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2.10.19
수정일
2023.01.02
작성자
동남아연구소
조회수
732

[22] 말레이시아 도심난민들의 건강권 현황과 과제 ㅣ 김정현

[22] 말레이시아 도심난민들의 건강권 현황과 과제 ㅣ 김정현 첨부 이미지


초록


국제난민법의 비당사국에서 난민의 건강권을 향상시키는 조건은 무엇일까? 위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본 이슈페이퍼는 말레이시아에서 불법체류자로서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 난민들의 건강할 권리가 어떻게 보장되고 있는지 분석한다. 2022년 7월 한 달간 말레이시아에서 진행된 현지조사를 기반으로, 본 이슈페이퍼는 말레이시아에서 난민들의 건강권 향상을 위한 국제기구나 시민단체들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난민주도지역사회조직의 도움 없이는 이들의 난민보호프로그램이 불완전하며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난민주도지역사회조직은 같은 언어, 종교, 민족 및 문화적 배경과 모국으로부터의 폭력과 피난이라는 공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난민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가기 위해 집단행동을 도모하는 중요한 정책 행위자이다. 이들은 특히, 국제기구 및 시민단체들과 협력하며 파트너십을 구축함으로써, 난민들의 건강권을 보장하는 프로그램들이 성공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중개자 및 정책 이행 촉진자,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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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도심난민들의 건강할 권리는 어떻게 보장되고 있을까?


  2022년 1월 말 기준으로 유엔난민기구(UNHCR) 말레이시아 지부에 등록된 난민과 비호신청자는 약 181,510명으로, 이 중 155,610명은 미얀마 출신이다(UNHCR-Asia Pacific 2022). 이 숫자는 대폭 축소된 수치로, 구금시설에 구류되어있거나 구금된 상태로 비호신청을 한 후 심사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제외한 것이다. 말레이시아는 1951년 난민협약과 1967년 난민의정서의 비당사국이며 난민보호제도의 부재로 인해 말레이시아에는 난민캠프가 없다. 따라서 말레이시아에 거주 중인 모든 난민들은 제3국으로 재정착 될 때까지 장기간 도심 지역사회에 수용중이다(Wake and Cheung 2016: 2). 문제는 말레이시아의 1957년 연방헌법과 1959-1963년 이민법이 자국에 체류 중인 비호신청자와 난민들을 불법체류자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말레이시아 지역뉴스나 정부문서 등에서는 UNHCR로부터 인정받은 난민이라 하더라도 이들을 공식적으로 PATI UNHCR(Pendatang Asing Tanpa Izin: 말레이시아어로 불법체류자를 의미)로 표현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의 난민보호를 위한 법제도 및 정치적 의지의 부재로 말레이시아에 거주중인 난민들은 불법체류자로서 위태로운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정부의 반난민정책의 부작용을 완화하는 기제로서 UNHCR 말레이시아 지부는 중요한 행위자로서의 소임을 다하고 있다(김정현 2022). 예를 들어, 말레이시아에서 비호신청자로 등록한 자의 경우, UNHCR은 해당 비호신청자의 지위를 증명하고 이들의 권리가 간략히 적힌 문서(asylum-seeker letter)를 발급한다. 인터뷰를 거쳐 난민으로 인정받은 경우에는 말레이시아에서 난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형태의 보호도구”로 알려진 UNHCR 카드를 발급한다. 각종 보고서에 따르면 UNHCR 비호신청문서 또는 신분증 카드를 가진 난민의 경우, 말레이시아에 한시적으로나마 합법적으로 거주할 권리를 부여 받아 구금 및 체포로부터 자유로우며, 정부가 운영하는 공공의료기관에서 외국인 의료비의 절반인 50%를 할인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UNHCR Malaysia 2022; Sullivan 2016: 8). 

  그러나 말레이시아에서 어떤 형태로든 UNHCR로부터 신분을 증명하는 도구를 취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이러한 신분증을 얻기까지 난민들은 무기한 체포의 위험과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지난 8월 9일 말레이시아 지역매체 Malaysia Gazette는 쿠알라룸푸르에서 남서쪽으로 한 시간 떨어진 카장(Kajang) 지역에서 벌어진 불법체류자 소통작전을 동영상으로 공개했다. 이른 새벽 군복을 입은 출입국 관리소 직원들은 망치로 문을 부수고 난민들의 거주지에 강제 진입하여, 이들의 출신국과 신분을 체크하고 갓난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체포했다. 이 과정에서 몇몇은 5층 높이의 건물에서 탈출을 시도하다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기도 했다. “우리는 미얀마에서도, 말레이시아에도, 안전하지 못해. 우리가 원하는 것은 오직 안전뿐인데!” 라며 난민들은 울부짖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2020년 말레이시아 이민청은 대규모 작전을 통해 가짜 UNHCR 신분증과 비호신청문서를 발급해주는 카르텔 조직을 검거했다고 밝혔는데(Anis 2020), 이 사건은 바로 말레이시아의 난민들이 처한 필사적인 상황과 이들을 그러한 상황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UNHCR카드의 중요성을 현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일화이다.  


