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4.03.29
수정일
2024.03.29
작성자
동남아연구소
조회수
409

[31] 2024 인도네시아 선거: 권위주의적 정치와 정치 왕조의 부상 | 김형준

[31] 2024 인도네시아 선거: 권위주의적 정치와 정치 왕조의 부상 | 김형준 첨부 이미지

초록

이 글에서는 대통령과 부통령, 국회의원, 지역 대표의원, 지방의회 의원을 선출하는 2024년 인도네시아 선거의 과정과 결과를 정리하고, 이를 통해 인도네시아 민주주의의 변화 가능성을 전망해본다. 이번 선거 결과 중 눈여겨볼 점은 조코위 대통령의 지지를 받은 프라보워 수비안토가 압도적인 지지로 승리했다는 점, 대통령 선거에서의 참패에도 불구하고 PDI-P가 제1당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했다는 점이다. 선거 과정에서는 특정 가계를 중심으로 한 왕조식 정치의 확장이 뚜렷하게 나타났으며, 정체성 정치는 뚜렷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정치권력을 독점할 자원과 의지를 지닌 프라보워의 대통령 당선은 기존의 정치적 균형을 깨뜨리고, 권위주의적 정치를 강화할 잠재력을 가진다고 평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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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214, 인도네시아에서는 대통령과 부통령, 580명의 국회의원, 152명의 지역대표의원(Dewan Perwakilan Daerah), 2,372명의 주(provinsi)의회 의원, 17,510명의 시도(kabupaten/kota) 의회 의원을 선출하는 선거가 동시에 행해졌다. 2만여 개의 의원직을 대상으로 25만여 명의 후보가 입후보했고, 25백만 명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82만여 개의 투표소가 세워지는 등, ‘세계 최대 일일 민주주의 선거라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선거는 대규모 행사로 치러졌다.

이번 선거에는 18개 정당이 참여했다. 이 중 9개 정당은 2019선거에서 4% 이상의 득표율을 획득해 국회의원을 보유한 원내 정당이며, 5개 정당은 2019선거에 참여한 원외 정당, 4개는 신생 정당이었다. 국회의원 의석의 20% 이상 혹은 득표율 25% 이상을 기록한 정당 혹은 정당 간 선거연합만이 대통령 후보를 선임할 수 있다는 규정에 맞추어, 세 쌍의 대통령-부통령 후보가 후보자로 등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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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대통령-부통령 후보와 지지 정당


기호 1번을 받은 후보군은 아니스 바스웨단(Anies Baswedan: 무소속)과 무하이민 이스칸다르(Muhaimin Iskandar: PKB)로서, PKB, NasDem, PKS 3개 원내 정당과 신생 정당 Partai Ummat의 지지를 받았다. 기호 2번은 프라보워 수비안토(Prabowo Subianto: Gerindra)와 기브란 라카부밍(Gibran Rakabuming: Gerindra)으로서, Gerindra, Golkar, Demokrat, PAN 4개 원내 정당과 Garuda(Partai Garda Perubahan Indonesia), PBB, PSI 3개 원외 정당, 그리고 신생 정당 Gelora(Partai Gerombang Rakyat Indonesia)의 지지를 받았다. 기호 3번은 간자르 브라노워(Ganjar Pranowo: PDI-P)와 마흐푸드 엠데(Mahfud MD: PDI-P)로서 원내 정당인 PDI-PPPP, 원외 정당인 HanuraPerindo의 지지를 받았다. 18개 선거 참여 정당 중 신생 정당 2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대통령 후보 선거연합에 포함되었다.

202310월 대통령-부통령 후보가, 11월 국회의원 후보가 정해진 후 1128일부터 211일까지 2달 반에 걸쳐 선거 운동이 진행되었다. 유세 과정에서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킬만한 폭력이나 위협, 폭동이 발생하지 않았다. 이는 2004년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는 선거가 시작된 후 3차례 대선 과정을 거치며 성숙해진 정치적 전통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유세 기간 중 가장 큰 논쟁을 불러온 사건은 캠페인 기간 종료가 임박하여 출시된 다큐멘터리 영상 ‘Dirty Vote’였다. 유튜브에 출시된 후 곧바로 수백만 뷰를 기록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끈 이 영상은 조코위(Joko Widodo) 대통령의 직간접적 선거 개입을 고발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1)

유도요노(Yudhoyono)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 후 새 대통령을 선출한 2014년 대선에서 유도요노는 큰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반면, Dirty Vote 영상의 선풍적 인기가 보여주는 것처럼, 조코위 대통령은 이번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플레이어였다. 이는 80%를 넘나드는 지지율이 드러내는 것처럼 그가 누리는 대중적 인기에 기반했다.

대통령-부통령 선임을 둘러싸고 전개된 정치 과정, 그리고 대통령-부통령 선임 시기부터 선거 유세가 종료될 때까지의 조코위의 행보는 인도네시아 정치의 주요 특징을 요약적으로 드러냈다. 유력 정치 세력 간 연대와 타협에 기반을 둔 과두적(oligarchic) 통치에 추가하여, 유력 정치인의 가계를 중심으로 형성된 세습적 정치 왕조’(political dynasty)의 확장은 이번 2024년 선거를 주도했다. 흥미로운 점은 한동안 인도네시아 정치의 주요 요소로 부상한 정체성 정치가(서지원·전제성 2017; 이지혁 2018)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체성 정치의 핵심이던 이슬람 세력은 이번 선거에서 뚜렷한 아젠다를 제시하지도, 조직화된 힘을 표출하지도 못했다. 또한 종족적 차이나 자바와 비자바의 대립과 같은 요소 역시 주요 이슈로 부각하지 못했다. 이런 의미에서 이념보다 소수 집단의 이익에 기반을 둔 정치적 연대가 지배적으로 작동했다는 점은 이번 선거의 특징적인 모습이었다.

이 글에서는 2024년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중심으로 그 선거 과정과 선거 결과를 검토하고자 한다. 2절에서는 부통령 선거 선임 과정을 통해 표출된 유력 정치 세력 간 타협과 연합을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될 것이다. 3절의 소재는 선거 캠페인 과정으로서, 캠페인 과정에서 나타난 특징적 모습이 서술될 것이다. 4절에서는 대통령 선거 결과, 5절에서는 국회의원 선거 결과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출구조사 결과를 대상으로 알아볼 것이다.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 선임


(1) 대선 후보 부상과 지지율 추이

선거법에 따르면, 의원 수 20%를 넘은 정당 혹은 정당 연합만이 대선 후보를 선임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 보면 정당 간 합종연횡을 통해 4명의 후보까지 등록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후보는 2-3명으로 제한된다. 9개 원내 정당 중 소속 의원이 전체의 20%를 넘은 PDI-P를 제외한 다른 정당 모두가 선거연합을 통해 대선 후보를 선임해야 하는 상태에서 세 명의 정치인이 유력후보로 부상했다. PDI-P 소속으로 중부 자바 주지사인 간자르 프라노워(Ganjar Pranowo), 2014년과 2019년 대선에서 2위를 했고 조코위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된 프라보워 수비안토(Prabowo Subianto), 자카르타 주지사를 역임했으며 소속 정당이 없는 아니스 바스웨단(Anies Baswedan)이 유력 후보군에 속했다. 2022년 후반에 이루어진 여론 조사에서 간자르가 지지율 30% 내외로 선두권을, 프라보워와 아니스가 20-25%를 기록했지만,2) 2023년 초반 프라보워의 지지율 상승으로 인해 이후 21중 체제가 구축되었다.

