이 면담하거나 공식 오찬 또는 만찬 등의 자리를 통해 교류한 인사들의 소속, 직책, 연락처 등 구체적인 정보를 기록하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 관계자, 기업인, 학계, 언론계, 문화예술계 인사 등 다양한 분야의 주요 인물이 분야별, 직급별, 중요도 등으로 분류되어 망라되어 있는 것이다. 이 메일링 리스트는 단순한 연락처 관리 차원을 넘어, 대사관이 국경일 리셉션 등 주요 외교 행사의 초청 대상자를 선정하거나 대사관이 추진하는 정책홍보, 문화행사, 경제협력 관련 주요 행사를 특정 계층에게 홍보하는 등 맞춤형 외교 활동을 전개하는 데에도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 대사관은 다양한 공공외교 활동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느꼈던 몇 가지 한계와 애로사항을 공유하고자 한다. 첫째, 인식조사 결과에서도 확인된 바와 같이 대다수 활동이 한국 문화 소비에 편중되어 있어, 한류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높았으나, 한국의 사회ㆍ정책ㆍ과학기술 등 보다 깊이 있는 분야에 대한 이해 확산에는 한계가 있었다. 둘째, GKS 동문회 및 K-서포터즈 등 현지 인적 네트워크 활동이 참여 인원의 한계 및 일회성 행사에 그쳐 참여 인원들의 지속적인 관여가 이루어지지 않음에 따라 자발적이고도 지속가능한 교류로 발전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었다. 셋째, 디지털 공공외교 역시 소수의 특정 플랫폼과 한정된 팔로워층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고, 신문ㆍ방송 등 주류 언론과의 괴리로 인해 보다 넓은 대중과의 유기적 소통으로 확장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넷째, 우리 민간기업, 정부 기관, 동포 사회 등이 공공외교 주체로서 함께 참여하는 소위 Team Korea 공공외교도 아직까지 많이 부족한 부분인데, Team Korea 공공외교는 한국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알리고 경제ㆍ문화ㆍ정책 외교를 함께 강화할 수 있는 유기적 전략이므로, 각 주체의 강점을 모아 협력한다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지속적인 우호관 계 형성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한계들은 향후 주싱가포르 대사관이 보다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공공외교 추진 방안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다시 말해 양국 국민 간 교류가 일방적 소비에 머무르지 않고,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상호 협력으로 이어지도록 유도하는 공공외교 전략의 필요성을 확인해 주었다. 예를 들어, K-POP 팬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한국 사회 토크 콘서트나 한국의 과학기술이나 정책을 소개하고 함께 토론하는 전시 및 강연회를 개최하여 한국에 관한 관심이 한국 또는 한국인과의 협력 네트워킹 추구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교류형ㆍ참여형 프로그램을 확대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고자 한다. 아울러 이러한 공공외교 활동 외에도, 한국 정부 대표단이 싱가포르를 방문할 때의 홍보 전략 역시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여겨진다. 그동안 한국 정부 대표단은 싱가포르 주요 인사들과의 면담이나 협의를 통해 실질적인 성과를 도출해 왔으나, 이러한 성과는 대개 전혀 홍보되지 않거나, 홍보가 되더라도 싱가포르 국민이나 정부를 대상으로 하지 않고 주로 한국 국내 언론을 대상으로 보도자료를 배포하여 한국 내 보도만을 유도하는 방식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었다. 싱가포르 현지에서의 한국 위상과 영향력 제고, 그리고 싱가포르 국민 대상 공공외교 관점에서 현지 언론을 통한 노출 확대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한국 정부 또는 학계, 기업들의 싱가포르 방문 계기에 The Straits Times, 『聯合早報』7) 및 CNA(Channel News Asia) 등 싱가포르 주요 언론에 보도자료를 배포하거나, 그들과의 공개적인 인터뷰 및 언론 브리핑 등을 통해 한국의 외교적 입장과 정책 방향, 협력 성과 등을 보다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전략이 요구된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한국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고, 장기적으로는 싱가포르 내 정책 결정자 및 여론 주도층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싱가포르 인구 구성에서 전체의 약 75%가 중국계인 만큼, 중국어 언론을 통한 홍보는 대중 접근성과 효과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聯合早報』와 같은 대표적인 중국어 일간지는 광범위한 독자층을 보유하고 있어 정부 정책, 문화행사, 공공외교 활동 등을 효율적으로 알릴 수 있는 핵심 채널로 기능하고 있다. 현지 사회와의 소통을 강화하고 메시지의 파급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처럼 현지 언어별ㆍ문화권별 언론매체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주싱가포르 대사관은 각종 주요 행사나 기념일, 문화행사, 경제ㆍ산업 협력 행사 등 계기에 The Straits Times, 『聯合早報』 등 싱가포르 내 대표적인 유력 언론에 영문 및 중문 보도자료를 배포하여 실제 기사화된 다수의 성공 사례를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보도는 다시 대사관의 소셜 미디어 계정을 통해 재확산됨으로써 다양한 공공외교 활동과 성과가 연속적으로 소개되고, 싱가포르 국민과 댓글을 주고받으며 이른바 댓글 외교 를 통한 상호 소통에도 기여하고 있다.2025년 한-싱 수교 50주년 계기 공공외교 프로젝트 올해 한-싱 수교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 대사관은 양국의 긴밀한 우호관계를 되새기고 미래 협력의 기반을 다지기 위한 다양한 문화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싱가포르에는 탄종파가(Tanjong Pagar)라는 지역이 있는데, 이곳은 수많은 한식당이 밀집해 있어 자연스럽게 한-싱 문화교류의 거점이자 상징적인 무대로 자리 잡았다. 주싱가포르 대사관에서는 바로 이 거리에 양국 간의 우호를 형상화할 수 있는 대형 벽화 프로젝트를 추진하여 거리의 시각적 매력을 높이는 동시에, 이를 하나의 포토존이자 랜드마크로 조성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더불어 이와 연계한 한식거리축제(K-Food Street Festival)도 함께 개최하여, 탄종파가 일대에 자리한 주요 한식당들과 협업함으로써 다채로운 콘텐츠를 통해 싱가포르 국민에게 한식의 매력을 보다 생생하게 전달할 예정이다. 이 모든 활동은 다큐멘터리 및 쇼츠 등의 디지털 영상으로도 제작되어 양국의 수교 역사, 문화 교류, 경제협력 사례 그리고 이번 축제의 현장 분위기까지 담아내어 싱가포르 언론매체 및 SNS 인플루언서, 대사관 SNS 계정 등을 통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홍보 콘텐츠로 활용될 예정이다. 대 싱가포르 공공외교 사용법 2.0 싱가포르는 지정학적 요충지이자 글로벌 허브로서, 한국에 경제적ㆍ외교적으로 전략적 가치를 지닌 매우 중요한 국가이다. 그렇기에 한국은 싱가포르와의 관계를 단기적 성과에만 머무르지 않고 지속가능하고 미래지향적인 협력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국민들은 물론 싱가포르 국민들의 신뢰와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단편적인 일회성 이벤트를 넘어, 체계적이고 정교한 공공외교 전략을 통해 싱가포르 사회 전반에 한국의 진정성과 매력을 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지난해 대사관이 실시한 인식조사 결과는 싱가포르 국민들의 기대와 인식을 면밀히 분석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이를 토대로 정부, 기업, 문화계가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Team Korea 방식의 입체적이고 지속적인 공공외교를 전개해 나가야 한다.일본이 싱가포르 사회에서 오랫동안 쌓아온 신뢰와 선호도를 단순히 경쟁 구도에서만 바라볼 일이 아니다. 한국만의 독창적 강점과 K-컬처를 통한 문화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와 매력을 제시한다면, 한국은 싱가포르 국민들에게 가장 신뢰받는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것이라 확신한다.* 각주1) 로고는 한국예술종합대학과 싱가포르 Nanyang Academy of Fine Arts 학생들이 참여한 디자인 공모를 통해 제작함. 2) 2024년 국경일 리셉션에서 홍진욱 대사의 색소폰 연주에 맞추어 참석자들이 싱가포르 국가를 제창함.3) 2023.11.21. 싱가포르 서부의 선진 제조업 산업단지 주룽 혁신지구 에서 준공식 개최(Lawrence Wong 당시 부총리,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최훈 당시 주싱가포르대사, Eric Teo 당시 주한싱가포르대사 등 참석)4) 2025년 4월 4일부터 5일까지 양일간 개최되었으며, 용호성 문체부 1차관과 Alvin Tan 문화청소년부 국무장 관이 참석하여 축사함.5) ISEAS-Yusof Ishak Institute는 2019년부터 아세안 각국의 여론 주도층을 대상으로 매년 설문조사를 시행하 고 있으며, The State of Southeast Asia 설문조사 결과는 동남아 지역의 전략 환경과 주요 협력 대상국에 대한 신뢰도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로 평가받고 있음.6) GKS를 통해 한국에서 유학한 경험자들의 모임으로, 올해 개최된 동문회에서는 하반기부터 한국 유학 예정인 학생들도 함께 참여하여 한국 생활 경험담 등을 공유함(좌측 상단 사진 촬영 장소는 대사관저).7) 『聯合早報』(연합조보, Lianhe Zaobao)는 Singapore Press Holdings에서 발행하는 싱가포르 최대의 중국어 일간지로, 1995년에 첫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싱가포르 내 구독자 약 40만 명, 전 세계 화인(華人) 구독 자 420만 명, 1일 평균 조회수 800~1,000만회에 이를 정도로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음(AC닐슨 통계). [40] 부경대 국제지역학부의 동남아학 교육 성과와 과제 | 정법모 작성자 동남아연구소 조회수 574 첨부파일 1 등록일 2025.08.11 초록 부경대 국제지역학부는 정부의 대학특성화(CK)사업이나 대학인문역량강화(CORE) 사업의 일환으로 교과과정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2015년 국제개발협력분야와 동남아 및 중남미 지역학 과목을 신설하였다. 주제에 대한 전문성뿐 아니라 지역학이나 현지어를 강조하는 교육전략에도 보조를 맞춘 것이다. 이를 위해 국제지역학부는 다수의 동남아 전공자를 전임교원으로 채용하고, 베트남어 과목을 전공필수 외국어 강의 중 하나로 정하는 등 동남아학 교육의 기반을 구축하였다. 그 결과 동남아 지역에 대한 학부생의 관심이 증가하고, 신설된 글로벌지역학과 대학원에서 동남아 지역 관련 논문을 작성하는 대학원생도 늘었다. 이와 함께 국제지역학부는 동남아 지역 대학과의 학생 교류를 목적으로 한 AIMS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 및 태국의 대학에 학생을 파견하거나 초청해 왔다. 이러한 인적 교류는 동남아 현지에서 개발협력 관련 인턴십이나 취ㆍ창업 기회를 찾는 수요를 증대시키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동남아 관련 연구를 하거나 동남아 관련 국책 사업에 실무자로 참여하는 학생을 배출하는 등의 성과로 이어졌다. 하지만 학부나 대학원에 동남아 관련 전공이 별도로 없으며, 동남아 지역과 연관된 진로가 불확실하다는 점은 대학의 동남아학 교육이 앞으로도 헤쳐가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이슈페이퍼 40호 바로 보기국제지역학부의 창설 및 발전 부경대학교 국제지역학부는 세계화/국제화의 세계적 추세에 부응하여 세계 주요 지역에 대한 체계적 지식과 실무능력을 갖춘 지역전문가를 양성하는 것 을 목표로 설립된 학과이다. 1995년 유럽학과로 출발하여 1997년에 국제지역학부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부산수산대학교와 부산공업대학교가 부경대학교로 통합된 것이 1996년이니, 통합 시점을 전후하여 대학이 나아갈 새로운 방향에 발맞추어 학과를 조직하고 재편한 것으로 보인다. 설립 당시에는 국제지역학부 아래 세부 전공으로 유럽학 전공, 북미학 전공, 동북아 전공이 있었다. 동북아 전공이 있던 시기에는 중국이나 일본 등 동북아 국가 위주로 수업이 진행되었을 뿐, 동남아 과목은 학과뿐만 아니라 학교 전체에서도 거의 개설되지 않았다. 2010년에는 동북아 전공이 폐지되고 중국학 전공이 신설되었는데, 2017년에 중국학과가 신설되면서 중국학 전공이 분리되어 나갔다. 이후 학부 내의 일본학 전공 교수도 일문학과로 자리를 옮기는 등의 재편으로 동북아 관련 색채는 더욱 옅어졌다. 대신 국제지역학부는 유럽이나 동북아 같은 지역 이름이 아니라 국제학 전공과 국제개발협력학 전공으로 전공명을 개편하고, 입학 후 1년 뒤에 양 전공 중에 하나를 택하도록 하였다. 학부는 국제학 과 국제개발협력학 으로 명명되었지만 전임 교수의 전공에 따라 국제학 전공에는 경제학이나 정치학, 지역으로는 북미나 유럽 관련 과목을 주로 개설하였고, 국제개발협력학 전공에는 인류학, 개발협력학 기반의 남미나 동남아 관련 과목이 주를 이루고 있다. 2023년말 기준으로 국제개발협력학 전공에는 중남미 전공자 3명과 동남아 전공자 3명이 소속되어 있으며, 동남아 전공 교수 중 한 명은 태국인이다. 국내 대부분의 국제학이나 국제개발협력학 전공이 경제/통상이나 국제관계 위주로 설계되어 있는 반면, 부경대 국제지역학부는 주제 전문성의 제고와 더불어 지역전문성 배양 이나 언어 전문성 향상 이 강조되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점이 있다. 특히 스페인어나 베트남어 수강이 졸업 필수 항목 중 하나가 된 것은 타 대학의 유사 전공과 구별되는 지점이다. 이러한 일련의 교과 개편은 2014년의 지방대학특성화사업(CK, University for Creative Korea)과 2016년의 인문역량강화사업(CORE, Initiative for COllege of humanities Research and Education)에 선정되면서 추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20살의 어엿한 성인인 국제지역학부는, 나날이 성장하는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역할에 발맞추어 2016학년도부터는 기존의 지역연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전 세계 모든 나라와 더불어 세계의 지속가능한 발전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자 국제개발협력 전공을 신설하고, 기존의 지역연구는 유럽 북미학 전공으로 개편하여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인류학,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분과학문 영역을 지역연구와 결합시켜 오신 학부 교수님들과 함께, 한편으로는 세계 각 지역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추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의 변화를 더불어 모색하고 실천할 수 있는 글로벌 시대의 국제지 역 전문가를 양성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2015년 부경대 국제지역학부 소개 브로셔 중 국제지역학부가 참여하는 지방대학특성화사업에서는 해양수산국제개발협력전문인력양성 을 목표로 2014년부터 개발협력학 관련 교과목의 개발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국제개발협력역량 강화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있다. 특히 국제개발협력과 관련하여 동남아시아 지역과 중남미 지역 이 중점 협력국으로 부상함에 따라 2015년과 2016년, 동남아시아 지역과 라틴아메리카 지역 전공자가 신임 교수로 채용되었다. 2015년 2학기에 새로 개설된 국제개발협력과 동남아시아 과목은 이러한 교과과정 재편의 서막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016년부터 시작된 부경대의 CORE 사업은 크게 글로벌지역학 모델, 인문기반융합전공 모델, 기초학문심화 모델의 세 분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특히 글로벌지역학 모델 사업 추진을 계기로 국제지역학부 내의 유럽학, 북미학 전공을 국제학 전공으로 개편하고 국제개발협력학 전공을 신설하였다. 국제개발협력학 전공이 신설되면서 동남아시아 지역과 중남미 지역의 사회문화 관련 수업과 함께 스페인어와 베트남어 수업이 추가되었다. CK와 CORE 사업을 통한 교과 개편 과정에서 지역학과 현지어 교육이 강조면서 2016년부터 기존의 유럽학이나 북미학뿐만 아니라, 세부 전공에 따라 동남아나 중남미 지역 수업을 수강할 수 있게 되었으며 기존의 정치, 경제 과목 중심 수업 외에 사회문화 수업이나 더욱 다양한 언어 과목을 수강할 수 있게 되었다. 국제지역학부의 동남아학 운영국제지역학부에서 동남아시아 관련 강의는 2015년도 2학기에 부임한 베트남 전공자 최호림 교수가 국제개발협력과 동남아시아 과목을 개설하면서 시작되었다. CK 사업의 일환으로 해양수산국제개발협력 전공을 2014년에 신설하였고, 개발협력학, 동남아지역 및 중남미 전공과목도 개설하여 관련 전공자를 전임 교수로 채용하였다. 개발협력학 과목이 개설되면서 국제개발협력과 동남아시아 과목은 더 이상 개설되지 않았고, 대신 2016년도 2학기부터 동남아시아 사회와 문화 가 전공선택과목으로 개설되었다. 2017년 2학기에는 동남아시아의 이해 과목이 세계화 역량 과목으로 분류되어 부경대에 재학 중인 모든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교양과목으로 개설되었다. 2016년까지는 교양교육과정을 공통교양, 선택교양, 기초교양 등으로 구분했지만, 2017년도부터는 인문 역량, 인성 역량, 세계화 역량으로 구분하였고, 각각 8학점, 2학점, 2학점 이상을 필수적으로 이수하게끔 하고 있다. 2017년 2학기부터는 아세안 관련 과목도 국제지역학부에 개설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2010년에 부임하여 국제교류부 소속으로 있던 태국인 우타이 우프라센(Utai Uprasen) 교수가 국제지역학부에 유럽학 전공으로 부임하였다. 경제학 전공인 우타이 교수는 부임 이후 유럽과 아시아의 경제 및 통상 관련 수업을 주로 개설하였으나, 2017년 2학기부터는 아세안 관련 경제 및 통상 수업을 개설하고 있다. 2018년에는 필리핀 전공자인 인류학자 정법모 교수가, 2023년 에는 미얀마 전공자인 정치학자 문기홍 교수가 전임으로 채용되어 동남아 사회문화, 정치 등의 수업을 개설하였다. 최호림 교수가 퇴직한 뒤 우타이 교수가 국제학 전공에서 국제개발협력학 전공으로 보직을 변경하면서, 2023년말 기준으로 동남아 관련 전공은 정법모, 우타이, 문기홍 교수가 담당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사회와문화 와 동남아시아종족과종교 는 정법모 교수가, 동남아시아기업과시장 , 아세안과 국제관계 , 아세안의정치와경제 등은 우타이 교수가, 그리고 동남아시아지역특강 , 동남아시아의이해 등은 문기홍 교수가 주로 담당하고 있다. 이외 에 베트남어 언어 과목은 베트남인 강사(찐티한이, 루우티로안, 보람수언, 푸옹 등)가 담당해왔다.국제지역학부에서 동남아 관련 언어 수업은 2016년 1학기부터 시작되었다. 초급 베트남어 로 시작한 베트남어 수업은, 2017년도 1학기에 중급 베트남어 , 2017년도 2학기에는 베트남어 회화 라는 이름으로 개설되었다. 초기에는 최호림 교수가 직접 베트남어 수업을 담당하면 서 베트남을 소개하거나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독려하는 역할을 맡았다. 언어 수업은 학부 내에 서 2018년부터 국제지역언어 라는 과목으로 재편되었고, 베트남어와 스페인어 수업이 국제 지역언어 Ⅰ , 국제지역언어 Ⅱ , 국제지역언어 Ⅲ , 국제지역언어 특강 이라는 이름으로 매 학기 개설되어 학생들로 하여금 단계별로 이 과목들을 수강하게끔 하고 있다. 국제지역학부 학생은 국제학 전공과 국제개발협력학 전공에 상관없이 베트남어와 스페인어 중 하나를 선택하여 단계별로 국제지역언어 수업 네 과목을 이수할 수 있다. 두 개의 언어 수업은 별도로 분리하여 진행하지 않고 1학기에는 국제지역언어 Ⅰ 과 국제지역언어 Ⅲ 이라는 이름으로 베트남어 수업이 개설되고, 2학기에는 국제지역언어 Ⅱ 와 국제지역언어특강 으로 베트남어가 개설된다. 스페인어는 베트남어와 교차하여 국제지역언어 Ⅰ 과 국제지역언어 Ⅲ 이 2학기에 개설되고, 국제지역언어Ⅱ 와 국제지역언어특강 이 1학기에 개설된다. 다른 과목은 모두 전공선택과목 이지만, 국제지역언어특강 은 필수과목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학과에서는 이 과목을 듣기 전에 국제지역언어 Ⅰ,Ⅱ, Ⅲ 과목을 순차적으로 수강하기를 권장하고 있다. 다소 복잡할 수 있는 이 편재는 한정된 수강인원을 효과적으로 배치하기 위한 목적과 더불어 강의를 진행할 외국어 강사 채용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채택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베트남어를 수강하는 학생이 스페인 어에 비해 적어서 경우에 따라선 베트남어가 개설되지 못하거나 폐강되는 일도 발생하지만, 비 언어전공학과에서 베트남어를 졸업 필수 요건 중 하나로 채택한 것은 흔치 않은 시도였다고 평 가할 수 있다.국제지역학부의 동남아학 성과(2015-2023년) (1) 동남아 관련 수업 과목의 증가와 수강생 증가 2015년부터 부경대 국제지역학부에 한 번이라도 개설된 동남아 관련 수업은 다음과 같다. 교양 수업으로는 동남아시아의이해 (균형교양)와 초급베트남어 가, 전공선택과목으로는 동남 아시아사회와문화 , 아세안정치와 경제 , 동남아시아종족과종교 , 아세안과 국제관계 , 동 남아시아지역연구특강 , 동남아시아기업과시장 , 동남아시아의민주주의와사회운동 등이 개설되었다. 학과의 재편성을 상징했던 국제개발협력과동남아시아 수업은 2015년에 한 번 개설된 이후로는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그렇기는하나 이러한 변화는 국제개발협력이나 동남아시아와 관련하여 훨씬 세분화된 교과목이 개설되는 출발점이기도 했다. 동남아 관련 언어 수업은 교양과목에 초급베트남어 가 개설된 이후, 전공과목으로 중급베트남어 , 베트남어회화 수업이 열렸다. 선택교양으로 분류된 초급베트남어 는 교양과목으로 개설되어 2019년부터는 매 학기 운영되었으며, 2020년 1학기에는 분반까지 나뉘어 총 61명이 수강하였다. 2022년에는 교양교육원 차원에서 글로벌외국어-대학베트남어 라는 이름으로 개설하여 필수교양으로 운영하면서 운영주체가 학과에서 대학으로 이동하였다. 국제지역학부 내에서는 2018년 이후로 국제 지역언어 라는 이름으로 재편되면서 베트남어 라는 수업명은 사라졌지만, 실제로는 매학기 단계별 베트남어 수업이 개설되고 있다. 부경대 국제지역학부의 동남아 관련 전임교원은 문화인류학, 정치학, 경제학 등으로 다양하여 동남아시아 경제, 사회, 문화, 역사, 정치 등의 다양한 분야에 대한 과목을 2015년부터 개설하고 있다. 또한 베트남어도 교양과목의 베트남어뿐만 아니라, 국제지역언어 Ⅰ, Ⅱ, Ⅲ 과 국제지 역언어특강 등을 단계별로 수강하여 언어전공이 아니더라도 언어 관련 수준을 높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관련 전공과목 수강인원은 남미와 동남아에 대한 관심 차이가 반영된 것이었다기보다는 국제학 전공과 국제개발협력학 전공을 선택하는 비중에 따라 달라지는 경향 을 보였다. 국제개발협력학 전공이 신설된 초기에는 국제지역학부 내에서 국제학 전공 선택자가 다수를 이루었으나, 이후 동남아나 남미 지역학 수업에 대한 관심, 그리고 개발협력학 분야에 대 한 기대가 늘면서 국제개발협력학 전공이 다수를 넘게 되었다. 또한 국제학 전공에 비해서 국제 개발협력학 전공의 남미 및 동남아 전공자 전임교원 충원이 더 원활하게 되면서 전반적으로 전공선택 학생이 늘고 남미나 동남아 과목의 수강생도 안정적으로 확보되는 추세이다. 다만 학교 차원의 정원 조절에 따라 전체 학부 학생 수가 60~70명 수준으로 줄어들면서 국제개발협력학 전공 학생 수도 30~40명 수준이 되었다. 이는 곧 단순히 수강인원 수만 놓고 동남아 관련 과목 에 대한 관심도가 감소했다고 해석할 수는 없음을 의미한다. 다만 동남아시아 관련 수업에 비해 베트남어 Ⅱ, Ⅲ단계, 특히 필수과목인 국제지역언어특강 을 선택하는 학생 수가 감소한 것은 확연히 눈에 띈다. 베트남어 수강인원에서의 이 같은 변화를 차치하면, 대체로 동남아시아 관련 언어나 교과목이 증가하면서 국제지역학부 내에 동남아 지역에 관심을 두는 학생은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동남아 지역을 연구하고자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교환학생이나 인턴십 기회를 찾아 동남아 지역을 선택하는 학생도 증가하고 있다.(2) 대학원 과정 동남아 지역학 과목 개설과 동남아 지역 전공자의 배출 국제지역학부의 재편과 함께 대학원에도 동남아 관련 교육과정이 신설되었다. 신설된 과정이 곧바로 동남아 지역 전공을 뜻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학부에서와 마찬가지로 동남아시 아나 남미 지역 관련 과목의 개설로 이어졌고, 이들 지역을 대상으로 학위논문을 작성하는 학생 도 늘어가는 추세다. 국제지역학부 내에는 일반대학원 국제지역학과가 오랫동안 유지되었고, 아프리카를 비롯하여 중국, 중앙아시아 등 다양한 국적의 유학생이 이 과정을 이수하였다. 대부분의 수업은 영어로 진행되었다. 학부와 마찬가지로 2016년 CORE 사업에 선정된 이후 여러 차례 진행된 재편 과정의 일환으로 국제지역학부 주관하에 일어일문학부, 영어영문학부, 중국학과가 공동으로 참여하여 협동과정을 창설하였다. 글로벌지역학협동과정 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이 과정에서는 동남아와 남미를 비롯하여 중국, 일본, 미국 등 개별 국가 단위 지역학을 연계하여 융합적 교육을 통해 글로벌지역학 인재를 양성한다는 목표를 두었다. 국제지역학과 대학원과 달리 수업이 한국어로 진행되면서 학부 졸업생의 참여도 늘었고, 타 전공 졸업 학생의 대학원 입학도 증가하였다. 특히 현지 조사를 바탕으로 한 석사학위 논문 작성을 권장하고 각 지역 관련 수업 중심으로 과목이 개설되면서 라틴아메 리카나 동남아시아 전공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글로벌지역학협동과정이 신설된 2016년 이래 2023년까지, 석사과정에서 3명의 한국 학생과 3명의 동남아(베트남, 미얀마) 출신 학생, 그리고 1명의 우즈베키스탄 출신 학생이 동남아 관련(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미얀마 등) 논문을 작성하고 졸업했으며, 박사과정에서는 2명의 한국 학생이 동남아 관련 학위논문을 준비 중이다. 박사과정생 중 1명은 글로벌 지역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진학했으며, 석사 졸업생 중 2명은 동 대학의 다른 대학원이나 타 대학 박사과정에 진학해 동남아 관련 학위논문을 준비 중이다. 2021년 대학원 글로벌지역학과가 BK21사업에 선정됨에 따라 위 대학원생은 예산 지원을 받아 동남아 지역에 대한 현지 조사를 수행하기도 하였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국제적 이동 제한으로 현지 조사를 수행할 수 없게 된 학생은 한국 내 동남아 국가 출신 결혼이민자나 유학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수행하여 학위논문을 작성하였다. 