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2.04.28
수정일
2023.01.04
작성자
동남아연구소
조회수
735

[19] 인도네시아 노동운동과 복지의 정치: 현지의 노동 전문 연구자 인터뷰 ㅣ 프란시스쿠스 조요아디수마르타·전제성

[19] 인도네시아 노동운동과 복지의 정치: 현지의 노동 전문 연구자 인터뷰 ㅣ 프란시스쿠스 조요아디수마르타·전제성 첨부 이미지


초록


2010년대 인도네시아의 노동계급은 복지 발전을 위한 ‘역사적 행위자’ 역할을 수행하였다. 노동운동은 계급적 동원과 광범한 연대를 통해 보편적 건강보장제도의 출범을 요구하고 실현하는데 공헌하였다. 이런 복지 개혁의 노동 정치에 관하여 현지의 노동연구 전문가 프란시스쿠스 조요아디수마르타의 견해를 이메일과 줌 미팅을 활용하여 들어보았다. 그는 개념적으로 익숙하지 않았던 보편적 건강보장과 사회보장에 관하여 전개된 노동운동 내부의 논쟁을 소개하고, 이렇게 상이한 이념적 배경에 기반을 둔 담론 경쟁과 상호 작용이 사회보장관리공단법의 제정에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한다. 여전히 많은 개선이 필요하지만 이 법의 제정과 공단의 출범으로 노동자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들에게 보편적인 의료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성취는 메이데이를 맞이하며 우리가 들어볼만한 노동계급의 ‘성공 스토리’ 중에 하나라 할 수 있다. 이는 또한 민주주의가 민중들에게 실질적인 이득을 제공하고 있다는 인도네시아발 ‘좋은 뉴스’ 가운데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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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의 구상과 과정


전제성: 중간 소득 지대에 머무는 인도네시아에서도 복지제도가 발전하고 있다. 국가사회보장제도법과 사회보장관리공단법의 제정, 이에 근거한 공단들의 설립은 복지 개 혁과 전진의 징표이다. 특히 2014년 전국민 대상의 건강사회보장관리공단의 설립은 세계 최대 군도국가이자 제4위 인구대국 인도네시아에서 보편적 건강보장(UHC: Universal Health Coverage)을 향한 본격적인 항해를 출범시킨 역사적 사건이었다. 더구나 “세계 최대 단일 보험자” 건강보험의 형성이라는 거대한 계획(브릿넬 2016)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노동운동이 계급적 동원과 초계급적 연대를 통해 국회와 정부를 상향식으로 압박함으로써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복지 개혁 정치의 선봉에 섰던 인도네시아 노동운동 이야기를 현지의 전문가 인터뷰 형식으로 국제노동절(May Day)을 기념하여 공유하고자 한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프란시스쿠스 조요아디수마르타(Fransiscus S. Joyoadisumarta, 개명 이전은 FX Supiarso) 박사는 인도네시아 현지의 노동운동 전문연구자이자 사회복지학 박사다. 국립인도네시아대학교(Universitas Indonesia) 사회복지학과에서 학사, 석사(고용 안전 보건연구)학위를 받고, 보르네오섬 서부칼리만탄의 팜유 경작자들의 노동과 복지 상황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Media Sumutku 2019.06.09). 그는 아동노동 관련 단체 근무를 시작으로 1990년대 중반부터 국내외 여러 노동 인권 단체에서 일하며 노동현장과 노동운동을 오랫동안 관찰해 왔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국제공공부문노동조합연맹 아시아태평 양지부(Public Service International-Asia Pacific)의 프로젝트담당관으로 근무하였고 당시 관여한 인도네시아 공공부문노동조합연맹의 탄생 과정을 한국에 소개하기도 했다(수삐아르소 2011). 지금은 자카르타의 조사연구자문기관 시너지폴리시스(Synergy Policies)의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노동 현장과 운동에 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우리의 인연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부자바 현지조사 중에 들렀던 독립노동조합연합(GSBI: Gabungan Serikat Buruh Independen) 사무실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필자는 1998년부터 알고지낸 위원장을 면담하러 갔고 그는 미국 노동권컨소시움(Workers Rights Consortium)의 조사관으로 방문하고 있었다. 이 노조연합의 위원장은 한인이 소유한 신발공장과 봉제공장의 지부들이 분쟁 중인데 경영자들이 만나주지 않아 협상을 진행하기 어렵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프란시스쿠스는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업체들(OEM: Original Equipment Manufacturer)의 노동문제에 관심과 압력을 가하는 미국과 유럽의 소비자운동단체들이 자신과 같은 현지 조사관을 고용하여 노동인권 실태를 상시 모니터링하는 활동 수준에 달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필자는 노사분규 중인 두 기업의 한인 공장장에게 노동자들의 불만과 요구를 전달하고 대화와 협상 없는 교착상태의 위험성도 이야기했다. 이런 계기로 프란시스쿠스와 친분이 생겼고 그로부터 지금까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인도네시아 노동 실태와 운동에 관해 의견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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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사회보장 개혁과 노동운동의 공헌에 관한 인터뷰는 2019년 9월 6일 금요일 점심 때 자카르타의 빠당음식점에서 시작되었다(사진 1). 이 사안이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필자도 인도네시아에서 2004년에 메가와티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날 국가사회보장법을 인준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전제성 2007), 사회보장제도의 실행을 담당할 사회보장관리공단에 관한 법 제정이 지체되자 노동자들이 2011년 메이데이 때 보건과 연금 문제를 중심 의제로 삼는 대규모 시위를 전개했다는 소식을 한국에 전한 바 있다(전제성 2011). 당시 복지 개혁의 설계 과정에 관하여 복지 정치 전문가의 논문을 필자가 편집하는 저널 특집호에 투고받아 한글로 번역 수록한 적도 있다(디나 위스누 2011). 사회보장연대행동을 주도한 활동가 수리야 짠드라로부터 무용담을 들었었고 그런 내용을 소상하게 정리한 그의 논문도 읽었다(Surya Tjandar 2014). 보편적 건강보장 제도를 출범시키는데 노동운동과 시민사회의 기여가 컸다는 학술적인 연구 논문들도 에드워드 아스피날(Edward Aspinall 2014), 정은숙(Eunsook Jung 2016)과 앤드류 로서(Andrew Rosser 2017)같은 부지런한 인도네시아연구자들이 이미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프란시스쿠스가 들려준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거나 생각해보지 않았던 내용들을 담고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추가 인터뷰를 통해 좀 더 정리된 방식으로 그의 견해를 들을 필요를 느꼈고, 작년에 두 번에 걸쳐 이메일로 인도네시아어 질의 응답을 주고받았다. 필자의 질문에 대한 답신을 2021년 8월 20일에 받았고 추가 질문을 보내 8월 27일에 추가 답신도 받았다. 필자는 지난 인터뷰 내용을 한글로 초역한 뒤에 줌 회의(Zoom meeting)를 활용한 화상 인터뷰를 2022년 4월 18일 오후에 진행했다. 이렇게 네 차례 진행된 인터뷰를 조립하고 간추린 결과가 이번 이슈페이퍼의 중심 내용이다.


