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0.09.23
수정일
2023.01.11
작성자
동남아연구소
조회수
625

[8] 베트남의 국제노동기구 기본협약 비준 배경 및 함의 ㅣ 유민지·이창휘

[8] 베트남의 국제노동기구 기본협약 비준 배경 및 함의 ㅣ 유민지·이창휘 첨부 이미지


초록


우리나라는 1991년 UN에 가입함에 따라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ILO)의 일원이 되었다. 그러나 ILO의 회원국이라면 기본적으로 비준해야 할 의무사항인 기본협약(핵심협약) 4개 분야(결사의 자유, 강제노동 금지, 차별 금지, 아동노동 금지) 8개 기본협약 중에 2개 분야(결사의 자유, 강제노동 금지)의 4개 협약(87호, 98호, 29호 105호)을 우리나라는 비준하지 않은 상태이다. ILO 기본협약 비준을 두고 노·사·정 합의에 도달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의 외교 대상국 중 하나인 베트남은 공산당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총 8개 기본협약 중 7개 협약을 비준하였다. 가장 최근에는 2019년 7월 5일, 베트남 정부가 ILO 협약 제98호를 비준하였으며 올해 6월에는 제105호를 비준하였으며 사실상 공산당 국가에서 제98호와 105호의 비준은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이는 ‘비준과 입법 동시 진행’이라는 가장 이상적인 선례였다. ‘선(先)비준 후(後)입법’이냐 ‘선(先)입법 후(後)비준’이냐를 가지고 논쟁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다시금 바라보게 한다.

전동연 이슈페이퍼 8호는 베트남의 최근 ILO 기본협약 비준을 이끌어낸 주역인 ILO 베트남 대표 이창휘 박사와의 인터뷰로 구성하였다. 본 이슈페이퍼는 사람중심 신남방정책은 노동이 존중되는 사회에서 꽃 필 수 있다고 보고 최근 베트남의 ILO 기본협약 제98호와 105호의 비준 과정과 함의를 ILO 베트남 대표 이창휘 박사와의 두 차례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전달하고자 한다.