대학원 과정에서의 동남아 지역학 교육은 2017년 일반대학원 국제지역학과에 동남아시아 사회와문화 과목이 개설된 것이 시작이었다. 협동과정 글로벌지역학과가 신설된 이후에는 주로 이 협동과정에 동남아 관련 과목이 개설되었다. 동남아시아종족과종교 , 동남아역사와ASEAN 등의 과목이 순차적으로 신설되었다. 과목을 담당할 인력이 부족했지만 동남아 관련 전공자가 수강할 과목이 너무 적어 신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글로벌지역학과가 신설되기 전에도 동남아 출신 유학생이 논문을 작성한 경우가 없지는 않았지만, 복수의 동남아 관련 과목이 개 설되고 동남아 관련 전공자가 공부 모임이나 세미나를 조직하여 동남아 관련 문헌을 같이 읽고 동남아 지역 현지조사를 공동으로 수행하게 된 것은 글로벌지역학과가 신설된 이후라고 볼 수 있다. 한편, 국제지역학부가 주관하는 대학원 과정으로는 글로벌정책대학원의 국제학과도 있다. 이는 특수대학원의 하나로서 야간에 개설되는 과정이며, 논문 작성이 의무는 아니어서 동남아 관련 과목은 동남아지역연구 정도만 주로 개설되고 있다. (3) 학생 교류를 통한 동남아 지역 및 현지어에 대한 관심 증대 베트남어가 졸업을 위한 필수과목 중의 하나가 되면서 베트남 관련 단기 어학연수 및 교환학 생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였다. 학부가 주도하여 호치민이나 하노이 소재 대학교와 학 교간 MOU를 체결하여 중단기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추진함에 따라 어학연수나 교환 학생으로 현지 대학에 다녀오는 학생이 증가하였다. 국제개발협력학 전공 학생 중에는 국제개발에 대한 주제와 함께 동남아지역에 대한 관심이 더해, 코이카(KOICA)나 코트라(KOTRA) 등이 제공하는 동남아 국가에서의 인턴십 프로그램에 지원하는 학생도 증가하였다. 이러한 분위기에 호응하여 국제지역학부는 2019년에 교육부가 후원하는 CAMPUS Asia- AIMS 프로그램에 지원하여 선정되었다. CAMPUS(Collective Action for the Mobility Program of University Students)는 2011년 한ㆍ중ㆍ일 3국 간 학생교류프로그램으로 시작되 었는데, 2012년 아세안에서 조직된 AIMS(ASEAN International Mobility for students)1)와 결합하여 시작된 것이 CAMPUS Asia-AIMS 프로그램이었다. CAMPUS 프로그램이 주로 대학 원의 복수/공동 학위 프로그램이었던 것과 달리 CAMPUS Asia-AIMS(이하 AIMS )는 한일과 아세안 국가간의 학부생 교환프로그램이었다는 차이가 있다. 국내에서는 2016년 4개 대학 중 심으로 시작되었는데, 부경대는 AIMS 사업 1주기 중이었던 2019년부터 합류하였다. 국제지역 학부가 주관이 되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부경대는 말레이시아의 말라야대학교(University of Malaya), 베트남의 통상대학교(Foreign Trade University)와 후에대학교(Hue University), 필리핀의 아테네오대학교(Ateneo de Manila University)와 교류를 시작하여, 이후 태국의 탐마삿대학교(Thammasat University)와 필리핀국립대학교(University of the Philippines)로까지 교류대학을 확장하여 학생을 파견하거나 초청하고 있다. 2024년 상반기까지 부경대에서는 49명이 동남아 지역의 AIMS 참여대학들에 파견되었고, 동남아/아세안 현지에서는 28명의 학생을 초청하였다. 이 프로그램은 일반적인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갖는 장점에 더하여 파견 기간 동안 교육부가 지원하는 체류비를 장학금으로 받을 수 있다는 혜택이 있다. 또한 초청학생은 문화체험, 참여대학 공동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어, 한국 학생과 아세안 학생이 폭넓게 교류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 AIMS 프로그램에는 연세대 미래캠퍼스나 부산외대처럼 동남아 전공 교수가 사업 책임을 맡고 있는 대학이 참여하고 있어, 가령 연세대가 주도하여 진행한 아세안전문가특강시리즈2)와 같이 동남아 관련 지식을 국내 다른 대학에 확산하는 기능도 수행하고 있다. 부경대 국제지역학부에서는 동남아시아 현지 대학에서 수학한 이후 대학원에 진학하여 동남아시아 지역 관련 연구를 수행하거나, 동남아 지역에서 국제개발협력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이 증가하고 있다. 이 학생 교류 프로그램에는 국제지역학부 내의 학생 동아리 YSM(Young Southeast Asian Masters)이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는데, 이 동아리는 국제지역학부에 동남아 관련 교과목이 신설되기 시작한 2016년에 결성되었다. 이 동아리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동남아 관련 서적이나 영상물을 통해 동남아 관련 지식이나 대중문화를 학습할 목적으로 운영되며, 동남아 출신 학생이 교환학생으로 왔을 때 버디(buddy)를 결성하여 지원하는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이처럼 실질적인 인적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동남아 언어 및 지역 지식에 대한 관심도 커져, 현지 파견을 앞둔 학생들은 부산외대와 전북대가 진행하는 동남아언어캠프에도 참여하여 현지어를 습득하고 있다. 동남아학 발전을 위한 국제지역학부의 과제 부경대는 국제지역학부로의 학과 재편 과정에서 동남아학 관련 과목을 신설하였고, 전임으로 동남아 전공자도 다수 채용하였다. CK, CORE 등의 여러 국책 사업의 지원을 받으며 학생들이 동남아 국가와 교류할 기회가 늘었고, 대학원에서는 동남아 지역을 연구하는 학생이 빠르게 증가 했다. 짧은 기간에 제도적 개편과 맞물려 동남아 관련 교과목이나 전공 학생이 급속히 성장하긴 했지만, 이 관심이 향후에도 지속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첫째, 동남아 관련 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서는 동남아 지식 및 언어가 실제 취업 및 창업 시장에서 유효하다는 결과가 있어야 한다. 현재까지는 스페인어와 비교하여 베트남어를 선택하는 학생 수가 적다. 학생들이 스페인어 강의를 더 많이 신청하는 이유는 실질적으로 라틴아메리카 지역을 개발협력 관련 직업이나 현지 기업 취업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기보다는 이 력서에서 인정되는 제2외국어로 스페인어가 더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많은 학생이 언급한다. 베트남어가 배우기 쉽지 않다는 인식까지 더해져, 실질적인 혜택이 없을 경우 베트남 언어 수업에 대한 수요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 학부 전체의 정원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상황에서 베트남어에 대한 실질적인 이점이 체감되지 않으면서 베트남어 수업은 정원을 채우기 어려워지고, 베트남어Ⅱ나 Ⅲ처럼 상급 단계 수업은 폐강되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다. 학과 내에서도 베트남어 수업의 존치 여부가 논의될 정도로 제2외국어에서 스페인어와 베트남어 수요 사이에는 불균형이 일어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동남아시아 언어 중 다른 언어를 선택하거나 제2외국어를 스페인어로 통일하자는 의견이 거론되기도 했다. 대안으로 인도네시아어나 태국어 수업을 학점 교 류 대학에서 수강하게 하여 선택 폭을 넓히는 방안도 강구되기도 했지만, 타 대학에서 수강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만약 온라인수업이 교내에서 폭넓게 인정된다면 훨씬 기회가 많이 있겠지만, 교내에서 온라인수업이 인정되는 조건은 점점 엄격해지고 있다. 결국은 베트남이 나 동남아 관련 전공이 취ㆍ창업에 도움이 되는 사례가 축적될 필요가 있으며,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실질적인 인턴이나 자원봉사 활동에 연계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으로 보 인다. 둘째, 지역학으로서의 동남아에 대한 관심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대학원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CORE 사업 등을 통해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을 위한 학업 지원금이 제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부 출신의 학생은 손에 꼽힐 정도로 적었으며, 진학한 학생들 가운데는 학업을 중단하는 사례도 생겼다. 이는 대부분의 지방 대학이 겪는 공통된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대학원 진학의 실효성이 입증되지 않는 한 쉽게 해결될 수 없는 사안으로 보인다. BK사업에 선정된 이후에도 타 대학에서 입학하는 학생이 증가하여 대학원 전체의 인원은 충분해 보이지만, 학부 졸업생 가운데 진학하는 비율은 크게 늘지 않았다. 학ㆍ석사 연계과정을 통해 학부 고학년 때부 터 대학원 수업을 수강하는 학생들이 있고, 학부 차원에서도 연구 관심을 갖도록 노력하고 있긴 하지만 대학원에 진학한 이후에도 졸업 후 진로 문제를 고민하다 학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국제지역학 이나 글로벌지역학 석사 학위나 박사 학위가 실제 졸업 후 진로에서 어떤 이점이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협동과정으로 신설 되어 BK 사업에 선정됨에 따라 학생들에 대한 지원은 늘었지만, 현재까지는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난 후 관련 직종에 취업한 사례가 거의 없다. 외국인 유학생의 경우 졸업 후 본국에서 연구 직종에 취업한 사례가 있지만, 한국인 학생의 경우 박사 학위 과정이 길어지거나 학위 취득 후에도 관련 직업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동남아학회에는 연구회원 등과 같이 학위 과정에서 타 대학 대학원생과 교류할 수 있는 장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학회 참여나 인적 교류에 제약이 많은 상황이다. 최소한 부 울 경, 즉 물리적으로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는 부산, 울산, 그리고 경남 지역 소재 대학의 동남아 전공자들끼리라도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대안 중 하나일 것으 로 보인다. 셋째, 학부나 대학원에서 확실히 동남아 지역 전문가 라는 타이틀을 부여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대학에서는 복수전공이나 부전공 외에도 점점 융합 전공이나 마이크로 전공 형태 등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을 만들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국제지역학부에서도 동남아 마이크로 전공 과 같은 세부 전공을 만들어 전문성을 부여하기가 어려운 일은 아니다. 관 건은 이러한 지역학 전문성을 부여받는 것이 졸업을 앞둔 학생에게 얼마나 매력적인가 일 것이다. 스마트 , 디지털 , 빅데이터 등의 팬시한 접두어가 즐비한 요즘에 지역학 전공을 높이 평가해 줄 분야를 발굴하여 사례를 만들어 내는 것이 급선무로 보인다. 물론 대학원 과정에서는 지역학 전공 특색을 더 강화하는 것이 졸업 후 취업에 훨씬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숙제는 한 대학 에 있는 동남아 전공 전임교원 숫자가 한정되어 있다는 점과, 동남아 관련 전공을 통해 취업할 기회가 적다는 점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국동남아학회에서 제안하는, 학교별 연대를 통해서 공동으로 동남아 교과과정을 진행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동남아 지역연구를 희망하는 대학원생 간의 더욱 활발한 교류가 꼭 필요하다. 또한 학부생을 위한 AIMS 프로그램과 같이 동남아 대학과의 복수학위나 공동학위제를 통해 석ㆍ박사 과정생의 지역 전문성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1+1 시스템을 대학원 과정으로까지 확대 하여 현지어 습득이나 현지조사 기회를 더욱 많이 부여하는 일이 현재 부경대에서는 중요한 작업으로 보인다. 최근까지 부경대는 학부에 비해서 대학원의 교환프로그램이나 복수학위 기반이 부족한 편이다. 교과과정에 대한 상호 이해 및 조정을 통해 대학원 협력 과정을 한 대학이 성공적으 로 구축한다면 타 대학에 대한 파급효과도 클 것으로 기대한다.* 각주1) AIMS 사업은 아세안 국가 간 학생 이동성 증진을 위해 동남아시아교육장관회의(SEAMEO, Southeast Asian Ministers of Education Organization)에서 운영하는 정부와 대학과의 다자협력 상호교류프로그램이다. 2009년에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M-I-T) 등 세 나라가 주도하여 동남아 국가 대학 간의 교환학생 프로 그램으로 시작해서, 현재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브루나이, 필리핀 등의 여섯 개의 동남아 국 가와 한국 및 일본이 참여하고 있다. AIMS의 첫 글자 A 는 초기엔 ASEAN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었지만, 현재는 한국과 일본이 참여한다는 의미에서 Asian 으로 바꾸어 쓰고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2012년 시작 시점을 언급한 것이므로 ASEAN으로 표기했다.2) 연세대 미래캠퍼스 AIMS 사업단이 실시하는 아세안 전문가 특강 시리즈 는 연세대 재학생 및 국내 AIMS 참 여 대학의 학생들에게 아세안 및 한-아세안협력에 관한 관심을 유발하고 이해를 높이고자 2021년부터 매년 진행 되고 있다. AIMS에 참여하는 동남아 5개국 및 아세안 소개 강의를 온라인으로 시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22 년 아세안특강시리즈에는 필리핀(정법모/부경대), 태국(Utai Uprasen/부경대), 인도네시아(박광우/부산외대), 말레이시아(Julia/남서울대), 베트남(심주형/인천대), 아세안(이재현/아산정책연구원)에 대한 강의가 포함되었 다. 강의는 영어로 진행되며, AIMS 초청 학생들도 국내 대학생과 함께 참여한다. [39] 아세안 그린전환,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의 동력인가? | 고영경 작성자 동남아연구소 조회수 1074 첨부파일 1 등록일 2025.08.05 초록이 글은 아세안의 그린전환이 실질적인 경제성장 동력이 될 수 있는지, 이를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지를 분석한다. 기후위기와 글로벌 환경규제 강화 속에서 아세안은 탈탄소 경제로의 전환이라는 구조적 도전에 직면하는 동시에, 중간소득 함정이라는 내부 과제도 안고 있다. 이러한 이중 과제 속에서 그린전환은 새로운 성장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글은 그린성장 이론, 포터 가설, 내생적 성장 이론 등 기존 논의를 바탕으로 아세안의 자원 기반, 정책 프레임워크, 산업 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였으며, 재생에너지 확대, 전력망 통합, 녹색산업 육성 등에서 나타난 가시적 진전과 함께 그 한계를 조명한다. 아세안은 세계 최고 수준의 태양광 지열 자원과 생물다양성을 바탕으로 2050년까지 수조 달러의 경제 효과와 수천만 개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민간투자 부족, 기술역량 미비, 제도적 분절, 그린워싱 등은 여전히 이러한 전환을 제약하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경제성장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려면 제도적 장벽 제거, 녹색금융 활성화, 기술 생태계 조성 등 보다 체계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한국은 이 과정에서 기술 협력과 녹색금융 분야에서 전략적 파트너로 기여할 수 있는 여지를 갖는다.이슈페이퍼 39호 바로보기기후위기가 글로벌 공통과제로 부상하면서 전 세계가 탈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아세안 지역은 이러한 전환의 최전선에 있다. 아세안은 연평균 5% 안팎의 경제성장을 기록하며 글로벌 경제의 핵심축으로 부상했지만, 미얀마,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은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지역으로 꼽힌다. 아시아 태평양(ASEAN 포함) 지역은 2070년까지 고배출 시나리오(High-end emissions scenario) 아래에서 기후변화로 인해 GDP의 약 17%를 잃을 위험에 처해 있다(ADB 2024). 한편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RE100(Renewable Electricity 100%) 확산 등 글로벌 환경규제 강화로 기존 수출 경쟁력도 위협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린전환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그런데 그린전환은 단순한 환경보호 차원을 넘어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을까? 국제재생 에너지기구(International Renewable Energy Agency 2023)는 아세안의 그린전환이 2050년까지 GDP 13.1조 달러 증가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했고, Bain Company et al.(2025)는 2030년까지 1,200억 달러 가치 창출과 90만 개 일자리 생성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본 연구의 핵심 질문은 아세안 그린전환이 지속가능한 경제성장 동력이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이며, 현재 그 조건들이 어느 정도 충족되고 있는가? 이다. 본 연구는 그린전환과 경제성장 간의 이론적 연관성을 검토하고, 아세안의 그린전환 잠재력과 필요성을 분석한 후, 현재까지의 실제 성과를 평가하여 성장동력으로서의 현실성을 진단한다. 마지막으로 잠재력 실현을 제약하는 핵심 요인들을 파악하여 조건부 성장동력론의 정책적 시사점을 제시한다. 그린전환과 경제성장: 이론적 토대 지속가능성은 오늘날 경제 사회 환경 전반에서 핵심 의제로 떠올랐으며, 기후위기의 심화는 경제 시스템의 근본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녹색경제(green economy) 와 순환 경제(circular economy) 개념이 부상하고 있으며, 이는 그린전환의 핵심 방향을 형성하고 있다. 녹색경제는 환경보호를 전제로 하면서도 경제성장과 고용, 사회적 포용성을 함께 추구하는 발전 전략으로, 온실가스 감축과 생태계 보존, 자원 효율화 등을 통합한 구조적 전환을 지향한 다(UNEP 2011). 순환경제는 자원의 투입과 폐기를 최소화하고 자원 가치를 최대한 오래 유지하는 방식으로, 녹색경제의 핵심 구성요소로 간주된다(Ellen MacArthur Foundation 2015; UNEP 2015). (1) 그린 성장 이론 그린 전환의 이론적 토대로서 녹색성장(green growth) 개념이 제시된다. 녹색성장은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면서도 경제성장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는 접근으로, 환경투자가 혁신을 자극하고 생산성을 높여 장기 성장에 기여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OECD 2014). 이는 기존의 성장-환경 간 대립 구도를 넘어서기 위한 이론적 시도로, 특히 기술혁신을 통해 환경 부담을 늘리지 않으면서도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는 탈동조화(decoupling) 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포터 가설(Porter Hypothesis)은 이러한 논의를 뒷받침하는 대표적 이론으로, 환경 규제가 오히려 기업 혁신을 유도하고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Porter Van der Linde 1995). 이 가설의 약한 버전(weak version) 은 환경 규제가 친환경 기술개발 및 기업의 생산성을 어느 정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고, 강한 버전(strong version) 은 이러한 효과가 더 나아가 산업 전체의 경쟁력과 경제적 성과까지 장기적으로 향상시킨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수의 실증연구들은 환경정책이 친환경 기술개발을 촉진하고 산업 성과를 개선할 수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특히 시장 기반 규제와 유연한 정책설계가 이러한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측면에서 정책설 계의 중요성이 강조된다(Ambec et al. 2013; Lanoie et al. 2011; Albrizio et al. 2017). 한편, 내생적 성장이론(endogenous growth theory)은 기술 지식 인적자본이 경제성장의 내 재적 동력임을 강조하며, 녹색성장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다(Aghion Howitt 1998). 이 관점에서 탄소세, 환경규제, 정책 인센티브 등은 친환경 R D를 촉진하여 지속가능성과 생산성을 동시에 향상시킬 수 있다. 이는 환경정책이 단순한 규제를 넘어 장기 성장전략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Hallegatte et al. 2012; Acemoglu et al. 2012). 물론 이러한 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Hickel과 Kallis(2019)는 절대적 탈동조화 가 현실적으로 달성된 사례가 거의 없다고 주장하며, 성장 자체를 넘어서려는 포스트 성장 모델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녹색성장은 혁신경제학, 환경경제학, 녹색 케인스주의 등 다양한 이론과 정책의 교차지점에서 중요한 담론으로 기능하고 있으며, 특히 정의로 운 전환(Just Transition) 1)을 통해 사회적 수용성과 제도 기반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Jacobs 2013). 이론적 논의는 실증연구를 통해 점점 보완되고 있다. 탄소세, 규제, 친환경 투자 등은 단기적으로 산업 전환의 비용을 수반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고용 증가, 생산성 제고, 혁신 유인이라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음이 다수의 연구에서 확인되었다(Fankhauser Jotzo 2017; Zhang et al. 2021; OECD 2023b). 특히 재생에너지 및 녹색 금융, 디지털 기술, 핀테크의 결합은 자원 효율성과 투자 효과를 제고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는 아세안과 같은 신흥국 맥락에서도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Zhang Sun 2024; Deng et al. 2023; Xu et al. 2023). (2) 그린전환의 경제적 효과: 실증연구와 사례 그린전환의 경제적 영향에 관한 연구는 단기적 비용과 장기적 이점을 모두 보여주며 광범위 하게 이루어졌다. 단기적으로는 탄소세와 환경 규제로 인해 일부 산업의 생산성 감소, 소비 패턴 변화, 그리고 특정 부문의 고용 조정 등의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실증적으로 확인되었다(Metcalf Stock 2020; Andersson 2019; Yamazaki 2017; Dechezlepr tre et al. 2018). 특히 Yamazaki(2017)는 탄소세가 제조업 생산과 고용에 미치는 단기적 영향을 분석했으며, Dechezlepr tre et al.(2018)은 환경 정책이 기업 경쟁력에 미치는 초기 비용을 실증적으로 제 시했다. 반면, 장기적으로는 저탄소 기술 개발, 녹색 인프라 투자, 그리고 환경 혁신이 생산성 향상, 고용 창출, 경제 성장을 촉진한다는 것이 다양한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다(Fankhauser Jotzo 2017; Zhang et al. 2021; Li et al. 2023; Rubashkina et al. 2015; Wang Shao 2024). Zhang et al.(2021)은 중국의 녹색 전환 정책이 혁신과 생산성 개선을 통해 경제 성장 으로 연결됨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으며, Rubashkina et al.(2015)은 환경 정책이 제조업체의 혁신 활동과 생산성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포터 가설을 지지하는 증거를 제시했다. 특히 Wang Shao(2024)는 중국의 녹색금융 정책이 기업 투자 효율성을 향상시키고 자원 배분의 최적화를 통해 경제적 성과를 개선한다는 점을 입증했다. OECD(2023b)의 최신 데이터 역시 녹색 정책이 재정 안정성과 고용 증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뒷받침한다. 그린 전환의 핵심 동력은 기술혁신과 금융지원의 상호작용에서 나온다. 기술혁신 측면에서 살펴보면, 엄격한 환경 규제는 기업의 녹색 혁신을 유도하여 지속가능한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다(Duran Saqib 2024; Qu et al. 2020). 이러한 환경 정책과 녹색기술의 도입은 CO₂ 배출 감축과 그린 성장을 동시에 달성하는 것으로 입증되었다(Liu et al. 2010; Sun et al. 2022). 더 나아가 디지털화는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을 통해 에너지 효율성을 개선하고 자원 할당을 최적화 함으로써 이러한 기술혁신의 효과를 극대화한다(Xu et al. 2023). 녹색 금융은 기업의 기술 혁신 투자를 촉진하고 자원 효율성을 개선함으로써 그린전환을 가속화한다(Zhang Sun 2024; Phan 2024). 특히 핀테크와 재생에너지 채권 등 혁신적 금융 수단들은 친환경 프로젝트로의 자본 배분 효율성을 제고한다 (Zhong et al. 2024; Deng et al. 2023). (3) 동남아 및 개도국에서의 녹색 성장 사회경제적 차원에서는 불평등 감소와 환경 목표를 조화시키기 위한 포용적 전략이 중요하며, 즉각적인 빈곤 완화와 장기적 지속 가능성을 균형 있게 다루는 글로벌 원조 전략이 필요하다. 개발도상국의 사례들은 성공적인 그린전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중국은 제11차 5개년 계 획(2006-2010) 기간 동안 GDP 단위당 에너지 소비를 20% 줄이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케냐는 2008년부터 도입한 발전차액지원제도로 소득과 고용을 증대시켰다. 또한 브라질의 쿠리치바 모델은 혁신적인 도시 계획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한 것으로 평가된다(UNEP 2010). 