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4.03.27
수정일
2024.03.28
작성자
동남아연구소
조회수
456

[30] 동티모르의 교육정책: 역사, 현주소, 그리고 한계 | 정은숙

[30] 동티모르의 교육정책: 역사, 현주소, 그리고 한계  |  정은숙 첨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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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신생국가인 동티모르는 지난 수 백년 동안 포르투갈, 일본,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식민지 지배를 받아왔다. 식민지배 기간 동안 교육은 동티모르의 식민지화를 돕는 도구로 전락했고 동티모르인들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식민지 교육은 극소수를 위해서 지배국가 언어와 문화를 가르치면서 주권 없는 이등국민임을 받아들이게 하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졌었다. 그러나 이제 동티모르는 신생독립국가로서 동티모르 국민을 위한 교육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동티모르 시민을 성장시키고 민족 정체성을 강화할 수 있는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 동티모르는 인구 반이상이 15세 이하이고 신생아 출생률이 아주 높은 나라이므로 교육의 역할이 더욱더 중요하다. 이번 이슈페이퍼는 동티모르의 교육정책의 역사, 현주소, 그리고 한계를 알아보고자 한다. 먼저 어떤 식민지 교육 정책을 받아왔고 식민지 유산은 무엇인가를 살펴본다. 그 다음은 신생국가로서 동티모르는 어떻게 교육 시스템을 수립했는지 알아본다. 마지막으로 교육정책을 발전시키는 데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동티모르 교육 시스템을 연구하면서 필자가 주장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첫째, 동티모르는 교육의 탈식민화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여전히 식민지 교육의 유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둘째, 지난 20년 동안 교육의 질보다는 양에 초점을 맞출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며 교육의 질은 여전히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셋째, 모든 국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공용어의 부족이 의사소통의 벽을 만들고 동티모르 국민들이 불평등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교육에 대한 과감한 투자 없이는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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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한다. 백 년 앞을 내다보는 큰 계획을 수립하는데 교육은 필수이다. 국가형성 그리고 민족정체성을 만들어내는 데에도 교육은 중요하다. 민족주의를 연구한 저명한 정치학자 어니스트 겔너(Eearnest Gellner)는 국가적 차원에서 동질적인 민족의식을 형성하는 것이 국가를 만들어 나가는 데에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민족의식 형성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Gellner 1983). 동질적인 민족의식은 시민들이 의미 있는 삶을 살며, 활발한 시민사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국가에 대한 소속감도 높여 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준다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동질적 민족의식이 아직 공고히 생겨나지 않은 신생국가에서 교육의 역할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교육을 통해서 능력 있는 시민들을 길러내고 공통의 가치를 재생산해내며, 민족 정체성까지 단단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이슈페이퍼에서는 2002년 독립한 동티모르가 어떻게 교육 시스템을 세우고 지속시키고 있는지, 또한 문제점과 한계는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특히, 동티모르는 인구 반이상이 15세 이하인 젊은 국가로서 능력 있는 시민을 키우는 데 있어 교육의 역할은 중요하다. 한 국가의 교육의 문제점을 자세히 살펴보면 국가 형성과 민족 정체성 공고화에 걸림돌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동티모르의 식민지 역사와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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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와 호주 사이에 위치해 있는 조그만 섬나라다. 섬의 반은 인도네시아 영토로 동누사뜽가라주(East Nusa Tenggara)의 일부이며, 섬의 또 다른 반쪽은 동티모르라 불린다. 동티모르의 인구는 130만명 정도이며, 국토 면적은 대한민국의 6분의 1 크기로 강원도 만하다.

동티모르는 1700년부터 1975년까지 275년동안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고 그 중 1943년에서 1945년에는 일본의 식민지를 겪었다. 포르투갈은 국내에서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카네이션 혁명을 겪으면서 마카오를 제외한 해외 식민지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였다. 이 결과로 동티모르도 19751128일에 독립하게 되었다. 그러나 포르투갈에서 독립한지 만 9일만에 인도네시아의 침략을 받고 강제 합병을 당했다.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 지배기간동안 민족말살정책을 경험했고 인구의 20%가 인도네시아 군대의 무력에 희생되기도 했다.1) 무력탄압, 극심한 가난, 기근, 그리고 인권유린을 경험했던 동티모르는 지속적인 독립활동과 게릴라전을 통해 독립을 이뤘다. 1999년에 주민투표를 통해 독립을 결정하였지만 지속되는 내전으로 유엔과도정부(199910-20025)를 거쳐 2002년 이후부터 신생독립국가로 독립하게 되었다.