세 후보 중 무소속 아니스는 트레이드 시장에 나와 있는 자유계약 선수와 같았다. 이런 그를 수리아 팔로(Surya Paloh)가 이끄는 NasDem이 대선 후보로 선점했고, PKSDemokrat과의 선거연합을 통해 20% 장벽을 넘어섰다. 프라보워의 Gerindra당은 나머지 주요 정당인 Golkar, PKB, PAN과 선거연합을 구축했고, PDI-PPPP와 연대했다.

대통령 후보가 정해지고 선거 열기가 고조되기 시작한 2023년 중반을 거쳐 202310월 이전까지 여론 조사는 21중 구도가 고정되었음을 보여주었다. 3자 대결을 전제로 하여 6월에 이루어진 7개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프라보워가 4개 조사에서 선두를, 간자르가 3개 조사에서 선두를 차지했다. 두 후보의 지지율은 35% 전후였고, 지지율 격차는 5% 이내였다. 아니스는 일관되게 20-25%의 지지율로 3위에 머물렀다. 8월에 진행된 7개 여론조사 결과 역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아서, 간자르가 4개 기관의 조사에서 선두를, 프라보워가 3개 기관 조사에서 선두를 기록했다.3) 아래는 여론조사 기관 Indikator politik에서 제시한 여론 조사 결과 추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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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Indikator Politik 여론 조사 추이(20234-20242)


 <그림 2>를 보면, 안정적으로 유지되던 21중 구도는 10월 말과 11월 초에 진행된 조사에서 큰 폭의 변화를 기록했다. 프라보워 지지율은 조금 상승하는 추세를 보였지만, 간자르의 하락세는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후 프라보워 지지율은 우상향을 지속하여 2월 초 50%에 근접했다. 간자르와 아니스 지지율에서도 12-1월을 전후하여 변화가 발생해서, 지지율 역전이 이루어졌고 이 추세는 선거 전까지 유지되었다. 10월 말에 발생한 지지율 변화는 부통령 선임과 관련되었다.

 (2) 부통령 선임의 동학

세 명의 대통령 후보가 큰 무리 없이 등장했던 것과 달리, 이들의 러닝메이트가 될 부통령 후보 선임은 정치적 합종연횡의 잠재력을 잘 보여주었다. 대중적 영향력을 가진 정치인을 부통령 후보로 영입함으로써, 선거 레이스 후반에 접어들어 지지세 확장과 정치적 자원 확대를 기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후보의 소속 정당이 아닌 타 정당 소속 부통령 선택은 가장 쉽게 고려해볼 수 있는 전략이다. 여기에 더해 오랫동안 주요 변수로 간주된 요인은 출신 지역으로서, 자바섬 출신의 대통령 후보와 자바 외 지역 출신의 부통령 후보가 이상적 조합으로 여겨졌다. 2014년 대선에 참여한 두 후보군은 이를 예시한다. PDI-P 소속으로 자바 출신인 조코위의 부통령 후보는 Golkar 소속으로 술라웨시 출신인 유수프 칼라(Yusuf Kalla)였으며, 자바 출신 프라보워의 부통령 후보는 PAN 소속의 수마트라 출신인 하타 라자사(Hatta Rajasa)였다. 상보적 연대의 전형을 보여준 2014년과 달리 2019년 대선에 참가한 두 후보군은 정당과 지역이라는 기준을 충족하지 않았다. 조코위의 경우 무소속으로 자바 출신인 마루프 아민(Ma’ruf Amin), 프라보워의 경우 수마트라 출신으로 자기 당 소속 산디아가 우노(Sandiaga Uno)를 부통령으로 선택했다. 이번 대선의 부통령 선임 과정에서도 지역과 정당이 크게 고려되지 않는 모습이 나타났다. 여기에 더해 이번 대선의 부통령 선임 과정은 정당 간 거래, 유력 정치 세력의 전횡이 어느 수준까지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예시했다.

먼저, PDI-P 소속 간자르 후보의 부통령 선임 과정은 극적인 모습 없이 순탄하게 이루어졌다. 같은 당 소속으로 부통령감이라는 평가를 오랫동안 받아 온 현직 장관, 마흐푸드 엠데(Mahfud MD)가 러닝메이트로 선택되었기 때문이다. 정치공학적으로 볼 때 대중적 영향력 확대의 가능성을 스스로 제약하는 이 행보는 메가와티(Megawati)가 행사하는 당내 절대적 영향력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

돌발적 정치 상황을 기대하던 이들에게 아니스의 러닝메이트 선택 과정은 만족스러웠다. 영입 인물이 프라보워를 추대한 선거연합 소속 PKB의 당수 무하이민 이스칸다르였기 때문이다. 이 행보는 아니스의 러닝메이트 자리를 노리며 그를 지지하던 Demokrat을 격분시켰다. Demokrat은 곧바로 아니스 지지 선거연합에서 탈퇴하여 프라보워 진영으로 선회했다. 결과적으로 프라보워 지지 정당과 아니스 지지 정당이 각기 상대방의 자리를 차지하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짧은 기간 내에 진행된 이 변화는 정치적 합종연횡의 논리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는가를 예시했다.

Demokrat이 재빨리 프라보워 지지로 선회한 데에는 그의 러닝메이트가 결정되지 않았고, 유도요노 전 대통령의 아들로 Demokrat을 이끄는 아구스 하리무르티 유도요노(Agus Harimurti Yodhoyono)가 이 자리를 넘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프라보워는 부통령 지명을 계속 미뤘고, 후보 등록 직전에야 중부 자바 수라카르타(Surakarta)의 시장인 기브란 라카부밍(Gibran Rakabuming)을 러닝메이트로 선정했다. 물론 그의 경력보다 훨씬 중요한 점은 그가 조코위의 장남이라는 사실이었다.

조코위의 정치적 영향력을 모든 정당이 인지하고 있었지만, 기브란은 대선 레이스의 외부에 존재하던 인물이었다. 이는 인도네시아 선거법에서 규정하는 후보 나이 제한 조항 때문으로, 36살인 기브란은 40세로 규정된 후보 출마 자격을 충족하지 못했다. 물론 그가 대선 정국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던 것은 아니다. 후보자 연령 제한을 문제시하는 헌법소원이 제기되었고, 대선 후보 등록 직전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예정되었기 때문이다. 상당수 정치평론가는 이 헌법소원이 기각되고 40세 연령 제한이 존치될 것이라 예상했다. 조코위의 매제라는 친족 관계로 인해 헌재 소장이 자신의 조카인 기브란을 편파적으로 편드는 판결을 내리기 쉽지 않으리라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상식에 맞는 이 시각은 결과적으로 정치 논리에는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헌재는 40세 연령 제한을 합헌이라 판단했지만, 직접 선거에서 지자체장으로 선출된 경험이 있는 인물에게 이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예외 조항을 추가했다. 헌재 결정이 발표되자마자 프라보워는 PDI-P를 탈당할 여유조차 없던 기브란을 부통령 후보로 선임했다.