세계은행은 개발도상국에서 청정에너지 전환이 에너지 산업뿐만 아니라 경제 전반의 GDP와 고용을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하며, 특히 전력망 신뢰성 강화와 에너지 효율화가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매우 효과적인 정책수단이라고 강조한다(World Bank 2023a). 동아시아 12개국(2000~2022년)을 대상으로 수행된 실증 연구에 따르면, 그린금융 비중이 1%p 증가할 때 화석연료 효율성 지표가 평균 0.16% 개선되는 것으로 나타났다(Zhang et al. 2024). 이 결과는 금융 부문의 녹색자본 공급 확대가 에너지 효율성과 탈탄소화에 실질적 영향을 미침을 시사한다. 특히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와 같이 금융 인프라가 발달한 국가들은 그린 금융 확대를 통해 에너지 집약도를 낮추고 지속가능한 성장 잠재력을 높일 수 있다. 케냐와 우간다 사례는 지역 맞춤형 녹색금융 정책과 기술 이전이 경제적 편익과 고용 창출에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UNEP 2023b; World Bank 2023b). 이는 그린전환 정책의 효과가 국가별 금융 인프라 수준과 지역 맞춤형 전략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일자리 창출도 중요한 결과로,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는 건설 기간 동안 고품질 임시 일자리를 창출할 뿐만 아니라 공급망을 통해서도 간접 일자리를 유발한다(IRENA 2023a; Wei et al. 2010; Rutovits et al. 2020). 또한 에너지 투자에 따른 경제 활동 증가로 유발 일자리(induced jobs) 가 만들어지며, 이는 에너지 부문을 넘어 경제 전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장창선 외 2015). 그러나 성공적인 전환을 위해서는 노동력 재교육과 정책 지원이 필수적이며, 화석연료 부문에서 재생에너지 부문으로의 고용 이동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ILO 2018; OECD 2023a; Pai et al. 2020). 아세안 그린전환의 배경과 필요성(1) 기후위기에 대한 취약성 아세안은 기후변화 피해에 가장 취약한 지역 중 하나다. 표 1 에서 보듯이 미얀마, 필리핀, 태국 등은 세계기후위험지수 상위권에 위치하고 있다. ADB(2025c)에 따르면 지역 온도 상승이 글로벌 평균의 2배 속도로 진행되고 있으며, 해수면 상승으로 해안 인구의 70%가 위험에 노출 되어 있다. 구체적 피해 규모도 심각하다. 2023년 대기오염으로 50만 명이 사망했고, 극한 기상으로 연간 1,600억 달러의 경제 손실이 발생했다. 현재 아세안의 기후 공약 중 75%가 목표 달성에 불충분한 상황이다. (2) 글로벌 환경규제 강화와 무역환경 변화 국제사회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무역과 환경을 직접 연계하는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EU는 수입 상품의 탄소배출량과 환경 기준을 엄격히 평가하여 실질적 규제 조치로 활용하고 있다.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RE100 캠페인, 공급망 실사지침(CS3D) 등은 아세안 수출 상품에도 점차 적용될 예정이다. 이러한 브뤼셀 효과 는 EU 규제가 글로벌 무역 표준으로 확산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파리협정 이후 탄소중립 목표에 동참하는 국가가 증가하면서 탄소발자국, 온실가스 감축 등 환경 관련 무역규제 항목도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아세안의 높은 화석연료 의존도(75%)는 특히 EU CBAM에 취약한 구조다. 글로벌 가치사슬(GVC, Global Value Chain)에 깊이 편입된 아세안 기업들은 친환경 기준 미달 시 시장 진입 제한, 수출 감소, 추가 비용 부담에 직면할 수 있다. (3) 새로운 성장동력으로서의 그린전환 아세안 국가들은 지난 수십 년간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현재 중간소득 함정(middle-income trap)에 직면한 상황이다. 예를 들어, 말레이시아는 1970년대부터 2023년까 지 상위 중간소득국가2) 범주에 머물러 있으며, 태국은 하위 중간소득을 벗어났으나 고소득 진입은 요원하다. 베트남과 필리핀은 여전히 하위 중간소득 구간에 정체되어 있다. 중간소득 함정은 총요소생산성(TFP, Total Factor Productivity)3) 증가율 둔화에서 비롯 된다. ADB(2017)에 따르면 동남아시아 주요국의 TFP 증가율은 1990년대 연평균 2.1%에서 2010년대 1.2%로 감소했다. 이는 요소 투입 중심에서 생산성 중심 성장으로 전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Eichengreen et al. 2012). 아세안 국가들이 겪는 기존 성장모델은 세 가지 한계를 안고 있다. 첫째, 중국과 인도의 부상으로 아세안의 저임금 제조업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으며, 조기 탈산업화 위험에 직면했다(Felipe et al. 2012). 둘째, 팜오일, 고무, 광물 등 천연자원 의존은 가격 변동 취약성과 자원의 저주 문제를 심화시킨다(Sachs Warner 2001). 셋째, 아세안은 R D 투자 비중이 GDP의 0.2~0.6%로 OECD 평균(2.4%)에 크게 미달하여 혁신 역량이 부족하다(UNESCO 2023). 이러한 구조적 한계 속에서, 그린전환의 기회는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을 모색할 수 있는 전략적 기회를 제공한다. Rodrik(2013)의 구조적 전환 이론에 따르면, 그린전환은 산업구조 고도화와 생산성 향상, 동시에 신산업 육성까지 달성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실제로 기술혁신을 통한 생산성 제고(Aghion et al. 2016), 재생에너지 순환경제 등 고부가가치 신산업 창출(예: 재생에너지 부문 임금은 기존 에너지 산업 대비 약 30% 높음, IRENA 2023a), 자원 효율성 의 획기적 개선(순환경제로 40% 향상, Ellen MacArthur Foundation 2019) 등이 가능하다. 또한, 농촌 지역의 소규모 재생에너지나 생태관광 개발 등은 포용적 성장에도 기여할 수 있으며, EU 그린딜과 미국 IRA 등 글로벌 친환경 정책 확산은 아세안이 자국 산업의 경쟁력과 역할을 강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아세안 그린전환의 잠재력 (1) 세계 최고 수준의 재생에너지 자원 아세안(ASEAN)은 평균 일사량이 m²당 하루 5~6kWh에 달하는 등 세계적으로 뛰어난 태양광 발전 여건을 갖추고 있다(SolarPower Europe 2023). 현재 아세안의 태양광 발전 설비용량 은 약 40GW 수준이지만, 여러 국제기구와 연구기관들은 2030년까지 최대 220GW까지 확장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Ember 2024; IRENA 2023b; ASEAN Centre for Energy 2023). 이는 기존 대비 5배 이상의 성장 잠재력이며, 단독 태양광만으로도 아세안 전체 전력 수요의 20% 이상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높은 기술적 가능성을 시사한다(IEA 2024). 지열 부문에서는 인도네시 아가 약 29GW로 세계 지열 자원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고, 필리핀 역시 4GW에 달하는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다(ASEAN Centre for Energy 2023; Eavor 2024). 그러나 지금까지 실제 개발율은 10% 미만에 머물러 있어, 향후 재생에너지 확대의 여지는 매우 크다(Ember 2024). (2) 생물다양성과 자연조건 아세안(ASEAN)은 전 세계 생물종의 약 18~20%가 서식하는 생물다양성의 보고로, 지구촌 핵심 생태계가 집중된 지역이다. 열대우림(전세계의 약 15%), 맹그로브(33%), 산호초(35%) 등 대 표적인 글로벌 생태계의 상당 부분이 이 지역에 분포해 있다(ASEAN Centre for Biodiversity 2023; UNEP 2023a). 이러한 생태계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연간 경제적 가치는 최소 1,720억 달러에 달하며, 이는 아세안 지역 GDP의 약 5~8%에 해당한다(ADB 2022). 아세안은 또한 연간 6억~7억 톤 CO₂e에 이르는 탄소 흡수 잠재력을 가진 자발적 탄소시장의 중심지이지만, 실제 인증 발행량은 2,000만 톤 내외로 전체의 약 3% 수준에 머물고 있어 활용상의 간극이 크다(IEA 2024; Verra 2023). 특히 동남아시아 이탄지(泥炭地, Peatland)의 복원 사업은 탄소 감축, 생물다양성 회복, 지역경제 활성화 등 삼중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ADB 2022; FAO 2023). 이탄지 복원을 통해 대기 중 탄소를 대량 흡수하고, 멸종위기종의 서식지를 회복함과 동시에 습지 친화 작물 재배(팔루디컬처)와 생태관광 등 대체 소득원 창출이 가능하다. 추가로, 산불 예방 효과로 연간 수억 톤의 탄소 배출을 방지하고, 홍수 가뭄 등 자연재해 위험을 낮추어 지역사회의 회복력 강화에도 기여한다(ASEAN Centre for Biodiversity 2023). 아세안의 그린전환 현황과 성과 (1) 정책프레임워크의 진화 2025년 현재, 아세안 10개국은 모두 파리협정에 가입하고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s)를 수립 갱신하는 한편, 2050년에서 2065년 사이 탄소중립(Net Zero) 실현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였다. 각국은 독자적 정책뿐만 아니라, 「아세안 탄소중립 전략」을 통해 재생에너지 확대, 그린산업 육성, 전력망 연계, 탄소시장과 녹색금융 등 8대 협력 전략을 추진하며 역내 경제공동체(AEC)와의 연계도 강화하고 있다(ASEAN Secretariat 2023). 2025년에는 이러한 전략이 질적으로 고도화되었다. 『아세안 기후변화 전략실행계획 (ACCSAP, ASEAN Climate Change Strategic Action Plan) 2025 2030』에서는 감축 목표 (NDCs) 이행, 민관 파트너십 확대, 재원과 기술 역량 강화, 기후 거버넌스 구축 등 다양한 실천방안을 담고 있다(IGES 2025). 또한 「아세안 경제공동체 전략계획 2026 2030」에서는 지속가능한 공동체 를 비전으로 삼아, 탄소감축 녹색금융 지속가능 공급망을 경제통합의 중심축으로 제시 하고 2030년까지 1조 달러 규모의 그린금융 유치와 1,200만 개 녹색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ASEAN Secretariat 2025). (2) 에너지 전환 아세안의 압도적 재생에너지 잠재력은 정책 추진과 민간투자를 통해 가시적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2025년 현재 아세안(ASEAN) 발전 설비의 41.5%, 1차 에너지의 16%를 재생에너지가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2015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Ember 2025; IRENA 2025). 태양광과 지열의 경우 각각 기술적 잠재력의 18%, 9%만이 활용되고 있어4) 확장 여지가 크다 (ASEAN Centre for Energy 2023). 주요국별로 살펴보면, 베트남은 발전차액지원제도(FIT) 등 정부 인센티브 정책을 적극 도입하여 태양광 및 풍력 발전이 급속히 확대되었고, 2024년 기준 저탄소 에너지(수력 31%, 태양광 풍력 등 13%)가 전체 전력의 44%를 차지한다. 전체 발전 설비 중 재생에너지 비중도 26%(82,287MW 중 21,447MW)이며, 2025년에는 태양광 설치 용량이 16GW에 이를 전망이다(Ember 2025). 필리핀 역시 태양광과 풍력 발전 위주로 2025년까지 2.2GW의 신규 설비를 도입해 전체 발전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이 15.6%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라오스의 경우, 풍부한 수력 자원을 바탕으로 전체 발전량의 90% 이상을 수력발전으로 공급하고, 잉여 전력을 역내로 수출함으로써 동남아시아의 배터리 역할을 수행하는 등 국가별 자원구조와 정책에 따라 다양한 전환 모델이 전개되고 있다(ASEAN Centre for Energy 2023). 한편, 아세안 회원국 중 재생에너지 자원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싱가포르는, 지붕형 및 수상 태양광 등 자체 발전 설비 투자를 확대하는 동시에, 아세안 역내 전력망(APG) 연계를 통한 신재생에너지 전력 수입을 활발히 모색하고 있다. 실제로 싱가포르는 2035년까지 전체 전력 중 재생에너지(주로 수입) 비중을 40%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를 내세우며, 역내 에너지 협력과 전력망 연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ASEAN Centre for Energy 2023). 아세안 녹색 혁신의 가장 핵심적인 플랫폼인 ASEAN 전력망(APG, ASEAN Power Grid)5) 프로젝트는 18개 국제 전력망 프로젝트 중 8개가 이미 완공되어 상업 운전 중이며, 실질적인 국가 간 전력거래를 실현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성과는 라오스-태국-말레이시아-싱가포르 전력 통합(LTMS-PIP) 프로젝트로, 2022년 6월 아세안 최초로 4개국 간 대규모 전력 전송에 성공 하였다. 현재 라오스 수력으로 생산된 전력 최대 100MW를 싱가포르까지 실시간 송전하고 있으 며, 2030년 300MW 목표 달성을 위해 송전량을 점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APG 사업의 본격 추진으로 역내 전력 시스템의 통합과 장거리 송전 효율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2035년까지 누적 비용이 100억~150억 달러 절감되고, 2040년 공동 전력조달 체계가 구축되면 투자비가 7.5~10% 감소하는 등 다양한 경제적 편익이 추정된다(IEEJ 2025; ADB 2025a). 또한 TZ-APG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APG가 확대될 경우 2035년에는 전체 발전설비 규모가 7.5% 줄고, 배터리저장 및 가스발전 투자비가 절감되며, 시스템 총비용이 2% 이상 감소하는 효과가 기대된다(TransitionZero 2025). 이와 같은 전력망 연계를 통해 라오스의 잉여 수력이 태 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에너지 수요국으로 효율적으로 공급되고 있다. 앞으로 2030년까지 24GW의 태양광과 5.6GW의 풍력 등 재생에너지 자원이 전력 그리드에 연동되어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2040년에는 아세안 전체의 전력 연결 용량이 17,550MW, 송전선 연장거리는 2,824km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ASEAN Centre for Energy 2024; Ember 2025). 인도네시아 정부와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공정에너지전환 파트너십(JETP)은 2030년까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44% 달성을 목표로 하며, 2025년 7월 기준 약 13억 달러의 실제 투자를 유치하고 60억 달러 규모의 추가 투자 파이프라인이 확보된 것으로 나타났다(Indonesia Business Post 2025/07/25). 태국 정부 공식 발표에 따르면 Bio-Circular-Green(BCG) 모델은 에너지 자원 효율, 순환경제, 재생자원, 생명과학 기반 혁신을 연계하여 농업 생산물 부가가치 향상과 청정에너지 및 지속가능 관광 등 신산업 육성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Thai Ministry of Foreign Affairs 2025/02/15). (2) 신산업 생태계의 부상: 전기차 바이오 아세안(ASEAN) 지역의 4륜 전기차(EV) 판매 비중은 약 15% 미만으로, 이는 중국의 25~30% 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한편, 베트남은 2륜 전기차 시장에서 8~13%의 점유율로 선도적 입지를 보이고 있다. 2030년 아세안 전체 차량 판매는 2,100만 대로 증가할 전망이며, 전기차 생태계는 수요 인센티브(470~480억 달러), 공급 지원(20~30억 달러), 충전 인프라(20~30억 달러) 등 다양한 정책을 통해 총 510~540억 달러의 GDP 기여가 예상된다. 특히 태국, 베트남, 인도 네시아를 중심으로 충전 인프라 확충과 EV 제조 클러스터 조성이 병행되고 있다. 또한, 동남아시아는 부(wealth)의 30%가 자연자본에서 비롯되고, 노동력의 25~35%가 농업에 종사하는 등 고유의 구조적 특성을 바탕으로 바이오경제가 부상하고 있다. 소농 생산성 향상(110억 달러), 자연기반해법(NBS 20억 달러), 지속가능한 바이오연료(270억 달러)를 포함한 바이오경제 활성화는 총 400억 달러 이상의 GDP 기여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Bain Company et al. 2025). (3) 민간투자와 일자리: 녹색 전환의 실물경제 효과 2023~2024년 아세안(ASEAN) 지역의 민간 녹색투자는 약 80억 달러로, 전년 대비 40% 이상 증가하였으며,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의 투자 증가율은 각각 194%와 124%를 기록하였다. 투자 분야도 전력, 전기차, 스마트 그리드, 순환경제 등으로 다변화되고 있지만, 2030년까지 매년 500억 달러의 투자 격차가 있어 추가적 민간 투자 유치가 필요하다(Bain Company et al. 2025). ASEAN은 최근 녹색채권, 탄소시장 연계, 블렌디드 파이낸스(Blended Finance) 등 제도를 빠르게 도입하며 녹색 금융 기반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싱가포르는 자국의 탄소세와 탄소신용 인증제도를 역내 표준으로 확장하려 하며, 탄소가격 기반 산업구조 개편도 추진 중이다. 아세안 전체적으로 보면, 녹색전환은 실질적인 일자리 증가 효과도 가져올 전망이다. IRENA(2023a, 2024)는 재생에너지와 에너지효율 분야의 고용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에너지전환 과 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화석연료 산업 일자리 손실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을 것으로 분석한다. 특히 ISRG(2024)는 재생에너지 투자 100만 달러당 창출되는 일자리 수가 전통 연료 부문에 비해 약 5배에 이른다고 평가하였다. 실제로 베트남의 경우, 2018년부터 2023년까지 태양광 산 업에서만 7만 개 이상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되는 등 다양한 국가에서 녹색산업이 고용시장에 미치는 효과가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이러한 근거들은 아세안 녹색전환 정책의 실질적 경제효과 와 포용적 성장 가능성을 뒷받침한다(Bain Company et al. 2025; IRENA 2023a; ISRG 2024). 아세안의 그린전환은 국가별 정책에서 지역 통합 전략으로 진화하며 가시적 성과를 보이고 있다. 재생에너지 비중의 두 배 증가, 민간투자의 급격한 확대, 새로운 산업 생태계의 부상 등은 전환의 모멘텀을 보여준다(ASEAN Centre for Energy 2025). 특히 단일 기술이나 부문에 집중되지 않고 산업 전력망 교통 금융 등 다양한 시스템의 병행 전환이라는 특징을 보이며, 이는 아세안의 다양성과 상호보완성을 활용한 접근법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연간 500억 달러의 투자 격 차, 국가 간 재생에너지 도입 속도의 편차, 전기차 보급률의 상대적 저조함 등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그린전환의 제약 요인 (1) 제도적 한계 아세안의 그린전환은 조직 구조상의 근본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 아시아개발은행(ADB 2025c)은 환경정책(사회문화공동체)과 에너지 금융 무역정책(경제공동체) 간 부처별 조정 부족을 아세안 그린전환의 핵심 장벽으로 지적한다. 이와 같은 부서 간 분절화는 통합적 그린전환 정책의 수립과 효과적인 이행을 저해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기후변화 대응과 경 제발전 정책의 연계성이 미흡하여, 개별 국가의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역내 경제공 동체의 성장 전략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ASEAN Secretariat 2025). 정책 측면에서는 탄소가격제 도입이 지연되고 있다. 싱가포르는 CO₂e당 18달러의 탄소세를 시행 중이고, 인도네시아는 배출권거래제(ETS) 시범사업을 도입했으나, 이외의 대부분 국가 는 아직 정책 개발 단계에 머물러 있어 실질적인 탄소 감축 인센티브가 부재한 상황이다(World Bank 2025) 특히 인도네시아의 경우, 2024년 기준 화석연료 보조금 규모가 510억 달러로, 이는 정부 총지출의 15%에 해당한다. 이 같은 막대한 보조금 정책은 재생에너지와의 가격경쟁에서 화석연료의 인위적 우위를 유지시키며, 에너지 전환을 저해하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 다(IEA 2024). 아울러, 국가별 관세 및 인증요건의 상이함으로 인해 태양광 패널, 풍력 터빈, 전기차 배터리 등 주요 녹색기술의 역내 자유 유통이 제한되고, 이러한 비관세장벽이 도입 비용 증가와 시장 진입 지연을 초래하고 있다. 아세안 농업 부문의 구조적 취약성 역시 녹색전환의 주요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아세안 지역의 평균 농장 규모는 0.6~4헥타르로, 글로벌 평균(7헥타르)에 한참 못 미치는 소규모 영농 구조에 머물러 있다(FAO 2024). 전체 고용의 85%가 중소기업(SME)과 농업 부문에 집중되어 있지만, 2024년 기준 전체 녹색투자에서 이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12%에 불과하다(ASEAN Infrastructure Fund 2024). 이와 함께 토지권의 불분명함은 재생에너지 단지, 바이오매스 플 랜테이션, 탄소 격리 등 대규모 토지 활용이 필요한 장기 그린 프로젝트의 추진과 투자를 저해하는 구조적 장애요인으로 지적된다. (2) 재정 및 투자 격차 아세안의 성공적인 그린전환을 위해서는 연간 3,000~4,000억 달러 규모의 녹색 인프라 투자가 필요하나(ASEAN Infrastructure Fund 2024; World Bank 2025), 2024년 실제 민간 녹색 투자액은 80억 달러로, 필요 투자액의 0.08%에 불과하다(Bain Company et al. 2025). 또한 아시아개발은행(ADB 2025b)은 아세안의 연간 그린 투자 수요를 약 1,000억 달러로 추정하지만, 2024년 실제 집행된 금액은 550억 달러에 그쳐 약 45%의 투자 격차가 존재한다. 민간부문의 기여 역시 미흡해 기후금융에서는 13%, 인프라 분야는 10%에 머물고 있는데, 이는 글로벌 평균(각각 50%, 60%)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최근 미국의 JETP(공정에너지전환 파트너십) 탈퇴로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의 녹색자금 조달이 더욱 어려워지면서, 아세안의 국제 공적개발협력(ODA 등) 의존도가 높아지는 구조적 한계도 드러났다. 녹색금융 시장 역시 미성숙 단계로, 2024년 아세안 전체 녹색채권 녹색대출 발행액은 약 172억 달러로 전체 자본시장의 3% 미만을 차지해 유럽의 25% 내외와 크게 대조된다(Climate Bonds Initiative 2024). (3) 기술적 역량과 인프라 부족 그린전환의 성공은 투자만큼이나 기술적 역량과 인프라 구축에 달려 있다. 아세안은 이 측면에서 여러 한계를 보이고 있다. 먼저, 송배전 손실률이 6.7%로 중국 일본 한국의 4%에 비해 높아 전력 시스템의 비효율성을 보여준다(ACE 2025). 이는 단순한 효율성 문제를 넘어 재생에너지 통합 시 추가적인 기술적 도전을 의미한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과 변동성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스마트 그리드, 에너지 저장 시스템, 수요 반응 기술 등 첨단 기술이 필요하지만,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는 이러한 요구사항을 충족하기 어려운 상황이다(IRENA 2024). APG 프로젝트의 경우 역내 발전 총량 대비 1.2% 미만에 그치고 있는데, 이는 기술적 표준화 부족, 계통 운영 기술의 차이, 실시간 전력 거래를 위한 디지털 인프라 미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ADB 2024). 특히 국가별로 상이한 전력 계통 기술 표준과 운영 방식은 역내 전력망 통합의 주요 기술적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4) 그린워싱6) 이슈 아세안의 그린전환 과정에서는 투명성과 실효성에 대한 우려가 실제 사례와 통계로 제기되고 있다. 2023~2024년 동안 아세안 역내에서 발행된 녹색채권 중 실제로 녹색 프로젝트 에 100% 투입된 자금은 전체 발행액의 57%에 불과해, 녹색금융 상품의 환경적 실효성에 의문을 남긴다(Climate Bonds Initiative 2024). 이러한 투명성 부족은 단순 회계상의 문제가 아니라, 의도적 그린워싱(greenwashing) 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실제 사례로, 2020년 이후 동남아 신흥국에서는 공식적으로 보고된 그린워싱 건수가 2024년 1월 기준 총 17건에 달하며, 이 중 12건이 말레이시아, 4건이 싱가포르, 1건이 브루나이에서 발생했다(RimbaWatch 2024). 특히 이 중 약 65%가 석유 및 가스 기업에 집중되어 있어, 아세안 내 화석연료 기업들의 그린워싱 문제가 매우 심각한 수준임이 입증되고 있다. 구체적 사례를 보면, 말레이시아의 Petronas는 탈탄소 노력을 과장하고 녹색 에너지 전환을 과도하게 홍보했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공식 경고를 받은 바 있다. 싱가포르의 City Energy는 천연가스 온수기 사용이 친환경적이라고 주장했으나, 실제 환경 효과가 검증되지 않아 그린워싱 사례로 지목되었고(Zero Greenwashing Alliance 2024), 브루나이의 IT기업 Sphiere 역시 신뢰성 부족한 나무심기(탄소상쇄) 사업을 내세워 탄소중립 을 홍보했다가 허위 과장 사실이 드러났다. 말레이시아 Shah Alam시의 경우도 저탄소 도시 임을 과장 홍보하여 현지 NGO의 비판을 받았다. 태국에서는 상장사 900여 곳 중 445곳 (50%)이 탄소배출 공시를 한다고 밝혔으나, 외부 인증까지 갖춘 곳은 10% 내외(약 40~50개)에 불과해 보고의 신뢰성과 인증 부재가 그린워싱 소지로 지적되고 있다(Khaosodenglish 2024). 이 외에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캄보디아 등에서 ESG 탄소중립 보고와 홍보가 늘고 있으나, 실제 감축효과와 독립 인증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그린워싱 문제가 지역 전반의 중요한 우려로 부각되고 있다. 기업 차원에서도 투명성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동남아 100대 민간기업 가운데 ESG 또는 탄소중립 성과에 대한 외부 인증을 받은 기업은 26%에 불과하다(ASEAN Business Advisory Council 2024). 