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3.01.01
수정일
2023.01.02
작성자
동남아연구소
조회수
646

[24] 미국의 동남아언어여름학교(SEASSI): 역사, 성과 및 함의 ㅣ 정은숙

[24] 미국의 동남아언어여름학교(SEASSI): 역사, 성과 및 함의 ㅣ 정은숙 첨부 이미지

초록


이 글은 미국 동남아언어여름학교(Southeast Asian Studies Summer Institute)의 역사, 성과 그리고 함의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미국 동남아언어여름학교는 1983년도에 처음 설립된 이후 지난 40년 동안 수많은 동남아 언어 및 지역전문가들을 배출해왔으며 동남아를 연구하는 학자에게는 하나의 자연스러운 관문이 되었다. 동남아언어여름학교 참가자들은 언어뿐만 아니라 문화를 터득하며, 다른 연구자들과 깊은 연대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동남아언어여름학교는 참가자들에게는 언어학교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동남아언어여름학교의 성공은 대학간 자발적인 협력, 자원 공유, 그리고 새로운 모델의 모색이 바탕이 되었다. 또한 1958년에 시작된 미국연방정부의 보조로 동남아 언어 전문가 및 지역연구자를 키우는 것이 가능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동남아언어여름학교의 업적뿐만 아니라 그 한계도 배워보면서 동남아언어여름학교가 계속 성공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이슈페이퍼 24호 원문 내려받기




  미국 동남아언어여름학교(Southeast Asian Studies Summer Institute)는 영어의 앞 자를 따서 짧게 SEASSI(씨아시)라고 불린다. 씨아시는 긴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 동남아를 연구하는 학자라면 그 이름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미국 대학뿐만 아니라 국내에 자리잡은 동남아 분야 교수들도 씨아시를 거쳐 가기도 했다. 이번 이슈페이퍼는 씨아시의 지난 40년간의 역사, 추진 배경, 구조, 재정 그리고 성과를 소개하고자 한다. 특히, 전북대 동남아언어캠프가 지난 3년 동안 여섯 번의 동남아언어 캠프를 성공적으로 개최해온 이 시점에서 미국 씨아시의 업적과 한계를 배워보는 것도 비교적인 관점에서 유용할 것 같다. 또한 이 이슈페이퍼가 전북대 동남아언어캠프의 미래를 계획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미국 동남아언어여름학교의 역사


  동남아 언어에 대한 관심은 동남아 지역연구와 함께 시작하고 성장해왔다. 그러므로, 미국 동남아언어여름학교(이하 씨아시)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남아연구가 어떻게 시작되고 발전했는가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대학들이 동남아언어 교습을 비롯한 동남아 지역연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시점은 2차 세계대전 이후다. 그전까지만 해도 동남아연구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대학에서 많은 관심을 보였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했고 구소련과의 경쟁 속에서 전 세계를 미국의 세력권으로 흡수하는 정책을 펴는 과정에서 동남아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특히, 현지언어와 지역연구 인력들이 급속도로 필요해지면서 미국 국방부와 중앙정보국(CIA: Central Intelligence Agency)은 대학과의 연계를 통해 동남아 언어교육 및 동남아연구 인력들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기 시작했다.1)