인터뷰 주요 내용 


전제성(이하 전): 인도네시아에서 국민건강보험 제도의 형성에 노동운동의 기여가 컸다는 주장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프란시스쿠스 조요아디수마르타(이하 프): 인도네시아의 노동운동은 인도네시아의 보편적 건강보장 제도의 발전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노동운동은 모든 국민에게 예외 없이 건강보험을 제공한다는 국민건강보험(JKN: Jaminan Kesehatan Nasional) 제도의 형성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공헌을 했습니다. 국민건강보험은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Megawati Sukarnoputri) 대통령 집권 말기에 제정된 국가사회보장제도(Sistem Jaminan Sosial Nasional)에 관한 2004년 제40호 법(이하 SJSN법)에 이미 명시되었습니다. 이 법에 따르면 시행 이후 늦어도 5년 이내에 사회보장관리공단(Badan Penyelenggara Jaminan Sosial, 이하 BPJS)을 구성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니까 차기 정권인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Susilo Bambang Yudhoyono) 정부가 이 공단을 2009년까지 설립해야 한다는 뜻이었지요. 그런데 공단 설립이 (법적 시한을 넘기며: 역자) 계속 지체되자 노동운동은 SJSN법의 구현을 위해 시위를 전개하고 정책을 제안하고 초계급적 연대를 형성하며 유도요노 정권에게 압력을 가해 결국 사회보장관리공단에 관한 2011년 제 24호 법(UU BPJS)이 제정되도록 합니다. 

그런데 저는 국민건강보험제도가 BPJS의 설립에 찬성하는 노동운동 뿐만 아니라 반대하는 노동운동의 영향력도 작용한 노동운동 전체의 산물이라고 봅니다. 이런 점에서 저의 시각은 다른 선행 연구자들의 해석과 약간 다릅니다. 노동운동 내부에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상이한 입장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우선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보장제도, 특히 사회보장관리공단법의 탄생을 설명하려면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노동운동 내부의 시각 차이뿐만 아니라 이런 상이한 노동운동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한 더 내밀한 탐구가 필요합니다. 

: 국민건강보험제도가 단일한 공단 설립에 찬성하는 노동운동뿐만 아니라 반대하는 노동운동의 의견까지 반영된 결과라는 새로운 해석을 제안하셨는데, 국가사회보장의 추진 방향에 관해 노동운동 내부에서 입장이 어떻게 갈렸다는 것인가요? 

: 당시 저는 노동운동이 사회보장(jaminan social) 개념에 관해 세 가지 의견으로 나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첫 번째는 급진적(radikal) 견해입니다. 이 의견은 국가가 국민의 건강을 보장해야 한다는데 동의합니다. 그런데 건강보장의 비용은 국가에서 지불해야 하며 국민은 조금이라도 비용을 지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그들은 국가 예산이 건강보험 자금을 조달하기에 충분하다고 보았습니다. 국민들로부터 징수한 세금으로 무상의료제공을 위한 자금을 충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국가는 부패로부터 깨끗하고 더 효율적으로 정부 행정을 관리하여 무상의료 서비스를 위한 충분한 자금이 확보되도록 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전국민이 가입해야 하고 보험료(iuran)를 납부해야 하는 사회보험(asuransi sosial) 방식의 국민건강보험을 거부하고, 사회보험 모델에 입각한 사회보장관리공단(BPJS)의 설립도 반대하였죠. 그들은 사회보험 모델이 국가로 하여금 국민들의 건강을 보장할 책임을 방기하게 만든다며 거부했습니다. 