2023년 기준 발행된 녹색채권 프로젝트 중 실질적 탄소감축 효과 입증 불가 로 경고 또는 문제가 지적된 사례는 전체의 8%에 달해, 민간 부문의 그린워싱 우려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Climate Bonds Initiative 2024). 이러한 그린워싱의 주요 양상은 석유 가스 대기업, 금융, 항공, 지방정부 등에서 실질적인 감축 실적 없이 단순히 ESG 탄소중립 저탄소 그린 프로젝트 명칭을 사용하는 데에 있다. 또한 친환경 인증 과 탄소감축의 근거가 불투명하거나, 감축 비율을 과장하거나, 검증이 없는 광고를 활용하는 등 구조적인 그린워싱 패턴이 동남아 및 글로벌 시장 모두에서 중요한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Eco- Business 2024). 결론 및 시사점 본 연구는 아세안 그린전환이 지속가능한 경제성장 동력이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이며, 현재 그 조건들이 어느 정도 충족되고 있는가? 라는 연구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론적 검토, 잠재력 분석, 현실 진단, 제약요인 분석을 체계적으로 수행하였다. 연구 결과, 아세안 그린전환의 경제성장 잠재력은 이론적으로나 정량적으로 충분히 입증되었다. 포터 가설과 내생적 성장이론은 그린전환이 혁신을 촉진하고 장기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이론적 메커니즘을 제공한다. 정량적으로는 2050년까지 3조~5.3조 달러의 GDP 증가, 6,600만 개의 신규 일자리, 1조 달러 규모의 그린경제 시장 창출 등 압도적 규모의 경제적 기회가 확인되었다. 아세안의 핵심 발견은 그린성장에 필요한 자원적 이론적 기반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실현 단계에서 투자, 기술, 제도 등 다양한 장벽에 부딪혀 성과가 제한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태양광 일사량, 대규모 지열 매장량, 풍부한 생물다양성 등 지리적 생태적 조건은 아세안 이 글로벌 그린허브로 도약할 수 있는 경쟁력의 원천이다. 실제로 생태계 서비스의 연간 경제가 치만 최소 1,720억 달러(지역 GDP의 5~8%)에 달한다. 이처럼 아세안은 내생적 성장 이론과 포터 가설이 제시하는 그린성장 기반 요건을 풍부하게 갖추고 있다. 그러나 포터 가설의 약한 버전이 일정 부분 작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한 버전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구조적 장벽에 대한 체계적 접근과 개선이 필수적이다. 실제로 포터 가설의 약한 버전(환경 규제가 혁신 촉진)은 이미 작동하고 있다. 파리협정 가입 후 아세안 전역에서 재생에너지 투자가 급증했고(2015년 대비 재생에너지 비중 2배 증가), 그린금융 시장이 부상했으며(연간 40% 성장), 전기차와 바이오 등 새로운 산업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그린성장 이론의 성과는 충분히 발현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연구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Pham et al.(2024)의 아세안 6개국 대상 연구에서는 재생에너지 투자가 GDP 성장에 미치는 효과가 기대치의 60%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술 스필오버(spillover) 효과의 제한과 투자 효율성 부족 때문으로 분석됐다. Wang and Chen(2024)의 동남아 그린금융 연구에서도 녹색 투자가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는 전환율이 선진국 대비 40%로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Liu et al.(2024)은 아세안의 그린전환에서 성장 디커플링(growth decoupling) 현상을 지적했다. 즉, 환경 개선은 이뤄지지만 경제성장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Nguyen and Tran(2024)의 베트남 사례 연구에서는 대규모 태양광 투자(20GW)에도 불구하고 제조업 생산성 증가율이 예상치의 절반에 못 미쳤으며, 이는 핵심 기술의 해외 의존과 현지 혁신 역량 부족 때문으로 분석됐다. 핵심은 기존 장벽의 체계적 제거에 있다. 아세안은 이미 충분한 이론적 토대와 자원 기반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기술 투자 제도 개선에 집중할 경우 그린성장 이론이 예측하는 성과를 실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녹색금융 표준화, 리스크 분담 메커니즘 구축, 정책 신뢰성 제고를 통해 민간투자 비중을 높여야 한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의 194%, 124%에 달하는 그린 투자 성장률은 제도 개선이 이뤄질 경우 변화의 속도를 보여주는 긍정적 사례다. 또한 APG(아세 안 전력망) 완성과 스마트그리드 구축, 기술 표준화를 통한 전력 시스템의 선진화, 그리고 R D 투자를 GDP의 2% 이상으로 확대하는 등 혁신 임계점 돌파가 중요하다. 투자와 기술 혁신 역시 효율적인 제도적 토대가 마련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 탄소가격제 도입과 화석연료 보조금의 단계적 폐지, 환경-경제 정책의 통합을 통해 친환경 투자가 유리한 시장환경을 조성하고, 탄소 측정 보고 검증 체계 확립을 통해 그린워싱을 방지함으로써 시장 신뢰도도 높여야 한다. 이러한 장벽 제거가 실현될 경우, 아세안 지역의 그린성장은 단계적 메커니즘을 통해 달성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기술혁신과 투자 확대를 통한 상대적 탈동조화는 비교적 단기간 에 실현 가능하다(Smulders et al. 2014). 이는 경제성장과 환경 부하 간 연결고리를 약화시키는 첫 번째 단계로서, 아세안의 풍부한 재생에너지 자원과 결합될 때 효과적일 수 있다. 중장기 적으로는 R D 투자가 GDP의 2% 임계점을 넘어서면 내생적 성장 메커니즘이 작동하여 기술 축적과 생산성 향상의 선순환이 가능해진다(Aghion Howitt 1998). 그러나 가장 중요한 과제는 구조적 전환이다. 천연자원 의존에서 그린기술 기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이 성공 한다면, 중간소득 함정 탈출과 동시에 지속가능한 발전을 달성할 수 있다(Rodrik 2013). 다만 Felipe et al.(2012)이 경고했듯이 조기 탈산업화 위험을 그린산업화로 극복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며, 이는 단순한 장벽 제거만으로는 부족하고 체계적인 산업정책과 혁신 생태계 구축이 병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아세안의 그린성장 실현은 제도적 기반 구축과 전략적 정책 조합의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본 연구는 중요한 한계를 갖는다. 가장 근본적인 한계는 실증분석의 부재다. 그럼에도 본 연구는 그린성장 이론을 개발도상국 맥락에서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아세안 그린전환의 필요성과 잠재력, 제약요인을 진단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본 연구가 확인한 아세안 그린전환의 투자 기술 제도적 부족함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인식되고 있다. 이를 반영하여 일본의 아시아 제로 에 미션 공동체(AZEC), EU의 글로벌 게이트웨이, 호주의 동남아시아 경제 프레임워크(SEEF) 등 다양한 파트너십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현재로선 제한적인 아세안의 그린전환 역량을 보완하고 상호 이익을 추구하는 전략이다. 한국 역시 이러한 국제적 흐름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K-그린뉴딜의 경험과 배터리 수소 스마트그리드 등 핵심 기술을 바탕으로 아세안의 그린전환을 지원하면서, 동시에 한국 기업의 새로운 성장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 특히 투자 격차 해소를 위한 녹색금융 협력, 기술 종속 극복을 위한 공동 R D, 제도적 장벽 완화를 위한 정책 경험 공유 등에서 한국의 역할이 기대된다. 아세안 그린전환은 잠재력과 현실 사이의 중요한 변곡점에 있다. 이론적 토대와 정량적 기회는 충분하지만, 현실화를 위한 조건들은 아직 부분적으로만 충족되고 있다. 향후 5년이 그린전환이 진정한 성장동력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시기가 될 것이다. 한국은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아세안의 그린전환을 지원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어 상호 윈-윈하는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할 기회를 갖고 있다. 아세안의 성공적인 그린전환은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과 지역 경제 발전에 모두 기여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 각주1)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은 탄소중립 이행 과정에서 노동자, 산업, 지역사회 등 취약계층의 피해를 사회적으로 분담하고 지원하는 개념이다. 우리나라는 2021년 제정된 『탄소중립 및 녹색성장 기본법』에서 이 개념 을 공식적으로 도입했다.2) 세계은행 2023년 기준 상위중간소득 국가 범위는 1인당 GNI 4,516~14,005달러, 2023년 말레이시아 1인당 GNI 11,700달러. GNI(Gross National Income, 국민총소득)는 한 나라의 국민이 국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의 합계를 의미함. 3) 투입된 노동과 자본의 양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생산성의 향상을 의미함.4) 이론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 자원(기술 경제적으로 실현 가능한 발전 용량)을 100%로 봤을 때, 실제로 발전 설비나 전력 생산에 활용되고 있는 비율. 태양광은 현재 전체 잠재 용량의 약 18%만 실제 발전 설비로 구축되어 있고, 지열은 마찬가지로 전체 잠재 용량의 9% 수준만이 실제로 개발 운영되고 있다는 의미임.5) 아세안(ASEAN) 역내 10개국을 연결하는 총 18개 국가 간 전력망 연계 프로젝트로, 실제 국가 간 송전 용량 은 약 5,000MW, 연평균 실제 전력거래량은 약 30GWh로 집계되고 있음(ASEAN Centre for Energy 2025). 2040년까지 전력망 연계 확대를 통해 1,000억 달러 이상의 집단적 전력 비용 절감, 총 연결용량 17,550MW, 송전선 연장거리 2,824km 달성이 목표임.6) 실질적인 환경 개선 노력 없이 친환경 이미지만을 홍보하거나 과장하는 기업 기관의 행위를 의미함.* 참고문헌은 본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38] 한-아세안 국제학술교류 제도화: 한동연의 실험과 그 이후 | 김형종 작성자 동남아연구소 조회수 515 첨부파일 1 등록일 2025.07.18 초록 이 글은 2005년부터 2016년까지 한국동남아연구소가 추진한 한-아세안 학술교류 사업의 전개 과정과 성과, 그리고 중단 이후의 한계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동남아와의 학술 협력이 지속가능한 제도적 구조로 발전하기 위한 조건을 모색한다. ASEAN Forum, Korea Forum, Advanced Seminar 등으로 구성된 해당 사업은 동남아 현안에 대한 국내 인식 확대, 학문 후속 세대 육성, 그리고 공공 외교적 성과를 끌어낸 대표적 협력 사례였다. 그러나 사업 추진의 불연속성, 인력 및 예산의 불균형, 정부 부처와의 협력 부재 등으로 인해 제도화의 단절을 경험하였다. 이 글은 사례 분석을 통해 동남아 학술교류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협력 구조의 재설계, 학문-정책 연계 강화, 인재 순환 구조의 제도화가 필요함을 제안한다.이슈페이퍼 38호 바로보기2005년부터 2016년까지 한국동남아연구소1)(이하 한동연)가 추진한 한-아세안 학술교류 사업은 동남아시아와의 학술교류 진전과 제도화를 위한 중요한 과정이었다. 이 글은 한동연이 실시한 한-아세안 학술교류 사업2)의 전개 과정과 성과 및 한계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동남아와의 학술 협력이 지속 가능한 제도적 구조로 발전하기 위한 조건을 모색하고자 한다. 동남아 학술교류의 의미학술단체의 국제교류는 지식의 국제화와 학제 간 융합을 촉진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정기적 학술교류의 채널은 단일 국가의 틀 안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사회문제에 대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 학문적으로도 동남아와의 국제학술교류는 최신 이슈 및 현지 연구 동향을 접할 기회를 제공하여, 연구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동남아와의 학술교류는 연구자 개인뿐 아니라 기관 간 파트너십에도 기여하고 국제 컨퍼런스 등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제공하며, 나아가 학문적 자율성과 글로벌 협력이 균형을 이루는 거버넌스를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동남아를 비롯한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의 학술교류는 지식생산의 탈식민화(decolonization of knowledge)를 통해 연대를 형성하는 연결고리로 기능함으로써 다양한 학술 문화에서 형성된 학문적 담론을 이해하고 포괄적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3) 이를 통해 구축된 학문적 연대는 지역연구를 주도해 온 서구 시각에서의 탈피를 공동으로 모색하는 토대가 된다. 냉전 해체 이후 지역연구에 대한 전략적 투자가 서구에서 감소하는 현상에 반해 글로벌 사우스에서 진척된 자기 성찰적 학문의 성과는 변화하는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의미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동남아와의 국제학술교류는 동남아를 자료수집의 대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학문적 담론을 형성하는 학문적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식하고, 나아가 인식의 공동체(epistemic community)를 건설하는 과정으로서 의미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동남아와의 학술교류는 여러 측면에서 전략적 중요성이 있다. 첫째, 인구 규모와 경제 성장세, 지역 기구(ASEAN)를 중심으로 한 제도화 수준 등에서 동남아는 동아시아 지역 내 협력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둘째, 다언어ㆍ다종교ㆍ다민족 사회로서 동남아의 다원성은 비교 지역연구나 전 지구적 논의의 장에서 유의미한 경험을 제공한다. 셋째, 한국과 동남아는 상호 의존적인 경제ㆍ인적교류 관계를 꾸준히 확대해 왔으며, 이러한 관계의 질적 고도화를 위해서는 사회문화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학문적 교류의 내실화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국제학술 협력의 담론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실제 실행과 지속가능성의 측면에서는 현실적인 제약이 적지 않다. 특히, 동남아와의 학술교류는 몇 가지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외교적 계기나 일회성 지원에 의존하는 프로젝트성 사업이 많아, 정기성과 제도화를 담보하기 어렵다. 둘째, 국내 대학과 연구 기관 간 역할 분담이 불분명하거나 경쟁적으로 분산되어 협력의 시너지가 약화되는 경향이 있다. 셋째, 한국 내 동남아 연구자 수급과 인력풀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중장기적 학문 공동체의 기반이 취약하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한동연이 2005년부터 추진해 온 한-아세안 학술교류사업의 전개 과정과 그 이후의 단절을 통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한동연은 한-아세안협력기금을 바탕으로 ASEAN Forum(아세안 포럼), Korea Forum(코리아 포럼), Advanced Seminar(대학원생 현지 심화 세미나, 이하 심화 세미나)4) 등 정기적이고 다층적인 교류 플랫폼을 구성하고, 학문후속 세대 양성, 인식공동체의 형성, 공공외교적 파급 효과 등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2016년 이후 해당 사업의 지속성은 급격히 약화되었고, 이후 재정적 지원과 제도적 기반의 부재, 정책 환경 변화 속에서 협력 네트워크는 사실상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이 글은 이러한 제도화된 협력 과 구조적 단절 사이의 경계에서 동남아 학술교류가 지닌 성과와 과제를 평가하고, 향후 지속가능한 지식 협력 거버넌스가 어떻게 재설계될 수 있는지를 모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한동연의 학술교류 프로그램의 기획과 실행 과정을 살펴보고, 그 제도적 한계와 단절의 배경을 살펴본다. 이어서 동남아의 국제학술교류 사례를 살피고 동남아 파트너 기관과의 협력 관계에 미친 파급 효과를 고찰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제도 재설계를 위한 정 책적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한동연 프로그램의 구성과 의의: '다층적 학술교류'의 시도와 전략한동연이 2005년부터 한-아세안협력기금을 바탕으로 추진해 온 국제학술 협력 프로그램은 단순한 학술대회 개최를 넘어, 한-아세안 지식공동체 형성과 학문후속세대 양성을 지향한 다층적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이 사업은 아세안 포럼, 코리아 포럼, 심화 세미나의 세 가지 기둥을 중심으로, 단기-중기-장기 목표를 동시에 설정하면서 비교적 체계적이고 지속가능한 협력 플랫폼 구축을 시도했다. 아세안 포럼은 아세안 역내 주요 정치ㆍ사회ㆍ경제 현안에 대해 동남아 학자와 실무자들을 초청하여 한국 내 연구자ㆍ전문가ㆍ일반 시민과 함께 논의하는 장이었다. 2005년부터 2016년까지 총 21차에 걸쳐 진행된 포럼은 기존의 일회성 학술회의와 달리, 아세안 각국의 이슈에 대해 시의성 있는 주제를 선정하고 관계자와 직접 소통을 통해 아세안에 대한 국내 인식을 심화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예를 들어, 2006년 말레이시아의 정치 지도자 안와르 이브라힘을 초청하여 말레이시아 정치의 미래와 이슬람 민주주의의 가능성에 대한 포럼을 개최하였는데, 당시로선 드문 외교-정치적 대화의 시도였다. 2013년에는 미얀마의 민주화 및 개헌 이슈에 대해 현지 학자를 초청해 국내 전문가와 토론을 진행하며 이슈의 복합성을 풀어내는 공간을 마련했다. 이러한 사례는 아세안 포럼이 단순한 주제 발표를 넘어서 학술과 외교, 정책, 시민사회의 접점을 구성하는 공론장의 기능을 수행했음을 보여준다. 개별 국가의 현안과 이슈뿐만 아니라 한-아세안 관계에 대해서 지난 길과 앞으로의 과제를 조망하는 기회를 가진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제2차, 10차, 12차, 14차 아세안 포럼은 한-아세안 관계, 동아시아 협력 등을 주제로 논의를 펼쳤다. 특히, 한-아세안 정상회의 직전에 제주에서 대규모로 개최된 12차 포럼은 한국의 대아세안 전략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했다. 포럼은 동아시아공동체 건설 과정에 필수적인 아세안과 한국 간의 상호 인식 제고, 공동의 관심사 창출에도 일조했다.아세안 포럼은 역내 현안에 대한 비교 분석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20차 포럼에서는 2013년 선거를 치른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필리핀의 선거 과정과 결과, 향후 민주화 전망을 모색했다. 개별 국가의 사례에서 동남아 민주주의 추세와 잠재적 영향에 대한 변화 과정을 주제로 선정했다는 점에서 일반 학술회의에서는 다룰 수 없는 아세안 포럼의 장점을 살린 논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한-아세안 학술협력 사업 에 대한 주제를 발굴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한-아세안 현안뿐만 아니라 중국 등 동아시아 차원으로의 논의 확대도 이루어졌다. 16차 아세안 포럼은 중국의 부상에 따른 아세안 국가의 전략적 대응이 주목받는 상황에서 중국에 대한 동남아 각국의 관점을 비교 이해하는 장으로 기획되었다. 포럼에서는 남중국해를 둘러싼 중국과 동남아 각국의 갈등 구도 및 중국의 동남아 진출에 대한 동남아의 대응 방안 등에 대한 활발한 논의 가 이루어졌다. 17차 포럼은 2011년 말 한국 정부가 관심을 두고 적극적으로 외교 전략을 구상하기 시작했던 메콩지역 개발 에 관한 이슈를 논의하여 외교정책 논의에 기여하기도 했다. 아세안 포럼은 한-아세안 양측의 학자와 전문가, 그리고 신진 연구자 간 인적교류를 통해 동남 아 관련 연구를 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이바지했는데, 포럼의 주요 참석자 외에 일반 대중들의 관심도 높아서 100여 명에 이르는 청중이 포럼에 참석했다. 이런 점에서 아세안 포럼은 한-아세안에 관한 최근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여 대중적으로 확산시키고, 한-아세안 협력사업의 홍보에도 기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코리아 포럼은 아세안 포럼에 상응하여, 아세안 지역 내에서 한국 관련 이슈 한국의 대외정 책, 경제 발전 경험, 사회문화 변화 에 대한 이해 증진을 목표로 기획되었다. 코리아 포럼은 현지 연구자나 전문가, 실무관계자와의 교류를 통해 상호 인식의 균형을 도모하며 총 19차례 개최 되었다. 2차 포럼(정치와 경제 현안), 4차 포럼(경제위기 이후의 사회문화 현황), 6차와 8차 포럼 은 한국의 외교 및 대외관계 등 한국의 현안에 대한 아세안 측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기획되었다. 12차 포럼에서는 한국의 아세안, 중국, 필리핀에 대한 인식을 비교 분석하였으며, 인식 관련 논 의는 이후 상호 인식도 조사 사업으로 이어졌다. 2014년 캄보디아에서 개최된 15차 포럼은 현지 의 젊은 학자와 정책 관계자들이 한국의 아세안에 대한 정책과 대중문화의 영향을 토론하고, 향후 한-아세안 협력의 방향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다. 코리아 포럼은 학술 협력의 외연을 공공외교로 확장하는 전략적 기능도 수행하여, 한류, 문화 ODA, 한국학의 지역 확산 등 다양한 주제를 아세안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계기를 제공하였 다. 13차 포럼(베트남)과 14차 포럼(인도네시아)은 각각 해당국과의 외교관계 수립 기념을 계기로 진행되어 양자관계에 대한 다각적 분석과 논의가 전개되었다. 특히 2015년 한-아세안 수교 25주년을 기념하여 동남아 4개국에서 순차적으로 개최된 포럼 시리즈는 단순한 행사 이상의 상 징성과 지역 내 존재감을 확보하는 데 기여했다. 2015년 한-아세안 외교관계 수립 25주년을 기념한 학술대회 결과물인 ASEAN-KOREA RELATIONS: 25 YEARS of PARTNERSHIP AND FRIENDSHIP 책자 발간을 계기로 2016년에는 베트남, 라오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에서 관련 주제로 코리아 포럼을 개최했다. 코리아 포럼은 한-아세안 협력사업 협력 및 네트워크 구축을 모색하는 장을 제공하여, The Southeast Asian Studies Regional Exchange Program(SEASREP)5)의 주요 관계자와 네트워 크 구축 및 사업 협력의 장으로 활용되었다. 초기 코리아 포럼은 SEASREP 관계자가 참여하는 라운드테이블로 진행되었고, 이후로는 심화 세미나 등에 대한 실무 협의를 진행하는 장으로 활용되었다. 2014년부터 포럼은 반일 행사에서 전일 동안 이루어지는 대규모 행사로 발전하였다. 아울러 발표 내용을 도서로 발간하는 일을 추진하여 관련 지식을 축적하고, 포럼이 보다 미래 지향적인 행사가 되기 위한 방도를 모색했다. 2014년 8월 캄보디아에서 개최된 포럼은 어드밴스 세미나 기간에 개최되어 사업 간 연계성을 높였다. 코리아 포럼을 주도한 것은 한동연 회원이었지만, 일부 한국 연구 전문가 중 동남아 연구와의 접점을 찾아냄으로써 동남아 연구자 그룹에 합류하는 등의 파급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한편, 심화 세미나는 학문후속세대 양성을 목적으로 기획된 일종의 훈련형 프로그램으로, 한국 과 동남아의 석ㆍ박사 과정 대학원생들이 참여해 공동 연구, 현지 조사, 세미나 등을 수행하는 장 기형 교류 모델로 자리 잡아 총 9차례 실시되었다. 어드밴스 세미나는 2007년 코리아 포럼에서 SEASREP 측과 심화 세미나와 관련한 실무 워크숍을 진행한 것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2007년 첫 시행 당시 Focus on Malaysia 를 주제로 시작된 이 세미나는 점차 참가자의 출신 국가, 전공, 프로그램 기간이 확대됐다. 2008년부터는 국내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사전 준비 세미나를 3회 실시하여 프로그램의 성과를 높이고자 했다. 참가자들은 세미나 외에도 ICONAS (International Conference on ASEAN Studies), 코리아 포럼과 연계된 학술 행사에 동시 참여함으로써 다층적 학문 교류를 경험했고, 현지 전문가들과의 네트워킹 기회를 가졌다. 가령 2014년 태국에서 진행된 세미나의 경우 한국 측 지도교수와 인도네시아 지도교수가 각각 한국과 인도네시아에 대한 강의를 병행하였다. 회차를 거듭하며 참가의 확대 및 프로그램 기간의 확대가 이루어졌다. 특히, 사전 세미나와 후속 보고서 제출, 현지 기관과의 공동 조사 등 비교적 실천 지향적인 세미나의 구조는 참가자의 학술 성장을 구체적으로 지원하는 기제로 작용했다. 초기 사업명이 말해주듯이 본 프로그램은 대학원생 훈련에 중점을 두고 한국의 석ㆍ박사 대학원생 위주의 현지 경험 및 지식 습득의 장 제공을 목표로 했다. 이후 아세안 국가의 대학원생들이 합류하면서 세미나는 한-아세안 차원의 신진학자 네트워크 형성과 학술교류의 장을 제공했다. 2016년에는 명칭을 ASEAN-Korea Young Scholars Workshop 으로 바꾸고 참가인원을 100명으로 확대하여 현지조사를 포함해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진행했다. 10일간의 프로그램 진행을 통해 세미나는 참가자들 간 네트워킹 구축에 이바지했다. 심화 세미나에 참가한 한국 측 대학원생 참가자 다수가 이후 박사 과정을 마치고 동남아 연구자나 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게 된 것은 이 프로그램의 성과이다. 예를 들어 2016년 참가자 24명 중 4명이 현재 대학의 교원과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역대 한국 측 참가자 중 최소 10여 명 이 현재 동남아 전공 관련 교원이나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세미나 기간 중에는 코리아 포럼 및 ICONAS를 함께 개최하여 세미나 참가자의 이해 및 해당 행사의 저변 확대에 기여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2016년 세미나에서는 ICONAS를 함께 개최하여 코리아 포럼을 ICONAS 세션에 포 함해 진행했다. 