오랜 식민지 지배 정책은 동티모르 교육에 큰 영향을 미쳤다. 포르투갈은 동티모르의 대중교육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극소수의 동티모르인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잘 시켜서 포르투갈의 식민지 지배를 돕는 엘리트를 양산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동티모르인들은 어떠한 교육도 받지 못하였다(Butcher 2015). 그리고 카톨릭 포교가 식민지의 또다른 중요한 목적이었기 때문에 동티모르의 부족장들을 관리하는 데에 카톨릭을 이용하기도 했다. 포르투갈의 식민지 교육은 주로 포르투갈의 문화와 가치를 가르쳤고 동티모르 엘리트에게 포르투갈에 대한 충성심을 심어 주기 위해 교육을 했다. 1950년부터 포르투갈은 교육에 대한 투자를 늘리기는 했지만 그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 1960년도 말에는 동티모르 인구의 5%만이 글을 읽을 수 있는 정도였다(Yiftach & Jon 2004: 726).

소수 엘리트에 초점을 맞춘 포르투갈의 교육 정책과는 달리 인도네시아의 교육 정책은 초등교육에 관심을 보였다. 동티모르를 강제 점령한 인도네시아는 동티모르인들의 반대가 커지자 이들을 빨리 흡수하기 위한 대중교육에 관심을 기울였다. 특히, 초등교육을 통하여 동티모르인이 인도네시아인이라는 세뇌교육을 일찍부터 시작하려는 의도였다. 강제합병에 반대하여 자녀들을 학교에 등록시키지 않은 학부모들의 의견에도 상관없이 강제입학을 시켰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교육정책에서 포르투갈의 식민지 유산을 지우려 했고 그 일환으로 포르투갈이 사용했던 커리큘럼을 없애고 포르투갈어를 사용 못하게 했다. 대신에 인도네시아 문화와 가치를 가르치고 인도네시아 관점에서 본 역사와 지리를 교육하는데 주력하였다(Yiftach & Jon 2004: 724). 초등 교육에 총력을 기울인 인도네시아 정부이지만 고등교육에는 관심이 없었다. 소수의 동티모르 학생들이 인도네시아에 유학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은 감시를 당했다. 유학생들끼리 연락하고 단합하는 것은 금지되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지향하는 교육의 목적은 동티모르가 인도네시아 영토로서 지속 되는데 필요한 기능인을 양성하는 것이었고 지식인 엘리트 계층을 만들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다.

 

독립국가에서의 교육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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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생국가로서 교육정책을 한번도 시행해 본적이 없는 동티모르 정부에게 교육정책을 처음으로 세우는 일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특히,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에서 철수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학교 시설이 불태워졌다. 세계은행의 1999년도 보고서에 따르면, 동티모르 학교 건물의 95%가 없어지고 교실에 있던 가구들은 약탈당하고 교재들은 불태워졌다고 한다(World bank 1999). 인도네시아 지배 기간동안 동티모르의 학교 선생님들은 대부분 인도네시아인들이었다. 동티모르가 독립을 하는 과정에서 인도네시아에서 온 교사들은 서둘러 동티모르를 떠났고 교육을 담당할 동티모르인의 숫자는 턱없이 부족했다.

식민지 정부 이후 최초로 세워진 독립 정부는 상황이 열악했다. 그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독립정부는 2002년 당시 15세 이상 인구의 70%가 글을 읽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여성의 경우 문맹률은 남성보다 훨씬 높았다고 한다(World bank 2018/08/23). 전체 인구의 46%가 학교에 다녀 본적이 없었고, 어린아이들은 20% 정도만이 초등학교에 등록하였다(East Timor Planning Commission 2002: 145). 이런 상황에서 동티모르 정부는 어린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확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잿더미에서 시작한 교육 정책의 시작은 유엔과 세계은행같은 국제 기구의 도움으로 기본 인프라 구축을 할 수 있었다. 또한 학교 등록율을 높이고 문맹률을 빠르게 낮출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등록율의 경우 2005년엔 68%, 2008년에는 85% 그리고 2013년에는 93%를 달성하였다. 문맹률의 경우 2010년에는 57.8%, 2015년에는 성인의 64.4%가 글을 읽을 수 있어 문맹률도 개선되었으며,2) 2020년에는 인구의 70%가 글을 읽을 수 있었다.