정당 간 합종연횡에 대한 불만이 강하게 표출되지 않던 과거와 달리 기브란 후보의 선임은 시민사회의 광범위한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기브란의 고모부가 헌재 협의 과정에 적극 개입하여 그에게 우호적인 판결을 유도했다는 고백이 헌재 재판관에 의해 제기되면서 비판적 움직임에 기름을 부었다. 시민들의 잇따른 제소에 헌재는 헌재 소장의 심의 참여가 이해충돌 방지라는 윤리 강령을 위반했는지 판단할 윤리위원회를 소집했다. 윤리위는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결정을 내려서, 헌재 소장의 선거법 위헌 심판 참여가 이해 상충에 해당하며, 그의 소장직 박탈과 선거 관련 위헌 심판 불참을 명령했다. 하지만, 헌법 재판관으로서의 신분은 박탈되지 않았고, 그가 비윤리적으로 참여한 선거법 판결 역시 유지되었다. 결과적으로, 기브란의 부통령 선임은 합법적 행위로 인정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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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헌법재판소 판결에 반대하는 시위


 헌법재판소를 개인적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한 조코위의 행보는 시민사회 세력의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이 선거 국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 못했음은 11월 이후의 여론조사 추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조코위의 영향력을 등에 업은 프라보워의 지지율이 꾸준한 상승세를 보인 반면, 기브란의 부통령 선임을 통해 조코위가 등을 돌린 것으로 판명된 PDI-P 소속 간자르의 지지율은 35% 내외에서 20%로 추락했다. 간자르의 지지율 하락세는 선거 캠페인이 시작된 11월 이후 지속되어서, 2024년 연초에 접어들면 그에 대한 지지율은 아니스 지지율과 역전되었고, 이 추세는 계속되었다. 다음 절에서는 선거 유세 기간을 거치며 나타난 금권 선거 흐름, 후보자 간 토론회, 사이버 선거 유세를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될 것이다.

 

선거 캠페인 과정


(1) 금권 선거의 지속

인도네시아에서 선거 캠페인은 축제 분위기 속에서 펼쳐진다. 다양한 예술가들이 사전 공연을 통해 관중의 흥미를 끌고 분위기를 돋우면 후보를 중심으로 한 일군의 정치인들이 등장하며, 관중들의 환호 속에서 후보자가 연설하게 된다.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가 함께 참가하는 캠페인은 지역의 경기장에서 보통 치러지며, 수만 명의 군중이 참여한다. 대선 캠페인뿐 아니라 국회의원, 지역대표의원, 주의회 의원과 시도의회 의원의 캠페인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20231128일부터 2024210일까지 진행된 공식 선거 유세 기간 동안, 인도네시아 전역은 선거 열기에 휩싸인다.

수만 명의 대중을 동원해야 하는 선거 캠페인을 지지자의 자발적 참여만으로 수행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대중 동원을 위한 천문학적 규모의 비용이 소요되며, 이를 정당과 후보자가 부담해야 한다. 인도네시아 선거법은 캠페인 비용에 관한 규정을 느슨하게 적용하고 있다. 후보자의 선거 비용 조달은 크게 3가지 방식으로 규정되는데, 이 중 공식적 성격을 띤 것은 개인이나 단체로부터 받은 후원금, 정당이나 정당 연합의 보조금이다. 정당 보조금은 그 규모가 정해져 있지않은 반면, 개인 후원금의 상한선은 25억 루피아(21천만 원), 단체 후원금 상한선은 250억 루피아(213천만 원)로 정해져 있다(81,2; 341,2). 이 규정이 대통령 후보자 뿐만 아니라 지역대표위원을 제외하고 국회의원, 주의회 의원, 시도의회 의원 후보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사실은 금권 선거라는 현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이라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측면은 선거 비용의 또 다른 합법적 채널인 후보자 자신의 경비 부담이다. 여기에 상한선이 제시되지 않음으로써, 이론상 무제한적 비용 투입이 용인된다.

2019년 대선 자료를 보면, 조코위-마루프 아민 후보는 6천억 루피아(511억 원), 프라보워-산디아가 우노 후보는 2132억 루피아(181억 원)를 사용했다고 보고했는데, 조코위의 경우 단체와 집단으로부터 모금한 기부액이 각기 2,539, 2,510억 루피아(216억 원, 214억 원)에 달했으며, 프라보워 후보의 경우 1,925억 루피아(164억 원)를 스스로 조달한 것으로 기록되었다(Katadata 2019). 공식적 자료임에도 현직 대통령이던 조코위 후보의 모금 규모가 6천억 루피아(511억 원)에 달했음은 선거 비용에 대한 관용적 태도를 예시한다.

하지만, 선관위에 보고된 자료는 전체 선거 비용 중 일부일 뿐이며 비공식적으로는 훨씬 더 큰 비용이 지출된다. 관련 자료는 많지 않지만, 2014년 자료를 보면, 국회의원 선거 후보자들이 75-40억 루피아를, 지방 의회 선거 후보자들이 25-5억 루피아를 사용했다고 추산되었다. 당시 국회의원 후보자가 6,708, 지방 의원 후보자가 224,161명이었음을 고려해보면, 전체 규모가 100조 루피아(85,200억 원)에 이를 수 있다고 추정되었다(Amru & Dartanto 2014: 2).

선거비 중 가장 큰 부분은 캠페인 비용과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기부 비용이다. 자원봉사자 사례금, 티셔츠와 기념품 제작비, 참가자 식대와 교통비 등이 캠페인 과정에서 부담되어야 한다. 여기에 더해 후보자들은 선거를 앞두고 만난 유권자에게 여러 형태의 기부금을 제공한다. 상황에 따라 규모는 다르지만, 유권자를 향한 이 기부 행태는 후보자의 필수적 의무처럼 비추어진다. 이번 선거에 참여한 당둣(dangdut) 가수 아니사 바하르(Anisa Bahar)는 선거 비용을 다른 후보와 달리 상대적으로 솔직하게 진술했는데, 그녀의 사례는 선거 비용을 이해할 실마리를 제공해준다(KumparanHITS 2024).

아니사는 NadDem 후보로 중부 자바 떠갈(Tegal)과 브러버스(Brebes) 지역구에 출마했다. 그녀는 자신의 선거 비용을 50억 루피아로 추산했다. 캠페인 기간 중 한 지역을 방문하면 그녀는 보통 몇 백만 루피아를 사용했는데, 주민에게 나누어줄 가방, 손목시계, 기름, 쌀 등의 선물을 사기 위해서였다. 그녀의 활동은 선거 캠페인보다 훨씬 이전에 시작되었다. 가뭄이 들었을 때 그녀는 지역으로 가서 물을 구매해 나누어 주었고, 집이 부서진 주민이 있으면 그 보수 공사를 지원했다. 이러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그녀는 은행 예금을 깨고 두 대의 차를 팔았다.