이들 프로그램이 갖는 가장 큰 의의는 지식 협력의 제도화 를 지향한 실천적 시도였다는 데 있다. 아세안 포럼은 한국 사회에 아세안 이슈를 소개하고 비전문가층의 관심을 제고함으로써 외 부-내부 인식의 교차점 을 형성했고, 코리아 포럼은 한국 이슈를 동남아와 공유함으로써 상호이해의 기반을 확장했다. 심화 세미나는 국내외 신진 연구자의 발굴과 양성을 통해 향후 협력 네트워크의 지속성을 담보하려는 중장기 전략이었다. 또한 이 프로그램들은 단순한 정보 전달 이 아닌, 상호 참여적 협력 모델 을 지향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 아세안 현지 기관과 공동 운영, 주제 선정 및 운영 과정에 있어 상호 조율, 공동 간행물 발간 등의 협업은 아세안 파트너를 대상 이 아닌 동반자 로 인식하는 전환을 반영한다. 이로써 동남아가 자료수집의 현장 이나 정치적 협력의 객체 가 아닌, 지식생산의 주체이자 공동 실천의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인식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구성에는 외형적 지속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운영상의 정합성과 내적 동력이 필요했다. 프로그램 간의 유기적 연계 예컨대 심화 세미나 참가자들이 코리아 포럼 발표자로 참여하거나, 포럼 논의를 공동 간행물로 발전시키는 등 는 국제협력 프로그램의 성과 축적 측면에서 중요한 모델을 제공했다. 이는 특히 정치적 계기성 이나 일회성 기획에 그치는 여타 국제교류 사례와 비교해, 학술적 지속성과 전략을 내포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지속가능성과 제도화의 조건: 한계 및 정책 환경 분석한동연의 국제학술 협력 프로그램은 약 10년간의 추진을 통해 동남아지역학의 토대를 확장하고 한-아세안 학술 협력의 모델을 제공하는 데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프로그램은 점진적으로 쇠퇴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는 단지 예산 축소나 일회적 실수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적 기반의 부재, 실행 주체의 과부하, 정책 환경의 불안정성 등 구조적 요인과 맞물 린 결과였다. 우선 가장 뚜렷한 한계는 프로그램을 지속할 수 있는 운영 및 재정 구조의 부재다. 포럼과 세미나가 정기적이고 다층적으로 운영되었지만, 그것을 운영ㆍ조정할 수 있는 상설 조직, 전담 인력, 내재적 예산 구조는 사실상 마련되지 못했다. 모든 프로그램은 개별 프로젝트 단위로 제안서 작성, 예산 확보, 실행ㆍ정산을 순환하는 방식으로 운용되었는데, 이러한 프로세스는 사업 지속성을 매우 취약하게 만들었다. 특히, 2015년 한-아세안협력기금 사업 정산이 수년간 지연되면서 외교부로부터의 평가가 악화되었고, 이는 후속 사업 선정을 어렵게 만들었다. 결국 이는 단발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장기 지속성은 담보되지 못한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다. 둘째, 연구소 내부 인력과 거버넌스의 비대칭성 역시 주요한 제약 요인이었다. 기획, 실행, 정산, 간행 등 전 과정을 소수의 인력에 집중시키는 구조는 지속적인 사업 추진에 장애가 되었을 뿐 아니라, 연구소 내 공통의 학술 비전이나 분업 구조를 발전시키지 못한 채 개별 연구자에 의존하는 운영 방식을 고착화시켰다. 이는 특히 심화 세미나와 코리아 포럼의 기획 운영에 있어 외부와의 협조 체계가 취약해지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초기에는 SEASREP, ASEAN University Network(AUN)6) 등 외부 파트너와의 관계가 프로그램의 실질적 내용을 강화했지만, 시간이 지 나며 이들과의 연계가 약화되고, 결과적으로 국내 일방형 기획 으로 회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셋째, 학회와 연구소 간의 역할 조정 실패는 제도화의 단절을 가져왔다. 애초 기획 단계에서는 한-아세안협력사업을 연구소와 학회가 공동으로 운영하되, 사업별로 역할을 나누고 협력 체계를 유지하려 했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 이후 두 주체 간 기획의 우선순위, 자원 배분, 연계 가능 성에 대한 이견이 표면화되면서 사업이 분리되어 진행되었고, 결과적으로 공동의 시너지를 발휘하는 데 실패했다. 특히 2017년 이후 외교부의 사업 방식 개편에 따라 컨소시엄 방식의 참여가 요구되었으나, 이를 위한 실질적 협력 모델을 구성하지 못하고 개별 단위 참여로 전환된 점은 기획력의 제약과 제도적 대응력 부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넷째, 정책 환경의 일관성 결여와 외교 전략의 유동성도 지속가능성을 저해하는 요인이었다. 한국 정부의 아세안에 대한 외교정책은 문화협력, 경제 연계, 외교ㆍ안보 전략 등에서 다층적으로 강조되었지만, 학술 협력을 통한 중장기 인적 기반 구축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주목을 받았다. 외교부 내에서도 학술 교류사업은 ODA나 공공외교 성과지표와 연결되기 어려운 비정형 사업 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는 실질적인 재정 지원의 불확실성과 평가 기준의 부재로 이어졌다. 이런 맥락에서 2015년 한-아세안 25주년 기념행사는 성공적 사례로 회자되었지만, 이후 제도화나 예산 확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단발성 기념 이벤트로 소진된 측면이 강했다. 다섯째, 전문가 풀의 확장성과 교체 가능성의 부재도 지속가능성의 과제로 제기된다. 초기에 는 국내 동남아 연구자와 현지 전문가 간 상호 호혜적 관계가 형성되었지만, 후속 인재의 양성 및 조직 내 편입은 제한적으로 이루어졌다. 심화 세미나를 통해 육성된 신진 연구자들이 이후 포럼 기획, 공동 연구, 학회 활동 등으로 활약하는 구조적 통로가 부재했으며, 이에 따라 학술교류 사업의 세대 연결성 은 미약하게 유지되었다. 물론 일부 참가자들이 이후 연구자로 성장하여 관련 기관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이는 구조적 진입 경로라기보다는 개별 경로에 가까운 양상이었다. 결국 이와 같은 한계는 제도화된 학술 협력의 지속성을 가능케 하는 조건들 조직 안정성, 예산 체계, 전략적 연계, 정책적 지원, 인적 구조 이 고루 갖추어지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이에 따라 한동연이 주도했던 포럼과 세미나의 기획 역량과 영향력은 점진적으로 약화되었고, 2020년 연구소-학회 병합 이후 국제 협력사업이 사실상 종료되면서 사업 기반 자체가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한계는 뒤집어보면 향후 동남아 학술 협력사업의 제도화를 위한 점검 목록이자, 한국의 대아세안 협력 거버넌스에서 보강되어야 할 핵심 요소이기도 하다. 해외 관련 프로그램 시사점다양한 국가의 ASEAN 협력 프로그램은 지속가능성과 제도화 측면에서 일정한 통찰을 제공한다. 일본 Japan Foundation은 오랜 아세안 협력 경험을 바탕으로 포괄적인 학술교류 지원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호주의 뉴콜롬보 프로그램은 호주 연구자의 아세안 연구 심화를 촉진시켰다. 캐나다의 SEED는 교환협정 기반의 인적 교류와 SDGs 연계 전략이 돋보이며, 중국의 AUN 장학 프로그램은 정규 학위 지원과 AUN 네트워크를 활용한 제도화를 특징으로 한다. 오스트리 아 ASEA-UNINET은 공동 연구 기반의 예술ㆍ과학 전분야를 지원하고, Fulbright ASEAN은 외교정책과 연계된 다국 간 연구 프로젝트를 운영한다. 이들 사례는 모두 전담 조직, 전략 연계성, 장기적 기획 체계를 통해 국제협력의 제도화를 구현하고 있다. (1) Japan Foundation JF는 양자간 신뢰 및 네트워크 기반 강화, 양방향 학술 교류를 통한 글로벌 이슈에 공동으로 대응하고, 나아가 학술 생태계 구축을 위해 대표적으로 다음의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일본 및 아세안 내 비영리기관을 대상으로 국제회의, 워크숍, 연수 등 정책 지향적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Grant Program for Japan‑ASEAN Global Partnership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인건비 및 출판비 등 제반 비용을 지원한다. 동남아 국적의 박사급 연구자 또는 7년 이상 실무 경험자를 대상으로 일본 내 기관에서 3~12개월 연구 수행을 지원하는 JFSEAP Visiting Fellowship에는 교토대 동남아연구소 등 일본 내 주요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동남아 싱크탱크, 연구소 소속 차 세대 연구자 10명 내외를 초청하여 약 10개월 간 강연 및 워크숍 등의 연수를 지원하는 JFSEAP Group Invitation Program도 운영되고 있다. 박사급 이상 전문가를 주 대상으로 하며 정책 연구와 연계한다는 것이 JF 프로그램의 특징이며, 주로 일본이 주도하지만 경우에 따라 공동기획의 형태로 추진되기도 한다.7) 특히, 2023년 ASEAN-일본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향후 10년간 일본 과 ASEAN의 차세대 인재 육성, 인적 네트워크 강화를 위해 기획한 With Asia 2.0 프로젝트는 주목할 만하다. 핵심 사업으로 지식ㆍ문화의 양방향 교류를 위해 기후변화, 재해 예방 등 이슈에 대한 지적 대화 및 공동 연구를 지원하고, 예술,연극, 음악, 영상, 스포츠 분야에서의 인적 네트 워킹 및 협력 프로젝트를 포함하는 야심찬 프로그램이다. 교토대 동남아지역연구센터(CSEAS)가 이 프로젝트의 협력기관으로 참여하고 있다.8) (2) New Colombo Plan (호주) 뉴콜롬보플랜은 호주 외교통상부 주도로 호주 학부생이 인도ㆍ태평양 지역(ASEAN 포함)에서 학업ㆍ언어훈련ㆍ인턴십등을 통해 지식과 문화 이해를 심화함으로써, 호주 내 인도ㆍ태평양 이 해 역량을 강화하고 양방향 인적 네트워크 형성을 목표로 한다. 핵심 프로그램으로 호주 국적 학부생에 대해 현지에서 학업, 언어연수, 인턴십을 지원하는 장학 프로그램과, 각 대학의 모빌리티 프로그램에 정부 지원금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그리고 현지 인턴십, 멘토링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호주 프로그램은 아세안에 한정된 것은 아니지만 학업뿐 아니라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교육부 및 산학연계를 중심으로 진행한다는 점이 특징이다.9) (3) Canada ASEAN Scholarships Educational Exchanges for Development (SEED) 캐나다 정부는 2017년 8월, 2030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달성 및 ASEAN 개발도상국의 빈곤 감소를 목적으로 SEED 프로그램을 출범시켰다. 본 프로그램은 ASEAN 회원국 출신의 대학(원)생에게 캐나다 고등교육기관에서 단기 유학 또는 연구를 수행할 기회를 제공한다. 아세안 회원국 내 고등교육기관에 전일제로 재학 중인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하는 이 프로그램에서 특징적인 점은 캐나다 대학과 해당 대학 간 교환협정 또는 협력 관계를 통해 운영된다는 점이다. 이 프로그램은 캐나다 교육기관이 이미 아세안 해당 대학과 수업료 면제형 교환협정 체결하고 국제처를 통해 신청 절차를 일원화해야 참여할 수 있다. SDGs를 목표로 내세웠다는 것과 사람 중심의 교류를 목표로 한다.10) (4) China-AUN Scholarship 중국의 교육부와 AUN(ASEAN University Network) 간 협력으로 진행되는 대학원생 대상 전액 장학사업으로, 2008년에 시작되었다. 매년 30명의 아세안 출신 대학원생을 선발하여, 석사과정은 최대 3년, 박사과정은 최대 4년을 지원하며, 정규 학업 과정 및 중국어 학습을 포함한다. 등록금 전액 면제와 생활비 및 의료보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유인 요인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11) (5) ASEA-UNINET SEARCA Mobility Grants ASEA-UNINET 프로젝트는 오스트리아 회원 대학과 ASEAN 회원국(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파키스탄, 필리핀, 태국, 베트남) 간의 양자 또는 다자 협력 프로젝트를 지원하며, 대상은 모든 학문 분야를 포함한다. 연구자, 박사과정생을 주 대상으로하는 1~2년을, 학부생 대상 교환프로그램은 1주~3개월을 지원한다. 단기 학술 협력에 대한 재정 지원 사 업으로 예술, 의학, 사회과학 등 모든 영역을 포함하는 연구 중심 공동 프로젝트로서 특징이 있 다.12) (6) Fulbright ASEAN Research Program 미국 학자들의 학술 활동 지원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ASEAN 2~3개국에서 현지 기관과 공동 연구를 수행하며, 미국 ASEAN 관계 및 지역 주요 과제에 대한 학술적 이해 심화와 협력 기반 제공을 목표로 한다. 연구를 통해 ASEAN 사무국(자카르타) 방문 및 보고 기회를 제공한다. 체류 기간은 3~6개월이며, 아세안 2~3개국에서의 프로젝트 수행이 필수적이다. 박사 학위(예정) 이상의 학력을 가진 연구자를 대상으로 하며, 연구 분야에 대한 제한은 없다. 연구비, 항공료, 생활비를 차등적으로 지원한다.13) 이상의 프로그램들은 모두 상설 조직, 전담 예산, 명확한 정책 연계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학술교류 형식을 띠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외교 소프트 자산으로 인식하여 지역 및 글로벌 현안과 연계하는 모습을 보인다. 한-아세안 학술교류의 주요 재정 기반인 한-아세안 협력기금(AKCF)은 1990년 100만 달러에서 2023년에는 2천만 달러, 2027년까지 3,200만 달러로 확대될 계획이다. 신남방정책, 한-아세안연대구상 등 지난 정권에서 시행된 대 아세안 정책과 연계되면서 재정 규모가 확대된 것이 다. 기금 규모가 확대되면서 교육, 문화, 환경, 디지털 경제, 재난 대응 등 아세안 공동체 3대 축과 연계된 총 27개의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14) 학술교류와 관련해서는 HEAT(Higher Education for ASEAN Talents) 프로그램을 통해 아세안 출신 대학교수들의 박사 학위 취득을 지원하고, Technical and Vocational Education and Training through ASEAN Mobility(TEAM) 프로그램을 통해 기술 및 직업교육 교사나 학생의 한국 현장 연수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주로 이공계 대상이며 일부 국가의 참여가 집중되고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한 방향의 학술 트레이닝 기회 제공이라는 점에서 파트너로서의 학술교류와는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HEAT 프로그램의 경우 학술적 교류에 기여한다는 비전을 공유하므로 한국동남아학회의 사업과 연계할 필요성이 있다. 학술교류의 제도화를 위한 구조적 연계와 상호 참여적 모델은 미비하다. 2025년 한국동남아학회는 2017년 이후 단절되었던 학술교류사업 재개를 위해 2025년 6월 한-아세안협력기금(AKCF)을 공식 수주하였다. 현지조사 지원 프로그램과 국제학술대회를 핵심 프로그램으로 계획하고 있다. 학술사업의 학문후속세대 양성과 양방향 상호 이해 증진을 위한 중요한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앞서 언급한 타 동남아 학술 협력 프로그램과 비교할 때 양방향 학술 교류의 성격이 강하고 아세안 내의 학술현지 조사를 지원하여 아세안공동체 건설에 기여한다는 점은 중요한 차별점이다. 협력기금의 운영에 있어 아세안측의 주도성을 보장한다는 명분이 있으나 실제 사업 제안과 심사 과정에서 과도한 행정적 절차와 경직성을 가지는 문제도 드러난다. 한동연의 경험과 동남아를 대상으로 추진되는 다양한 국제교육협력 프로그램을 고려하여 장기적 발전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결론 및 제언: 협력의 재정립과 지속가능한 거버넌스를 위하여동남아 지역과의 국제학술교류는 단지 연구 성과의 공유를 넘어, 새로운 지식 질서의 형성과 상호이해의 기반을 구축하는 과정이다. 한동연이 추진해 온 포럼과 세미나는 동남아 현안을 중심으로 시의성 있는 주제를 발굴하고, 학문후속세대의 육성과 지역학의 사회적 확산이라는 측면에서 분명한 성과를 남겼다. 그러나 제도화의 기반이 취약했던 만큼, 이들 프로그램은 정책과 예산, 인력, 협력 구조가 균형을 이루지 못한 채 단절의 위기를 맞았다. 앞서 살펴본 한동연 사례는 한국의 동남아 국제학술협력사업이 어느 수준까지 실질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한편, 그 한계를 통해 향후 유사 사업 기획 시 고려해야 할 조건을 시사한다. 2025년 한국동남아학회의 한-아세안협력기금 사업 수주를 통해 현지 조사 지원 사업, 한-아세안학술대회 개최 재개를 앞두고 있다. 향후 동남아 학술 협력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해 다음을 고려할 수 있다. 첫째, 전담 조직을 통한 거버넌스 구조 정립이다. 단기 과제 중심의 프로젝트 방식에서 벗어나, 상설 운영 기구와 전담 인력을 갖춘 플랫폼이 마련되어야 하며, 해당 조직이 중장기 계획과 연차별 기획ㆍ보고를 책임지는 거버넌스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2025년 한국동남아학회의 학술 교류 사업 수주를 계기로 이와 같은 전담 인력 확보가 가능해진바, 외교부와의 제도적 협력을 통 해 장기 사업으로서의 거버넌스 구조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둘째, 기념성 행사 중심에서 과정 중심 연속 사업 으로 전환해야 한다. 25주년, 30주년과 같은 외교적 이정표에 맞춘 일회성 행사는 국제사회에서 가시성은 확보할 수 있지만, 학문적ㆍ제도적 심화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지속 가능한 인적ㆍ제도적 협력은 다년간의 축적과 성과 전환 과정이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한동연이 추진했던 포럼 및 현지 세미나의 요소를 포함하기 위한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사업 확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셋째, 다층적 인재 순환 구조와 후속 세대의 제도적 편입 장치가 필요하다. 심화 세미나 및 Young Scholars Workshop 사례에서 확인된 것처럼, 신진 연구자 양성은 학술 협력의 핵심 축 중 하나다. 그러나 이들을 단기 프로그램 참여자에 그치게 하지 않고, 학술대회 발표 및 향후 연구비 지원 등으로 연결할 수 있는 제도적 루트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넷째, 외교정책과 지역연구의 연계성과 전략화를 높여야 한다. 한국의 대아세안 외교는 점점 더 복합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문화, 안보, 개발, 디지털, 기후 협력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역연구는 정책 이해를 위한 자료 제공자 역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 방향을 설정하고 장기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플랫폼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는 곧 학술 협력의 정책 기여 효과를 평가 지표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동남아 현지 연구 기관 및 학자와의 대등한 협력 관계 구축이 필요하다. 과거에는 현지 연구자 초청 및 발표 중심의 형식에 머무른 경우가 많았으나, 한-아세안 학술교류는 단순한 국제화가 아니라, 지식생산 자체를 공유하고 상호 의존적 관계를 구축하는 연대의 제도화 로 나아가는 핵심 기반이다. 글로벌 사우스의 지식 주체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 역시 제도화된 협력 모델을 재설계함으로써 국제적 연대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단절된 흐름을 다시 잇는 것은 과거의 복원이나 단순한 계승이 아닌, 제도와 담론, 인적 기반을 새롭게 엮는 창조적 개입의 과정일 것이다. 이를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협력의 지속 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협력 을 설계하는 상상력과 실행력이다. * 각주1) 1990년 설립된 동남아정치연구회 가 동남아지역연구회 를 거쳐 2003년 한국동남아연구소가 설립되었고 2004년 3월 외교통상부로부터 사단법인 설립을 승인받았다. 2020년 연구 집중과 효율성 제고를 위해 한국동남아학회와 통합 이후 사단법인 한국동남아학회 산하의 연구기관으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한동연 설립의 배경과 의미에 대해서는 전제성, 한국의 동남아 연구 동향과 과제: 제3세대 연구자 선언을 기대하며 (『동아연구』 52, 2006), 19-23쪽 참조. 2) 한-아세안학술협력사업은 한국동남아학회와 AUN이 주관한 한-아세안 학술교류사업을 통해 지원한 현지조사 지원 프로그램 및 학술대회와 한동연이 주관한 한-아세안 학술포럼과 Advance Seminar로 각각 진행되었다. 이 글에서는 한동연의 학술교류 사업을 중심으로 살펴본다.3) Raewyn Connell. Southern Theory: The global dynamics of knowledge in social science (Routledge: London, 2007).4) 최초 동남아지역학 전공 신진학자 훈련사업 으로 기획되었으며 1차 행사의 주제인 Advanced Seminar on Southeast Asian Studies: Focus on Malaysia 로 인해 어드밴스 세미나로 불렸다.5) SEASREP은 1994년 설립 논의를 시작해 1997년 필리핀에 등록되었으며, 2007년 ASEAN 공인 시민사회단 체로 인증받았다. 1995년부터 2015년까지 도요타재단과 일본재단의 지원으로 동남아 석ㆍ박사 과정, 언어훈련, 연구협력, 학부생 교류 프로그램 등을 운영했으며, 이후에는 학술 세미나, 공동연구, 출판, 역량 강화에 집중해왔다. 2016년부터는 동남아 신진 연구자들의 논문을 다루는 온라인 학술지 RJSEAS 를 발간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약 2,000명의 동남아 연구자들과 50여 개 대학 연구기관이 SEASREP 활동에 참여해 왔다. https:// www.seasrepfoundation.org/about/ 참조.6) AUN은 1995년 11월 설립되어 ASEAN 10개국의 주요 대학을 연결하는 고등교육 네트워크로, 현재 30개 핵 회원 대학이 참여 중이며, 설립 목적은 역내 대학 간 협력 강화ㆍ인적자원 개발ㆍ공동 연구 및 학습 촉진을 통한 지역 정체성과 연대 확립이다. 상세 내용은 AUN 홈페이지(https://www.aunsec.org) 참고. 7) https://www.jpf.go.jp/e/project/intel/exchange/jfseap/index.html 8) https://www.jpf.go.jp/e/project/special/bunkanowa2/index.html 9) https://www.dfat.gov.au/people-to-people/new-colombo-plan/about10) https://www.educanada.ca/scholarships-bourses/can/institutions/asean-anase.aspx?lang=eng 11) https://aunsec.org/aun-action/scholarships/china-aun-scholarship 12) https://asea-uninet.org/scholarships-grants/project-support/ 13) https://fulbrightscholars.org/award/asean-research-program-714) AKCF, ASEAN-Korea Cooperation Fund Annual Report 2023. [37] 음식, 미낭까바우 그리고 서부수마트라주 | 정정훈 작성자 동남아연구소 조회수 529 첨부파일 1 등록일 2025.07.16 초록 이 글은 2024년 전북특별자치도와 인도네시아 서부수마트라주 간의 교류 확대를 배경으로, 서부수마트라주의 주요 도시와 문화자원에 대한 이해를 목적으로 한다. 서부수마트라주는 전체 인구의 90%를 차지하는 미낭까바우족의 문화적 본산지로, 파당과 부낏띵기를 중심으로 독특한 음식문화와 전통문화를 발전시켜왔다. 특히 파당은 '파당 음식'으로 불리는 인도네시아 대표 음식의 본고장으로 인식되어 '미식의 도시'라는 상징성을 갖는다. 미낭까바우족은 강한 이슬람 신앙, 모계친족사회, 뛰어난 요리 기술을 문화적 특징으로 한다. 부낏띵기는 해발 900미터 고원에 위치하며, 1940년대 독립 전쟁 시기 임시 수도 역할을 했던 유서 깊은 도시이다. 전북특별자치도와 서부수마트라주의 교류 협력 강화는 양 지역의 서로 다른 음식문화와 전통문화를 통한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고, 문화를 통한 지방외교의 새로운 토대를 구축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이슈페이퍼 37호 바로보기인도네시아 서부수마트라주(West Sumatra) 대표단은 2024년 10월 24일부터 27일까지 전북특별자치도를 방문해 양 지역간 교류 확대를 위한 논의를 진행했다. 이에 앞서 2023년 양 지자체는 교류의향서를 체결했고 2025년 우호협약 체결을 앞두고 있다. 양 지자체는 상호 보완적인 산업 구조를 가지고 있어 협력 강화가 향후 두 지역의 경제성장을 위한 발판이 될 것이다. 전북특별자치도와 서부수마트라주는 물리적으로 대략 5천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그럼에도 양 지자체는 각각 한국과 인도네시아에서 음식, 전통문화, 문화정체성이 뚜렷한 지역으로 인식되는 등 유사한 측면이 있다. 양 지역의 교류는 2017년부터 시작되었지만, 서부수마트라주는 우리에게 여전히 물리적 거리만큼 낯선 지역이다. 서부수마트라주의 주요 도시와 여러 문화자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다.음식과 도시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음식은 사람이 먹을 수 있도록 만든, 밥이나 국 따위의 물건 으로 정의한다.1) 인간에게 필수불가결한 영양분을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음식은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음식은 인간의 삶과 가까운 지점에 있기에 다양한 문화를 만들어가는 원천이자 그 자체로 문화가 된다. 인류학자 코니한은 음식은 가장 폭넓고 가장 친숙한 상태 위에 만들어진 사회조직의 산물이자 거울 이라고 한다.2) 물론 음식이 사회나 단체가 아닌 개인적인 선호와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도 있다. 이는 인간 식습관의 다양함에서 비롯되었음을 의미한다. 인도네시아의 패스트푸드 식당에서는 햄버거나 치킨 등을 제공할 때 으레 쌀밥을 함께 제공한다. 또한 프렌치프라이를 찍어 먹는 소스 역시 케찹과 함께 인도네시아 전통 양념 중 하나인 삼발(sambal)을 제공한다. 인도네시아인은 튀김 요리와 밥을 양념 소스인 삼발과 함께 먹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 음식 선호는 매우 개인적인 영역이지만, 어쩌면 인간이 직면한 문화적 생태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 인류학자 해리스는 세계의 요리가 지역마다 주요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각기 생태학적 제약과 기회가 다르기 때문이다 라고 역설한다.3) 결국 개인의 성향에서 비롯되었다고 믿었던 음식의 생산, 분배, 소비의 과정이 지극히 문화적 행위임을 설명한다. 2억 8천만 명의 세계 4위 인구대국인 인도네시아 역시 여러 종족의 전통에서 비롯된 다채로운 음식이 있다. 