  말레이시아에 처음 도착한 난민들은 코로나19가 발발하기 전까지 이 중요한 도구를 발급받기 위해 쿠알라룸푸르에 위치한 UNHCR사무소에 직접 방문하여 난민신청서를 현장 접수해야만 했다. 그런데 UNHCR 말레이시아 사무소는 옛날 왕궁이 있던 지역의 언덕 부분에 위치하고 있어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꽤 어려운 편이다. 택시를 타고 이동하더라도 도로들이 한참을 굽이 돌아가는 형세를 취하고 있어 교통비가 높게 나온다. 근처 역에서 걸어서 이동한다고 하더라도 무더운 날씨에 사람들이 발로 내놓은 산길을 포함하여 30분은 족히 넘게 걸어야한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과 높은 교통비는 주로 도시 외곽에 거주하는 난민들의 UNHCR 사무소 방문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19의 발발과 함께 2020년 3월부터 시작된 말레이시아 정부의 이동제한명령(movement control order)은 UNHCR로 하여금 새로운 난민신청접수뿐만 아니라 기한이 만료된 카드의 재발급도 전면 중지하게 만들었다. 현재는 난민신청이 전면 온라인으로 전환되었으나, 이 또한 컴퓨터나 인터넷이 익숙하지 않은 난민들에게는 하나의 장애물로 인식되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난민들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보호 수단인 UNHCR 신분증 취득이 이렇게 어렵다면, 신분증을 취득하기 전까지 불법체류자로서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 난민들의 권리는 어떻게 보장되고 있을까? 특히 피난길에서 많은 폭력과 위험에 노출되어 각종 질병으로부터 취약해진 난민의 건강권은 어떻게 보장되고 있는가? 위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본 이슈페이퍼는 말레이시아 난민들의 건강권을 사례로 국제난민법의 비당사국에서 난민의 권리를 향상시키는 조건에 대해 분석하고자 한다. 특히 난민의 권리향상을 위한 시민단체 및 초국가적 네트워크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 이주 거버넌스의 선행 문헌들에 기여하고자, 본 이슈페이퍼는 말레이시아정부 및 UNHCR, 국제 및 국내 시민단체, 난민주도지역사회조직과 같은 난민수용국 내 다양한 정책행위자들의 난민건강권 향상을 위한 활동과 전략을 분석하고, 난민주도지역사회조직이야말로 집단행동을 통해 난민들의 건강권 향상을 돕는 핵심적 사회적 자본이라고 주장한다. 본 연구는 2022년 7월 한 달간 말레이시아 현지조사 기간 동안 수행된 총 10건의 단체 방문 및 현장 관찰, 13건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작성되었다.


난민의 건강권 보장을 위한 말레이시아 정부와 UNHCR의 역할에 대한 고찰 


  말레이시아는 국제난민법의 비당사국으로서 국내 체류 중인 난민들을 불법이민자로 규정하고 있어 난민들의 의료권 및 교육권, 일할 권리 등을 인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인도적 차원에서 난민들이 제3국에 최종 정착하기 전까지 자국에 임시적으로 체류하도록 허용하고, 또 그 과정을 국제기구와 국제 및 국내 시민단체들이 지원하도록 허락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UNHCR말레이시아 지부는 난민들에게 일차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자국에서 무료 모바일 진료소를 운영하고 있는 시민단체를 지원하면서 공중보건프로그램(Public Health Program) 운영을 시작했다(저자 인터뷰 2022/08/04). 말레이시아에 체류 중인 난민들의 약 86퍼센트는 미얀마 출신으로, 이들은 말레이시아 정착 초기 정글과 같은 외딴 지역에 집단으로 모여 살며 농사를 지어 생계를 이어나갔다. 이들의 건강권을 위해 말레이시아에서 최초로 조직된 단체는 A Call To Serve(이하 ACTS)로, 이들은 외딴곳에 모여 살던 난민들에게 치료가 필요하다는 요청을 받으면 이들을 찾아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른바 모바일 클리닉을 UNHCR과 MSF(Médecins Sans Frontières, 국경없는의사회)의 도움을 받아 2003년부터 간헐적으로 운영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에 도착하는 난민들의 수가 갈수록 급증하고, 난민들이 수도인 쿠알라룸푸르를 중심으로 가까운 도심의 지역사회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찾아가는 서비스가 아니라 난민들이 필요하면 언제든 찾아가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상설 클리닉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에 UNHCR 말레이시아 지부의 제안으로 ACTS는 2008년 UNHCR과 미국정부의 지원을 받아 쿠알라룸푸르 중앙역이 위치한 KL Sentral에 랜드마크처럼 자리하고 있는 YMCA 바로 뒤편에 말레이시아 최초 상설 난민클리닉인 ACTS-Arrupe 진료소를 개설했다(저자 인터뷰 2022/07/25). 그리고 2011년에는 UNHCR이 지원하는 두 번째 상설 진료소가 Tzu-Chi(쯔치) 불교재단에 의해 쿠알라룸푸르에 개설되었다. 