이슈페이퍼 8호 내려받기





인터뷰를 추진하며


유민지: 2019년은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ILO)가 창립 한지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ILO는 지난해 6월 100주년 기념총회를 열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100주년 기념총회 공식 초청장을 발송했으며 대통령의 참석이 기대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기념총회 기간 동안 북유럽3개국 순방 일정이 겹치면서 대통령의 참석은 안타깝게도 무산되었다. 노동계는 이를 두고 ILO 기본협약(핵심협약)을 비준하지 못한 노동법 후진국의 대통령이 참석하기에 쉽지 않은 자리였을 것이라 말하며 정부의 지지부진한 기본협약 비준을 비판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ILO 회원국이라면 기본적으로 비준해야 할 의무사항인 기본협약 4개 분야(결사의 자유, 강제노동 금지, 차별 금지, 아동노동 금지) 8개 기본협약 중에 2개 분야(결사의 자유, 강제노동 금지)의 4개 협약(87호, 98호, 29호, 105호)을 아직 비준하지 않은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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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중심경제정책을 표방하는 문재인 정부는 ILO 기본협약 비준을 노동 분야 대선 공약과 국정 과제로 내세웠다(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20년 9월 10일). 이는 우리나라가 아직 비준하지 않은 결사의 자유 기본협약(87호, 98호)과 강제노동금지 기본협약(29호와 105호)을 모두 비준하고, 이에 따른 국내법 개정을 통해 국가 위상에 걸 맞는 노동기본권 보장을 이루겠다는 것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9월에는 방한한 가이 라이더(Guy Ryder) ILO 사무총장을 만나 기본협약의 비준 의지를 밝히기도 하였다. 문재인 정부는 2019년 ILO 핵심협약 3개(29호, 87호, 98호)의 비준안과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조합법, 공무원노조법, 교원노조법 등 노조 3법과 병역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등 비준을 위한 절차를 밟아왔다. 그러나 20대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되었고 올해 7월에 동일 사안이 국무회의를 거쳐 다시 국회에 제출된 상태이다. 이와 같은 정부의 비준을 위한 준비는 정부의 노력을 가늠하게 하나 2019년 ILO 100주년 총회라는 상징적인 행사 이전에 비준절차를 마치지 못하였다는 점은 그 추진 의지에 의문을 갖게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비준되지 않았던 ILO 기본협약의 비준에 대하여 소극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정부는 ILO 기본협약이 한국의 국내법과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는 이유로 국내법 개정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는 ‘사회적 합의’ 도출이 비준보다 앞서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ILO와 노동계는 ‘선(先)비준 후(後)입법’을 주장하며 정부의 의지를 우선 천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후자의 경우, ILO 기본협약의 비준은 입법보다는 정치(政治)의 영역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며 이는 노동협약의 비준을 노동기본권이라는 인간존엄 가치의 영역으로 해석하고 있는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ILO 기본협약의 비준은 정치의 영역이며 정부의 의지로 관철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를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 찾을 수 있다. 인도네시아, 캄보디아와 필리핀은 8개 기본협약을 모두 비준하였으며, 아세안 10개국 중 미얀마, 라오스, 브루나이를 제외하고, 모든 국가들이 최소 6개 이상의 협약에 비준을 한 상태이다. 가장 최근에는 2019년 7월 5일, 베트남 정부가 ILO 협약 제98호를 비준하였으며 올해 6월에는 제105호를 비준하였다. 이로써 베트남은 제87호 결사의 자유와 단결권의 보장 협약을 제외한 7개의 기본협약 비준을 완료하였다. 사실상 공산당 국가에서 제98호와 105호의 비준은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이는 ‘비준과 입법 동시 진행’이라는 가장 이상적인 선례로 정부 의지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낮은 임금으로 비교우위를 점하고 중국 다음으로 세계의 공장이 되어야만 했던 동남아시아에서 비준된 ILO 기본협약의 숫자가 우리나라보다 많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노동기본권 글로벌 스탠다드에서 상당히 뒤쳐져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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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전동연 이슈페이퍼는 사람중심 신남방정책은 노동이 존중되는 사회에서 꽃 필 수 있다고 보고 최근 베트남의 ILO 기본협약 제98호와 제105호의 비준 과정과 함의를 ILO 베트남 대표 이창휘 박사와의 두 차례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전달하고자 한다. 제98호 협약 비준 이후인 작년 11월에 인터뷰가 수행되었으나 105호까지 비준되면서 올해 9월에 보강 인터뷰를 진행해야 했다. 이창휘 박사는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ILO에 노사관계 전문가로 참여하기 시작하여 제네바, 태국, 베트남, 중국 등지에서 근무하였고, 중국과 베트남 노사관계에 관한 학술 논문들도 발표한 바 있다(Lee, Chang-Hee 2006; Simon Clarke, Chang-Hee Lee, and Do Quynh Chi 2007). 5년 전인 2015년 9월에 ILO 베트남 사무소 대표로 부임하였으며, 베트남 사랑이 깊은 외국인으로 현지에 잘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최근 두 개의 ILO 기본협약에 관한 베트남의 비준을 이끌어낸 주역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했다. 바쁘신 가운데 귀한 시간을 할애해주신 이창휘 대표께 감사드린다.


이창휘 ILO 베트남 대표 인터뷰


유민지(이하 ‘민’): 베트남에서 ILO 제98호 기본협약이 비준되었는데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창휘(이하 ‘휘’): 베트남 국회가 2019년 6월 14일 ILO 핵심협약 중 하나인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에 관한 98호 협약 비준을 압도적으로 인준함으로써, ILO 핵심협약 8개 중 6개 협약을 비준하게 되었습니다. 비준과 관련된 모든 과정에 몇 년간 참여한 당사자이지만, 98호 협약 비준이 현실로 되는 날이 오게 될 줄은 몰랐어요. 비준을 주도한 베트남 정부 및 국회 담당자들도 자신들이 해낸 일에 너무 감격했고요.