나시고렝, 미고렝, 른당, 사떼 등 매우 낯선 명칭의 요리가 인도네시아 음식 으로 불리면서 인도네시아, 동남아시아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소비된다. 그렇다면 인도네시아 도시 중 음식의 수도 혹은 음식의 도시 로 불린 곳은 어떤 곳일까? 도시가 가진 여러 특징 중 왜 음식이 한 도시의 중요한 상징이 되었는지를 찾아보는 여정을 떠나보자. 인도네시아 음식을 대표하는 곳이라고 내세워도 낯설지 않은 도시가 바로 파당(Padang) 이다. 파당은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큰 섬인 수마트라섬(Pulau Sumatra) 남서쪽의 서부수마트라주(Provinsi Sumatra Barat)에 위치한다. 인도네시아인에게 파당은 파당 음식 이라는 의미인 마사칸 파당(Masakan Pandang) 으로 인식될 만큼 음식이 도시의 중요한 상징 중 하나이다. 특히 인도네시아 전역에 위치한 파당 음식점 혹은 미낭 음식점(Masakan Minang)4)의 본고장으로 여겨진다.5) 미낭까바우족의 고향 서부수마트라의 부낏띵기서쪽으로는 넓고 푸른 인도양을 접하고, 북쪽으로는 가파른 협곡과 화산이 있는 지역, 동쪽 과 남쪽으로는 비옥한 토지와 열대우림 그리고 넓은 호수가 있는 지역이 있다. 수마트라섬의 중 서부 연안에 위치한 서부수마트라주는 다채로운 풍경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서부수마트라는 미낭까바우족이 전체 인구의 90%를 차지할 만큼 미낭까바우족의 정신적, 문화적 본산이다. 서부 수마트라의 전체 면적은 대한민국 영토의 절반이 조금 안 되는 42,012㎢이며 2022년 기준으로 5,667,434명의 인구가 거주한다. 주도인 파당과 미낭까바우의 문화적 본산이라고 여겨지는 부낏띵기(Bukittinggi)를 비롯한 7개 시와 전통적인 물소 경주로 유명한 따나 다타르(Tanah Datar), 파사만(Pasaman) 등 12개의 군으로 구성된다. 서부수마트라 지역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14세기 중반이다. 마자파힛 왕국의 왕족이었던 아딧야와르만(Adityawarman.1347-1375)이 따나 다타르 고원 지역에 파가루융 (Pagaruyung) 왕국을 건설하였다. 아딧야와르만은 이 지역의 금 채취와 교역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였다. 파가루융 왕국이 세워지기 이전까지 이 지역은 수마트라와 말레이 반도를 지배했던 스리비자야(Srivijaya)와 말라유(Malayu) 왕국의 변방 지역이었고, 주요 무역로의 일부로 활용되었다. 미낭까바우족 이름의 어원은 대략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마자파힛 왕국은 과거부터 무역로로 이 지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호시탐탐 정복을 꾀하였다. 미낭인들은 군사적으로 열세인 자 바인과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물소를 이용한 결투를 신청하였다. 자바인은 이를 받아들였고 물소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면서 결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에 반해 미낭인들은 힘쎈 물소 대신 작고 며칠간 굶긴 송아지를 준비했다. 대신 송아지의 뿔에 작은 칼을 묶어두었다. 결투가 시작되었고 어미의 젖을 찾던 송아지는 물소의 배를 단번에 찔렀고 미낭인이 승리하였다. 이후 자바인은 이 지역에서 물러났고,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승리라는 의미인 마낭(Manang)과 물소를 뜻하는 카바우(Kabau)가 이들 종족의 이름으로 사용되었다는 이야기다. 이와 달리 발상지 라는 의미인 피낭 카브후(Pinang Kabhu) 에서 유래했다는 어원도 있다. 물소는 여전히 이 지역에서 중요한 가축 중 하나이다. 농사일에 여전히 이용되고 여러 음식의 주재료로 활용된다. 물소를 이용한 여러 축제가 펼쳐지기도 한다. 따나 다타르 지역에서는 추수 이후 물소 경주인 파쭈 자위(pacu jawi)가 열리기도 한다. 마자파힛 왕국의 침략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지역은 과거부터 교역의 중간 기착지로 인식되었 다. 수마트라섬 최북단의 아쩨(Aceh) 지역으로부터 전해진 이슬람은 미낭인들의 주요 종교가 되었고, 17세기 들어서 파가루융 왕국은 미낭까바우족의 첫 번째 술탄인 아리프(Alif)의 지배를 받는 술탄국으로 변화하였다. 이슬람은 현재까지도 미낭까바우족의 전통관습인 아닷(Adat)과 융화되어 신앙으로서 이들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중심으로 유럽인들이 세계 곳곳을 지배했던 대항해시대 당시 서부수마트라 역시 주요한 교역로로 주목받았다. 특히 16세기 이 지역에서 생산된 금은 당시 포르투갈에도 알려질 만큼 주요한 교역 상품이었다. 이후 16세기에서 17세기까지 서부수마트라에서 생산된 고품질의 후추는 인도, 중국, 포르투갈, 영국, 네덜란드까지 지역 지배권을 둘러싼 갈등의 씨앗이었다. 결국 1663년 네덜란드가 파당 항구를 점령함으로써 지역의 지배권과 함께 후추와 황금의 주인이 되었다. 하지만 18세기 후반 황금이 고갈됨으로써 커피, 소금, 면직물이 주요 생산품이 되었다. 당시 수마트라 지역은 여러 술탄 왕국의 지배하에 있었고, 네덜란드 식민 당국은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일부 항구나 요새를 지배하는데 주력하였다. 따라서 황금이 고갈된 서부수마트라 지역의 정치적 패권은 술탄 왕국에게 넘어갔고, 커피, 소금, 면직물의 교역은 무슬림 상인에 의해 이루어졌다. 네덜란드의 이러한 식민지 전략은 19세기에 들어 변화를 맞게 된다. 동인도회사를 통해 교역로 일부를 지배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인도네시아 전 군도에 대한 지배권 획득의 열망을 드러냈다. 당시 서부수마트라는 엄격한 이슬람 신앙을 가진 성직자인 파드리(Padri)가 중심이 되어 지배권을 확립했지만, 이 과정에서 전통 관습을 지지하는 일부 주민과 네덜란드 세력이 연합하여 파드리 세력과 충돌하였다. 파드리 운동(Gerakan Padri)이라고 불린 전쟁의 초기 파드리 세력 이 파당을 비롯한 해안지역을 점차 정복해 나갔고, 네덜란드는 코크 요새(Fort de Kock)라고 불린 현재의 부낏띵기 지역으로 물러갔다. 파드리 세력은 지역주민과 결합되어 강력한 세력을 유지했지만, 결국 1832년 파드리의 지도자인 뚜안꾸 이맘 본졸(Tuanku Imam Bonjol: 이하 이맘 본졸)이 패하면서 서부수마트라 지역은 네덜란드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파드리의 지도자인 이맘 본졸은 인도네시아의 5,000루피아 화폐의 주인공인 될 만큼 인도네시아인의 존경을 받는 국가 영웅으로 칭송받는다. 본명은 무하마드 샤합(Muhammad Shahab)이지만 이명인 이맘 본졸로 주로 불린다. 뚜안꾸 는 근대 인도네시아 관원의 직함, 이맘 은 이슬람의 지도자를 의미하며, 본졸 은 그가 태어난 지역명이다. 따라서 그의 이름은 전직 관원이었던 본졸 지역의 이슬람 지도자 를 의미한다. 네덜란드 식민당국은 당시 술탄과 영주 세력을 규합하여 민중들을 핍박하고 착취했다. 이맘 본졸은 이들의 착취가 이슬람 원리에 어긋남을 지적하면서 저항했고 네덜란드로부터 독립 의지를 보였다. 이맘 본졸의 영웅적인 저항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서부수마트라 파사만군의 본졸 마을에는 박물관(Museum Tuanku Imam Bonjol)이 건립되어 있다. 또한 본졸 마을은 적도를 나누는 경계이기도 하다. 박물관 인근에는 이를 알리기 위한 적도 기념비(Monumen Equator)가 세워져 있고 남반구와 북반구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 파드리 운동의 영향으로 네덜란드는 파당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대략 100km의 거리에 위치 한 부낏띵기를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네덜란드가 서부수마트라 지역을 완전히 점령 한 이후 부낏띵기는 파당과 함께 이 지역의 주요한 거점 도시 역할을 하였다. 높은(Tinggi) 언덕 (Bukit)이라는 뜻을 가진 부낏띵기는 해발 900m 고원에 위치하기에 연평균 25도 내외의 선선한 날씨이다. 또한 수마트라의 파리(Parijs van Sumatra)라는 별칭처럼 식민지 시대의 건축물과 광장 그리고 미낭까바우족의 전통집인 루마 가당(Rumah Gadang)이 조화롭게 도시의 전경을 이룬다.부낏띵기 여행은 1920년대 네덜란드 여왕이 전해준 큰 시계라는 의미인 잠 가당(Jam Gadang) 에서 시작한다. 광장 중앙에 위치하며 시계탑의 끝에는 루마 가당의 지붕 모양인 물소 뿔(Gonjong)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부낏띵기 도심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아흐마드 야니 도로 (Jl. Ahmad Yani)와 미낭카바우 도로(Jl.Minangkabau)는 왜 이곳이 미낭까바우족의 문화적 중 심지인지를 알려준다. 미낭까바우족을 상징하는 여러 면직물 상점, 보석 판매점 그리고 미낭 전통음식점이 줄지어 위치한다. 길을 걷다보면 동서를 가로지르는 루마 가당 건축물 형태의 림파페 다리(Jembatan Limpapeh)가 보인다. 다리의 동쪽에는 주말마다 가족 여행객으로 붐비는 동물원이 있으며, 서쪽에는 네덜란드가 건설한 코크 요새가 위치한다. 부낏띵기를 둘러싸고 있는 세 개의 높은 산과 가파른 협곡, 환상적인 경관 그리고 선선한 날씨는 이 도시를 방문하는 주요한 이유이다. 이와 더불어 인도네시아인에게 부낏띵기는 미낭까바 우족을 넘어 인도네시아의 국가 영웅으로 칭송받는 모함마드 하따(Mohammad Hatta)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하따는 1902년 8월 12일 당시 코크 요새로 불렸던 부낏띵기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학업 성취를 보였던 하따는 네덜란드의 에라스무스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네덜란드에서 반식민주의 반제국주의 성향이 강한 민족주의 청년 조직인 인도네시아 협회(PI, Perhimpoenan Indonesia)의 주요 회원으로 활동한다. 이후 인도네시아로 귀국 후에도 청년지식인이자 독립운동가로 역할을 수행해 나갔다. 결국 그는 1945년 8월 17일 수카르노와 함께 독립선언을 주도하였고 인도네시아 공화국 수립의 주역이 되었다. 다음날 인도네시아 독립준비위원회(PPKI, Panitia Persiapan Kemerdekaan Indonesia)는 대통령으로 수카르노를 부통령으로 하따를 선출함으로써 인도네시아 공화국의 시작을 전세계에 알렸다. 부통령과 총리 재임 시 하따는 여러 정치적 고난을 겪었고, 특히 수카르노와의 갈등이 그가 부통령직을 물러나게 된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 하따의 정치적 활동에 대해서 여러 평가가 있겠지만, 그의 실용적인 외교노선은 여전히 인도네시아 사회에서 중요하게 받아들여진다. 하따는 1948년 두 바위 사이에서 노 젓기 라는 연설을 통해 냉전시기 3세계 국가들의 역할에 대해 역설한다. 그는 독립적이고 능동적인 외교 활동의 필요성을 강조하였고, 이는 현재까지도 인도네시아 외교의 기본원칙이다. 하따의 고향, 부낏띵기에서는 그의 흔적을 손쉽게 찾을 수 있다. 부낏띵기 여행의 시작점인 잠 가당 인근에는 하따의 궁전(Bung Hatta Palace)과 공원(Taman Monumen Proklamatior Bung Hatta)이 있다. 공원에는 연설하는 하따의 모습을 형상화한 동상과 그의 일대기를 석조부조로 표현하여 반식민주의와 조국의 독립을 원했던 한 정치인의 삶을 보여준다. 하따가 태어나 11살 때까지 거주했던 집을 박물관으로 개조한 장소 역시 부낏띵기에 위치한다. 잠 가당에서 대략 동북쪽으로 1km 정도 이동하면 하따 생가 박물관(Rumah Kelahiran Bung Hatta)을 관람할 수 있다. 하따가 생전에 사용한 가구, 식기, 사진, 문서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음식은 미낭까바우인의 정체성이다.서부수마트라 지역에서 음식은 결국 미낭 음식이라는 의미인 마사칸 미낭(Masakan Minang) 으로 통용된다. 또한 도시명인 파당을 사용하여 파당 음식이라는 의미인 마사칸 파당 (Masaskan Padang) 으로 명명한다. 이는 음식에 종족과 지역 이름을 더함으로써 종족과 지역 정체성을 부여하고, 나아가 종족 음식이 가진 가치를 극대화한다. 실제로 파당 음식은 하나의 브랜드화 되어 인도네시아 전 군도를 넘어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다른 국가와 도시로 이주한 미낭인이 식당을 운영하기도 하지만, 할랄 음식과 매콤한 맛에 대한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상업적 이익을 위해 타 종족의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파당 음식은 과연 어떤 음식이기에 종족과 지역 음식에서 국가 음식으로 변모하게 되었을까? 파당은 어떻게 미식의 도시 라는 상징성을 부여 받았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우선 미낭까바우족에 대해 알아보자. 인도네시아에서 미낭까바우족에 대한 인식은 다양하겠지만 대체적으로 세 가지 지점에서 묘사가 이루어진다. 첫째, 인도네시아 사회에서 미낭까바우인은 이슬람에 대한 믿음, 즉 종교적 신념이 강한 종족으로 인식된다. 18세기말 수마트라에서 시작된 이슬람개혁운동은 미낭까바우 종족이 거주한 서부수마트라 지역에서 넓게 확산되었다. 이슬람개혁운동은 이슬람교리를 가르치 는 수피(sufi)가 그 중심이 되었고, 미낭까바우족의 관습과 절묘하게 융화되면서 이들 종족이 사회개혁운동의 선두로 나서게 된 것이다. 이슬람에 대한 깊은 신앙심은 여전히 현대의 미낭까바우인에게 중요한 삶의 척도가 된다. 음식과 관련해보면 미낭 음식이 돼지고기 금기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의 할랄화를 추구하는 무슬림의 식문화와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둘째는 부계 중심의 이슬람 사회와 달리 미낭까바우족은 모계친족 사회를 이룬다는 점이다. 모계친족사회는 한 세대 나아가 여러 세대의 형제자매들도 어머니의 모계친족집단에 속한다. 예를 들어 모계사회의 전형적인 가족형태는 1세대이자 집안의 중심이 되는 할머니 그리고 그녀의 남편이 가족 구성원의 최상단에 위치한다. 이후 2세대인 딸과 사위 그리고 3세대인 손주가 있다. 경우에 따라 결혼하지 않은 2세대의 아들과 딸이 함께 거주한다. 2세대의 아들이 만약 혼인을 하게 되면 그는 집을 떠나 결혼하게 될 아내의 가족에 포함된다. 미낭까바우의 모계 사회에서 재산 상속의 권한이 없는 남성들은 젊은 시절 성공을 위해 떠난 여행이라는 의미인 머란따우(Merantau) 를 행한다. 머란따우를 행한 대표적인 인물이 앞서 소개한 하따이다. 하따의 인생 여정처럼 미낭까바우 남성들은 가깝게는 메단이나 팔렘방 그리고 멀게는 자카르타, 쿠알라룸푸르, 싱가포르 등지로 떠나 성공을 꿈꾼다. 성공한 남성은 고향으로 돌아와 지역 발전에 기여하지만, 대부분은 이주한 지역에서 계속 정착을 한다. 미낭까바우족은 대략 700만 명으로 집계되는데, 이중 400만 명은 서부수마트라 지역에 거주하고 300만 명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 반도 곳곳에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구고 있다. 결국 미낭까바우인의 이주지역에서 음식을 비롯한 생활 문화가 소개되면서, 파당 음식이 국가음식화 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셋째는 미낭까바우인의 미각이 뛰어나고 이 지역에서 배출한 훌륭한 요리사가 많다는 인식이다. 흐물흐물하고 단 맛이 강한 자바의 음식과 비교하여 파당음식은 좀 더 걸쭉하고 맵고 짭짤한 맛이 특징이다. 파당 음식의 주요 재료는 인도네시아의 다른 종족 음식과 같이 소고기, 닭고기, 염소, 오리와 같은 육고기와 다양한 종류의 생선을 주재료로 사용한다. 이들 재료를 굽거나, 찌 거나, 튀기는 방식으로 요리를 한다. 하지만 서부수마트라 지역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훌륭한 농산물 생산지로서 명성을 이어온다. 쌀, 카사바, 감자, 고구마, 땅콩, 옥수수 등 농작물은 비옥한 화산토양의 영향으로 훌륭한 맛을 보인다. 물론 인도네시아 타 지역 음식과 결정적 차이는 양념이다. 미낭인은 파당 음식의 정체성을 코코넛 밀크와 다양한 향신료에서 비롯된 매운 소스에서 찾는다. 코코넛 밀크와 매운 향신료가 파당 음식을 걸쭉하고 맵게 함으로써 자바 음식과의 차이를 갖는 음식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파당 음식은 샬롯, 마늘, 생강, 강황, 고추, 레몬그라스 등의 향신료를 이용하여 다양한 소스 조합을 만들어냄으로써 맛을 끌어 올리고 다양한 변주의 요리로 완성된다. 향신료 사용이 빈번한 것은 이 지역이 과거부터 다양한 향신료의 생산지이자 교역로였기 때문이다. 인도양으로 직접 나갈 수 있는 파당항은 황금, 커피, 향신료 등의 매매가 이루어지는 국제무역항이었고, 아랍인, 페르시아인, 네덜란드 그리고 중국인이 공존하는 코스모폴리탄 지역이었다. 여러 민족의 음식문화가 서부수마트라에서 생산된 여러 재료와 만나면서 지역음식문화가 다양해 진 것이다. 결국 미낭까바우인에 대한 인도네시아인의 인식, 미낭까바우인의 전통관습 그리고 지역의 사회문화적 환경이 조화되면서 파당이 미식의 도시라는 상징성을 부여받게 된 것이다.해변, 음식 그리고 문화유산미낭까바우인의 문화 중심지가 부낏띵기라면 파당은 정치, 교육 그리고 경제의 중심지이다. 국제무역항, 국제공항, 시장과 백화점 그리고 서부수마트라 주청사가 도시에 위치한다. 서부수마트라의 주도인 파당은 약 백만 명(2022년 기준)이 거주하는 도시이며, 파당 광역 대도시권의 인구는 약 140만 명으로 수마트라 지역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이다. 열대우림기후의 파당은 연간 강수량이 4,000㎜가 넘는 인도네시아에서도 손꼽히게 많은 비가 내리는 지역이다. 또한 불의 고리 로 불리는 환태평양 지진대에 속해 빈번하게 지진이 발생한다. 하지만 미낭까바우인의 문화적 전통이 잘 지켜지고, 상대적으로 선선한 날씨 그리고 관광산업이 성장하면서 지속적으로 인구가 증가하는 도시이다. 파당을 상징하는 것은 미낭까바우족의 전통 가옥인 루마 가당이다. 루마 가당은 루마 고당 (Rumah Godang), 바곤종(Bagonjong), 바안주앙(Baanjuang)으로도 불린다. 물소의 뿔처럼 휘어진 지붕 모양을 가지고 있으며, 양쪽 끝에 높게 솟은 곤종(Gonjong)은 물소의 뿔을 형상화 한다. 전통적으로 루마 가당은 박공지붕의 형태로 주로 야자섬유를 사용하여 지붕을 완성한다. 현대에 들어서는 건축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양철을 사용하여 지붕을 완성한다. 루마 가당은 미낭까바우인의 모계 대가족 제도를 지탱하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 가족의 생활 거주지뿐만 아니라 출생, 성인식, 결혼, 장례 등 전통 관습을 실행하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어머 니가 딸에게 집을 상속하며 아버지 대신 외삼촌이 대외적인 일의 가족 대표로서 역할을 한다. 파당에서 루마 가당은 도시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제공항, 박물관, 주청사, 학교, 식당 심지어 이슬람 사원의 지붕까지 양쪽 끝이 높게 솟은 지붕을 볼 수 있다. 미낭까바우인의 종교와 관습을 함께 경험한다는 의미에서 서부수마트라 대모스크(Masjid Raya Sumatra Barat) 는 파당 여행의 시작으로 적당하다. 서부수마트라 대모스크는 황금빛이 감도는 이슬람 사원의 화려함과 미낭까바우 전통 건축형태가 절묘한 조화를 이룬 종교시설이다. 사원은 총 3층 높이에 4,430 평방미터의 규모를 가진다. 최대 6,000명이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시설로서 2007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2019년에서야 완공된 대역사의 현장이다. 대모스크 관람 후 수디르만 거리(Jl. Jend Sudirman)를 따라 남쪽으로 이동하다보면 거리 주변으로 주지사 사무실, 서부수마트라 인도네시아 은행 등 큰 규모와 다채로운 형태의 루마 가당을 볼 수 있다. 파당에서 미낭까바우족의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지역은 도시의 남쪽에 위치한 구도심인 식민지 지구(Colonial Quarter)이다. 특히 주정부가 운영하는 박물관인 아딧야와르만 박물관 (Adityawarman Museum) 이 구도심 여행의 시작점이다. 서부수마트라 지역과 미낭까바우족의 역사와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민족지박물관이다. 박물관 건물은 루마 가당의 형태로 건축되었고 미낭까바우족의 쌀 보관 건물인 랑키앙스(Rangkiangs) 두 채가 박물관 건물을 호위하듯이 서있다. 박물관을 나와 서남쪽으로 향하면 일몰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고고한 하얀 백조처럼 있는 알-하킴 모스크 가 있다. 인근의 파당 비치, 시티공원은 일몰을 관람하고 저녁 식사를 위해 나온 파당 시민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박물관을 나와 동남쪽으로 향하면 과거 네덜란드와 중국인 들이 팽팽한 긴장감을 가진 채 거주한 구도심이 나온다. 강변을 따라 지어진 복층 구조의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의 창고는 현재 식당과 호텔 등으로 개조되어 여전히 화려한 색감을 자랑한다. 구도심은 또한 차이나타운의 일부이기도 하다. 쎼힌키옹(See Hin Kiong) 사원을 중심으로 화인 집단거주지가 있으며, 화려한 붉은색 조명과 건물 아래 화인 식당이 즐비하다. 인도네시아인에게 파당은 음식이라는 의미와 동일하게 사용되듯이, 파당 음식은 이 도시의 대표상품이자 미낭까바우인의 문화적 정수라 할 수 있다. 파당 음식에 이들의 삶과 문화가 온전히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한정식 상차림처럼 파당 음식은 넓은 테이블에 대략 15개 정도의 음식이 차려진다. 소스로 활용되는 녹색, 노란색, 빨간색의 카레, 공심채 볶음과 같은 채소무침, 튀기거나 쪄서 나온 생선, 튀기거나 숯불에 구워서 나온 닭고기 그리고 대표 소고기 요리인 른당(Rendang)이 나온다. 손님이 테이블에 앉으면 남성웨이터들은 겹쳐서 쌓아 올린 10여개의 접시를 손님 앞으로 내어 놓는다. 흰쌀밥이나 강황이 들어간 노란색 밥을 개인 접시에 담은 후 테이블에 깔린 요리 중 마음에 드는 요리를 조금씩 가져다가 먹는다. 서빙을 한 웨이터는 손님이 먹은 음식의 종류와 수를 적고 손님은 식사 후 이를 계산하면 된다. 먹지 않는 요리는 그대로 놔두거나 웨이터에 가져가라고 하면 된다. 개인 접시에 밥과 요리가 놓이면 손님은 오른편에 있는 물그릇에 손을 씻은 후 식사를 시작한다. 스푼으로 매콤한 소스를 조금 던 후 밥, 고기, 채소를 함께 비벼서 먹는다. 닭고기 요리인 아얌 발라도(ayam balado), 생선 요리인 굴라이 이칸 메라 파당(gulai ikan merah padang), 매콤한 맛이 일품인 굴라이 아얌 파당(gulai ayam padang) 등 파당 요리는 매콤한 칠리소스의 맛과 부드러운 코코넛 밀크가 조화롭게 어울린다. 파당 요리 중 대중에게 인지도와 인기가 많은 대표 음식은 른당이다. 미낭인에게 른당은 가족과 공동체에 특별한 행사나 종교 의례가 있을 때 먹는 음식이다. 제대로 만든 른당은 오랜 시간과 여러 가지 귀중한 재료가 들어간 값비싼 음식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가정의 소중한 자산 중 하나인 물소가 주재료이기에 른당은 음식을 넘어 미낭까바우 문화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완벽한 른당은 매우 거칠 질감의 양념이 묻어 있는 우리네의 소갈비찜의 모습이다. 짭짤한 맛과 매운맛이 절묘하게 어울리며 코끝을 자극하고, 코코넛 밀크로 오랜 시간 조리하기에 소고기는 입안에 들어가면 부드럽게 녹아내린다. 코코넛 밀크와 빨간색 및 녹색의 칠리는 른당의 원재료이다. 여기에 가족 혹은 공동체에 따라 다양한 향신료 배합을 통해 각각의 개성을 드러낸다. 샬롯, 마늘, 갈랑갈, 캔들넛, 강황, 강화잎, 라임잎, 레몬글라스, 정향, 육두구, 생강까지 다양한 향신료가 배합된다. 른당은 원래부터 느리게 완성되는 요리이다. 시나몬 나무를 장작으로 활용하여 은근한 불로 대략 8시간 정도 요리한다. 완성된 른당은 밥이나 하얀 콩과 함께 준비된다. 서부수마트라는 인도네시아의 수도인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로 이동시 2시간이 걸린다. 그에 비해 싱가포르나 쿠알라룸푸르에서는 대략 1시간 내외로 이동할 수 있다. 버스와 페리를 이용하여 싱가포르로 이동하는 사람도 제법 된다. 인도네시아에 소속된 하나의 주이지만 문화적으로 말레이반도와도 긴밀하게 연결된다. 또한 이 지역은 미낭까바우의 전통과 관습이 서부수마트라 주의 주된 생활방식이 된다. 한 종족이 만들어 낸 전통 관습에 다양한 이주민의 문화가 혼용되면서 서부수마트라만의 독특한 문화적 양식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문화적 양식은 서부수마트라의 중심도시인 파당과 부낏띵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파당과 부낏띵기는 그곳의 역사성과 함께 여러 사람들에게 특별함을 안겨주는 도시이다. 전북특별자치도와 서부수마트라주의 교류 협력 강화는 양 지역의 경제 성장을 위한 상호보완적인 특성을 보인다. 이에 더하여 두 지역의 서로 다른 음식문화와 전통문화를 경험하고 학습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양 지자체가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고, 나아가 문화를 통한 지방외교의 새로운 토대를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각주1)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View.do 2) 코니한, 캐롤 M. 2005. 『음식과 몸의 인류학』. 김정희(역). 서울: 갈무리3) 해리스, 마빈. 2018.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서진영(역). 파주: 한길사. 4) 파당 지역이 속한 서부수마트라주의 주요 종족이 미낭까바우족이기에 파당 음식은 일종의 미낭족의 음식이다. 5) 인도네시아 파당 음식점 협회(Ikatan Warung Padang Indonesia)는 자카르타를 포함한 수도권 지역에 대략 20,000개의 파당음식점이 운영된다고 밝혔다. [36] 2026년의 미얀마를 상상하다 | 강선우(Wai Nwe Hnin Soe) 작성자 동남아연구소 조회수 599 첨부파일 1 등록일 2025.06.26 [35] 특수외국어 교육 진흥 사업의 성과: 재학생 전문 인재 양성을 중심으로 | 백용훈 작성자 동남아연구소 조회수 606 첨부파일 1 등록일 2025.06.11 초록 특수외국어는 국가 발전에 전략적으로 필요한 53개 외국어로, 이를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2016년 「특수외국어 교육 진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단국대, 부산외대, 한국외대가 전문교육기관으로 지정되어 맞춤형 인재 양성, 언어 서비스 확대, 교육 기반 고도화 등을 추진 중이다. 이 글은 특수외국어 교육 진흥 사업의 기본계획과 추진 과제, 특히 전문 인재 양성 을 위한 프로그램의 운영 사례와 성과를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주요 사례로 단국대학교 특수외국어사업단의 비교과 프로그램과 단계별 성장나무 모델 을 제시하고, 전공생의 학습 동기 부여, 언어 활용 능력 향상, 진로 설계 지원 등 실질적인 성과를 소개한다. 또한 베트남학 전공생의 성장 사례를 통해 사업의 효과성과 지속 가능성을 살펴보고, 향후 협업 강화 및 성과 확산을 위한 전략적 개선 방안을 제안한다. 