  시민단체들이 운영하는 난민진료소 지원을 통해 난민들의 일차의료권을 보장하던 UNHCR의 정책 방향은 2019년 후반을 기점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2017년 카타르 정부가 난민을 돕기 위해 말레이시아 정부에 미화 500억을 기부하기로 결정하면서, UNHCR가 2020년을 기점으로 평소 지원해왔던 시민단체들의 무료 진료소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게 된 것이다. 카타르의 공공개발기관인 카타르 개발기금(Qatar Fund for Development, 이하 QFFD)은 Qatar Charity(카타르 자선단체)를 말레이시아 내 난민 지원기금의 주요 시행단체로 임명하고, 기부금의 운영과 말레이시아 내 파트너 기관을 선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그리고 Qatar Charity는 공개경쟁에 참가한 말레이시아의 시민단체 중에 세 곳을 선정하고 말레이시아 정부의 최종 승인을 받아, 이들과 함께 2019년 말레이시아 전역에 걸쳐 다섯 개의 상설 난민진료소를 설립했다(저자 인터뷰 2022/08/01). 본 프로젝트의 첫 번째 시행단체로 선정된 Mercy Malaysia는 말레이시아 중부인 쿠알라룸푸르 서쪽지역 암팡(Ampang)과 남쪽지역 카장(Kajang)에 두 개의 QFFD진료소를 설립하여 운영 중이며, 두 번째 시행단체인 IMARET(Islamic Medical Association of Malaysia- Response & Relief Team)은 쿠알라룸푸르 북쪽지역 셀라양(Selayang)과 말레이시아 남부인 조호르 주의 코타 팅기(Kota Tinggi)에 두 개의 QFFD진료소를 운영 중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시행단체인 MRA(Malaysian Relief Agency)는 말레이시아 북부의 태국의 국경지역 근처인 Sg Petani에 한 개의 QFFD진료소를 운영 중에 있다. 이들은 모두 보통 주치의 한명으로 운영되는 일반 진료소로, QFFD기금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의료장비 및 시설이 매우 양호한 편이다(UNHCR Malaysia 2022).


  현재 말레이시아 전역에서 난민들에게 일차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민단체 진료소들은 이들 다섯 곳의 QFFD진료소를 포함하여 총 15개지만, 이들은 모두 UNHCR의 지원 없이 자체기금으로 운영 중이다. 유엔회원국들의 자발적인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UNHCR은 코로나19 전염병이 발발한 이래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어오다, 2020년부터 난민을 위한 주요 일차의료서비스 제공을 모두 카타르 정부의 지원 아래 있는 QFFD 진료소들에게 대부분 맡기게 되었다. 난민들의 질병 유형을 분석했을 때, 대부분은 비전염성 질환으로, 이는 이미 말레이시아 내에 시민단체들이 운영하는 진료소가 충분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 현재 UNHCR 말레이시아 지부의 판단이다(저자 인터뷰 2022/08/04). 그러나 이차의료서비스가 요구되는 만성질환 및 중증질환 환자의 경우에는 전문의료진과 치료시설의 부재로 시민단체가 운영하는 진료소에서 치료를 받을 수가 없고, 결국 말레이시아 내 정부가 운영하는 공공병원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따라서 현재 UNHCR 말레이시아 지부의 공중보건프로그램은 이러한 난민환자들을 대상으로 이차의료서비스에 대한 의료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의 의료정책을 위한 로비 및 자문활동에 더 집중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저자 인터뷰 2022/08/04).  