아니사는 선거 과정에서의 기부 행위를 주민을 돕는 일로 규정함으로써, 그 시기나 종류, 규모에 구애받지 않고 활동을 펼칠 수 있음을 정당화했다. 흥미로운 점은 그녀가 이런 자신의 활동을 금권 정치’(politik uang)로 규정하지 않은 점으로서, 그녀에게 있어 금권 정치는 선거 직전의 금품 살포를 일컫는 새벽의 공격’(serangan fajar)으로 제한되었다.

아니사의 의견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지만, 상당수 유권자는 후보자의 기부 행위에 대해 수용적인 태도를 취했다. 여기에 더해 후보자의 기부에 대한 부채 의식 역시 일정 정도 존재하기에, 선거 비용이 상승하고 금권 정치가 계속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Indikator Politik이 제시한 여론조사를 통해 금권 정치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도록 한다. “후보자가 유권자에게 주는 돈이나 선물을 관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46.9%가 긍정적인 답변을, 49.6%가 부정적인 답변을 함으로써,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금품 수수에 따른 대응에 대해서는 상이한 응답 경향이 나타났는데, 아래는 금품과 투표 사이의 관계를 묻는 말에 대한 응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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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여론 조사: 금품 수수에 대한 유권자의 태도


가장 높은 응답 비율은 금품을 받은 후 그와 관계없이 자신의 선호에 따라 후보를 선택한다는 항목이지만, 이보다 중요한 측면은 응답자의 90%가 금품 수수를 용인한다는 점이다. 또한, 응답자 42%는 금품을 준 후보에 대해 부채 의식을 지니고 있음을 표현했다. 이 자료는 금권 정치가 효과성을 가진 행동으로 후보자에게 인식될 수 있음을, 그리고 금권 선거에 대한 관용적 태도가 널리 퍼져있음을 드러냄으로써, 금권 선거 개혁이 제도적 차원의 노력만으로 쉽게 성취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2) 후보자 간 토론회

캠페인 기간 중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행사는 3차례의 대통령 후보 토론회, 2차례의 부통령 후보 토론회이다. 모든 매체를 통해 생중계됨으로 인해 토론회는 후보 간 차이를 드러낼 수 있는 자리이지만, 과거 선거를 볼 경우, 그것이 뚜렷한 정책적 차이이기보다는 후보자의 성향과 태도의 차이인 경우가 대다수였다. 이번 선거 토론회에서도 선거 판세를 변화시킬만한 내용이 후보 토론회에서 나타나지 않았지만,4) 이전 선거보다는 후보 간 정책 차이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날 수 있었다. 이는 야당 후보를 자처한 아니스 때문이었다.

아니스는 NasDem, PKB, PKS 선거연합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자신은 특정 정당에 소속해 있지 않았으며, NasDem 후보 선임을 수용했을 때도 그의 NasDem 가입이 전제되지 않았다. 그를 지지한 세 정당 중 NasDemPKB는 조코위 내각에서 장관 자리를 부여받았고, PKS 만이 여당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이로 인해 아니스를 야당 후보라 지칭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그는 자신이 조코위 정책 중 일부를 반대함을 표출함으로써 정책적 차이를 부각하고자 했다. 이는 조코위 정책 계승을 전면에 내세운 프라보워와 간자르와는 차별되는 행보였다.

정책 차이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 문제는 신수도 이전이었다. 선거 캠페인이 진행되면서 아니스의 입장은 중도에서 반대로 선회했고, 그는 법으로 규정된 신도시 이전을 대통령 당선 후 재고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신수도의 목적인 국토 균형발전이 실현되기 불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신수도 이전보다 시급한 교육, 보건, 인프라 구축 등에 대한 예산 배정이 요구된다는 점이 그가 내세운 이유였다. 신도시 이전만큼 명확하지는 않았지만, 아니스는 원광 수출 금지와 다운스트림 산업 육성이라는 조코위 정책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제기했다. 캠페인 기간 중 언론에 서 제기한 인도네시아의 생산 확대에 따른 국제 니켈 가격 하락 문제에 대응하여 그는 원광 수출과 다운스트림 산업을 통합적인 틀에서 수정해야 함을 피력했다.5)

신수도를 중심으로 한 대선 후보 간 정책 차이는 과거 대선 과정에서 나타나지 않았던 모습으로서, 대선 레이스의 진일보한 모습을 포함했다. 하지만, 신수도를 제외한 문제에서 세 후보 모두 유사한 정책을 제시함으로써, 전체적으로는 정책 대결이 선거 캠페인의 주요 이슈로 부각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3) 선거 캠페인

두 달 이상 진행된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집단 간 유혈사태나 폭동과 같은 부정적 행동이 표출되지 않았다. 이를 통해 2004년 이후 몇 차례에 걸쳐 대선이 진행되면서 민주주의 축제에 익숙해진 유권자의 성숙함을 확인해볼 수 있었다.

이번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온라인의 중요성이 다시 한 번 부각되었다. 각 후보 모두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틱톡, X(트위터)와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적극적인 홍보 활동을 벌였다. 인도네시아 인구의 60% 이상이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며, 이들이 하루에 3시간 이상 소셜미디어에 접속하는 상황을 고려해보면,6) 온라인에서의 선거 캠페인이 가장 중요한 활동 중 하나로 부상했음은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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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왼쪽)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프라보워가 유행시킨 귀여운 춤’ (오른쪽)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프라보워가 연출한 귀여운 춤

 

소셜 미디어를 통한 캠페인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되는 후보는 프라보워이다. 그의 선거팀은 온라인 사용자가 많은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하여 프라보워를 선전했고, 이를 위해 귀여운’(gemoy)이라는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만화나 게임 캐릭터를 본떠 만든 프라보워와 기브란의 귀여운 아바타를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 현수막을 통해 노출시켰는데, 이는 긍정적반응을 얻어냈다.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반복된 프라보워의 귀여운 춤’(joget gemoy)은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는 선거 유세 과정에서 연단에 올라 거리낌 없이 춤을 추었는데, 이를 캡처한 짧은 영상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인기에 고무되어, 프라보워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귀여운 춤사위를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선보이기까지 했다.

귀여움이라는 이미지를 부각하려 했던 프라보워의 전략은 그가 수하르토의 사위였으며, 동티모르 주둔과 민주화 운동 진압 과정에서 민간인을 납치, 살해했고, 수하르토 퇴진 후 전개된 사회 혼란을 배후에서 조종한 인물이었다는 전력과 관련된다. 따라서, 자신을 따라다니는 강경함과 잔혹함이라는 이미지를 완화하기 위해 그는 정반대되는 성격의 캐릭터를 전면에 드러내고자했다.7) 이러한 선거 전략은 젊은 세대에게 다가가는 데 도움을 주었고, 전통 자바 문화와의 연결을 통해 장년층 이상에게도 긍정적 이미지를 전달해 주었으리라 추정된다.