이슈페이퍼 제35호 바로보기 이 글은 특수외국어 교육 진흥 사업의 목표와 추진 전략을 소개하고, 주요 과제 중 하나인 전문 인재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의 성과를 알리고 검토하는 데 목적이 있다. 대국민 서비스 차원에서 특수외국어 배워보기 , 특수외국어 관련 언어강좌 , 언어캠프 ,1) 문화체험활동과 연계한 교육 등 비교과 학습은 상대적으로 알려져 있고 홍보되고 있지만, 전문 인재 양성을 위한 노력과 그 성과에 관한 이해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특수외국어는 국가 발전에 있어 전략적으로 필요한 언어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한 외국어를 의미한다. 기존 외국어 교육 정책이 지나치게 영어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 세계 경제의 글로벌화와 신흥시장 진출 확대, 그리고 전략적 자원 외교의 필요성 등으로 인해 특수지역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인력의 필요성이 증가하게 됐다. 이에 따라 「특수외국어 교육 진흥에 관한 법률」이 2016년 2월 3일에 제정(법률 제13944호)되었고, 특수외국어 구사 능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여 국가 경쟁력 강화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2025년 5월 기준으로 3개의 특수외국어 전문교육기관, 즉 단국대학교, 부산외국어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가 사업을 수행 중이며, 전문인력을 양성함과 동시에 국민에게 현지 문화와 지역적 특성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어학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본문은 다음의 세 가지 내용을 중심으로 구성하였다. 첫째, 특수외국어 교육 진흥 사업의 기본 계획을 살펴본다. 둘째, 기본계획 가운데 전문 인재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한다. 3개 전문교육기관 중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단국대학교 특수외국어사업단의 프로그램을 상세히 소개한다. 뿐만 아니라 대학교 재학 동안 본 사업의 지원을 받은 전공생과의 인터뷰 내용을 성장 스토리 로 정리하여 특수외국어 전공생에게 이 사업이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해 본다. 끝으로, 특수외국어 교육 진흥 사업의 향후 과제를 짚어보고 보다 나은 성과를 위해 필요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특수외국어 교육 진흥 사업의 기본계획 특수외국어란 국가 발전을 위하여 전략적으로 필요한 외국어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한 53개 언어를 의미한다. 2025년 기준, 중부권, 남부권, 수도권에 해당하는 3개 전문교육기관인 단국대학교, 부산외국어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가나다 순)가 아래 표에 제시된 언어들을 지원하고 있으며, 이들 기관은 3년을 주기로 시행계획에 따른 추진 실적과 성과에 대한 평가를 받고 있다. 표 1 특수외국어 전문교육기관별 지원 언어 특수외국어 교육 진흥 5개년 기본계획은 1차(2017년~2021년)와 2차(2022년~2026년) 시기로 구분된다. 1차 기본계획은 특수외국어 교육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초기 단계로, 기반 조성과 전문 인재 양성에 중점을 두었다. 이를 통해 특수외국어 전공 학생들이 안정적으로 학업을 지속하고, 졸업 후 취업까지 연계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인프라 구축에 중점을 두었다. 2차 기본계획에서는 1차 계획의 성과를 심화 발전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특히 한류 확산, 국제 교류 활성화, 다문화 가정의 증가 등 사회적 변화에 대응하여 관련 분야의 인재를 양성하고, 특수외국어 분야의 전문성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었다. 이 과정에서 2차 계획은 1차와는 차별화된 목표 설정과 함께, 분야별 특화 전략을 담고 있으며, 특히 대국민 서비스 확대가 주요 과제로 강조되었다. 주요 추진 과제는 다음과 같다. 1차 계획에서는 ▲학부 교육 내실화, ▲표준 교육과정 개발, ▲인력 양성 및 활용 확대, ▲저변확대와 인프라 구축에 중점을 두었다. 2차 계획에서는 ▲맞춤형 전문 인재 양성, ▲다양한 계층에 대한 언어 서비스 확대, ▲교육 기반 고도화 및 운영 내실화, ▲사업 추진의 적절성을 중심으로 평가 지표가 수정 보완되었다. 요약하면, 1차 계획은 학부 교육의 내실화를 기반으로 표준 교육과정 개발, 단계별 전공 교재 및 사전 편찬, 특수외국어 전공 신설, 학 석사 연계과정 도입 등을 통해 교육 인프라 구축에 중점을 두고 실적을 창출하는 데 집중했다. 반면, 2차 계획은 1차 시기에 개발된 교재와 확충된 인프라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성과 창출과 대국민 서비스 확대 등의 질적 성장에 전략의 무게를 두고 있다. 그림 1 특수외국어 교육 진흥 기본계획자료: 국립국제교육원 특수외국어교육 진흥 5개년 기본계획을 바탕으로 필자 작성 협업이 필요한 특수외국어 교육 진흥 사업 현재 특수외국어 교육 진흥 사업은 전문교육기관 간 경쟁 구조 속에서 진행되는 경향이 강하다. 3개의 전문교육기관의 전문성을 보다 드러내며 특화하는 사업 프로그램 운영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중복 프로그램 제공을 비롯한 사업 파편화의 문제를 유발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국고 지원을 받는 특수외국어 교육이라는 공공성을 지닌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전문교육기관 차원에서 운영되는 프로그램으로 인식되기 쉽다. 이러한 점은 다음의 자료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아래 그림 3 은 빅카인즈(BIG KINDS)에서 특수외국어 를 키워드로 검색하여 시각화한 자료다. 연도별로 특수외국어 관련 뉴스기사 수를 보면, 2018년 사업 초기와 2024년의 빈도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1단계 사업이 종료된 2021년에 78건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다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림 2 특수외국어 키워드 노출 빈도자료: 빅카인즈(BIG KINDS) 시각화 자료를 바탕으로 필자 작성 언론에 노출된 키워드 빈도 분석 결과를 살펴보면, 2018년 이후 등장하는 특수외국어 관련 보도량은 정체 상태에 있으며, 국립국제교육원 같은 거버넌스 주체의 존재감은 점차 감소하고 있다. 또한 2018년과 2024년의 키워드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은 차이가 나타난다. 2018년의 경우, 국립국제교육원, 아세안문화원, 부산외대, 고등학교 등 구체적인 기관명이나 프로그램이 주요 키워드로 등장하고, 베트남어, 아랍어, 폴란드어, 태국어, 포르투갈어 등 언어명도 함께 확인된다. 반면에 2024년의 경우 국립국제교육원은 키워드에서 사라지고, 부산외대, 단국대, 베트남어, 힌디어, 폴란드어, 인도네시아어, 태국어, 브라질소사이어티 등 개별 언어와 일부 기관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정리하면, 특수외국어 교육 진흥 사업 등 공공성의 목적을 지닌 사업 성과나 홍보보다는 전문교육기관의 명칭과 프로그램, 그리고 개별 언어 중심의 사업적 특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2024년 기준 언론 키워드가 언어명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것은, 사업이 교육기관 간 전략적 협업보다는 개별 언어, 개별 성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기관 간 협업 체계 강화, 특수외국어를 중심으로 한 공동 브랜드화, 통합 홍보 전략이 필요하다. 세 전문교육기관이 공공성의 목적을 가진 교육 사업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협업을 통한 공동 콘텐츠 개발이나 교차 연계 프로그램을 확대한다면 특수외국어 교육 진흥법에 따른 사업의 비전과 목적에 기반한 성과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전문 인재 양성 을 위한 특수외국어 전공 재학생 지원 프로그램2) 단국대학교는 특수외국어 교육 진흥 기본계획에 따라 사업단을 구성하여, 중부권 거점 특수외국어 전문교육기관으로서의 위상을 제고하고 있다. 사업단은 융합적이고 창의적인 특수외국어 전공 교육과정의 혁신과 교육 역량 강화를 통해, 미래 사회 수요에 부응하는 전문 인재를 양성하고 배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또한, 첨단 스마트 교육시스템 구축과 온라인 교육 서비스의 고도화 및 내실화를 통해 다양한 강좌 및 언어별 활동을 체계적으로 운영, 보급, 확산시키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2025년 현재, 사업단은 3가지 전략 과제, 즉 맞춤형 전문 인재 양성, 다양한 계층에 대한 언어 서비스 확대, 교육기반 고도화 및 운영 내실화를 중심으로 다음의 10개 세부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사업은 ① 초 중등 특수외국어 수업 체험활동 지원, ② 재학생 특수외국어 교육성과, ③ K-MOOC 강좌 운영 및 수료자 수, ④ 특수외국어 평생교육 콘텐츠 개발 및 운영, ⑤ 장학금 지원 규모, ⑥ 교육과정 내실화, ⑦ 산업 분야 지역전문가 양성, ⑧ 다문화 가족을 위한 특수외국어 서비스 지원, ⑨ 공공기관 연계 서비스 지원 실적, ⑩ 어학 능력 평가 체계화 노력의 적정성으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② 재학생 특수외국어 교육성과 는 전공생들이 국가 산업에 기여할 수 있는 전문 인재로 성장하도록 지원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단국대학교 특수외국어사업단은 재학생의 특수외국어에 관한 학습 동기를 부여하고, 구사 및 활용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아래 표 2 에 제시한 다양한 비교과 프로그램을 개설 및 운영하고 있다. 표 2 전문 인재 양성을 위한 세부 프로그램 ▶ 국내외 연수 프로그램 - 국내연수는 하계 동계 방학 중에 운영되며, 전공생들의 수요에 따라 발음 교정 클리닉, 말하기듣기 클리닉, 문법 클리닉 등의 강좌를 제공한다.3) - 국외연수는 성적이 우수하고 교과 및 비교과 프로그램에 활발하게 참여한 전공생을 선발하여, 특수외국어 사용 국가의 대학에 파견하고, 현지인들과의 교류 및 생동감 있는 학습을 통해 학습 의욕을 고취하고 전공역량을 강화한다. ▶ 프로젝트 - 번역 프로젝트는 대학 부설 연구소 및 동아리 활동과 연계하여 진행되며, 전공생들에게 실질적인 번역 경험을 제공하고, 특수외국어 전문 번역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 - 캡스톤디자인 프로젝트는 교과에서 학습한 전공생들의 지식을 바탕으로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과 실무 적용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지원한다. ▶ 경시대회 - UCC경시대회는 학생들의 학업 역량을 점검하는 것은 물론이고 국내외연수, 동아리활동 등의 경험을 영상으로 제작하고 그 결과물을 YouTube 등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확산시켜 특수외국어사업단을 널리 홍보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 비교과활동 - 동아리는 전공의 특성에 맞춘 학술, 문화 중심의 활동을 통해 전공생들의 역량 강화와 소속감 형성에 기여한다. - 튜터링 클럽은 원어민 교환학생이나 대학원생부터 1학년 전공생까지 참여하는 학습 공동체로, 튜터링 패밀리 형태로 확대 운영되고 있다. - 탄뎀(TANDEM) 학습은 현지 대학의 한국어 학습자와 단국대 전공생 간 온라인 언어 교환 프로그램으로, 해외 연수 없이도 실질적인 회화 능력을 향상시키고 외국 학생들과의 교류를 가능하게 한다. - 버디(BUDDY) 프로그램은 국내 대학에 재학 중인 외국인 유학생과 전공생이 짝을 이루어 언어 및 문화 교류를 진행하는 활동으로, 특수외국어 지역 문화에 대한 이해와 회화 능력 향상에 기여한다. 이상과 같은 다양한 세부 프로그램이 효과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단국대학교 특수외국어사업단은 아래 그림 2 의 단계적 성장나무 모델에 따라 학년별 학습 수준과 실천 역량을 기준으로 참여를 권장하고 있다. 그림 3 단계적 성장나무 모델: 학년/실천역량 1학년은 씨앗: 기초탐색 을 위한 과정으로, 전공에 대한 안정적인 진입과 기초탐색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말하기 듣기 클리닉 등과 같은 국내연수 프로그램, 전공 내 학술, 문화 동아리를 통한 자연스러운 회화 및 해당 국가의 전통과 가치관 학습, 영화, 노래, 전통행사 체험을 통한 학습 동기 부여, 다문화 감수성, 세계 시민 의식, 타문화 이해력 향상 그리고 튜터링 학습을 통한 말하기와 쓰기에서의 즉각적인 피드백, 튜터의 학습 일정 관리 등을 통한 계획적 학습 및 지속적인 학습 등은 전공에 대한 소속감과 선후배 및 동기 간 친밀감을 형성하는 데 기여 한다. 2학년은 줄기와 잎: 심화경험 의 과정으로, 국외연수, 탄뎀, 버디 등 심화된 현장 경험을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들이 추가된다. 국외연수를 통해 현지 대학에서 최소 4주 이상의 체류기간 동안 언어를 학습하고 현지인과의 직접적인 소통 및 교류를 통해 문화를 체득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경험을 통한 학습에 대한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탄뎀 학습의 경우 현지에서 알게 된 대학생들과 한국에 귀국한 후에도 언어 교류를 지속하며, 실생활에서 쓰이는 자연스러운 표현과 회화 감각을 익힐 수 있다. 교재에서 배우기 힘든 속어, 관용어, 문화적 맥락도 함께 자연스럽게 익혀 비공식적인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학습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버디 프로그램의 경우 국내의 외국인 유학생 혹은 교환학생과 짝을 이루어 단순한 언어교환을 넘어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유학, 취업 등 실용적 정보 공유의 장으로 기능한다. 3학년은 풍성한 가지: 실전 실행 의 과정으로, 번역 프로젝트, 캡스톤디자인, 경시대회 등의 활동을 통해 암기 등의 언어 지식 습득에서 벗어나, 언어의 실제 활용 능력과 종합적 사고력을 기르는 데 초점을 두는 단계이다. 번역 프로젝트는 언어의 정확성과 문맥 이해 능력을 심화시키며, 문화적 차이와 용어 선택, 표현 뉘앙스 등을 고려한 전문 번역 역량을 키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출판, 영상, 마케팅, 국제 업무 등 다양한 분야로의 진출 가능성을 넓혀 취업이나 경력 개발에 도움을 제공한다. 캡스톤디자인 프로젝트는 전공 언어와 IT, 디자인, 마케팅, 문화콘텐츠 등 타 분야를 융합하여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을 배양한다. 실제 사회 문제를 언어적으로 접근하여, 실무형 포트폴리오 구축이 가능하며 기업, 기관과 협력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된다. UCC 경시대회는 언어 표현력, 스토리텔링, 발표력, 전달력 등을 강화하며 영상 제작 역량을 포함한 디지털리터러시(Digital Literacy)까지 함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4학년은 대학 재학 기간을 기준으로 열매와 꽃: 전문 역량 의 과정으로 언어 학습이 단순한 스펙 을 넘어서 실질적인 진로 역량을 확보하는 단계에 해당한다. 번역 프로젝트와 UCC경시대회 등의 경험을 통해 직무 경쟁력을 확보하고, 글로벌 진출 가능성을 제고하며, 국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강화하는 등 실질적인 진로 역량과 직결된다. 특수외국어 능력은 졸업 후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과 차별성을 확보하게 하며, 글로벌 인재로서 경쟁력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에 해당한다. 씨앗이 꽃이 되기까지: 특수외국어 전공생의 성장 이야기4) 대학 입학 당시, A학생은 베트남 이라는 나라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시절, 진로를 고민하던 이 학생에게 외국어 전공은 단지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그 자체였다. 대학에 입학할 당시 그는 베트남어를 전혀 알지 못했고, 신짜오 (Xin ch o, 안녕하세요)도, 깜언 (cảm ơn, 고마워)도 생소했다. 다양한 언어를 검색하던 중, 베트남어 라는 낯선 이름이 눈에 띄었다고 한다.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게 경제 성장을 이룩하고 있는 나라, 한국에 서는 아직 베트남어 전공자가 많지 않다는 점,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무한한 가능성이 자극이 되었다고 기억했다. 단순한 호기심이었지만, 이 선택은 인생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씨앗에서 줄기와 잎으로, 성장의 발판이 된 특수외국어 교육 진흥 사업의 경험들 A가 성장하는 데 있어 단국대학교 특수외국어사업단(이하 특외단) 의 역할은 빼놓을 수 없다. 그는 특외단이 주관하는 거의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학습의 폭을 넓혀갔다. 튜터링, 언어교환, 특강 등 다양한 프로그램은 단순한 언어 학습을 넘어, 베트남의 문화와 정서를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특히 2학년 여름방학 때 특외단의 지원으로 한 달간 베트남 하노이에서 어학연수를 경험한 것이 큰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책 속에 있던 단어들이 길거리 간판과 시장의 대화 속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고, 언어는 더 이상 추상적 지식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 그 자체로 받아들여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문화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언급했다. 이후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이어진 그의 여정은 베트남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도록 만들었다.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길이었지만, 그는 점차 이 언어를 왜 배우는가 에 대한 분명한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베트남어는 그에게 하나의 도구를 넘어, 세상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창이 되었다. 풍성한 가지, 슬럼프와 도전의 시간 이후 찾아온 배움의 즐거움 이러한 경험을 통한 작은 다짐은 곧 습관으로 이어졌다. 어학연수와 비교과 활동을 거듭하며 그는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 적어도 수업은 제대로 들어야 하지 않겠느냐 라고 다짐했고, 수업에 집중하기 위해 일부러 앞자리에 앉았고, 궁금한 점이 생기면 교수에게 꼭 질문하게 되었다고 한다. 베트남어가 문법적으로 단순하다는 특징을 고려해 단어 암기에 집중했고, 한-베 사전보다는 베-베 사전을 활용해 어휘의 뉘앙스를 더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는 언어는 습관 이라는 철학을 실천해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든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슬럼프가 찾아오기도 했고, 학업에 대한 회의감도 있었다. 그러나 같은 전공 출신이자 인생 멘토 가 되어준 교수들로부터 멘토링을 받으며 방향을 다시 잡아나갔다. 신설학과 1기생이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선배 없이도 스터디, 학술동아리, 자격증 준비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갔다. 베트남 하노이대학교에서 외국인을 위한 베트남어 능력시험을 본 경험도 큰 자부심이 되었다. 특히, 3학년 무렵, 그는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바로 대학원 진학이다. 이전에는 상상해본 적 없던 길이었지만, 베트남어에 점점 더 매료되고 배움의 즐거움 을 느끼며 그는 자연스럽게 더 깊이 공부하고자 마음을 갖게 되었다. 열매와 꽃, 베트남어 전공자에서 통번역 전공 대학원생으로 대학원 진학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지원 자체도 부담이었고, 마음의 갈등도 컸다. 결국 베트남어를 더 깊이 배우고자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언어는 계단식으로 실력이 오른다는 말을 직접 체험하며, 그는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지금 성적이 좋지 않더라도, 스스로 선택한 전공이라면 한 번쯤은 열과 성을 다해보시길 추천해요. 정말 노력하면, 그 노력은 배신하지 않더라고요. 공부든 활동이든,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 하다 보면 분명히 빛날 순간이 올 거예요. 외국어를 전공한다는 것은 단지 한 언어를 배우는 것을 넘어, 또 다른 문화, 사람, 세상을 이해하는 일이다. 외국어를 하나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은, 더 많은 사람과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베트남어 하나만으로도 약 1억 명과 소통할 수 있고, 더 넓은 세상의 지식과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창이 열렸다고 느낀다. 그는 믿는다. 하루에 단어 하나라도 외우는 것, 베트남 뉴스를 읽어보는 것, 친구들과 베트남어로 인사하는 것 그런 작은 축적 이 결국 미래의 자신을 만들어 간다고. 결론 및 시사점 특수외국어는 단순한 언어 습득을 넘어,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한 전략 자산으로 기능한다. 영어 중심의 기존 외국어 교육의 한계를 넘어, 신흥시장 진출, 자원 외교, 다문화 사회 대응 등 복합적인 전략적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문인력 양성이 국가적 차원에서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필요에 따라 2016년 「특수외국어 교육 진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한 5개년 기본계획이 수립, 추진되고 있다. 1차 및 2차 기본계획을 통해 인프라 구축 중심의 초기 단계에서 실질적인 성과 중심의 운영 체계로 전환되며, 교육의 양적 확대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상과 같은 변화 속에서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다. 첫째, 단계별 학습 지원 시스템을 통한 전공생의 체계적인 성장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단국대학교 특수외국어사업단의 단계별 성장나무 모델 은 학년별 학습 목표와 지원 프로그램을 명확히 제시하여 학습 동기를 부여하고, 장기적인 학습 설계가 가능하게 하고 있다. 둘째, 비교과 중심의 역량 강화 프로그램이 실제 진로로 이어지고 있다. 어학연수, 튜터링, 번역 UCC 프로젝트 등 학습자 중심의 비교과 활동은 단순한 언어 습득을 넘어서 실질적인 진로 설계와 진학 취업에 기여하고 있다. 단국대학교 베트남학 전공생 A는 어학연수, 교환학생, 번역 프로젝트 등을 거쳐 한-베 통번역 대학원에 진학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끝으로, 정성적, 정량적 성과를 동시에 고려한 프로그램 설계가 중요하다. 전공생의 성장 과정에서 나타난 정성적 성과는 수료자 수, 장학금 규모 등의 정량적 지표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렵다. 특수외국어 교육 진흥 사업은 단순한 외국어 교육을 넘어, 국가 전략과 연계된 고부가가치 인재 양성 체계로 자리 잡아야 한다. 본 사례에서 살펴보았듯이, 체계적이고 실천 중심의 프로그램은 전공생의 학습 동기와 진로 설정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수외국어 교육 진흥 사업이 시작된 지 8년이 됐지만, 1차 기본계획에 해당하는 시기(2018-2021년)가 인프라 확충 시기였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본격적인 사업 수행 기간은 2022년부터, 즉 고작 3-4년에 불과하다. 특수외국어 분야의 전문 인재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학부를 넘어 석 박사 과정을 포함한 장기적인 육성이 필요하다. 향후 과제는 특수외국어 교육 진흥 사업의 고도화 를 통해 사회 전반의 인식을 제고하고, 지속 가능한 인재 양성 기반을 확립하는 데 있다. 3차 기본계획에서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한 전략 자산으로 특수외국어가 중심이 되는 장기적인 로드맵이 포함되길 기대해 본다.* 각주1) 대표적으로 전북대와 부산외대는 2019년 여름부터 동남아언어캠프 를 개최하여 현재까지 전국적인 규모로 운 영하고 있다. 상세한 내용은 김다혜, 김현경, 전제성의 동남아언어캠프 3년을 돌아보며 새로운 도전을 계획한다. (2022, 전동연 이슈페이퍼 20, https://jiseas.jbnu.ac.kr/CrossEditor/binary/files/000008/JISEAS_ Issuepaper_Vol20_final_1.pdf) 참조.2) 본 절에서는 전문 인재 양성에 관한 보다 구체적이고 심도 있는 설명을 위해, 필자가 참여 중인 단국대학교 특수외국어사업단의 재학생 지원 프로그램을 사례로 제시한다. 타 전문교육기관인 부산외국어대학교와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시 우수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나, 자료 접근의 제약으로 인해 해당 프로그램을 상세히 다루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3) 국내연수 프로그램은 전문 인재 양성 및 대국민서비스의 일환으로 단국대학교에 소속된 전공 재학생뿐만 아니라, 타대학의 몽골어, 베트남어, 아랍어, 포르투갈어 브라질어 전공자 혹은 관심 있는 학생들도 신청하여 수강할 수 있다.4) 2021년에 신설된 단국대학교 베트남학전공은 2022년부터 본 사업에 참여하였으며, 2025년 2월 말 기준 졸업생 두 명을 배출했다. 한 명은 대학원에 진학, 다른 한 명은 사기업에 취업했다. 아직 인재 양성의 사례는 많지 않지만, 2학년부터 특수외국어 교육 진흥 사업의 직접적인 수혜를 받은 졸업생의 대학원 진학 사례를 중심으로 전문 인재 양성으로의 성장 과정을 조명하고자 한다. [34] 한국 동남아학계 후속세대 양성의 요람: 한국동남아연구소 연구회원 제도의 역사와 성과 | 부경환 작성자 동남아연구소 조회수 715 첨부파일 1 등록일 2025.06.04 초록 한국의 동남아시아 연구는 1990년대부터 본격화되었다. 