  결사의 자유에 관한 87호 협약 보다는 쉽지만, 98호 협약도 공산당 체제를 갖고 있는 베트남에게 비준 및 적용이 쉬운 협약은 결코 아닙니다. 중국 등 모든 구사회주의 국가들의 노동조합 내부를 살펴보면 기업 차원 노조의 지도부가 대부분 인사담당부서 간부 등 경영진에 의해 채워지고 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98호 협약이 중점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사용자에 의한 부당노동행위의 금지 및 노동조합과 사용자의 상호 독립적인 관계입니다.

  일단 98호 협약을 비준함으로써 노동조합과 사용자의 상호독립성 및 부당노동행위 금지에 관한 정책의 커다란 방향은 잡혔다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경영진이 기업별 노조 지도부의 일부를 이루는 관행은 조직적으로 문화적으로 너무나도 오랜 기간, 광범위하고, 깊게 뿌리를 내린 관행이라 이걸 실제로 개선해가는 작업은 앞으로도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민: 제98호 비준이 예상보다 빨리 이루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설명해주시겠습니까?


휘: 베트남 정부의 발전 전략의 핵심에 자유무역협정의 적극적 체결을 통한 ‘글로벌 통합’(global integratzion) 전략이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듯 합니다. 2019년에 1월에 발효된 CPTPP(Comprehensive Progressive Trans Pacific Partnership: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동반자 협정), 그리고 2019년 7월에 서명이 이루어졌고 2020년 8월 1일에 발효된 EU(유럽연합)와의 FTA(자유무역지대협정)에 주목해야할 듯 합니다. 두 FTA는 노동 및 환경권을 대폭 강화한 이른바 신세대 FTA이고, 두 FTA는 모두 ILO 핵심협약 비준(EU) 혹은 ILO 핵심협약에 따른 노동법 및 노사관계 개혁을 참가국들에게 의무지우고 있습니다. 국가발전 전략 차원에서 당과 정부가 ‘글로벌 통합’ 전략을 채택했고, 그 핵심에 최대 시장인 북미, 태평양, 유럽을 아우르는 FTA 가입이 놓인 이상, ILO 핵심협약 비준 및 적용은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된 것이지요.

  하지만 이러한 외부적 동력이 필요조건이긴 했지만, 외부적 요구만으로는 개혁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충분조건으로 내부적인 동력이 요구되는 것이고. 그 내부 동력은 베트남에 개혁개방을 시작한 이래 계속적으로 노동시장의 개혁을 주창해왔던 내부 개혁세력의 존재입니다. 소수파였지만, 글로벌 통합전략이 당/국가 차원에서 채택되자 이들 개혁적 소수파의 목소리가 힘을 얻게 된 것이지요.

  또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동일한 공산당 일당체제이지만, 중국과 베트남에서의 실제적인 정책 결정 과정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공산당이 top down(하향식) 방식으로 정부, 인민대표대회 및 모든 사회 조직을 일사분란하게 통제하는 중국과 비교하면, 베트남은 정부, 국회, 사회단체가 비교적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정치적 사회적 공간이 열려있는 편입니다. 이러한 공간이 있기 때문에, 외부적인 환경이 변화하거나, 어떤 기회가 오면, 소수파인 개혁세력도 자기들의 아젠다를 관철시킬 수 있는 것이지요. 여기에는 집단지도체제가 관철되고 있는 베트남 공산당 내부의 독특한 의사결정과정도 한 몫을 하고 있고요. 즉 서로 다른 견해를 지닌 세력들이 조용하게 서로 경합하고, 설득하는 그런 과정이 커튼으로 가려진 실제 의사결정과정에 존재하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 불가능해 보이는 ILO 핵심협약 비준도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추가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국부인 호치밍의 독특한 사상과 위치입니다. 호치밍은 동시대의 공산주의 지도자인 마오, 스탈린, 김일성 등과는 매우 다른 사상의 궤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호치밍은 1910년대 런던 체류 시절에 일찌감치 노동운동과 연결이 되었고, 공산주의로 전환한 1920년 이후에도 자유(liberty)와 평등이라는 보편적인 인권 사상을 끝까지 견지했던 사람이고, 1919년 파리평화회의에서 베트남 인민에게 결사의 자유를 허용할 것을 요구하는 편지를 쓰기도 했던 사람입니다. 이런 호치밍의 폭넓은 사상적 배경은 현 세대의 지도자들이 방향 전환을 모색할 때 비교적 넓게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측면이 있지요. 저는 ILO 베트남 대표로 부임한 이후, 아주 일관되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결사의 자유는 외부에서 들어온 사상이 아니고 바로 호치밍의 일관된 사상이었다고 당과 정부의 지도자들에게 이야기해왔고, 그런 접근이 상당한 호소력이 있었던 듯합니다.