인도의 서사시를 기본 줄거리로 하는 자바의 전통 예술 와양(wayang)에는 토착적 성격의 캐릭터(punakawan)가 등장한다. 다른 등장인물과 달리 기이한 외모를 지닌 이들은 우스꽝스럽고 때로 천박하기까지 한 언행으로 관객의 웃음을 자아내는 광대 역할을 하지만, 실상 이들은 강력한 힘을 지닌 토착 신이다. 자신이 희화화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프라보워의 캠페인 방식은 이러한 와양의 캐릭터를 상기시킴으로써, 외유내강의 성품을 지닌 이상적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장년층과 노년층 유권자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아니스와 간자르 역시 소셜 미디어를 활용했지만, 프라보워만큼 대중적 관심을 받지 못했다. 선거 캠페인이 진행되면서 아니스를 대상으로 하여 일반인이 만든 X 계정이 시선을 끌었다. 이계정은 @aniesbubble인데, ‘bubble’이라는 표현과 아니스라는 한국어 표기는 K-pop의 팬플랫폼인 버블을 모방하여 이 계정이 만들어졌음을 드러냈다. , K-pop 가수가 팬을 관리하는 방식처럼 아니스를 팬에게 소개한다는 형식을 계정이 취하고 있었다. 아니스의 일상을 담거나 활동 계획을 소개하는 메시지와 짧은 영상이 X를 통해 전파되었는데, 일부 영상의 경우 천만 뷰를 기록할 정도로 선풍적 인기를 누렸다. K-Pop과의 연계로 인해 K-pop 팬의 정치화 가능성을 지적하는 주장이 제기되기까지 했지만(BBC Indonesia), 이보다는 K-Pop 유통 방식을 차용한 활동이라 평가하는 편이 적절한 듯하다. 그럼에도, 인도네시아 대선 캠페인에서 K-pop이 대중적 관심의 중심부에 놓였다는 사실은 쉽게 상상할 수 없었던 현상으로서, 인도네시아 내에서K-pop의 영향력을 재확인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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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왼쪽) 한국어 이름이 포함된 X의 아니스 계정; (오른쪽) 한국어 이름으로 아니스를 선전하는 인스타그램 포스팅

 

사이버 공간에서 프라보워와 아니스의 이미지가 젊은 세대의 취향에 부합하도록 형성되고 소비되었지만, 이것만으로 이들에 대한 지지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다. 이번 선거에서 후보자들에대한 지지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제3의 변수인 조코위를 포함해야 한다. 80%에 이르는 지지도로 인해 조코위 정책에 대한 후보자의 입장은 득표의 주요 요소로 작동했다. 아래의 자료는 조코위 정부의 정책에 대해 만족/불만족 여부가 후보자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아본 조사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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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출구조사: 각 후보 투표자 중 조코위에 대한 태도


자료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차이는 아니스-무하이민 지지자의 높은 불만족 비중으로서 44.9%에 이르는 불만족 비율은 프라보워-기브란 지지자의 8.8%, 간자르-마흐푸드 지지자의 15.3% 보다 월등히 높다. 동일한 응답자 사이에서 조코위 정권에 대한 지지도가 80%에 육박했음을 고려해보면, 20%의 불만족 응답자 중 상당수가 아니스를 선택했음을 추정할 수 있도록 한다. 이는 아니스가 야당 후보로, 프라보워가 조코위의 계승자로 비추어지며 지지자들을 끌어모았음을 시사한다. 아래는 세 후보자 지지 이유를 직접적으로 묻는 응답에 대한 답변 중 상위에 놓인 3개의 답변을 정리한 자료이다.

<1> 출구조사: 대선 후보 선택 이유(상위 세 가지)


응답 순위

아니스

프라보워

간자르

1

변화추구

단호함/권위 있음/군인 경력

일반인에 대한 관심

2

일반인에 대한 관심

반인에 대한 관심

정책이 좋음

3

똑똑함/시각이 넓음

조코위 정책 계승

믿을 만함/충직함



 

<1>을 보면, 세 후보 중 간자르가 명확한 자기 이미지 구축에 실패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그를 지지하는 이유로 지적된 세 가지 측면은 정치 지도자에 대해 요구되는 일반적 차원의 덕목이다. 간자르와 달리 아니스와 프라보워는 서로 대비되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아니스에게 부여된 변화와 똑똑함의 이미지는 그가 조코위에 대립하는 야당 후보라는 주장, 그리고 박사 출신의 지식인이라는 배경을 반영한다. 프라보워에게 부여된 단호함과 조코위 정책 계승은 그가 군인 배경을 지니고 있으며, 조코위의 장남을 부통령 후보로 선택함으로써 조코위 계승자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했음을 반영한다.

선거 캠페인 막바지인 2월 초 선거에 영향을 미칠 잠재력이 있는 사건이 벌어졌다. 조코위의 선거 개입을 주제로 한 ‘Dirty Vote’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가 유튜브를 통해 방영된 것이다. 단디(Dandhy Laksono)가 만들고 세 명의 전문가가 출현하여 이번 선거의 더러운성격을 폭로한 이 다큐멘터리는 선풍적 인기를 끌며, 며칠 만에 수백만 회가 조회되는 기염을 토했다. 다큐멘터리는 기브란의 부통령 선임 과정, 조코위의 프라보워 지지 표현, 관료와 경찰의 선거 간여, 보조금과 쌀 배포 등 조코위 정부의 비합법적 선거 간여를 보여줄 자료로 구성되었다. 자료 대부분이 이미 알려져 있었고, 선거법 위반을 보여줄 결정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이 다큐는 가졌다. 그럼에도 금기시되었던 정부에 대한 비판을 공론화시켰다는 점은 이 다큐가 지닌 중요성이다. 또한, 선거 후반기 여론 조사를 통해 뚜렷해진 두 경향, 50%에 근접하는 프라보워 지지율의 상승, 간자르를 추월한 아니스의 지지세 상승 추이가 아니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이 다큐가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아니스 지지자에게 제공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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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 조코위의 선심정치를 "pork barrel"에 비유하여 비판한 다큐멘터리 클립


 

대통령 선거 결과


(1) 투개표 과정

인도네시아 선거는 아침 7시에 시작하여 오후 1시에 종결되며, 투표소에서 곧바로 개표가 진행된다. 투표와 관련해서 주목을 받아 온 문제는 선거 관리원의 대규모 과로사와 늦은 결과 발표이다. 특히 5년 전 치러진 선거에서 과로사 문제가 두드러지게 표현되어서, 공식 사망자 수가 9백여 명에 달할 정도였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선관위에서는 신체검사를 통해 선거 관리원을 선발하고 인원을 보강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사망자 수가 대폭 감소했지만, 여전히 그 규모는 백여 명에 이르렀다. 82만여 개의 투표소에서 전체 유권자의 85%17천여만명이 참여한 투표 결과 집계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됨은 큰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선관위의 공식 개표 결과 발표는 선거가 끝나고 한 달여가 지난 320일로 예정되었다.