두 번째 견해는 중도적인(moderat) 것으로서, 국가가 국민들에게 건강보장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는데 동의하지만, 그 보장제도는 지속가능하고 독립적이어야 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지속가능하다는 것은 사회보장 기금이 항시 사용 가능해야 함을 의미하고, 특히 경기가 침체하거나 쇠퇴할 때도 그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지속가능성 개념은 사회보장 시스템의 독립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사회보장 시스템은 정치적 역학과 이해 관계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사회보장 기금은 국민으로부터 나와야 하고 국민들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기금은 국민들의 회비로 조성되고, 통제는 노동자, 고용주, 정부 및 시민의 대표로 구성되는 독립적인 위원회에 의해 직접 수행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런 견해를 가진 측은 BPJS를 사회보장제도를 운영하는 기관으로 신설하는 안을 지지하였습니다. 

세 번째 견해는 현상유지(status quo) 입장입니다. 국가가 국민의 건강을 보장할 의무가 있지만, (공무원, 군경, 노동자들의 의료보험과 연금보험을 각기 운영하는: 역자) 네 개의 국영 보험사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방안에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이런 견해를 가진 이들은 국가의 건강보장 책임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새로 마련된 사회보장프로그램인 빈민건강보험제도(Askeskin: Asuransi Kesehatan Masyarakat Miskin)의 운영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합니다. 국영기업(BUMN: Badan Usaha Milik Negara)이 아니라면 제도 운영의 방향이 불명확해질 수 있다고 우려하며 기존의 4개 국영보험사를 하나의 기관으로 통합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현상 유지파는 급진파와 함께 BPJS의 설립이 서구 자본주의 체제의 확장이라고 의심했습니다. BPJS를 통해 주권을 빼앗으려는 서방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작동할 수 있다면서, 만약 BPJS가 설립된다면 국영기업이여야만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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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운동 내부의 사회보장 견해 차이를 이해하려면 민주화 이후 여러 노동조합연맹들이 경쟁적으로 분립하는 양상도 알고 있어야 되겠네요. 한국인 독자들을 위해 인도네시아 노동조합의 복잡한 스펙트럼을 간략히 소개해주세요.

: 인도네시아의 사회보장 담론은 노동운동의 구조적 변화와 함께 발전해 왔습니다. 사회보장 담론이 전개되던 당시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은 1965년부터 1998까지 지배했던 독재정권 이 무너진 이후 펼쳐진 개혁시대(Reformasi)의 산물이었습니다. 개혁시대 이전인 권위주의 체 제의 노동운동은 수하르토(Suharto)의 신질서(Orde Baru) 체제를 지지하는 집단과 거부하는 집단으로 단순하게 나눌 수 있었습니다. 정부를 지지하는 인도네시아전국근로자조합연맹(Federasi Serikat Pekerja Seluruh Indonesia, 이하 FSPSI)을 한 편으로 하고, 이에 맞서는 독립 노조들 — 인도네시아번영노동조합(SBSI: Serikat Buruh Sejahtera Indonesia), 인도네시아노동자전국전선(FNPBI: Front Nasional Buruh Indonesia), 독립노동조합연합(GSBI: Gabungan Serikat Buruh Independen), 그리고 어느 연맹에도 속하지 않은 지역노조들과 기업단위노조들 — 이 다른 한 편에 있었습니다. 이런 독립 노조들은 FSPSI가 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하지 않았기 때문에 설립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1) 

1998년에 시작된 개혁시대를 거치며 조직노동의 수가 점점 더 늘게 됩니다. 신질서 체제의 몰락은 당시 유일하게 공인된 노동조합이었던 FSPSI로 하여금 후원자(patron)와 방향성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FSPSI 내에서 수직적, 수평적 갈등이 발생합니다. 수평적 갈등은 FSPSI 연맹 내에서 자신이 가장 정통성 있는 지도자라고 주장하는 두 명 혹은 세 명의 위원장이 복수로 출현하는 양상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수직적 갈등은 FSPSI에 속한 여러 업종노조들이 휘하의 사업장단위 노조들과 함께 탈퇴하는 방식으로 발현됩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결사의 자유 에 관한 국제노동기구(ILO: 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87호 협약을 1998년에 인준하자 FSPSI 산하의 13개 업종노조가 탈퇴합니다. FSPSI를 탈퇴한 13개 업종노조는 국제자유노동조합연합(ICFTU: The International Confederation of Free Trade Unions)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개혁인도네시아전국근로자조합연맹(FSPSI Reformasi)을 결성합니다. FSPSI에 잔류한 업종노조들은 2001년에 연맹을 총연맹(Konfederasi)으로 격상시키고 명칭도 인도네시아전국근로자조합총연맹(KSPSI)으로 바꿉니다. 