민: 노사정 합의를 이끌어 내는데 주도적인 역할은 누가 담당했는지요? 정부와 노동조합의 경우 단일 조직인 반면, 사측은 회원사와 기업들의 대표성을 가지는 다양한 조직으로서 여러 목소리가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글로벌 가치사슬/글로벌 생산 네트워크에서 다양한 층위의 기업들이 있고 다양한 목소리가 있었을 텐데, 이를테면 삼성 상무가 베트남 국회에서 결사의 자유가 사회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했다는 보도(한겨레신문 2019.06.26)도 있었습니다만, 합의가 원만하게 이루어진 배경은 무엇이었을까요?


휘: 일단은 당, 정부 및 국회의 핵심 정책 결정자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2000년대 초반 이후 노동법 및 노사관계 개혁을 구상해온 개혁파들이 소수파이긴 하지만 당, 정부 및 국회에 존재해 왔습니다. 특히 2005년 이후 법의 틀에서 벗어난 파업(wildcat strike) 건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이런 현상은 현존하는 노동조합 체계의 대표성 결여에 기인하는 것이고, 결사의 자유를 인정하는 방향의 노동법 개혁 및 노사관계 개혁이 없이는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이 노동사회정책을 다루는 핵심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기업들의 태도나 입장은 매우 다양하지요. 일단 미국 및 유럽 다국적 기업들은 대체로 ILO 핵심협약을 자신들이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정책에 반영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CPTPP 및 EU FTA의 수혜자들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개혁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하면서 자신들 밑에 있는 베트남 하청기업들에게도 그런 것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물론 ‘말’과 ‘실제 행동’ 사이에는 일정한 괴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요. 동아시아 다국적 기업들, 특히 한국과 중국계(타이완 포함) 기업들은, 뭐, 제가 말씀 안 드려도 짐작하실 수 있을테고요. 베트남의 모든 사용자들을 대표하는 베트남상공회의소(Vietnam Chamber of Commerce and Industry)는 개혁에 찬성하는 입장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연맹(Vietnam General Confederation of Labour)의 경우는 훨씬 미묘합니다. 일단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2014년 11월에 당시 노총 위원장이 TPP(환태평양동반자협정) 및 결사의 자유에 관한 기본적인 지지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 막판 TPP 협상을 물꼬를 열었다는 점입니다. 공산당 일당 국가이고 그 국가가 TPP를 추진하고 있지만, 만약 노총이 끝까지 반대할 경우에는 당시 TPP 협상팀은 아마 노동권 문제에 걸려 더 이상 협상을 진전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노총위원장이 공개지지를 표명하면서 물살이 빨라진 것이지요. 하지만 노총 내부를 들여다보면 훨씬 복잡합니다. 기본적으로 새로운 독립노조가 출현할 것이라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있지만, 어떻게 새로운 상황에 대처할 것인지 등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월급 1%에 해당하는 노동조합비 이외에 사용자에게 징수해왔던 월급 2%에 해당하는 노동조합지원비가 뜨거운 감자입니다. 사용자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어려워진 기업 사정을 들며 사용자가 지불하는 노동조합지원비를 폐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고, 또 한편에서는 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지원비를 새롭게 등장할 독립노조와 나누어야 한다는 논의도 있거든요.


민: 올해 6월 베트남은 제 105호 협약(강제 노동 폐지 조약)도 비준하였습니다. 이는 ‘군 대체복무’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ILO의 해석과 차이를 보이면서 가장 마지막 비준 협약이 될 것 같은데요. 베트남은 105호 비준 과정에서 어떠한 정치적 논점이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설명해주시겠습니까?