선거 관리원의 과로사와 더딘 개표율은 선거에 부여된 상징적 의미를 통해 설명될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선거는 오랫동안 민주주의 축제라 불려왔다. 일상에 민주적 관행이 뿌리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선거가 민주주의의 축제임을 보여줄 방식은 개표 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이었다. 따라서, 개표는 과도하게 여겨질 정도로 세심하고 꼼꼼한 절차를 거쳐 진행되었다.

누구나 쉽게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환경이 인도네시아에 정착된 지도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수작업에 의존한 개표 절차는 쉽게 변화될 수 없는 전통으로 확립되었다. 이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개표 과정이 여겨짐으로써 선거 관리원의 과로사나 지연된 개표 결과 발표와 같은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관행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아래는 선관위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개표 결과 스캔 자료로서 82만여 투표소에서 진행된 5종류의 선거 자료 모두가 이런 식으로 업로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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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9> KPU 홈페이지에 업로드된 개별 개표소의 대선 개표 결과 (TPS002, Balecatur, Gamping, Sleman, DIY)


 

투표와 개표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보고되었다. 선거감시위원회(Badan Pengawas Pemilihan Umum)는 이를 19개 범주로 나누어 정리했는데, 가장 많이 지적된 투표소의 늦은개소의 경우, 그 보고 건수가 4만여 건에 달할 정도로 광범위하게 발생했다. 이외에도 투표용지 부족, 미등록 주민의 투표, 중복 투표, 투표자에 대한 위협, 빠른 개표 시작, 참관인 없는 개표, 집계 소프트웨어 미작동 문제가 거론되었다(Muhamad 2024; Yuniarto 2024). 이러한 문제 중 일부는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할 심각한 사안으로 평가될 수도 있지만, 사소한 해프닝처럼 취급되는 경우가 대다수였고, 선거 결과 자체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확대되지 않았다.

부적절한 투개표 절차에 대한 선관위와 선거감시위원회의 대응 역시 그 파급력을 축소할 수 있는 요인 중 하나였다. 투개표 절차에 대해 문제 제기가 이루어진 후 관계 기관의 협의를 거쳐 780여 개 투표소에서 재투표가 실행되었고, 천여 곳에 이르는 개표소에서 재검표가 이루어졌다(CNN Indonesia 2024; Mantalean & Ihsanuddin 2024). 전체 개표소와 비교할 때, 재투표, 재검표가 이루어진 곳은 극소수였다. 그럼에도 제한된 범위이지만 유권자의 불만이 제도적 절차를 통해 해결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선거 공정성에 대한 논란을 잠재우는 데 일조할 수 있었다.

(2) 선거 결과: 출구조사 및 공식 결과

선관위의 공식 선거 결과 발표는 320일로 예정되었다. 하지만, 선거 직후 발표된 십여 개 여론 조사 기관의 출구조사를 통해 선거 결과에 대한 예측이 가능한데, 과거 선거를 보면 출구조사와 선관위의 공식 발표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번 선거에서도 여론조사 기관에서 제시한 출구조사 결과 사이에는 큰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고, 또한, 세 후보의 득표율 격차가 컸기에 출구조사 결과는 실제 개표 결과를 반영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아래는 출구조사 집계율이 95%를 넘은 상황에서 6개 여론 조사 기관이 제시한 결과, 그리고 320일 선관위가 공식화한 결과를 정리한 것이다.

 

<2> 출구조사 및 공식 선거 결과


조사기관

아니스

프라보워

간자르

Indikator

25.32

58.00

16.68

Lembaga Survei Indonesia

25.21

58.16

16.64

Kedai Kopi

24.73

59.21

16.06

Charta Politika

25.66

57.81

16.51

Poltracking

24.37

59.35

16.28

Litbang Kompas

25.10

58.73

16.17

선관위 공식 결과

24.95

58.59

16.47



 

 

<2>를 보면, 출구조사와 공식 선거 결과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프라보워-기브란이 58% 내외, 아니스-무하이민이 25% 내외, 간자르-마흐푸드가 16% 내외를 득표했다. 이는 선거 전 나타난 두 경향, 즉 프라보워-기브란의 꾸준한 지지율 상승, 아니스-무하이민의 꾸준한 지지율 상승 및 간자르-마흐푸드와의 지지율 역전이 선거 결과에 그대로 반영되었음을 시사한다.

아래에서는 3천 명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Indikator Politik의 출구조사 자료를 통해 선거에 영향을 미친 요인을 개괄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이 조사에서 변수로 활용한 성, 연령, 종족, 종교, 교육, 소득, 직업, 거주지역, 지지 정당, 조코위 선호 여부 중 선거 결과와 비교하여 가장 적은 변이를 보인 요인은 성별 차이로서 프라보워를 선택한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는 3% 정도의 차이가 나타났다. 연령별 투표 결과는 가장 큰 격차를 보였는데, 그 결과는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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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0> 출구조사: 연령대별 투표 현황


 

프라보워-기브란은 27세 이하 젊은 층에서 평균 득표율(58%)10% 이상 상회하는 표를 획득한 반면, 간자르의 득표율은 60세 이상에서 아니스보다 높게 나타났다. 군부와 수하르토라는 구시대적 특성을 지닌 프라보워가 젊은 세대의 높은 지지를 받은 점은 유권자의 표심에서 나타난 가장 특징적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앞의 선거 유세 자료와 연결하면, 프라보워의 선거 전략이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도 평가될 수 있다.

연령별 자료와는 모순되어 보이는 듯한 결과가 교육 수준별 투표 경향에 나타나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교육을 받은 유권자 사이에서 아니스에 대한 지지가 높아지는 모습이 나타나는데, 아래는 학력에 따른 투표 결과를 정리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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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1> 출구 조사: 학력별 투표 현황


대학교 재학 및 졸업자 집단에서 아니스에 대한 지지율은 36.4%로서, 그에 대한 평균 지지율을 10% 정도 넘어서며, 초등학교 학력 집단 사이에서는 아니스에 대한 낮은 지지, 간자르에 대한 높은 지지가 표현되었다. 20대의 대학 진학률이 2020년대에 접어들어 30%에 육박하기에 이들은 다른 연령 집단에 비해 높은 학력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이 자료는 27세 이하 집단에서나타나는 70%에 이르는 프라보워에 대한 지지와는 차별적 성격을 드러낸다.