동티모르는 짧은 기간 안에 초등교육을 확대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교육의 질과 내용면에는 아직도 문제가 많다. 인도네시아 식민지 지배의 그림자를 지우려 했지만 탈식민지화는 쉽지 않았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 지배 시기에 쓰였던 커리큘럼을 아무런 평가나 수정 없이 사용했고(Helen 2010: 103-107), 교과서 부족으로 인해 인도네시아 식민지 시기에 쓰였던 교과서를 재사용했다. 교과서에 동티모르인들을 이등국민으로 설명한 부분을 수정 없이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외에도 교사의 심각한 부족으로 인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이 교사로 채용되었다. 학생들에 대한 학습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학습 내용을 따라가지 못해 중퇴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교육의 문제는 지역 간의 격차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동티모르의 수도인 딜리(Dili)와 다른 지역과의 차이가 아주 커서 어린 학생들이 딜리로 유학을 오기도 한다. 딜리가 다른 지역보다는 교육의 질 측면에서 나은 편이므로 학생들이 딜리로 모여들고 딜리에 있는 학교들은 과부하를 겪기도 한다.


동티모르의 고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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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의 일반적 교육문제는 고등교육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동티모르의 고등교육은 각 6년간의 초등교육과 중등교육을 마친 다음 시작할 수 있다. 초등과 중등교육은 교육부(Ministry of Education, Culture, Youth, and Sports)가 담당하고 고등교육은 고등교육부(Ministry of Higher Education, Science, and Culture)가 담당한다. 고등교육부에서 학생들의 대학 합격 여부를 직접 결정하고 국립대학교에 통보하는 식이다.

동티모르의 고등교육은 전반적으로 열악한 편이다. 고등교육의 방향성이나 목적이 명백하지 않고 교육의 질보다는 학생수를 늘리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동티모르와 태평양 국가들을 평생 연구해 온 호주 학자인 헬렌 힐(Helen Hill)은 동티모르의 교육은 누구를 위한 그리고 무엇을 위한 교육인가에 대한 고민이 빠져 있다고 주장했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려면 교육의 목표를 명백하게 해야 하며 교육의 질이 받쳐주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교육을 받는 인구를 늘리는 수적인 성장에 치우친 나머지 교육이 무엇을 위해 필요한지 교육을 통해서 어떤 시민을 길러내고 싶은지를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고 주장한다.3) 이러한 주장은 대학교육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동티모르국립대의 경우 교수와 강사의 수는 총 400-499명 정도이며 학생수는 20,000명 정도 된다고 한다. 국립대에서 매해 감당할 수 있는 학생수가 3,500명 이하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고등교육부에서 국립대학교의 역량과는 상관없이 매년 5,000명이 넘는 학생들을 합격시킨다고 한다.4)

현재, 동티모르의 고등교육은 2개의 국립대학과 10개의 사립대학으로 이루어져 있다. 국립대학은 2000년에 설립된 딜리에 위치해 있는 동티모르국립대학과 동티모르 남쪽에 위치한 브타노(Betano)라는 도시에 자리잡은 폴리테크닉대학교(Institute of Polytechnic)가 있다. 폴리테크닉대학교는 지역편차를 줄이면서 동티모르 남쪽 지역을 개발시키고자 하는 의도로 2014년에 설립되었다. 이 대학교에는 한 해 300명 정도의 학생들이 입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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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동티모르국립대학 (출처: 정은숙)

 

동티모르국립대학이 설립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유엔과도정부시기에는 대학건립을 지원할 예산을 책정할 수 없어 정부의 지원을 전혀 받지 못했다. 초등교육도 제대로 못 받은 인구가 대부분인데 고등교육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심있는 교수들이 무월급으로 대학을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 동티모르 지도자들은 교육에 대한 관심이 많았지만 유엔과도정부에 이들의 목소리는 배제되었고 유엔과도정부는 고등 교육에 대한 관심이 많이 부족했다(Yiftach & Jon 2004: 721-737).