분리 독립은 각 업종노조들이 수거한 조합비를 중앙 조직으로 상납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관리할 수 있으므로 경제적으로 유익한 선택입니다. FSPSI 산하 업종노조 중에 조합원 결속력이 강하고 조합비가 많은 금속전자업종근로자조합(Serikat Pekerja Logam Elektronik dan Metal)은 1999년에 인도네시아금속근로자조합연맹(FSPMI: Federasi Serikat Pekerja Metal Indonesia)으로 분리독립하고, 2003년에 인도네시아전국근로자조합총연맹(KSPI: Konfederasi Seluruh Pekerja Indonesia)으로 발전시켰습니다.2) 마찬가지로 섬유의류가죽 업종근로자조합(TSK: Tekstil, Sandang dan Kulit SPSI)도 1999년에 분리독립하고 KSPI 창립에 참여했으나, 2003년에 탈퇴하여 전국근로자조합(SPN: Serikat Pekerja Nasional)을 따로 설립했습니다. 

: 민주화 이후 사업장 단위 노동조합도 많이 설립되었죠. 사회보장 개혁의 중요한 행위자인 국영기업 노조도 레포르마시(개혁) 시대에 탄생했지요? 

: 수하르토 퇴진 이후에 부여된 결사와 조직의 자유는 기업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조직을 설립하도록 동기를 부여했습니다. 이 때 주목할 만한 현상 가운데 하나는 국영기업(BUMN) 노동조합의 설립입니다. 신질서 체제 하의 국영기업 노동자들은 인도네시아공화국공무원단(KORPRI: Korps Pegawai Republik Indonesia)의 일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국영기업이 국가 예산에 의존하지 않고 이윤 지향적이도록 권장하는 경제 구조 조정을 추진하였습니다. 국영기업의 법적 지위는 주식회사(perusahaan persero)가 되었고 노사관계는 노동법에 근거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KORPRI의 지부들은 기업별 노동조합으로 변하게 됩니다. 

급진적인 노동조합들은 대체로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합니다. 그들은 이념적으로 암묵적이든 명시적이든 경제를 관리하는 국가의 큰 역할을 요구하고 시장에 맡겨두는 시스템을 거부합니다. 그런데 공공부문 노동조합들도 국제금융기구들이 인도네시아에 돈을 빌려주면서 요구하는 구조조정 패키지의 일환인 민영화(privatisasi) 경향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3) 

: 공식부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던 근로자사회보장보험사와 노동조합연맹들의 관계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신질서 시대에는 체제를 지지하는 FSPSI노조 간부들에게 전국과 도(kabupaten) 단위의 임금위원회(Dewan Pengupahan) 같은 노사정 3자조정기구(lembaga tripartit)에 자리를 주는 혜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근로자사회보장보험사(Jaminan Sosial Tenaga Kerja, 이하 Jamsostek)의 자금 운영을 책임지는 운영위원 자리도 선사되었던 것이지요. 잠소스텍(Jamsostek)은 FSPSI의 간부들에게 높은 자리, 임금이나 시설이용권을 제공했습니다. 

민주화 이후 많은 노동조합들이 영향력을 강화하려고 경쟁하며 갈등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 회사에 두 세개의 노조가 있다 해도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이런 경쟁은 기업 수준만이 아니라 노사정 3자 조정기구에서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Jamsosek의 위원회(Komisaris) 같은 3자 조정기구는 매우 정치적입니다. 이런 위원회의 노동자 대표 위원 자리는 집권 정부에 의해 결정 되었기 때문입니다. 노동조합이 집권 정부와 가까울수록 그 간부가 노동자 대표 위원이 될 가능성도 커집니다. 2007년부터 2012년 기간 동안의 노동자 대표 위원은 인도네시아번영노동조합 총연맹(KSBSI)의 전위원장 렉손 실라반(Reskon Silaban)과 인도네시아전국근로자조합총연맹(KSPSI) 위원장 슈쿠르 사르토(Syukur Sarto)였습니다. 

: 이렇게 복잡하고 경쟁적인 양상의 인도네시아 노동조합운동이 복지 투쟁에 다함께 관심을 갖게된 계기는 무엇이죠? 

: 인도네시아의 노동조합운동은 1998년에서 2004년 사이의 전환기에 사회보장 개혁 담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노동조합들은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에 통과된 국가사회보장법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 법은 제정 과정에서 큰 반대에 직면하지도 않았습니다. 노동운동은 사회보장법 제정 이후에 사회보장 담론에 주목하기 시작합니다. 노동조합 간부들과 노동운동가들은 국가사회보장법 제정에 참여했던 사회보장 전문 연구자와 활동가들이 국가사회보장법 제정의 의의와 BPJS 설립 필요성을 설명하는 사회화(sosialisasi) 과정에 초대되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국가사회보장법 제정에 기여했던 전문가들은 2009년까지 사회보장관리공단법이 제정되어야 하지만 유도요노 정부가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 문제의식을 갖고 이를 알리는 사회화 작업을 수행했습니다. 당시 상황은 참여하고 관찰 했던 사회보장 연구자 디나 위스누(Dinna Wisnu 2013: 133-136)의 책에 잘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 노동조합들은 곧 국가사회보장제도에 대한 지지와 반대로 입장이 갈리게 됩니다. 