아니스에 대해 고학력자들이 높은 지지율을 보임으로써, 아니스는 4백만 루피아 이상의 고소득자에게서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33.2%)을 얻었으며, 그가 가장 높은 지지를 얻은 직업군은 공무원/선생과 교수/전문가 집단(30.0%)이었다. 간자르 지지층은 이와 대비되는 속성을 지녔다. 간자르가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받은 집단은 백만 루피아 이하 집단(18.8%)이었고, 농업, 어업, 축산업 종사자로부터 21.3%의 지지를 얻었다. 프라보워에 대한 가장 높은 지지는 학생에게서 나타나서, 그 지지율이 67.2%에 이르렀는데, 이는 그에 대한 20대의 높은 지지율과 같은 선상에 놓여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아니스에 대한 지지가 30대 이상의 대학졸업자에게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는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선거의 주요 변수로 여겨지는 또 다른 요소는 지역이다. 자바를 놓고 보면, 아니스가 서부 자바 지역에서, 간자르가 중부 자바에서 높은 득표율을 보였지만, 동부 자바에서 프라보워의 득표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자바 외부 지역에서는 수마트라를 제외하면, 프라보워가 58% 이상의 지지율을 얻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래는 득표율이 높은 순서로 본 프라보워와 아니스의 지역별 득표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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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2-1> 출구 조사: 프라보워에 대한 지역별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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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2-2> 출구 조사: 아니스에 대한 지역별 투표


지역별로 보면, 프라보워는 칼리만탄, 말루쿠-파푸아, 술라웨시, 발리-누사 틍가라 등 수마트라를 제외한 자바 외부 지역에서 높은 득표율을 얻었다. 반면, 아니스는 자카르타, 반튼, 서부 자바, 그리고 수마트라에서 높은 득표를 했다. 이런 경향과 대비되는 양상은 동부 자바에서 프라보워가 기록한 높은 득표율이다. 아니스의 부통령 후보인 무하이민이 동부 자바를 기반으로 하는PKB 당수라는 점, 과거 선거에서 PDI-P가 동부 자바에서 높은 득표율을 유지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프라보워의 높은 지지도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지역별 선거 추세에서 나타나는 또 다른 특이한 점은 자바 외부 지역 중 수마트라에서 아니스가 획득한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이다. 이는 종족별 선거 추이에도 일부 반영되었는데, 출구조사 결과에 제시된 7개 종족 중, 서부 수마트라를 기반으로 한 미낭카바우(Minangkabau) 출신자들 사이에서는 이례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미낭카바우 출신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아니스-무하이민에 대한 지지율은 61.4%로 나타나서, 프라보워-기브란에 대한 36.8%를 월등히 추월하는 모습을 보였다. 과거 선거에서 PKS의 정치적 영향력이 서부 수마트라에서 강하게 표출되었음을 고려해보면 일견 이해될 수 있는 결과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압도적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추가적 분석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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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3> 출구조사: 미낭카바우 출신자 투표 현황

 

지역과 함께 인도네시아 선거의 주요 변수로 여겨진 요소는 종교, 특히 이슬람 내의 분파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이러한 흐름이 일부 나타났지만, 이보다 더욱 뚜렷한 차이가 무슬림과 비무슬림 사이에서 나타났다. <그림 14>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무슬림 후보 지지율은 전체 지지율과 유사한 흐름을 보였다. 반면, 비무슬림 사이에서는 프라보워 후보가 평균을 조금 넘어서는 득표를 한 반면, 아니스 후보에 대한 지지는 3.5%, 간자르 후보에 대한 지지는 33.1%로서 두 후보 간 차이가 뚜렷했다. 이를 설명할 하나의 요소는 2017년 자카르타 주지사 선거에서 아혹(Ahok)과 경쟁한 아니스에게 부여된 급진적 이슬람의 이미지이다.8)

이슬람 단체 중 NU를 지지하는 유권자의 투표 경향은 전체 투표 흐름과 유사했지만, 무함마디야와 다른 이슬람 단체 지지 무슬림 사이에서는 일정한 차이가 나타났다. 아니스 후보에 대한 지지는 34.7%, 간자르 후보에 대한 지지는 10.2%로서, 전체 투표 결과와 비교할 때 아니스에 대한 지지가 높았다. 대선 후보 선택과 관련되어 무함마디야가 중립을 표명했음을 고려하면, PKS 소속 무슬림의 높은 지지도가 반영된 것이라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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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4> 출구조사: 종교별/소속 종교단체별(무슬림) 투표 현황

 

요약하면, 유권자의 투표 경향 중 흥미로운 현상은 아니스 후보에 대한 지지가 고학력층 사이에서 강하게 표출됐고, 프라보워에 대한 지지가 20대에서 강하게 드러났다는 점이다. 지역적으로는 프라보워의 높은 지지세로 인해 자바-자바 외부 구분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아니스 후보의 경우 자바 서부를 중심으로 강한 지지세를 보였고, 프라보워는 자바 외부에서 평균 이상의 득표를 기록했다. 무슬림과 비무슬림 사이에서 나타나는 격차 역시 종교와 정치의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추가적인 분석이 요구되는 현상이다.

 

 

국회의원 선거 결과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2019년보다 5석 늘어난 580명의 국회의원을 선택했다. 대통령 선거에서 나타난 프라보워의 압도적 승리가 국회의원 선거에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예상할 수 있지만, 국회의원 선거 결과는 대선 결과와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대통령 선과와 달리 이번 국회의원 선거 결과가 2019년과 일정 정도의 유사성을 띤다는 점이다. 아래에는 2019년 득표율 순위를 기준으로 정리된 9개 원내 정당의 득표율 및 의석수가 제시되어 있다.

 

<3> 출구조사: 9개 원대 정당의 득표율


 

득표율

의석수(비율)

의석수

2019

2024

2019

2024

2019

2024

PDI-P

19.3

16.7

22.3

19

128

110

Gerindra

12.6

13.2

13.6

14.8

78

86

Golkar

12.3

15.3

14.8

17.6

85

102

PKB

9.7

10.6

10.1

11.7

58

68

Nasdem

9.1

9.7

10.3

11.9

59

69

PKS

8.2

8.4

8.7

9.1

50

53

Demokrat

7.8

7.4

9.4

7.6

54

44

PAN

6.8

7.2

7.7

8.3

44

48

PPP

4.5

3.9

3.3

0

19

0



프라보워를 지지한 선거연합에는 Gerindra, Golkar, Demokrat, PAN 등 네 개 정당이 포진해 있었다. 2019년과 비교할 때 이들 정당의 득표율에서는 일정한 차이가 나타났다. Golkar의 득표율이 3%, Gerindra0.6% 정도 증가해서 두 정당 간 순위 역전이 발생했다. DemokratPAN의 득표율은 0.4%의 증감을 보였다. 이러한 변화만을 놓고 본다면, 2019년 선거 결과가 2024년에도 큰 변화 없이 유지되었다고 평가해도 무리가 없는 듯하다. 프라보워가 대선에서 압승을 거두었음에도 Golkar보다 Gerindra의 득표율 상승이 적었다는 점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큰 패배를 맛본 정당은 PDI-P이다. 이는 국회의원 선거에도 일정 정도 투영되어서 PDI-P9개 정당 중 득표율이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그럼에도 제1당으로서의 위치는 고수할 수 있었다. 아래는 Indikator Politik의 출구조사를 통해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나타난 PDI-P에 대한 지지도를 지역적으로 비교한 자료이다.