이런 어려움을 거치면서도 동티모르국립대학교는 점차 국립대학교로서 성장하고 있다. 현재 동티모르국립대학교는 9개의 단과대학으로 구성되어있다. 농과, 자연과학, 사회과학, 법학 대학, 경제/경영대학, 철학, 교육대학, 공과대학, 그리고 의학대학으로 나뉜다. 특히 의학대학은 쿠바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아왔다. 쿠바의 의사와 간호사들이 직접 와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지난 20년 동안 1,000명의 동티모르인들이 쿠바에서 의학을 배워 돌아왔다고 한다(Asante et el. 2014; Quiddington 2009/09/05). 흥미로운 점은 역사학과와 사회학과가 존재하지 않는 다는 점이다. 특히 역사학과 부재는 심각한 문제를 보여준다. 동티모르의 역사는 주로 식민지 사관으로 쓰여져 왔다. 탈식민지적 관점에서 동티모르의 역사 연구가 절실한데 국립대학에도 역사학과가 없는 것이다. 동티모르국립대학 총장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고등교육부에서 역사학 과와 사회학과 설립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다고 했다.5) 조만간 이 두 학과들이 생겨서 동티모르인들의 시각에서 본 동티모르 역사와 사회관련 연구들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

동티모르 대학평가인정기관(Timor-Leste National Agency of Evaluation and Academy Accreditation)은 동티모르의 대학들을 매해 평가하는데 사립대학교의 교육환경은 국립대학교보다 더 열악하다고 한다. 사립대일수록 대체적으로 규모도 작고, 교육시설이 열악하고, 수준도 낮은 편이다. 특히 대학 강사를 구하는 것이 큰 부담이다. 경력을 갖춘 교수들을 찾기도 힘들고 교수들의 월급이 낮으므로 학교에 남으려고 하는 인재들이 줄어들고 있다. 사립대의 경우 학사소지 강사들이 대부분이다. 사립대의 경우 학사학위를 받은 강사들은 한달에 미화 250불 정도를 월급으로 받으며 석사소지 강사가 450, 박사소지 강사는 600불 정도를 월급으로 받는다.6) 국립대는 사립대보다 나은 상황이지만 아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석사학위 소지 강사는 600, 박사학위 소지 강사는 1,000불 정도를 월급으로 받는다.

사립대의 경우 학교마다 질 차이가 많이 난다. 대체적으로 딜리공학대학교, 크리스탈 대학교, 그리고 평화대학교가 많이 알려져 있고 평판이 좋은 편이다. 하지만 2020년에 동티모르 대학평가인정기관에서 평가한 자료를 보면 딜리공학대학교, 카노사프로페셔널대학교, 그리고 카톨릭교사양성대학교가 가장 좋은 점수를 받았다. 평가 기준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예를 들어, 학의 미션과 비전, 대학 행정 인력, 교육 인프라, 재정, 향후 5년간의 계획, 졸업생 취업률, 교수능력 등을 보고 평가한다(Tome Amado 2020/09/15). 사립대학의 경우 카톨릭 재단의 도움으로 운영하는 학교가 많다.

이 사립대학교들 중 흥미로운 곳은 동티모르커피대학교이다. 2003년도에 세워진 이 대학교는 에르메라(Ermera)라는 커피가 많이 나는 지역에 세워졌다. 지역에 젊은 인재들을 교육시켜 지역도 발전 시키고 커피관련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커피산업이 많이 낙후해 있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과 전략으로 커피산업을 키우려는 의도도 있다. 동티모르의 많은 가구가

커피에 의존해서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다. 커피산업은 동티모르에서 석유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수출품이다(Springer 2014/10/11). 이런 의미에서 이 대학교가 지역주민이나 동티모르 경제발전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고 할 수 있다. 아래 표는 동티모르 사립대학교의 설립연도, 위치, 학생규모 그리고 학과 정보들을 취합해 놓았다.