: 사회보장 개혁에 대해 반대한 노동조합들은 어떤 조직들이고 왜 반대하였나요? 

: 급진적 노조들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그들의 비판적 태도를 사회보장제도 반대 논리에 적용하였습니다. 새로운 사회보장제도를 반대한 급진적인 노조들은 독립노조연합(GSBI), 인도네시아전국노동자투쟁전선(FNPBI), 인도네시아독립근로자조합연합(Gaspermindo: Gabungan Serikat Pekerja Merdeka Indonesia), 인도네시아비공식근로 자조합(SPINDO: Serikat Pekerja Informal Indonesia) 등입니다. 

급진적이진 않지만 기존의 근로자사회보장사(Jamsostek)로부터 수혜를 받던 노조들은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입장에서 사회보장개혁에 반대하였습니다. 양대 노총으로 일컬어지는 KSPSI와 KSBSI는 앞서 말씀드렸듯이 Jamsostek의 위원회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존 제도 유지를 지지하는 편향을 보였습니다. 이런 편향은 인도네시아 복지연구자 앤드류 로서(Andrew Rosser 2017: 33)도 지적한 바 있습니다. 전국근로자조합(SPN)은 복지개혁에 미온적이었던 유도요노 대통령의 민주당(Partai Demokrat)을 비공식적으로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SPN의 위원장도 Jamsostek의 위원이 되었고(Bisnis.com 2013.01.21) 사회보장 개혁도 반대합니다. 

현상유지 의견을 취하는 노동조합에 국영기업근로자조합연맹도 포함됩니다. 인도네시아의 국영기업 직원들은 별도로 관리되던 연금 기금의 수혜를 이미 받고 있었기에 연금 기금들을 통합하라는 사회보장관리공단법이 통과되면 자신들이 받을 혜택이 줄어들까 우려했습니다. 근로 자사회보장사(Jamsostek)의 노조는 기존 사회보장제도에 변화가 필요 없다는 의견을 아주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조직 중에 하나였습니다. 이런 노조들의 이해관계는 사회보장보험을 취급하는 4개 국영기업의 합병을 거부했던 회사 이사들의 이해관계와 일치하였습니다. 

: 사회보장제도 개혁을 지지하고 촉구한 노동조합들은 어떤 조직들이고 어떻게 상황을 주도하게 되었나요? 

: 국가사회보장제도법과 사회보장관리공단(BPJS) 신설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하여 급진파와 보수파 사이에 중도파(moderat)로 분류할 수 있는 노조들은 인도네시아근로자조합총연맹(KSPI)과 그 산하의 인도네시아금속근로자조합연맹(FSPMI), 그리고 인도네시아전국근로자조직(OPSI: Organisasi Seluruh Pekerja Indonesia), 직물의류가죽업종근로조합개혁연맹 (FSP TSK SPSI Reformasi) 등입니다. 이 노조들이 사회보장행동연대(Komite Aksi Jaminan Sosial, 이하 KAJS)를 주도적으로 결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연대체가 사회보장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를 펼치며 사회보장관리공단법을 조속히 제정하도록 유도요노 정부와 의회를 압박하는 활동을 아주 적극적으로 전개했습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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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중도파들이 KAJS 설립을 선언하자 BPJS법 초안에 대한 지지와 반대 논쟁이 더욱 거세지기 시작했습니다. KAJS는 5월 1일 국제노동절(May Day)을 맞이하여 임금 인상과 아웃소싱 폐지라는 기존의 요구에 더하여 BPJS법을 즉각 제정하라는 요구를 추가하고 정부와 국회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국제노동절 시위를 포함하여 일련의 노동자 시위에서 금속노련 FSPMI를 필두로 하는 KAJS측 시위대가 다른 노선의 시위대에 비해 수적으로 늘 압도하였습니다. KAJS는 국회(DPR: Dewan Perwakilan Rakyat), 특히 노동문제를 다루는 제9상임 위원회(Komisi IX)에 공개적인 대화를 요청하고 그들의 요구를 적극 투입하였습니다. 이러한 압력은 BPJS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어 법으로 제정되는 2011년 말까지 계속 가해졌습니다. 

물론 현상유지파와 급진파도 시위를 전개했습니다. 메이데이 시위 때 국가사회보장제도법과 BPJS 설립에 반대하는 요구사항을 내걸고 참여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이 시위 이후에 KAJS와 달리 언론이 주목할만큼 많은 시위대를 동원하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KAJS는 정부에 압력을 가하기 위해 2010년 5월부터 2011년 11월까지 많은 시위를 전개했습니다. 이러한 압력은 자카르타뿐만 아니라 전국의 거의 모든 주에서 성사되었고, 특히 금속노련 FSPMI의 지부가 많은 산업지대에서 두드러졌습니다. 