휘: 105호의 경우는 기술적으로는 또 다른 강제노동 핵심협약인 29호나 결사에 자유에 관한 87호 협약과 비교해서 매우 간단한 협약입니다. 그런데 정치적으로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105호의 핵심적인 요구사항은 노동운동 등과 관련되어 수감된 양심수에 대해서 감옥에서 노동을 강제로 부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강제노동을 부과할 수 있는 수감자 리스트에서 이들을 제외하면, 간단히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양심수의 존재를 인정해야하는 정치적인 어려움이 있지요. 그래서 비준 과정에서 노동부가 나서서, 공안부 및 법무부를 설득하여, 형법 및 그 시행령을 고치는 작업을 하는 힘든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저도 이것이 과연 가능할까 반신반의했는데, EU 베트남 자유무역협정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국가적 과제를 등에 업은 노동부의 설득으로 결국 비준이 되었지요. 2020년 6월 8일 아침 국회는 먼저 EU 베트남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비준 찬성투표를 한 뒤 곧 바로 ILO 105호 협약 비준 찬성투표를 했습니다. 이러한 순서는 EU측에 EU 베트남 자유무역협정의 준수사항을 바로 이행했다는 신호를 보이기 위해 기획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98호 및 105호 비준 과정을 보면서 가장 감탄했던 것은 베트남 정부의 뛰어난 외교능력이었습니다. 외교역량이 국가경쟁력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실감했습니다.


민: 이제 베트남은 제87호의 비준만 남겨두었습니다. 결사의 자유 협약의 비준은 공산당 체제에서 부담스러울 수 있을 것 같은데, 비준 전망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휘: 결사의 자유에 관한 87호 협약 비준안은 2023년에 제출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98호 협약이 노동조합과 사용자 사이의 상호 독립성에 관한 것이라면, 87호 협약은 노동조합이 국가/정부의 개입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치체제의 성격을 고려한다면 쉽지 않은 과제이지요. 노동시장에서의 결사의 자유와 공산당 체제가 과연 양립 가능한가라는 이론적 질문도 있을 수 있고요. 다만,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2019년 11월말에 채택된 개정 노동법이 이미 결사의 자유 원칙을 기업 차원에서 허용하기로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2021년 1월 1일에 법안이 발효되면 그때부터 기업차원 복수 노조가 가능해지는 것이지요. 87호 비준 여부는 이렇게 도입된 기업차원의 결사의 자유에 기반을 둔 새로운 노사관계 시스템이 순조롭게 작동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보입니다. 만약 새로운 시스템이 커다란 불안정화를 초래함이 없이 부드럽게 안착한다면, 2023년의 87호 협약 비준도 현실이 될지도 모르지요. 98호 협약 및 87호 협약은 노동부 차원에서 결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결국 정치국의 결단이 필요한 사안입니다. 앞으로 정부나 국회뿐만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많은 대화를 나누어야겠지요.


민: 마지막으로 베트남의 최근 ILO 기본협약 비준이 대한민국에게 주는 함의가 있다면 말씀주시겠습니까?


휘: 제가 한국 상황을 잘 모르기에 무어라 비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베트남이 98호 협약을 비준할 것이라는 것은 5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고, 결사의 자유에 대해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조차 놀라운 것이 베트남의 현실이었습니다, 몇 년 전까지는 말이지요. 그런데 이 상상과 꿈이 현실이 되었고 현실이 되어 가고 있어요. 그런 점에서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자기들의 이해관계를 조금 옆으로 치워놓고 자유로운 상상을 통해서 미래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꿈같은 이야기’로 답변을 대신해야할 듯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노동존중·사람중심 신남방정책을 위하여