1. 동티모르의 사립대학교7)


대학명

설립연도

위치

학생규모

학과

딜리공학대학교

(Dili Institute of Technology)

2002

딜리

500-999

건설학과, 엔지니어링, 기계학과,

컴퓨터 공학, 농업비지니스,

관광학, 정치학, 재정학과

딜리대학교

(University of Dili)

2002

딜리

2,000-2,999

법학, 경제학, 정치학, 공공건강학과,

교육학, 엔지니어링

동티모르 비지니스 대학교

(East Timor Institute of Business)

2002

딜리

2,000-3,999

정보커뮤니케이션 학과, 경제

무역학과, 컴퓨터 공학, 엔지니어링

평화대학교

(University of Peace)

2004

딜리

10,000-14,999

법학, 경제학, 공공건강학과,

엔지니어링, 농업학과, 사회과학

크리스탈우수대학교

(Superior Institute of Cristal)

2001

딜리

N/A

컴퓨터 공학, 건강과학 교육학과

동티모르동양대학교

(Oriental University of Timor Leste)

2002

딜리

9,000-9,999

농업경제학, 법학, 교육학,

기술학, 공공건강학

동티모르커피대학교

(East Timor Coffee Institute)

2003

글레노,

에르메라

(Gleno in

Ermera)

1,000-1,999

자료 없음

티모르카톨릭대학교

(Catholic University of Timor,

UCT)

2021

딜리

491

자료 없음

카톨릭교사양성대학교

(Catholic Institute of Teacher

Training)

2003

바우카우

(Baucau)

자료 없음

자료 없음

카노사프로페셔널대학교

(Professional Institute of Canossa)

2009

딜리

자료 없음

컴퓨터공학과, 행정학과


 

 

 

복수 공용어와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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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 교육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단일화되지 못한 언어이다. 2002년 동티모르의 헌법에는 포르투갈어와 테툼어를 공식어로 지정하고, 이외에 영어와 인도네시아어가 행정업무에 쓰일 수 있도록 업무언어(working language)로 명시하고 있다. 테툼어는 동티모르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던 언어이다. 공공장소에서는 포르투갈어와 테툼어 사용을 장려하고 영어나 인도네시아 언어만을 단독으로 쓰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

복수 공용어와 언어습득의 차이는 국민들을 화합하지 못하게 하는 큰 이유다. 하지만 교육정책은 이에 대해 별다른 해법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 동티모르 사람들은 나이, 지역, 교육 수준에 따라 익숙한 언어가 다르다. 1975년 이전에 교육을 받았던 사람들은 포르투갈어가 익숙한 편이다. 그러나 포르투갈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전체 인구의 5%밖에 되지 않으며 주로 60세 이상이다. 인도네시아 점령기에 교육을 받았던 사람들은 인도네시아어에 익숙하다(Hasbie 2021/03/26). 전체 인구 중 25% 정도가 인도네시아어를 구사하며, 인도네시아로 된 교재나 방송이 있어서 인도네시아어에 대한 접근성은 높다. 필자는 동티모르에서 인도네시아어를 하면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영어는 2%가 겨우 넘는 인구가 구사하고 있을 뿐이지만 유엔과도정부기간 동안은 주요 업무에 영어가 쓰였다. 여전히 영어의 필요성은 크지만 영어를 제대로 배울 만한 곳은 부족하다. 테툼어의 경우 90%의 인구가 구사할 수 있지만 공식언어로 쓰여진 적이 없기 때문에 표준화가 되어 있지 않고 방언이 많다. 구어로 주로 쓰여졌고 문어로서 발달 되지 않았기 때문에 표준 스펠링도 새로 만들어야 했다. 이로 인해, 테툼어가 학문의 언어나 과학의 언어로 쓰일 수 있을지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테툼어로 강의할 경우 전문용어가 발달 되지 않아 포르투갈어나 영어를 섞어 쓰면서 전문용어를 설명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또한, 테툼어로 쓰여진 책이 심각하게 부족하다.8)