BPJS 법안을 지지하거나 거부하는 노동자들의 요구에 조응하여 국회도 찬성과 반대로 양분됩니다. 반대하는 그룹은 유도요노 정부를 지지하는 정당 연합, 즉 민주당(PD), 통합개발당(PPP), 민족각성당(PKB), 골카르당(Partai Golkar), 복지정의당(PKS) 및 국민수권당(PAN) 소속 의원 들이었습니다. 찬성하는 그룹은 민주투쟁당(PDI-P), 대인도네시아운동당(Gerindra) 및 민심당(Hanura) 등 당시 집권 정부 구성에 참여하지 않은 야당 소속 의원들이었습니다. 

국회의원들과 국회 밖 집단들 사이의 협력은 인도네시아에서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국회의원들은 정부 정책에 관한 질의나 비판의 정당성을 확보하게 해주는 의회 밖의 압력과 시위를 종종 필요로 합니다. 국회의원들과 사회 집단 사이의 협력은 BPJS 법안 심의 과정에서도 발생했습니다. BPJS 법안을 지지하는 KAJS뿐만 아니라 반대하는 노동조합들도 국회의원들과 협력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렇지만 호응 수준은 차이를 보였습니다. KAJS측에 호응하는 국회의원들, 특히 민주투쟁당(PDI-P)의원들이 더 적극적이고 공개적이었습니다. 그들은 KAJS가 주최하는 토론 회에 연사로 참여하고 시위까지 동참했습니다.5) 이런 현상은 현상유지파나 급진파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현상유지파 노동자 집단과 급진파 노동자 집단의 국회와의 협력은 시간이 흐를수록 약해졌습니다. 급진파와 국회의원의 협력이 시들해진 이유는 주로 건강보험을 국가 재정으로 모두 충당해야 한다는 급진파의 시각이 수용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급진파와 국회의원들의 지속적인 협력을 위한 견고한 기반이 없었던 것이죠. 한편 현상유지파는 전투적이지 않았고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의원의 수도 충분히 많지 않았기 때문에 약화되었습니다. 더구나 현상유지파의 주력은 공개적 집단행동에 익숙하지 않은 국영기업 노동자 조직들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정부 지지 정당들 가운데 골카르당(Golkar)과 복지정의당(PKS)이 입장을 바꿔 민주투쟁당(PDI-P) 쪽으로 이동합니다. 결국 유도요노 정부는 사회보험(asuransi social) 모델과 보험료(iuran) 기반의 기금을 활용해 사회보장제도를 구축하는 발상을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4개의 국영보험사가 새로운 BPJS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계획도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KAJS는 국회와 협력하며 집단행동을 통한 압력을 가한 결과 2011년 10월에 사회보장관리공단법을 탄생시킬 수 있었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보장관리공단법이 그것을 지지했던 운동의 일방적인 승리가 아니라 타협적 산물이라고 보시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 BPJS법은 궁극적으로 타협의 산물이었습니다. 공단이 하나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중도파 의견은 법에 반영될 수 없었습니다. BPJS법은 두 개의 공단, 즉 건강사회보장관리공단(BPJS Kesehatan 또는 BPJS I)과 인력사회보장관리공단(BPJS Ketenagakerjaan 또는 BPJS II)을 만들도록 했습니다. 기존의 국영보험사들이 사회보장관리공단으로 통합할 때 재정 실태를 모두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요구도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타협적인 귀결이었습니다. 이 법은 통폐합되어야할 4개 국영보험사의 보고나 감사의 필요성을 강제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국군사회보험사(PT. Asabri: Asuransi Sosial Angkatan Bersenjata Republik Indonesia) 통폐합에 대해 모호하게 처리했습니다. 정치안정을 고려하다 보니 국군사회보험사의 전환 문제를 과감하게 논의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 사회보장관리공단과 기존 국영보험사들의 통합 문제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죠. 

: 사회보장관리공단법은 (공무원과 군경에게 의료보험을 제공하던: 역자) 건강보험사(PT. Askes: Asuransi Kesehatan)가 건강사회보장관리공단(BPJS I: Kesehatan)으로, (공식부문 노동자들에게 보험을 제공하던: 역자) 근로자사회보장사(PT. Jamasostek)가 인력사회보장공단(BPJS II: Ketenagakerjaan)으로 전환되도록 했습니다. 두 전환 모두 기존 국영보험사들이 스스로를 청산할 필요 없이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국가사회보장제도법을 지지하던 세력의: 역자) 요구는 국군사회보험사(PT. Asabri)와 공무원저축연금보험사(PT. Taspen: Tabungan dan Asuransi Pensiun)도 해체하고 인력사회보장관리공단으로 합류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요구는 사회보장관리공단법에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법은 두 공기업의 기능(노후보장 및 연금 프로그램)의 이전만 규정하였습니다. 이 법의 65조 1항과 2항에 늦어도 2029년까지 국군사회 보험사의 연금프로그램과 공무원저축연금보험사의 노후보장저축과 연금 프로그램을 인력사회 보장관리공단에 이전 완료하라고 명시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기업 해산은 명시하지 않아서: 역자) 이 두 국영기업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기능이나 서비스만 사회보장관리공단으로 이전하고 해체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부정부패가 심하기 때문에 군부가 국군사회보장사의 해체를 거부하고 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기업을 해산할 때는 회계 보고의 의무가 있죠. 그런데 국군사회보장사가 22조 루피아(우리돈 약 2조원: 역자)의 손실을 보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습니다. 