  말레이시아 정부는 UNHCR에 의해 난민으로 인정받아 UNHCR카드를 소지하고 있거나 또는 난민심사를 기다리고 있다는 신분 보증용 비호신청자 편지를 소지한 자의 경우, 이들이 공공병원에서 이차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외국인 요금의 50퍼센트를 할인해 주는 정책을 실행 중이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정부는 2016년 공공병원에서의 외국인 요금을 내국인 대비 26에서 50배 높게 인상하면서, 사실상 난민들이 공공병원에 접근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취약계층인 난민에게 과도한 재정적 부담을 부과하는 의료정책은 특히 말레이시아처럼 난민들이 합법적으로 일하며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부정되는 환경에서, 안정적인 소득을 담보할 수 없는 난민들에게 건강상의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난민의 공공의료시설에 대한 접근성을 낮추는 요인으로 재정문제가 가장 큰 요인으로 손꼽히게 되자, UNHCR 말레이시아 지부는 난민을 위한 보험제도 운영에 대한 가능성을 살피기 시작했다. 당시 이들에 눈에 띈 것은 이란의 아프가니스탄 난민지원정책이었는데, 이란은 난민들이 필수 이차, 삼차 공공의료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국가의 건강보험제도에 등록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부여해오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란의 국가건강보험제도는 난민들이 이란 국민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수술, 투석, 방사선, 각종 검사, 및 외래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UNHCR-Asia Pacific 2021). 이란의 시스템을 말레이시아에서 적용 가능한지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UNHCR 말레이시아 지부는 2012년 자문을 받았고, 마침내 2014년 난민의료보험(REMEDI: Refugee Medical Insurance) 제도를 실행하게 되었다(저자 인터뷰 2022/08/04).


  UNHCR 말레이시아 지부가 개념을 차용한 이란의 건강보험제도는 공보험이었지만, 이란과 달리 국제난민법을 비준하지 않은 말레이시아에서는 사보험만이 난민의료보험을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였다. 이에 UNHCR 말레이시아는 난민들에게 의료보험을 제공하는데 관심이 있는 사기업들에게 주요 기준을 제시하고 공개경쟁입찰을 붙였다. 당시 UNHCR이 보험사를 선택할 때 고려했던 첫 번째 기준은 난민들이 보험회사에 지급해야 하는 보험 프리미엄이 저렴하고 합리적이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저자 인터뷰 2022/08/04). 그렇다면, 이 ‘합리적’이라는 기준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말레이시아 정부는 2011년 이래 “외국인 노동자 입원 및 수술 계획(Foreign Worker Hospitalisation and Surgical Scheme)”이라는 외국인 노동자 필수 의료보험제도를 약 17개의 보험사를 통해 운영해오고 있으며, 본 제도 하에 외국인 노동자들은 연간 약 150링겟의 프리미엄을 보험사에 납부하고, 최대10,000링겟의 의료서비스를 보장받게 된다(FMM 2022). UNHCR 말레이시아가 당시 고려했던 난민들을 위한 합리적인 의료보험의 프리미엄 가격은 이와 비슷했던 것으로 사료된다. 왜냐하면 2014년 말레이시아의 난민의료보험 첫 번째 파트너로 선정됐던 Tune이라는 보험사가 난민의료보험을 위해 제공했던 플랜이 당시 외국인 노동자에게 제공되었던 플랜과 동일했기 때문이다.     


  UNHCR 말레이시아가 보험사를 선택할 때 중요하게 고려했던 두 번째 기준은 바로 현금이 필요 없는 서비스(cashless service)였다. UNHCR 말레이시아 지부는 이 부분을 핵심 요소로 손꼽았는데, 그 이유는 난민들이 병원에서 현금을 지불하기 위해 직면하는 어려움을 전면 예방하기 위함이었다. 난민들이 의료보험카드를 가지고 병원에 가면, 병원에서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보험비 청구는 추후에 병원이 보험사와 함께 하는 것이 UNHCR이 이상적으로 고려했던 모델이었다(저자 인터뷰 2022/08/04). 이 모델의 중요성은 난민들이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권리와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UNHCR 말레이시아 지부의 전 공중보건프로그램 책임자 수실라 박사는 안정된 수입의 원천을 가지지 못한 말레이시아 내 난민들의 의료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현금이 필요 없는 의료보험제도는 필수적이며, 이의 해결을 위해 앞으로 난민들에게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의료보험이 직장과 연계되어 난민들이 직접 세금에 기여하는 방식을 통해 정부가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에 접근하는 방식의 포괄적인 난민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저자 인터뷰 2022/08/04). 


이렇게 잘 준비되었던 말레이시아의 난민의료보험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그 첫번째 라운드를 보험사 Tune과 함께 한 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보험사 RHB와 함께 두 번째 라운드를 진행했다. 문제는 2016년, 정부가 공공병원에서의 외국인 요금을 내국인 대비 26에서 50배 높게 인상한 정책이, 평소 외국인 요금의 50퍼센트를 지불해 오던 난민들의 의료비를 사실상 대폭 인상하는 결과를 야기하게 되면서 붉어졌다. RHB 보험사는 난민들의 높은 의료비를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해 보험 프리미엄을 2017년에 한번 업데이트 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비스 유지가 어려웠고, 결국 2018년 UNHCR의 난민의료보험제도는 폐지의 수순을 밟게 되었다. 