유민지: 공산당 일당체제라는 정치제도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은 2019년과 2020년 각각 ILO 기본협약 98호와 105호를 차례대로 비준하는 성과를 이룩하였다. 아래로부터의 개혁의 목소리, 글로벌 통합 전략, 그리고 호치민의 자유와 평등사상은 베트남의 신속하고 원만한 비준을 이끌어낸 요인이었다고 이창휘 소장은 설명하고 있다. 물론 내부 진통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개개인의 단기적 이익보다 공동체가 꿈꾸는 미래에 대한 합의가 베트남의 저변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상상해본다. 그리고 그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은 정치의 영역이라는 사실을 다시 되새길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도 베트남과 크게 다르지 않다. 노동계의 요구를 차치하더라도 유럽연합이 FTA 규정 위반 여부를 두고 전문가 패널에 의견서를 제출하였다는 사실은 우리에게도 ILO 기본협약의 비준은 매우 다급한 현실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다만 언제부터인가 노동은 비용이고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믿음이 확고해지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노동의 의미가 퇴색되어 가고 있으니 사회적 합의라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1970년대 20퍼센트 중반이었던 노동조합 조직률은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이제는 10퍼센트를 겨우 웃돌고(1977년 25.4%, 2018년 11.8%, 국가지표체계), 노동형태의 다양화에 따라 노동자의 정치적 대표성도 미약해지고 있으니 정부의 리더십 없이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ILO 기본협약 비준을 (마치 ‘가치중립’이라 여겨지는) 법과 경제의 영역으로 치부하고, 사회적 합의를 ‘기다리고’, 유럽연합에 방어적 태도로 일관하는 정부의 모습이 베트남과 가장 크게 대비되는 지점이지 않을까. 베트남 사례를 통해 기본협약 비준은 온전히 정치 영역임을 그래서 정부의 리더십이 그 무엇보다 중요함을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정부가 추진하는 신남방정책의 사람(People), 평화(Peace), 번영(Prosperity)의 3P를 하나로 연결할 수 있는 키워드는 ‘노동’이다. 노동은 사람중심이라는 신남방정책이 아세안 노동 일상에 닿고 한국과 아세안의 연결성을 강화하여 성공에 이르게 할 핵심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국내의 노동문제와 아세안 국가들의 노동문제를 연결하고 노동권과 노동환경을 개선하는데 끊임없는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참고문헌

국가지표체계. 『노동조합조직률』 http://www.index.go.kr/unify/idx-info.do?idxCd=4220 (검색일: 2020.09.10.).

김완. 2019. “삼성 상무, 베트남 국회서 “결사의 자유, 사회혼란 부를 것.” 『한겨레신문』 6월 26일.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99446.html (검색일: 2020.08.10.)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20. “ILO 핵심협약.” 『정책위키: 한눈에 보는 정책』 http://www2.korea.kr/special/policyCurationView.do?newsId=148862514 (검색일: 2020.08.15.)

ILO. NORMLEX: Information System on International Labour Standards. https://www.ilo.org/dyn/normlex/en/f?p=NORMLEXPUB:1: (검색일: 2020.09.10)

ILO Viet Nam. 2015. “Interview: Welcome Aboard New Head of ILO Viet Nam!” Newsletter, ILO Country Office for Viet Nam . https://www.ilo.org/hanoi/Informationresources/Publicinformation/feature-articles/WCMS_407361/lang—en/index.htm (검색일: 2020.09.10.)

ILO Viet Nam. 2019. “ILO 100 Years – Journey for Social Justice: Shared Ideals with Ho Chi Minh.” Documentary. https://www.ilo.org/hanoi/Informationresources/Publicinformation/Videos/WCMS_716586/lang—en/index.htm (검색일: 2020.09.11.)

Lee, Chang-Hee. 2006. “Recent Industrial Relations Developments in China and Viet Nam: The Transformation of Industrial Relations in East Asian Transition Economies.” Journal of Industrial Relations 48(3).

Simon Clarke, Chang-Hee Lee, and Do Quynh Chi. 2007. “From Rights to Interests: The Challenge of Industrial Relations in Vietnam.” Journal of Industrial Relations 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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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연구소 2020-10-14 16:14: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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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캄보디아 노동중재 사례의 감소와 노동 정치적 함의 ㅣ 박진영
동남아연구소 2020-07-23 16:59:0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