<4> 출구조사: 간자르와 PDI-P의 지역별 득표율


지역

PDI-P 득표율

간자르 득표율

격차

Kalimantan

13.4

4.7

+8.7

Jawa Timur

23.1

19.8

+3.3

Sumatera

11.4

8.8

+2.6

Sulawesi

7.9

6.7

+1.2

Jakarta

17.2

16.2

+1

Jawa Barat

12.5

11.5

+1

Banten

5.1

5.6

-0.5

Bali-Nusa Tenggara

24.3

26.3

-2

Maluku-Papua

9.6

18

-8.4

Jawa Tengah-DIY

30.4

38.6

-8.4

득표율 차이가 가장 큰 지역은 칼리만탄, 말루쿠-파푸아, 중부자바-죡자로서 ±8.5% 내외이다. 인구로 본다면, 중부자바-죡자의 경우 Ganjar 득표율과 PDI-P 득표율 차이는 23십만 명에 달할 정도로 그 규모가 컸다. 1% 내외의 차이를 보인 곳이 네 개 지역 있음에도, 이 자료는 PDI-P 지지자들의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택에 있어 일정한 차이가 존재했음을 시사한다.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지역적 상황이 더욱 강하게 작동할 여지가 높다는 점이 이러한 차이를 가져왔으리라 추정된다.

두 선거에 대한 유권자의 차별적 인식은 Indikator Politik 출구조사에서 진행한 후보 선택 시 정당 고려 여부를 묻는 질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참여 응답자 중 31.8%만이 대통령 후보와 국회의원 후보를 정당에 기초하여 선택했다고 답했으며, 64.9%는 교차 투표를 했다고 응답했다. 이 자료는 국가적 수준과 지역적 수준에서의 정치적 다이나믹스가 차별적으로 선거에개입했음을 시사하며, 지역에 밀착된 주의회 의원 및 시도의회 의원 선거 결과에 대한 추가적 분석을 요구한다.

 

나가는 글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가장 큰 이변은 프라보워의 압승이다. 선거 후반 여론 조사에서 상승세가 뚜렷하게 나타났지만, 그가 60%에 이르는 지지율로 1차 선거에서 결과를 확정지으리라 예상한 경우는 많지 않았다. 특히 202310월까지 그의 지지율과 간자르의 지지율이 큰 격차를보이지 않았기에 이번 압승을 예상하기는 쉽지 않았다.

선거 국면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이번 선거에 미친 조코위의 영향력을 부정하기는 쉽지 않다. 장남인 기브란을 부통령 후보에 선임시켰을 뿐 아니라, Dirty Vote 다큐멘터리를 통해 드러나듯, 그는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유무형의 자원을 동원하여 프라보워의 당선을 지원했다. 이런 의미에서 프라보워의 압승은 조코위의 승리이며, 그의 정치적 영향력을 지속할 기반을 차기 정부에서 확보했다고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조코위의 강력한 지원을 통한 당선이 프라보워의 조코위에 대한 의존성을 지시한다고 평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프라보워가 독자적 세력을 보유하고 있고, 오랫동안 권력을 꿈꿔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경력은 그가 독점적 권력을 강화할 충분한 의지와 역량을 갖추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프라보워의 선거 승리에 대해 대다수 국외 정치 분석가들은 권위주의 강화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Chen 2024; Tripathi 2014).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특징 중 하나는 정치 왕조(political dynasty)의 강화이다. 법 규정을 무리하게 변경하여 기브란을 부통령으로 선임했음에도 프라보워에 대한 지지도가 상승했음은 정치인뿐만 아니라 일반인 사이에서도 특정 가계를 중심으로 한 왕조식 정치가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짐을 시사한다. 기브란 외에도 이번 선거에서는 왕조식 정치의 확장을 보여줄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조코위의 두 번째 아들의 PSI 당수 추대, 메가와티의 손녀 Pinka Hapsari의 중부 자바 제4 선거구 국회의원 1순위 공천, Gerindra 부당수이며 프라보워의 질녀인 Rahayu Saraswati의 자카르타 공천, Golkar 당수인 Airlangga 아들의 서부 자바 공천, PAN의 당수인 Zulkifli Hasan 딸의 Lampung 공천 등은 왕조식 정치가 확대 재생산되고 있음을 예시한다(Sabangmerauke 2024).

정치 왕조의 확장과 달리 종교나 종족을 중심으로 한 정체성 정치가 강하게 대두되지 않았음은 이번 선거의 또 다른 특징이다. 이는 이슬람 세력이 이번 선거의 핵심으로 부상하지 못했다는 사실과 일정 정도 연결된다, 아니스를 지지한 PKS, 그리고 선거 중립을 선언한 NU와 무함마디야가 이번 선거에서 뚜렷한 논쟁점을 만들어내지 못했음은 정체성 정치가 이슬람 내 분파 간 대립을 통해서가 아니라 다른 종교, 특히 기독교를 통해 그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조코위 정권이 임기 중반을 넘기면서 권위주의 강화에 대한 우려가 학계와 시민 사회를 중심으로 제기되었다(신재혁·박희경 2021; 이지혁 2022). 이러한 우려는 국가 기관을 통한 조코위의 선거 간여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프라보워의 당선은 이러한 흐름이 더욱 강하게 확립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권위주의 흐름 속에서도 절차적 차원의 민주주의가 유지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가 정치적 영향력을 독점한 정치 세력의 부재, 그리고 이로 인한 정치 세력 간 타협과 연대였다면, 프라보워 정권의 수립은 기존의 정치적 균형을 깨뜨릴 힘을 가진 새로운 변수이다. 따라서, 향후 프라보워 정권과 기존 정치 세력과의 역학 관계가 인도네시아 민주주의의 진로를 결정할 핵심 요소로 부각했다고 평가될 수 있다.

 

 

* 각주

1) https://www.youtube.com/watch?v=01olcFa7iRc

2) 2022년 후보별 지지율 추이에 대해서는 정정훈(2023)을 참조할 것.

3) Wikipedia. “Hasil Survei Pemilihan Umum Presiden Indonesia 2024.” https://id.wikipedia.org/wiki/Hasil_survei_pemilihan_umum_Presiden_Indonesia_2024

4) 토론회 결과에 대한 여론 조사를 보면, 아니스가 약간의 우위를 보였지만, 프라보워와 큰 차이를 나타내지는 못했다. 간자르 후보의 경우 다른 두 후보보다 지지도가 낮게 드러났다(Caritau 2023).

5) 세 후보간 공약차이에 대해서는 신민이(2024: 5-9)를 참조할 것.

6) https://www.statista.com/statistics/255235/active-social-media-penetration-in-asian-countries/;https://www.statista.com/statistics/1128147/apac-daily-time-spent-using-social-media-bycountry-or-region/

7) 틱톡을 통한 프라보워의 선거 전략에 관해서는 Wahid(2024)를 참조할 것.

8) 자카르타 선거를 둘러싼 아혹과 아니스의 대립과 그 결과에 대해서는 김형준(2020), 이지혁(2018)을 참조할 것.

 

* 참고문헌 및 출처는 원문을 참고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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