난민보호를 위한 법률 및 제도적 메카니즘이 결여되어 있는 동남아지역 내에서 UNHCR 말레이시아 지부가 2014년 최초 도입했던 난민의료보험 제도는 난민들이 스스로 의료보험 구입을 통해 자신의 건강권 향상에 직접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매우 선진적인 프로그램이었으나, 결국 정부의 지지를 받지 못해 최종 실패하게 되었다. 그리고 말레이시아 의료보험의 실패사례 분석은 어떠한 조건 아래서 난민들이 포괄적이며 지속가능한 의료보험제도에 편입되어 보호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첫째, 무엇보다도 지속가능한 난민의료보험제도를 위해 정부는 모든 난민들의 의료보험가입을 의무화해야 한다. 난민들의 의료보험가입이 의무가 아닐 경우, 보험사는 이윤을 남기기 위한 마지노선이 되는 최소 보험 가입자 수 확보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이러한 예측 불가능성은 결국 보험가입자 1인당 보험 프리미엄의 가격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보험이 비싸지면, 사람들이 더욱 보험에 가입하지 않게 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또한 보험가입이 의무가 아니라면 오직 질병에 취학한 연령층이나 이미 아픈 환자들이 의료보험에 가입할 확률이 증가하기 때문에, 보험 가입자 수는 적은 반면 의료비 보상을 청구하는 사람들의 수는 많아지게 된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2016년 말레이시아 정부의 외국인 진료비 인상은 난민들의 1건당 의료비 청구가격을 천문학적으로 높이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험사들은 더 이상 이윤을 남길 수 없는 난민의료보험제공을 포기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UNHCR 말레이시아의 전 공중보건프로그램 책임자 수실라 박사는 미래에 난민의료보험제도가 어떠한 형태로든 부활하게 된다면, 이는 반드시 말레시이아 정부의 온전한 지지와 지원을 담보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지난 난민의료보험 모델이 UNHCR로 하여금 난민들에게는 의료보험을 구입하도록 설득하고, 보험사에게는 해당 제도를 통해 이윤을 내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점에서 너무 힘들고 어려워 제도를 유지하기 어려웠다고 소회를 털어놓았다(저자 인터뷰 2022/08/04). 그러므로 말레이시아 정부가 이미 10년 이상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의료보험제도를 의무화하여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정부가 난민들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의료보험 구입을 의무화 한다면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해결 방안이 될 것이다. 


  둘째, 지속가능한 난민의료보험제도를 위해 정부는 난민들에게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일자리와 연관시켜 의료보험 구입을 의무화 시키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이를 통해 난민들은 본인의 의료비를 직접 지불하고, 말레이시아 정부와 국민들의 세금 부담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말레이시아에 거주하고 있는 난민들은 비공식적으로 대규모 농장, 레스토랑, 건설현장, 풀 깎기 등의 분야에 주요 노동력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불법적 지위로 인해 저임금 및 사업주로부터 폭력, 산재의 위험이 많이 노출되어 있는 상태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이들이 세금에 기여하는 방식을 통해 정부가 제공하는 의료서비스 및 교육시설에 접근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은 말레이시아 내 난민들의 건강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일 것이다. 이를 위해 UNHCR 말레이시아지부는 난민들의 의료응급사례에 대한 재정적 지원과 함께, 현재 말레이시아 의회 내에서 계류 중인 난민에게 합법적으로 일할 권리를 부여하는 법안의 통과를 위한 로비활동을 지속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난민들이 말레이시아 내에서 안전하게 체류할 수 있도록 난민등록을 가속화 하는데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난민의 건강권 보장을 위한 시민단체 진료소의 역할 