이 네 언어 사이에서 동티모르 정부는 어떤 언어로 교육을 할 것인가에 대한 정책이 지속적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포르투갈어를 선택했다. 정부정책상 2002년부터 2003년은 포르투갈어만이 유일하게 교육에 사용될 수 있는 언어였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는 테툼어를 교육 언어로 고려하기 시작했지만 정부정책 자체가 공식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었다(Taylor-Leech 2019). 2008년이 되어서야 아르민도 마이아(Armindo Maia) 교육부 장관은 기본교육법 개정을 통해 학교 교육은 동티모르의 고유언어인 테툼어와 포르투갈어를 함께 공용하도록 하였다(Language Magazine 2023/02/14). 이 정책이 시작된 시점에 동티모르 학교 교실의 80%는 포르투갈어가 쓰여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Language Magazine 2023/02/14). 현실적으로 학교 교육에 포르투갈어를 사용하기는 힘들다. 포르투갈어를 구사할 수 있는 교사 수가 아주 적고 포르투갈어를 이해할 수 있는 학생수 또한 적다. 포르투갈에서 교사와 학습 교재 지원을 받고 있지만 수요를 커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포르투갈어를 포기하지 않았다.

동티모르 수업시간에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은 다음과 같다. 선생님들은 테툼어로 강의 하고 인도네시아어나 포르투갈어로 된 교재를 사용하며, 칠판에는 포르투갈어로 쓰고, 수업 토론은 인도네시아어와 테툼어를 섞어서 쓴다.9) 정부관련 자료들과 모임 및 법률 용어는 주로 포르투갈어가 쓰여진다(Macpherson 2011: 188). 재판 또한 포르투갈어로 행해진다. 이런 다중 언어정책이 개인의 언어 숙련도에 따라 신분의 차이를 만들고, 배제의 정치를 만들게 되며, 비효율성이 생기게 된다.

그러면 왜 공식언어에 포르투갈어가 지정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동티모르 정부와 교육부에서는 포르투갈어를 사용할 경우 경제적인 이익에 대해 말하고 있다(Language Magazine 2023/02/14). 그러나 경제적인 이익을 생각한다면 영어가 가장 이로울 것이다. 공식언어 책정에 영향을 미친 요인들을 살펴보면 경제적인 이유보다는 문화적, 역사적 이유가 더 큰 것 같다(Taylor-Leech 2011). 첫째, 인도네시아 점령기에 저항운동을 하던 동티모르인들은 ”75세대라고 불리는데 독립 이후에 75세대들의 대부분이 동티모르의 정치를 지배하고 있다. 이들의 대부분이 포르투갈 식민지 제도에서 교육을 받았고 독립 투쟁을 하면서 이들 사이에서는 포르투갈어가 인도네시아 식민지에 대항하는 저항의 언어가 되었다. 둘째, 식민지경험을 연달아 했던 동티모르로서는 이들만의 국가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했다. 특히 이웃 국가들인 인도네시아와 호주와 다른 점을 부각시키려 했기 때문에 영어와 인도네시아어가 공식어에 지정되지 않았다. 셋째, 동티모르에는 수많은 부족 언어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테툼어 이외에 외부의 언어를 가져와 정체성을 굳히는 것도 방법이라 생각했다. 여러 부족 언어 중 테툼어가 가장 널리 쓰였던 언어였으므로 테툼어가 공식언어의 하나로 선택되었다. 그러나 하나 이상의 공용어를 가지고 교육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심지어 대부분의 인구가 공용어 중하나 이상을 구사할 수 없는 상황에다 갈팡질팡한 교육언어 정책은 상황을 더욱더 악화시켰다.

 

대학교수들이 본 대학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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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국립대학교에 재직하고 있는 교수와 강사들을 만나 이들이 느끼는 대학의 문제점에 대해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10) 필자는 미국아시아학회(Association of Asian Studies)11)에서 동남아학회장(2022-2024)을 맡고 있다. 미국아시아학회는 동북아(한국과 일본), 동아시아 및 내륙 아시아(중국과 내륙 아시아 국가), 동남아, 남아시아 학회로 나누어진다. 기존의 아시아학회는 주로 동북아와 동아시아 중심이었지만 이제 동북아 중심의 아시아 연구를 넘어서 동남아, 그리고 남아시아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동티모르의 학자들이 연구하고 발표하며 다른 외국 학자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려고 한다. 필자는 지난 20237월 미국아시아학회를 대표해서 동티모르에 방문하게 되었다.