대학 교육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동남아학계가 꾸준히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일찍부터 후속세대 육성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힘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동남아연구소의 연구회원 제도는 핵심 기반이 되었다. 대학원생은 연구회원 세미나를 통해 자신의 연구지역과 학문분과를 넘어서 동남아시아 지역연구의 폭을 넓혔으며, 단기현지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경험과 시야를 확장했다. 그리고 다양한 연구소 학술행사와 프로그램에 동등하게 참여함으로써 선배 연구자와 유대를 강화하고 학계의 기풍을 익혔다. 다양한 재정적ㆍ학문적 지원 속에서 성장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한 연구회원은 정회원의 지위에서 또 다른 후배 연구자를 이끌었다. 이와 같은 적극적인 초대학적ㆍ학제적 학문 후속세대 양성은 국내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우며, 학계 성장과 발전의 선순환구조 구축이라는 측면에서 가히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할 만하다.이슈페이퍼 제34호 바로보기 1989년 한국은 당시 개발도상국으로는 최초로 아세안(ASEAN)과 부분대화상대국 관계를 수립했으며, 2년 뒤인 1991년 완전대화상대국 관계를 수립했다. 이후 한국과 동남아시아의 관계는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며, 이제 양측은 경제, 외교, 안보, 사회, 문화 등 많은 부분에서 밀접하고 중요한 교류와 협력 대상이 되었다. 한국에서의 동남아시아 연구 역시 1990년대부터 본격화되었다(박승우 2009). 1980년대 말부터 동남아시아 지역을 사례 삼아 박사학위논문을 작성한 전문 연구자가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이들이 주축이 되어 1990년 동남아정치연구회, 1991년 한국동남아학회가 차례로 설립되었다. 동남아정치연구회는 1992년 동남아지역연구회로 확대되었으며, 이는 다시 2003년 한국동남아연구소 설립으로 이어졌다. 2020년 하나의 법인으로 통합되기 전까지 연성연대(soft solidarity) 조직인 한국동남아학회와 경성연대(hard solidarity) 조직인 한국동남아연구소는 한국의 동남아시아 연구 발전의 가장 중요한 두 축이 되었다(전제성 2006, 2014).1) 이 시기 동안 동남아시아에 대한 학문적 수요와 사회적 수요는 증가했지만, 이를 받쳐줄 대학의 동남아시아 관련 교육은 희소하고 제한적이었다(전제성 외 2008, 2021; 하채균 2018; Park 2008). 대학 교육이 원활한 공급망으로서 기능을 다하지 못함에도 한국의 동남아학계는 꾸준히 성장하고 발전했는데, 이는 학계가 초기부터 신진 연구자 육성에 적극적으로 힘을 기울인 덕분이었다. 특히 한국동남아연구소는 전신인 동남아지역연구회 시기부터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회원 제도를 마련하여 학문 후속세대2) 유입과 양성에 힘써왔으며, 이는 학계의 지속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기반이 되었다. 이 글은 한국동남아연구소의 빛나는 유산 가운데 하나인 연구회원 제도를 되짚어본다. 그동안 국내 동남아학계의 역사와 발전 과정, 교육 현황을 논하면서 부분적으로 연구회원에 대한 지원을 다루거나(전제성 2006: 120, 2014: 382; 전제성 외 2008: 277-279), 특정 시기의 연구회원을 대상으로 현황 분석을 시도한 바는 있으나(이창규 외 2008), 연구회원 활동 전반에 대한 정리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연구회원에 관한 문자화ㆍ기록화된 사료 역시 집적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이 글은 대학원생이라는 신분이 지닌 태생적 한시성과 이에 따른 구성원의 잦은 교체라는 구조적 불연속성으로 인하여 여기저기 흩어진 각자의 기록과 기억 속 연구회원의 흔적을 찾고, 그 편린들을 연결하고 접합하는 작업의 출발점으로서 작성되었다. 필자가 연구회원 활동을 주로 하던 시기는 2008년부터 2010년대 초까지로 연구회원 전체 역사(1993년~2025년 현재)의 중간 시점이다. 당시의 경험을 기반으로 하되 직접 경험하지 못한 시기와 불완전한 기억으로 인한 틈새는 옛 한국동남아연구소 웹사이트 갈무리, 활동 당시 주고받은 이메일, 여러 연구회원 선후배의 또 다른 기억과 자료로 보완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부분이 공백으로 남겨져있고, 이 글에서 기술된 내용 역시 교차 검증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는 점을 양지하기 바란다. 연구회원 제도의 시작 연구회원 제도가 시작된 것은 동남아지역연구회(이하 연구회 ) 시기인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3) 연구회 내에서는 일찍부터 학문 후속세대 육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이며, 그 필요성을 피력한 총무 신윤환 교수의 주도로 연구회원 제도가 실시되었다. 당시에는 대학 내 동남아시아 관련 수업이 지금보다 더 빈약했으며, 한국외대와 부산외대에서는 어문학 위주의 강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동남아시아 역사 및 사회과학 분야의 공부를 함께할 수 있는 자리는 사실상 연구회원 모임이 유일하다시피 했다. 따라서 자율적이되 집중력 높은 세미나가 진행될 수 있었고, 연구회는 이들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지원했다.4) 덕분에 출범 당시 10여 명(전제성 2006: 120) 수준이던 연구회원 수는 10년 뒤 한국동남아연구소(이하 연구소 ) 설립 시에는 25명5) 규모로 2.5배나 증가했다. 비록 정회원과 구분하기 위해 연구 회원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지만, 이들은 총회 의결권을 제외한 월례발표회, 공동현지조사 등의 학술활동에 대해서는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참여했다(전제성 2006: 120). 초창기의 이러한 결정은 이후 정회원과 연구회원 간의 관계가 수직적 스승-제자 보다 수평적 선배-후배 에 가까운 풍토로 자리하는 데 밑바탕이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연구회원 성원 및 운영 (1) 연구회원 가입과 성원 연구회원은 동남아시아 지역을 연구하거나 이에 관심이 있는 석ㆍ박사과정 대학원생으로 구성되었다. 개정 연구회원 세칙 제1조 가항은 연구회원을 동남아시아 관련 공부를 하는 국내외 석ㆍ박사 과정 학생 중 연구회원에 가입하여 연구회원 세칙을 준수하는 자 로 정의하고 있다( 붙임 1 참고). 다만 석사과정 졸업 후 박사과정 진학을 준비하거나 취업 후에도, 즉 학생 신분이 아닌 상태에서도 연구회원 활동을 하는 경우가 여럿 있었기에 실질적으로 연구회원의 성원 범위는 재학 여부와 관계없이 석사과정 입학부터 박사과정 졸업까지 로 넓게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연구회원의 조건으로 국적이나 소속 대학의 소재 등을 따지지 않았으나 실질적으로는 한국인으로만 성원이 구성되었다. 한때 학계의 확장을 위해 동남아시아 출신 유학생까지 포괄하는 것으로 연구회원의 범위를 적극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었으며, 몇몇 유학생이 예비연구회원 명단에 오른 바 있으나 유의미한 교류와 활동으로 이어지진 못하였다. 전공 역시 별도의 제한이 없었지만, 정회원과 마찬가지로 인문ㆍ사회계열의 대학원생만 참여했다. 신규 연구회원은 주로 지도교수(정회원)나 동료 대학원생(연구회원)의 소개를 통해 가입했다. 연구회 시절 연구회원은 정회원 1인의 추천으로 가입되었으며,6) 연구소 설립 이후 제정된 연구회원 세칙 제1조는 정회원 1인 이상의 추천은 물론 연구회원 대표와 면담을 통해 활동에 적합하다고 인정받은 자로서 연구회원 모임에 참석하여 가입의사를 명시적으로 표시 하는 것을 가입 조건이자 방법으로 규정했다( 붙임 2 참고). 2008년 필자가 가입할 당시에는 연구회원 세미나에 3회 이상 참석이 필요하다는 조건이 부과되었는데, 이는 짐작건대 그동안의 연구회원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가입 신청자의 의지와 성실성을 판별하고 무분별한 일회성 가입을 방지하기 위해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연구회원이 대학원생 집단이며, 특히 실질적으로 활동하며 중심을 이루는 이들이 대부분 석사 과정생이라는 점은 필연적으로 구성원의 잦은 변화를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석사 졸업 후에 박사 진학이든 취업이든 동남아시아를 더 이상 전공이나 업으로 삼지 않는 일도 있고, 현지조사, 유학, 해외 취업이나 주재원 파견 등으로 국내 활동이 불가능한 사례도 있었다. 이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누적되다 보니 명부상 인원과 실제 활동 인원 사이에는 늘 간극이 있었다. 연구회원 지위 가운데 비활동회원 이라는 범주가 있었음에도 정회원의 요구나 연구회원 내부의 의견으로 인해 명단 정리 에 대한 필요성이 주기적으로 제기되었고, 이를 슬기롭게 풀어나가는 일이 운영상의 과제였다. (2) 연구회원 대표 연구회원 대표는 연구회원 모임을 이끌어가는 동시에 정회원과 연구회원의 가교 역할을 했다. 이들은 연구회원 모임 일정을 조율하고 참여를 독려하며, 신규회원을 유치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아울러 연구소의 공지사항이나 정회원이 공유하는 학술행사, 지원사업, 장학금, 취업 등의 안내 메일을 전달했으며, 반대로 연구회원의 의견이나 요구사항을 연구소 측에 개진하고 협의했다. 연구회원 대표는 별도의 명칭 없이 말 그대로 연구회원 대표 로 명명되었으며, 이는 최초의 연구회원 세칙에도 반영되어 있다(제5조). 다만 초기부터 2000년대 중후반까지는 농담조로 대장 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이후에는 (연구)회장 이나 반장 이라는 호칭이 주로 사용되었다. 연구회원 대표는 대개 석사과정생이 맡았다. 최초의 세칙은 대표의 조건을 규정하지 않았으나, 개정 세칙은 석사 2학기 과정생을 우선으로 하되 석사 2학기 과정생이 없는 경우, 석사 3ㆍ4학기 과정생이 후보가 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제5조 다항 및 바항). 또한 임기는 1년으로 정하고 있는데, 사정에 따라 1년의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거나, 혹은 1년 넘게 임기가 지속된 경우도 종종 발견된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 1인 대표 체제가 변화를 맞게 된다. 우선 2011년 5월부터 11월까지 세미나를 운영할 회원을 따로 지정하여 일시적ㆍ임시적으로 2인 체제가 가동되었다. 이듬해인 2012년 6월 회장과 부회장(총무 겸임) 체제로 개편하는 내용이 결정되었으며, 이후 2인 체제가 계속 유지되었다. 다만 이러한 변경 사항이 실제 규정에 반영된 것은 3년 뒤인 2015년의 일이며, 회장과 부회장을 회장단 으로 명명했다(개정 세칙 제5조 가항). 이상을 미루어 보면 연구회원 모임의 운영은 문서화된 규정에 엄격하게 의지하기보다 당시의 상황에 따라 구성원 간 합의로 유연하게 진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모(母)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연구회 및 연구소가 비교적 엄격하고 강한 내부 규율을 지녔던 것(전제성 2006: 118-119)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대학원생이라는 신분의 특성이 반영된 측면도 있겠지만, 그만큼 연구회원 운영의 자율성을 보장받고 개방성을 견지했다고도 볼 수 있다. 연구회원 세미나 연구회원 모임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심적인 활동은 독회, 세미나, 스터디 등으로 불렸던 공부 모임이다(이하 세미나 로 통칭). 세미나의 방식과 내용은 자율적으로 정해졌으며, 시기와 필요에 따라 계속 변화했다. 세미나 활동은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유형화할 수 있다. ① 공통의 단행본이나 논문을 읽고 토론 대학원생 세미나의 가장 대표적이고 전형적인 형태이다. 분량을 나누어 발제를 맡는 경우가 많았다. ② 각자 원하는 주제와 읽을거리를 선별ㆍ제시하고 발제 전공, 연구지역, 연구주제 및 관심사가 제각기 다르기에 선택한 방식으로 풀이할 수 있다. ③ 연구계획 또는 진행 중인 연구 발표 주로 현지조사 전후나 논문 작성 과정에서 조언을 받기 위해 진행되었다. 완성된 학위논문을 발표하거나 학술대회 발표문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기도 했다. ④ 동남아시아 관련 영화 감상 및 논의 영화가 다루는 주제ㆍ소재에 관한 논문을 함께 읽기도 했다. (예) 액트 오브 킬링 과 시체 구덩이와 조명 (서지원 2012) ⑤ 정회원 초청 특정 주제나 연구에 대해 논하거나, 정회원의 학업, 연구, 현지조사 경험담을 청해 들었다. 특히 마지막 유형은 정회원과 연구회원 간 격의 없는 관계와 끈끈한 유대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정회원은 연구회원의 요청이 있다면 주저 없이 도움을 주었다. 이러한 전통은 연구회 시기부터 확립되었는데, 이를테면 Driven by Growth는 배긍찬 교수, The Moral Economy of the Peasant는 오명석 교수, Spirits of Resistance and Capitalist Discipline은 홍석준 교수 등과 같이 해당 분야에 해박한 정회원이 세미나를 함께하며 연구회원의 이해를 도왔다.7) 2010년대에 이르면 『농업의 내향적 정교화』(김형준 역), 『극장국가 느가라』(김용진 역) 등 저명한 동남아시아 연구서가 정회원이나 선배 연구회원에 의해 번역되면서 역자와 함께 세미나를 진행하는 기회도 마련되었다. 물론 이 외에도 많은 정회원이 기꺼이 시간과 노력을 내어주었다. 상기에 열거한 유형 외에도 자유롭게 연구 동향을 소개하거나 최신 이슈에 대한 토론이 이어지기도 했으며, 인도네시아어와 같이 현지 언어를 공부하는 소모임이 운영되기도 했다. 단행본 집필이나 번역이라는 목표를 두고 세미나를 진행하는 것에 대한 아이디어가 오고 간 적도 있으나 실행되진 않았다. 2004년 연구소 사무실이 마련되기 이전까지는 세미나 공간을 구하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오명석 교수의 배려로 서울대 지역종합연구소(현 국제대학원)가 주된 장소 중 하나로 사용됐으며, 정회원과 함께 세미나를 진행하는 경우 정회원의 연구실에서 모이기도 했다.8) 이후에는 연구소가 기본적인 세미나 공간이 되었지만, 월례발표회 등의 학술행사 전후로 세미나를 진행할 경우 행사장이나 주변 카페를 활용하기도 했다. 연구소는 연구회원 세미나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월 지원금을 지급하거나 복사ㆍ제본비, 식사비, 다과비 등의 금전적 지원을 했으며, 지방에서 참석하는 연구회원에게 교통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여기에 더하여 연구회원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정회원의 특별기부나 서적 기증도 간간이 이루어졌다. 2018년 2월에는 연구회원모임 학술대회 가 개최되었다. 2개 세션에서 총 5명이 발표를 했으며, 우수 발표 3편에 대해서는 연구소 이사장 명의의 상장이 수여되었다. 연구회원모임 학술대회는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1회 개최에 그치고 말았지만, 연구회원의 학술 발표 참여는 한국동남아학회(이하 학회 )가 주최하는 행사를 통해 계속되었다.9) 그림 1 2018 연구회원모임 학술대회 포스터 단기현지연수 프로그램 연구소는 한-아세안 협력기금(ASEAN-ROK Cooperation Fund)을 활용한 국제 학술교류의 일환으로 필리핀에 소재한 SEASREP 재단(South East Asian Studies Regional Exchange Program Foundation)과 함께 한국과 동남아시아의 대학원생 및 신진학자를 대상으로 동남아시아연구 심화세미나(Advanced Seminar on Southeast Asian Studies)를 시행했다. 이 프로그램은 2007년부터 2015년까지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를 순회하며 진행되었다. 그리고 2016년에는 규모를 확대하여 말라야대학교(University of Malaya) 아시아-유럽연구소(Asia-Europe Institute) 및 아세안지역주의연구소(Centre for ASEAN Regionalism)와 함께 한-아세안 신진학자 워크숍(ASEAN-Korea Young Scholars Workshop)을 개최했다( 표 1 참고). 연구소는 심사를 통해 선발된 참가자에게 일체의 비용을 지원했다. 표 1 단기현지연수 프로그램 개요10) 심화세미나는 5일 내외, 신진학자 워크숍은 10일 동안 진행되었으며, 역사, 정치, 경제, 종교, 사회, 문화, 예술 등 분야별 저명한 학자들의 강의와 문화답사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를 통해 해당 국가에 대한 집중적인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은 물론, 한국 및 국외 참여자 간의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학술적 활동 지평을 확장해 주었다. 또한 개최 국가에서 유학이나 현지조사를 진행하고 있던 연구회원 선배가 있는 경우 반가운 회동이 성사되기도 했다. 프로그램의 한국 측 참가자는 연인원 100여 명에 달한다. 그런데 모든 참가자가 연구회원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회를 거듭할수록 그동안 연구회원으로 포섭되지 않았던 대학원생이 이를 계기로 연구회원에 가입하고 연구소 구성원으로 참여하는 사례가 나타났다. 즉, 단기현지연수 프로그램은 연구소 공동체의 시각에서 볼 때 학술적ㆍ교육적 효과에 더하여 내적 결속력 강화와 외적 규모 확장을 동시에 꾀할 수 있는 기회였던 셈이다. 연구회원 활동 종료와 재개 연구소 연구회원 활동은 2019년을 끝으로 종료 되었다. 어떠한 명시적, 선언적 종료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2018년 하반기부터 각자의 사정으로 활동이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2019년에도 1회 모임에 그치고 말았다. 이전에도 연구회원 활동이 멈추었다가 재개되거나 명맥만 겨우 유지한 채로 부침을 겪었던 시기도 있었지만, 이번 경우에는 2020년 연구소가 학회 산하로 통합되면서 연구소 연구회원의 역사도 자연스럽게 같이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그러나 2021년 학회 교육위원회는 연구회원 제도의 부활을 알렸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아직 가시지 않았던 11월 5일, 1차 모임(예비모임)이 대면(서강대)과 비대면(줌 회의)으로 개최되었고, 이 자리에는 20여 명이 참석해 동남아시아 지역연구 대학원생 모임에 대한 갈망이 여전히 크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재출발한 연구회원 모임의 초대 대표는 전경진 회원이 맡았으며, 2023년 10월부터 연구소 연구회원의 마지막 대표였던 이정우 회원이 다시 대표를 이어받았다. 이 시점부터 학회 회원의 공식 직위인 준회원 으로 명명되기 시작했지만,13) 옛 명칭인 연구회원과 대학원생 모임 등의 표현도 여전히 혼용되고 있다. 그림 2 2021 연구회원 세미나 1차 모임 포스터연구회원 제도의 재개는 연구소를 통합한 학회가 후속세대 양성의 유산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1차 모임 당시 김형준 학회장이 직접 참석했으며, 연구회원 출신 정회원들도 선배의 입장으로 함께하여 따뜻한 조언을 건넸다. 진행을 맡았던 정정훈 교육위원장 역시 연구회원 출신이다. 이로써 연구회원 제도는 동남아지역연구회 시대(1993~2003)와 한국동남아연구소 시대(2003~2019)를 거쳐 한국동남아학회 시대(2021~)를 맞게 되었다. 맺는말 저한테는 동남아연구소의 연구회원 모임이 있었습니다. 어떤 수업보다도 이 연구회원 모임이 저한테는 큰 스승이었고, 이로 인해서 저는 지금까지 동남아를 하고 있습니다. 14)연구회원이 처음 결성되던 1990년대는 국내에서 어문학을 제외하고 동남아시아 관련 수업이 극히 제한되어 있었기에 연구회원 세미나가 동남아 역사 및 사회과학 관련 연구 자료와 동향을 접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였다. 또한 동남아시아 수업이나 연구를 찾는 것과 더불어 동남아시아를 연구하려는 대학원생 동료를 찾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 였던 시절이다. 따라서 연구회원 모임은 단순히 지식과 정보를 얻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의 정체성과 소속감을 재확인하고 학업과 연구 동력을 제공하는 심리적 안식처가 되었다.대학원생은 연구회원 세미나를 통해 자신의 연구지역과 학문분과를 넘어서 동남아시아 지역연구의 폭을 넓혔으며, 월례발표회, 공동현지조사 등 다양한 연구소 학술행사와 프로그램에 참여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선배 연구자와의 거리를 좁히고 유대를 강화했다. 또한 연구소 간사, 조교로 활동하거나 각종 행사의 스태프를 맡아 학술적ㆍ행정적으로 연구소를 지원했다. 다양한 재정적ㆍ학문적 지원 속에서 성장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한 연구회원은 정회원의 지위에서 또 다른 후배 연구자를 이끌었다. 이와 같은 적극적인 초대학적ㆍ학제적 학문 후속세대 양성은 국내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우며, 학계 성장과 발전의 선순환구조 구축이라는 측면에서 가히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할 만하다.물론 학계의 교수와 박사 구성원이 대학원생 제자와 후배를 이끌어주는 모습은 전혀 낯선 것이 아니다. 다만 한국 동남아학계의 특징이라면 대학원생을 가르침과 지도가 필요한 대상 이라기보다 학문과 연구를 함께할 동료 로 여기고 평등한 관계를 지향했다는 점, 소속 대학과 전공, 연구지역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제자나 후배처럼 아꼈던 점, 적극적인 프로그램 개발과 재원 마련에 나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했다는 점 등에서 상대적으로 더 두드러졌다고 할 수 있다. 연구회원 제도는 수평지향적 개방성과 연대성에 기반한 이러한 학계 문화가 생성되고 재생산되는 데 핵심 기제로 작동했다. 초기 연구회원 활동을 하였던 이들은 이제 중견 학자가 되어 한국 동남아학계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2023년에 출범한 학회 제17대 회장단과 임원은 매우 상징적이다. 30년이 넘는 학회 역사 최초로 연구회원 출신인 전제성 교수가 회장이 되었으며, 부회장과 임원 다수도 연구회원으로 활동했던 이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후 세대 연구회원 출신의 신진 박사들이 지금도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있다. 연구회원 제도라는 학문 후속세대 양성의 노력이 여러 세대에 걸쳐 성공적으로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과거와 달리 동남아시아를 연구하는 대학원생 수가 증가하고 관련 연구와 정보 접근성이 크게 향상되었다. 대학 교육은 여전히 부족하지만, 거점이 될 만한 대학 연구소가 여럿 생겨나 활발히 활동하는 것도 고무적이다. 하지만 대학별 원심력이 강해지면서 초대학적 연구회원 모임의 구심력은 그만큼 약화되었다. 전술한 것처럼 학회에서 야심차게 연구회원 모임의 중흥을 도모했지만, 초기의 많은 관심에 비해 현재는 동력이 다소 저하된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시대가 달라진 만큼 다른 방식으로 연구회원의 유산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방안을 고민할 시점이 된 것이다. 학계 내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동남아시아 연구자로서의 상호 유대감과 동지 의식을 지키면서도 달라진 대학과 학문 환경에 맞는 전략이 필요한 때이다.* 각주1) 이 글은 2024년 12월 20일 한국동남아학회 사단법인(한국동남아연구소) 20주년 기념 포럼: 초대학적 연구중심의 전성시대와 그 유산 에서 발표한 한국동남아연구소와 대학원생(연구회원): 초대학적ㆍ학제적 학문 후속 세대 양성 을 수정ㆍ보완한 것이다. 필자의 크고 작은 질문에 답변해 주신 연구회원 선후배 김용진, 김현경, 서보경, 서지원, 성인규, 이정우, 장준영, 전경진, 전제성, 조영묵, 채현정 선생님, 그리고 자료 확인에 도움을 주신 김희숙 선생님에게 감사드린다.2) 학계에서 제도적, 관용적으로 흔히 사용하는 학문 후속세대 라는 표현에 대해 여러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강내희 2019; 임종태 2015 등). 그러나 이 글에서는 통용성을 고려하여 이를 그대로 사용했다. 주요 비판 지점으로 제기되는 위계성과 차별성 문제가 연구회원에는 크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도 한몫했다.3) 기존 문헌에서 연구회원 제도의 시작 시기는 1993년(전제성 2006: 120)과 1994년(전제성 2014: 382, 2019: 10; 전제성 외 2008: 277-278)으로 달리 기술되고 있으나, 확인 결과 전자에 무게가 실리는 것으로 판단한다. 석사과정 중 초대 연구회원 대표를 지냈던 황선복의 석사학위논문 제출 시점이 1993년 7월이라는 점도 이와 같은 정황을 뒷받침한다.4) 전제성 서면 인터뷰 2024.12.12.5) https://www.kaseas.org/services-16) 전제성 서면 인터뷰 2024.12.12.7) 전제성 서면 인터뷰 2024.12.12.8) 전제성 서면 인터뷰 2024.12.12.9) 한국동남아학회 연례학술대회에서 대학원생 패널이 조직되는 등 연구회원의 학술대회 참여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2023년 연례학술대회부터는 대학원생 패널 발표 중 우수한 발표를 선정하여 시상하고 있으며, 2024년에는 대학원생과 박사학위 취득 5년 이내의 신진박사를 대상으로 신진학자 캠프 를 새롭게 개최하기 시작했다.10) 일자, 국가 및 호스트 기관의 정보는 아래에서 확인했다. - 2007~2014년: https://www.seasrepfoundation.org/archives/ - 2015년: https://prachatai.com/activity/2015/01/57591 - 2016년: https://umcms.um.edu.my/sites/aei/asean-korea-young-scholars-workshop-201611) 인원은 한국 측 참가자 수를 일컬으며, 김형종(2024)이 취합한 자료를 참고하되 일부 오류를 정정했다. 다만 이 수치는 기존 전제성(2019: 11)의 자료와 부분적으로 불일치하는 부분이 있어 향후 재확인이 필요하다.12) 2010년 심화세미나는 연구소에서 선발한 8명 외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6명이 추가로 참여했다. 필자를 포함하여 이 6명 가운데 5명이 동남아시아를 연구하여 석ㆍ박사 학위논문을 작성했으며, 연구회원으로 활동하거나 정회원이 되었다. 따라서 2010년 한국 측 참가인원 수는 연구소의 예산과 성과를 기준으로 보면 8명이지만, 연구회원 내지 대학원생을 기준으로 놓고 보자면 14명으로 간주할 수 있다.13) 준회원이라는 명명은 훨씬 이전부터 나타났다(전제성 2006; 전제성 외 2008). 하지만 이후에도 통상적으로는 여전히 연구회원으로 일컬어졌다.14) 이재현 이메일 2011.6.3.* 참고문헌 및 출처는 원문을 참고바랍니다. 처음 15 1 2 3 4 5 다음 페이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