  말레이시아에서 UNHCR이 난민들에게 합법적 체류지위를 부여하고 포괄적인 의료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를 상대로 정책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 시민단체들은 지역사회에서 진료소를 통하여 난민들에게 의료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면서 난민들의 건강권 향상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앞서 논의한 대로, 말레이시아에서 시민단체가 최초로 설립한 난민진료소는 KL Sentral에 위치한 ACTS-Arrupe 진료소이다. 본 진료소는 난민을 위한 상설 진료소가 필요하다는 UNHCR의 제안에 따라 2008년 설립되었으며, 설립 초기에는 UNHCR와 미국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았으나, 2022년 현재는 모든 지원이 중단된 상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료소의 대기실로 들어가면 두 기관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는 커다란 푯말이 진료소 벽에 붙어있는데, 이는 경찰의 진료소 불시 검문 시 압박을 주기 위함이라고 한다 (저자 인터뷰 2022/07/14). 현재 ACTS-Arrupe 진료소 운영에 소요되는 비용은 진료소를 설립한 천주교 단체, A Call To Serve로부터의 지원과 진료소를 방분하는 환자들이 지불하는 비용으로 충당되고 있다. 본 진료소는 1일 기준 약 80명의 난민 및 비호신청자들에게 일차의료서비스 및 심리상담 서비스를 10링겟(한화 3천원 가량)에 제공하고 있으며, 부족한 재원으로 인해 시설은 매우 열악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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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TS는 Arrupe 진료소뿐만 아니라 쿠알라룸푸르 도심에서 북쪽으로 약 1시간 떨어진 바투아랑(Batu Arang) 지역에 PERCH라는 난민요양원을 두 채- PERCH1(남성 환자 수용) & PERCH2(여성 및 아동 환자 수용) 운영 중이다. 보통 난민진료소들과 커뮤니티기관들은 말레이시아 정부의 감시를 피해 지역사회의 외진 곳,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필자는 ACTS의 대표, 주치의, 행정실장과 함께 동행하여 요양원을 방문할 수 있었다. PERCH 요양원은 암, 백혈병, 결핵, 의료사고로 인한 사지마비 등 중증질환으로 인한 장기치료가 필요한 환자 및 수술 이후 오갈 곳이 마땅치 않은 난민들의 회복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PERCH 요양원은 환자들에게 직접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지는 않고, 정기검진이 필요한 난민들이 지역 내 병원시설에서 체류 지위나 언어의 한계에 대한 문제없이 안전하게 통원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말레이시아 현지인 스태프가 병원에 동행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요양원 각 시설에는 난민들이 스태프로 직접 고용되어 음식과 청소를 맡아하고 있으며, 말레이시아어에 능숙하지 못한 난민들에게는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소통을 위해 통역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PERCH2는 아이들이 수용되어 있다시피 이들을 위한 러닝센터도 매일 운영하고 있다. PERCH는 말레이시아에 유일한 난민요양원으로 평소 미국이민국(Bureau of Population, Refugees, and Migration)의 지원을 받고 있으나, 올해는 서류상의 문제로 지원금 지불이 지연된 상태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저자 인터뷰 2022/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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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TS와는 대조적으로 카타르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고 있는 QFFD진료소는 말레이시아 내 총 5곳이 개설되어있는데, 필자는 그 중 Mercy Malaysia와 협력하고 있는 쿠알라룸푸르 서쪽에 위치한 암팡 지역의 진료소를 방문했다. QFFD 진료소는 관대한 재정지원 덕택인지 의료장비 및 진료소 시설이 매우 양호했다. QFFD 암팡 진료소는 매주 토요일 모바일 클리닉 또한 운영하고 있어 관찰자로 동행했다. 모바일클리닉의 운영진은 매니저 1인(전체운영 및 운전), 약사 1인, 의사 2인(QFFD 진료소 주치의; 파견 지역 병원의 의사-자원봉사), 난민스태프 3명(등록, 통역, 보건교육 담당) 및 자원봉사자(당일 4명)으로 구성되었다. 당일에는 모바일 클리닉이 쿠알라룸푸르 도심에서 서쪽으로 약 1시간 거리의 셀랑고르 지역의 로힝야 난민 러닝센터에서 진행되었다. 모바일클리닉 팀이 임시진료소를 설치한 후 난민환자들이 방문하면, 이들은 등록-진찰-약처방-보건교육 순서를 거치며 진찰을 받게 된다. 임시진료소가 설치되자 난민커뮤니티의 지도자들이 모바일 클리닉에 제일 먼저 도착하여 SNS등을 통해 소식을 가가호호 전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는데, 이 때문인지 오전 10시에 약 10명의 환자로 시작된 모바일 클리닉이 정오가 되자 발 딛을 틈이 없이 환자들로 가득차게 되었다. QFFD진료소 팀은 모바일 클리닉의 행사여부를 해당지역 경찰서에 미리 신고하고 보호를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난민들은 지위상의 불안함 때문에 모바일 클리닉을 바로 찾지는 않고, 이웃에게 모바일 클리닉에 대한 긍정적 소식을 전달 받은 뒤에서야  방문했다. 모바일 클리닉은 전액 무료로 진행되었고, 당일에는 코로나19 발발 이후 처음 방문하게 된 지역이라 평소의 2배에 가까운 126명의 환자를 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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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자들은 대부분 강제이주로 인하여 표준예방접종 일정을 놓친 다양한 연령대의 어린이들로, 신생아부터 필수로 접종해야하는 백신들을 뒤늦게 접종하고 있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또한 미얀마의 씹는담배인 ‘꿍’이라는 문화 때문에 치아 상태가 좋지 못한 로힝야 난민 환자들이 많아서, 이를 비롯하여 코로나 예방과 관련한 보건교육이 진행되었다. 수량 부족으로 인해 무료 칫솔과 치약세트는 소수에게만 전달되었으며, 코로나 예방 교육의 하나로 방문환자들에게 마스크를 나눠주었는데 아동 사이즈는 동이나 아이들이 불편함을 겪기도 했다. 또한 모바일 클리닉 당일에 발열과 기침 증상이 있는 환자들이 많았는데, 추후 코로나로 발전하지 않을지 주의 깊은 관심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소견이 있었다. 