: 건강사회보장관리공단(BPJS I)이 운영하는 국민건강보험제도에서도 타협적 양상을 찾아 볼 수 있습니까? 

: “보편적 건강 보장” 개념의 맥락에서 사회보장관리공단(BPJS)의 설립을 거부하거나 지지하는 측의 차이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국민에게 건강보험을 동일하게 제공할 의무가 국가에게 있다는 의견을 공유했습니다. 그런데 급진파는 국민들이 병원이나 의원에서 비용을 지불하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극단적으로 보이는 이런 의견도 BPJS 법의 내용에 영향을 줍니다. BPJS법이 급진파의 요구도 반영된 절충의 산물이라는 해석의 두 가지 근거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BPJS는 지역별건강보험(Jamkesda: Jaminan Kesehatan Daerah)의 존속을 허용합니다. 그리고 국민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국민들에 대한 구체적인 제재를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이 두 가지는 무상의료 서비스가 계속되길 원하고 보험료 납부는 거부하는 급진파의 압력이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지역별건강보험은 지방정부 재정으로 운영되었고 가난한 사람들의 병원 진료비는 면제해주고 있었습니다. 물론 지역별건강보험은 수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국민건강보험에 통합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보험료를 정부가 대신 납부해주는 방식으로 빈곤층 무상의료 제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의 해석은 사회학적이면서도 변증법적인 것으로서 BPJS 법이 그 초안을 지지하는 이들이나 거부하는 이들 어느 한 측의 요구로 100% 채워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BPJS법에서 명시하지 않은 바들을 처리하기 위한 추가적인 시행령들을 필요로 하였고 새로운 사회보장 제도가 효과적이고 신속하게 구현되는데 장애를 유발하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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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질문입니다. 수년간의 복지 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은 결국 더 나은 건강보장을 제공받게 되었다고 보시나요? 비공식부문(sektor informal) 노동자들은 전에 없던 건강보험의 수혜 대상이 되어서 상황이 좋아졌다고 볼 수 있는데, 과거 근로자사회보장보험(Jamsostek)의 수혜를 받던 공식부문(sektor formal)의 노동자들도 더 나은 보장을 받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나요? 앞으로 많은 개선이 필요하지만, 지금 인도네시아 건강보장 투쟁의 드라마를 마친다면 ‘해피 엔딩’(happy ending)으로 끝내도 된다고 보시나요? 

: 물론입니다. 공식부문 노동자들은 사회보장의 대상이었지만 그 보장 내용은 제한적이고 협소했었습니다. 적어도 세 가지 면에서 확실하게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과거 Jamsostek에서 제공하던 건강보험은 노동자 개인에게만 해당되었으나 현행 국민건강보험은 가족까지 포괄합니다. 둘째로 과거의 보험은 적용되는 질병이 상당히 제한적이었지만 현재는 성형과 불임치료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질병 치료에 보험이 적용됩니다. 셋째로, 과거의 보험은 근무지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으나 현재는 어느 지역이든 진료와 투약의 보험처 리가 가능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 프란시스쿠스 조요아디수마르타 박사는 인도네시아의 사회보장 개혁 투쟁에 나섰던 노동 운동의 논쟁, 전략, 연대, 성과와 과제에 관해 이야기해주었다. 국제노동절을 맞이하여 우리가 되새길 점은 인도네시아 복지 발전을 위한 ‘빅뱅’이라 할 수 있는 사회보장관리공단법의 제정을 위해 투쟁한 노동운동이 모든 민중을 위한 ‘역사적 행위자’로서 노동계급이 공헌할 가능성을 증명하였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복지제도 진전에 노동운동의 역할이 제한적이었다는 평가(김영순 2021: 82-88)에 비추어볼 때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의 투쟁과 성취는 더욱 빛난다. 