포커스 그룹에서 많이 나왔던 내용은 강의와 관련되었다. 많은 교수들은 동티모르에서 석사를 마치고 강의를 하기 시작한다. 박사학위를 받은 교수들도 있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어떻게 강의를 해야 하는지 트레이닝도 없이 강의를 시작하고 어떻게 커리큘럼을 짜야 하는지에 대한 지원이 전혀 되고 있지 않다. 학과별로 가르쳐야 하는 과목들은 이미 고등교육부에서 정해서 통보하고 교수 스스로 과목의 내용을 정할 권리는 가지고 있지 않다. 한 과목당 수강 학생수가 100-200명 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대형 강의실이 없기 때문에 같은 과목을 여러 번에 나눠서 강의를 해야 한다. 이럴 경우 여전히 한 과목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주제가 다른 세 과목을 강의할 경우 대형 강의실의 부족으로 각 과목당 두세 번씩 강의를 해야 하는 경우가 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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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동티모르국립대학 도서관 (출처: 정은숙)

 

공통언어의 부재는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의 문제점을 가진다. 대학교수들은 포르투갈어와 테툼어로 강의를 해야하는데 교수도 학생도 포르투갈어가 능숙하지 않기 때문에 보통 포르투갈어나 영어로 슬라이드만 만들고 주로 테툼어로 강의를 한다. 그러나 테툼어로 된 교재가 전무한 상태이므로 교재는 영어교재 복사본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전반적으로 교재가 부족하므로 사용할 수 있는 교재를 구하는 것이 큰 과제이다. 동티모르에는 국립도서관이 아직 없고 동티모르국립대학도 이제 막 2023년에 도서관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국립대학 도서관에는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가 한 대밖에 없고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책 수도 아직은 아주 적다. 동티모르의 초대 대통령(2002-2007)이었고 현 국무총리인(2023-현재) 사나나 구스마오가 사재를 이용해서 만든 도서관이 유일하게 도서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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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사나나 구스마오 도서관 (출처: 정은숙)

 

이외에도 연구를 하고 싶지만 연구할 시간도 연구 비용도 지원이 안되며 대학원이나 연구소 등이 주로 국제기구들이 요청하는 연구를 많이 해주는 편이다. 학자 개인의 연구는 하기 힘든 환경이다. 이번 필자의 방문을 시작으로 미국아시아학회는 2023년부터 동티모르학자들이 영어로 논문을 출판할 수 있도록 협력하고 있다. 한국동남아학회도 한국의 동남아학자들과 동티모르학자들이 함께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면 좋겠다.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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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는 2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많은 것을 이룬 나라다. 긴 식민지배에도 불구하고 독립 후 민주주의를 이루었다. 2006년 한때 민간정부와 군대 간의 갈등, 동서 지역차와 부족 간 갈등으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여전히 지속적으로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있다(Cotton 2007).

동티모르는 교육시스템을 세우는 데에 걸림돌이 많았다. 독립 당시 대부분의 학교 건물이 불탔고 학생들을 가르칠 교사도, 교재도 없었다. 식민지 유산으로 얼룩진 교육 시스템을 바꿔야 했고, 교육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국민들에게 글을 가르쳐야 했다. 낙후한 교육시설, 심각하게 부족한 교육 인력, 그리고 공통교육언어의 부재 등은 교육을 발전시키는 데에 큰 걸림돌이 된다. 특히, 모든 국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공통언어의 부재가 국민들을 분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교육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포르투갈어와 테툼어를 둘 다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새로운 세대가 만들어지지 않는 한 당분간 이 문제점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 각주

1)  https://gsp.yale.edu/case-studies/east-timor

2) Timor-Leste Population and Housing Census 2015.

3) 헬렌 힐과의 인터뷰, 2023712.

4) http://timor-leste.gov.tl/?p=26803&print=1&lang=en; 총장과의 인터뷰.

5) 동티모르국립대학교 총장과의 인터뷰.

6) 동티모르 대학평가인정기관의 기관장인 닐튼 마우(Nilton Mau)와의 인터뷰.

7) 이 표는 필자가 각 대학교 웹사이트를 통해 얻은 정보들과 미국 동남아학회 내부 보고서를 인용하였다.

8) 동티모르 국립대학교 교수들과의 인터뷰.

9) 대학교수와의 인터뷰, 2023712.

10) 대학교수들과 포커스 그룹 인터뷰, 2023 711.

11) 미국아시아학회 홈페이지. https://www.asianstudies.org/


* 참고문헌은 첨부파일 내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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