  이와 같이 말레이시아 내 난민의 건강권을 위해 노력하는 시민단체들은 해당분야의 전문지식과 경험 및 해외와 국내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여 난민들이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국내외로부터 자원과 물자를 동원하고, 이를 활용하여 직접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난민들의 건강권 증진에 기여하고 있다.


난민의 건강권 보장을 위한 난민주도지역사회조직의 역할 


  필자는 말레이시아에서 난민들의 건강권 향상을 위한 UNHCR과 각종 시민단체 진료소들의 역할을 인정하는 한편, 난민주도지역사회조직이야 말로 난민들의 건강권 향상을 위한 핵심 정책행위자라고 주장한다. 말레이시아에는 난민주도지역사회조직이 약 60개, 리더들은 약 130명 이상 존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저자 인터뷰 2022/08/04). 이들은 난민들의 인종, 성별, 나이와 같은 특성에 따라 다양하게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으며, 지역사회기반조직(Community-Based Organizations), 난민지역사회조직(Refugee Community Organizations), 민족공동체(Ethnic community) 등의 다양한 개념으로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다. 이에 필자는 이러한 조직들을 ‘난민주도지역사회조직(RCOs: Refugee-led Community Organizations)’라고 통칭하고, 2004년 미국공중보건협회 연례회의 중 노스캐롤라이나 간호위원회가 채택한 지역사회기반조직의 정의를 차용하여 그 개념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자 한다. 그러므로 본 고에서 설명하는 난민주도지역사회조직이란 난민들이 주도하는 조직으로 첫째, 조직의 직원과 회원 과반수는 난민 및 비호신청자로 구성하며; 둘째, 조직의 본부는 난민커뮤니티 내에 있어야 하고; 셋째, 조직의 우선순위 과제들은 난민회원들이 스스로 구별해내고 정의하며; 넷째, 해결방법 또한 난민회원들이 함께 개발해내고; 다섯째, 조직의 프로그램 설계, 이행, 평가에 있어서도 난민회원들이 리더십 직책에 밀접하게 관련되어있는 조직을 말한다. 


  난민주도지역사회조직은 난민들이 수용국 내에서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한 집단행동(collective action)을 취하기 위해 조직된 단체들로, 같은 언어, 종교, 민족 및 문화적 배경과 모국으로부터의 폭력과 피난이라는 공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난민들과 높은 친밀성을 나누고, 난민들이 직면한 문제에 대해 높은 이해도를 가지고 있다는 특징을 가진다. 이들은 특히, 정부의 난민보호가 부재가 말레이시아에서 국제기구 및 시민단체들과 협력하며 파트너십을 구축함으로써,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 난민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프로그램들이 성공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중개자 및 정책 이행 촉진자, 사회적 자본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UNHCR 말레이시아 지부 또한 이러한 중요성을 깨닫고, 2021년 커뮤니티 기반 보호(community-based protection) 부서를 개설하여, 난민주도지역사회조직의 규모를 파악하고 리더들을 소집하여 각종 교육 및 네트워킹 프로그램 진행에 착수했다(저자 인터뷰 2022/08/04). 난민주도지역사회조직들은 말레이시아에 처음 도착하는 동료 난민들의 첫 번째 접촉 지점(first point of contact)으로 활약하며, UNHCR 난민심사접수에 필수인 신분증 형태의 하나로 커뮤니티 카드를 발급한다. 이러한 커뮤니티 카드는 아직 UNHCR에 의해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상태라 하더라도, 난민주도지역사회조직으로부터 신분을 보증 받았다는 증표로서 활용되어 시민단체가 운영하는 진료소에서 UNHCR카드와 동일한 효력을 지닌다. 물론 말레이시아 경찰이나 군인들에 의해 불시의 신분증 검사를 받았을 때 그 효력은 UNHCR카드에 비해 매우 낮지만, 커뮤니티 카드를 소지한 자들은 경찰에 체포당하거나 구금시설에 구류가 되었을 때에도 난민주도지역사회조직의 리더들에게 연락하여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저자 인터뷰 2022/07/28). 


  난민주도지역사회조직은 수용국 내 다양한 난민문제 해결을 위해 고도로 발달한 조직체계를 가지고 있는 경향을 보였다. 예를 들어 이들은 난민들이 체포와 구금을 당했을 시, 구류된 난민들의 정보를 일차로 파악하여 UNHCR에 석방탄원서를 제출하는 역할을 하는 부서; 난민들이 치료가 필요할 경우 시민단체 진료소나 지역사회 공공병원에 대한 정보를 회원들에게 제공하고, 병원에서 직접 병원비를 협상을 하거나 응급자금요청 캠페인을 벌이는 의료복지 담당부서; 집과 일자리 구하는 것을 돕고, 커뮤니티 카드를 발급해 줌으로써 UNHCR 난민심사 등록을 돕는 정착부서; 아동들의 문화 및 현지어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부서; 시민단체와 UNHCR과의 소통을 돕고 대외행사들을 도맡는 부서 등을 모두 공통적으로 갖추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선거를 통하여 리더를 선출하고, 정관을 두어 성문법에 따라 조직을 운영하는 등, “모국보다 훨씬 더 나은 민주주의 체계”를 통해 정치과정을 연습하고 있었다(저자인터뷰 2022/07/30). 