투쟁을 주도하고 광범하게 연대한 노동자들은 개혁 이후 더 나은 복지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다. 특히 국민건강보험의 출범 이후 공식부문의 노동자들은 기존의 협소한 의료보험과 달리 폭넓은 보장을 온가족이 전국 어디에서나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비공식부문 노동자들과 일반 주민들까지 이런 건강보험의 대상으로 포괄되게 되었다. 물론 충분하진 않다. 국민건강보험의 개선 과제는 시너지 폴리시스(Synergy Policies)가 90여명을 면담 조사하여 발표한 정책브리프에 잘 담겨 있다. 그런데 여기서 또한 주목할 점은 현행 제도의 문제도 노동운동에 기반한 단체들에서 찾아내고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보장행동연대(KAJS)는 사회보장 관리공단(BPJS) 출범이라는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자 자진 해산하면서 BPJS Watch라는 시민사회단체를 결성하고 정책감시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고, 인도네시아근로자조합총연맹(KSPI)은 건강보험감시단(Jamkeswatch)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에 배치한 천여명의 노조원을 통해 모니터링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Dinna Prapto Raharja, Retna Hanani & Fransiscus S. Joyoadisumarta 2021; 표지는 사진 4). 국민건강보험의 출범에 기여한 노동운동이 보편적 건강보장의 진전에 또한 공헌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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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이 복지 투쟁의 전면에 나섰던 동기 중에 하나는 21세기 인도네시아 정치가 내걸었던 사회보장개혁이 모든 국민을 위한 건강보험뿐만 아니라 모든 일하는 이들을 위 한 각종 사회보장까지 약속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비누스대학교(Universitas Binus)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시너지 폴리시스의 소장을 겸하고 있는 복지정치 전문가 디나 프랍토 라하 르자(Dinna Prapto Raharja, 개명 이전은 Dinna Wisnu) 박사는 4월 18일의 화상 인터뷰에 동참하여 상황 이해를 돕는 보충 설명을 해주었고 특히 2015년 출범한 인력사회보장관리공단 (BPJS II)의 과제에 관해 들려주었다. 인력사회보장은 모든 일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기획이었으나 아직 비공식부문까지 충분히 포괄하지 못하고 있고, 연금보장(JP: Jaminan Pensiun)과 노후보장(JHT: Jaminan Hari Tua)은 노동자들의 납부금이 너무 적기 때문에 나중에 받을 금액도 적을 수밖에 없는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한다. 56세 이후 일시불로 지급받는 노후보장금을 실직 시에 앞당겨 수령하는 방안이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월별로 수령하는 연금보장은 15년 불입 후부터 수령하므로 2030년이 돼야 확실한 진단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디나 소장의 설명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연금, 노후보장, 산업재해 및 사망 보험을 담당하는 인력사회보장관리공단의 제도와 운영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추진되어야 한다. 

즉, 건강사회보장공단(BPJS I)뿐만 아니라 인력사회보장관리공단(BPJS II) 연구까지 포함할 때 인도네시아의 거대한 사회보장 개혁과 복지 발전 성과에 관한 연구가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32년간 집권한 수하르토의 독재가 무너진 뒤 20여년간 인도네시아에서 전개된 복지제도의 역동적 발전을 이해하려면 요즘 꽤 많은 인도네시아 연구자들이 인용하는 과두제(oligarchy: Hadiz and Robison 2014) 시각에 매몰되어서는 안된다. 민주화 이후도 부와 권력을 가진 소수의 지배가 지속되고 있다는 과두제 시각에 의존하면 민주화에 따른 변화를 온전히 읽어낼 수 없게 된다. 집단행동과 상호작용, 그리고 정책적 투입을 위한 숙의(deliberation; musyawarah)가 이루어지는 상향식 정치과정에 주목할 때 변화의 동인과 가치를 파악할 수 있다. 오늘날 민주주의가 세계 도처에서 의구심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인도네시아에서 복지제도의 진전과 노동운동의 공헌은 민주주의가 보통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증거한다.


* 각주

1) 수하르토 체제는 ‘buruh’(노동자)를 ‘pekerja’로 바꿔 사용토록 했다. ‘pekerja’의 우리말 번역은 박정희 정권이 ‘노동자’를 ‘근로자’를 바꿔 부르도록 했었던데 착안하였다. 그래서 ‘serikat pekerja’를 ‘근로자조합’으로 번역하지만 조직형식 측면에서 ‘serikat buruh’와 똑같은 노동조합이다(역자).

2) 1968년생 사이드 이크발(Said Iqbal) 위원장이 이끄는 KSPI총연맹과 산하 금속노련 FSMPI는 2010년대 사회보장 개혁 투쟁에서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노조였으며 지금도 건강보험 감시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노 조이다. 사이드 이크발은 2010년 이후 이름만 남았던 노동당(Partai Buruh)을 2021년 10월 5일에 재건하고 당대표가 되었다(역자). 

3) 국영기업 노조 탄생 과정의 이야기는 대담자의 논문(수삐아르소 2011)에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다(역자).

4) 사회보장행동연대(KAJS)의 결성은 2010년 3월 초순에 금속노련 FSPMI가 개최한 3일간의 토론회 끝에 성사 되었다. 8개 전국노련 위원장들과 시민사회단체 대표 1인이 공동의장단을 구성하였고 변호사, 학생, 기자, 전문가, NGO 활동가들이 참여했다. 다음해 이 조직은 가정부, 어민, 농민, 이주노동자 단체 등이 가세하고 67 개 조직이 함께하는 광범한 네트워크로 발전했다(역자).

5) 메가와티는 대통령 임기 마지막날 국가사회보장제도법(UU SJSN) 서명식을 ‘깜짝 파티’ 형식으로 개최하고 법 제정 과정에서 수고한 많은 이들을 모두 초대하였는데, 어느 참석자는 서명식이 마치 대통령이 SJSN법을 국민들을 위한 ‘선물’로 선사하는 자리처럼 느껴졌다고 회고했다. 이렇게 국가사회보장제도법을 제정하였다는 강한 자부심을 지닌 메가와티의 민주투쟁당(PDI-P) 소속 국회의원들은 그 법을 실질적으로 구현할 사회보장 관리공단법(UU BPJS)의 제정에 강한 동기를 갖고 적극적으로 임했다. 특히 리커 디아 피탈로카(Rieke Diah Pitaloka)는 KAJS 주최 토론과 시위에 매우 헌신적으로 참여하여 ‘마담 웰페어’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역자).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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