  그 중에서도 특히 난민의 건강권과 관련하여 미얀마 카렌족(MKO: Malaysia Karen Organization)의 난민주도지역사회조직의 의료정책은 주목할 만 하다. UNHCR의 주도로 난민의료보험(REMEDI)이 운영되고 있을 당시, MKO는 ‘MKO Care’라는 커뮤니티 자체 의료보험을 개발하여 실행했다. MKO Care는 보험유지기간과 프리미엄, 보장내용 등을 REMEDI의 내용과 동일하게 유지하면서도, 조직 회원들을 대상으로 좀 더 포괄적인 의료보험을 제공했다. 예를 들어, REMEDI가 UNHCR카드 또는 비호신청자문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만 의료보장을 실시했다면, MKO Care는 커뮤니티 카드를 가진 회원이라면 누구나, 어떤 질병이라도 의료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저자 인터뷰 2022/07/28). REMEDI는 말레이시아 현지 보험시장의 관행을 거스를 수 없다며, 말레이시아 보험사들이 의료보장을 하지 않는 외래환자 및 모성보호에 대한 항목을 난민의료보장항목에서 제외했었다. 그러나 MKO Care는 이러한 제한을 모두 삭제함으로써 난민들의 의료접근성을 더욱 높이고자 했다. 물론 MKO Care 또한 REMEDI와 같은 이유로 2018년 폐지의 수순을 밟았으나, 본 사례는 말레이시아 내 난민주도지역사회조직의 고도의 주체성과 발달된 조직체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예시다.   


  난민주도지역사회조직은 자체 역량강화를 위해 시민단체 및 국제기구에 난민회원들을 추천하여 이들이 직접 고용될 수 있도록 도우면서, 말레이시아 내 UNHCR 및 시민단체와 3티어 파트너십 또한 강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QFFD 모바일 클리닉의 경우 난민커뮤니티에서 스태프들을 직접 고용하여, 방문하는 지역의 난민들의 언어와 인종, 종교의 특성을 고려하여 난민스태프들을 파견하고 있다. 이들은 시민단체 및 국제기구의 파트너로서 난민환자가 발생한 지역을 파악하여 각종 의료 및 보건복지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의료팀에 직접 소속되어 난민을 위해 일하고 있다. 이들은 보통 난민들 중에서도 모국에서 대학교육 등을 마친 훈련된 스태프들이었으며, QFFD 진료소뿐만 아니라 UNHCR과 IOM과 같은 국제기구 또는 각종 시민단체들에 통역사로 고용되거나 난민커뮤니티 대표자들로 활동하고 있어, 현지 난민사정과 시민단체 및 정부의 난민 정책에 대한 높은 이해와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난민주도지역사회조직은 UNHCR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자체 의료팀을 운영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프로그램은 특히 에이즈 환자 또는 가정폭력 생존자와 같이 공공의료시설에 접근을 두려워하는 여성 환자들을 돌보는데 효과적으로 나타났다(저자인터뷰 2022/08/02). 이와 같이 난민주도지역사회조직들은 자체조직을 활용하거나 혹은 각종 파트너십을 구축함으로써, 말레이시아 내 난민보호프로그램들이 성공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사회적 자본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도심난민들의 건강권 증진을 위한 난민주도지역 사회조직의 중요성 


  필자는 말레이시아에서 난민들의 건강권 향상을 위해서 국제기구나 시민단체들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지만, 난민주도지역사회조직의 도움 없는 이들의 난민 건강권 프로그램의 이행이 불완전하고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난민주도지역사회조직이 국제기구 및 시민단체들의 난민건강프로그램의 성공적 수행을 유도하는 핵심 정책행위자라는 것이다. 말레이시아에서 난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보호의 도구로 간주되고 있는 UNHCR카드의 발급을 위해서도 난민들은 난민주도지역사회조직이 발급한 커뮤니티 카드가 신분을 보증하는 도구로서 필요하며, 커뮤니티 카드만 가지면 UNHCR카드를 발급받기 전까지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난민주도지역사회조직에 의해 적극적인 보호를 제공받을 수 있다. 난민주도지역사회조직은 난민수용국 내에서 모국을 상기시키는 ‘국가 내 국가(state within a state)’로써 역할하며, 난민들의 권리 향상을 위한 비공식적 정책 행위자로서 그 소임을 다하고 있다.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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