  미국연방정부가 동남아연구에 지원을 시작한 시점은 1950년대 말 1960년대 초였다. 미국 의회가 국가안보교육법안(The National Defense Education Act)을 1958년에 통과시켰고 이 법안의 통과로 미국 대학들이 연방정부의 보조를 받으면서 동남아연구를 비롯한 지역연구 인력을 양성하게 되었다. 이 법안으로 국가안보에 관련된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인력을 키우기 위한 국가안보외국어장학금(National Defense Foreign Language Title VI Fellowship)도 시작될 수 있었다. 이 두 장학금은 1970년 이후에 국방부 주관이 아닌 교육부가 관리하게 되었고 국가안보외국어장학금이 아닌 외국어및지역연구장학금(FLAS: The Foreign Language and Area Studies Fellowship)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름은 바뀌었지만 지역연구와 언어교육을 유지하는 데에 여전히 가장 중요한 펀딩이며 씨아시의 주요 재정 지원이 되고 있다. 법안 통과 당시 의회 보고서를 보면 “미국이 자유국가로서 성장하고 진보하는 것은 어린 세대를 우리가 어떻게 교육하는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쓰여있다.2)  즉, 동남아 언어와 지역연구에 대한 관심은 미국이 강대국으로 성장하려고 하는 전략과 맞물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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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정부가 동남아 연구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준 것은 1960년대부터 이지만 미국 동남아 연구의 시작은 민간기업이 설립한 재단의 도움으로 사립대에서 시작되었다. 그 이후에 정부의 도움이 보태지면서 동남아 언어와 지역연구가 주립대에서도 성장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처음 공식적으로 동남아 연구를 시작한 대학은 예일대학교이다. 카네기기업재단의 재정적 도움을 받아 1947년에 시작하였다. 동남아 연구의 시작으로 보는 시점은 동남아 연구가 대학 커리큘럼에 공식적으로 등장한 년도를 기점으로 한다. 그 전까지만 해도 미국대학에서 동남아를 하나의 연구 단위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일대학에서 동남아를 연구하는 교수들이 있었지만 동남아 연구라는 이름으로 묶이게 된 건 1947년이라 하겠다. 사회학자이면서 인류학자로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에서 현지조사를 한 래이몬드 케네디(Raymond Kennedy) 교수가 동남아 연구를 주도하였다. 그리고 언어학자이며 버마어를 연구하던 윌리엄 코오닌(William Cornyn) 교수, 말레이시아어 및 폴리네시아언어를 연구했던 이시도어 디엔(Isidore Dyen) 교수는 동남아 연구가 시작되면서 군인전문 언어 프로그램을 발전시키기도 했다.3) 그러나 군인 전문 프로그램은 1970년대에 중단되었고 예일대학의 동남아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동남아 연구를 시작한 대학은 코넬대학교이다. 코넬대학교는 록펠러재단의 도움을 받아 동남아 연구를 1951년에 시작했다. 그 당시 아시아를 담당하던 록펠러재단의 아시아 담당자였던 씨 벌톤 화스(C. Burton Fahs)는 예일대학에 대한 선의의 경쟁자로 코넬대학교을 선택했다고 한다. 특히 예일대학이 레이몬드 케네디교수의 주도로 도서부 동남아 국가를 주로 연구했으므로 코넬대학을 동남아 대륙부 국가를 특화하는 대학으로 만들고자 했다.4) 이렇게 해서 코넬은 동남아 대륙부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동남아 연구를 시작하였고, 태국어 수업이 제일 먼저 개설되었다. 또한 코넬대학은 1970년대에는 포드재단의 지원을 받아서 동남아 연구를 계속 키워 나가면서 동남아 대륙부 국가뿐만 아니라 도서부 동남아 국가에 대한 전문성도 갖추기 시작했다. 코넬대학의 동남아 연구 명성은 현재까지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미국의 두 사립 명문 대학이 동남아 언어교육과 연구의 문을 열어주었고 그 이후에는 연방정부의 도움으로 주립대학교에도 동남아 연구가 생겨났다. 주립대들이 동남아 언어교육과 연구를 시작한 것은 주로 1960년대이다. 각 대학교에서 어떻게 동남아 연구가 시작되고 성장하게 되었는지 각 주마다 그들만의 이야기가 또 따로 있다. 여기서 다 다룰 수는 없지만 예를 들어, 버클리가 동남아 연구를 시작한 것은 1960년이고 1969년까지는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연구소를 하나의 센터에서 담당했다. 미시간대학교는 동남아 연구를 1961년에 시작했고 동남아와 남아시아 프로그램을 묶어 함께 운영하기 시작하였다.5) 위스콘신대학교에서도 1960년에 동남아 연구가 시작되었는데 정작 동남아연구소가 설립된 것은 1973년이다. 미국 대학들 중 1972년에 동남아연구가 있었던 곳은 14개 대학교이다. 14개 대학교는 다음과 같다. 아메리칸대학교, 캘리포니아-버클리대학교, 시카고대학교, 콜롬비아대학교, 코넬대학교, 하와이대학교, 캔자스주립대학교, 미시간대학교, 노던일리노이주립대학교, 오하이오대학교, 서던일리노이주립대학교, 워싱턴대학교, 위스콘신대학교 그리고 예일대학교이다.6)

  미국의 대학 수에 비해 동남아 연구에 관심을 가지는 대학교들이 많았던 것은 아니다. 또한 동남아 연구에 관심을 보였지만 모든 동남아 언어를 동시에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이 되는 대학교는 없었다. 대학이 컨소시엄을 만들어 씨아시를 운영하게 된 계기는 동남아의 특수성과 미국 대학의 한계가 대학 간 컨소시엄에 기초한 씨아시 운영이라는 새로운 동남아 언어교육 방법을 강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동남아는 많은 국가, 인종 그리고 언어로 이루어진 곳이다. 동남아라는 지역으로 묶였지만 언어문화 차이가 아주 크다. 그러므로 한 대학에서 모든 동남아 언어를 제공할 수 있는 교수진, 학생 수요, 도서관련 자료, 언어 전문가 등 기본 인프라를 제대로 갖추는 것이 쉽지는 않은 문제였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동남아 언어를 여름방학 동안 한곳에서 배울 수 있는 씨아시 모델은 학생들이나 교수진들에게 큰 편의를 제공해준다.

  씨아시는 그전부터 운영되고 있던 인도네시아어여름학교(Indonesian Summer Studies Institute)를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1973년에 시작한 인도네시아어여름학교는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처음 열렸으며 인도네시아어 초급과 중급을 개설해서 가르쳤다. 인도네시아에서 직접 선생님들을 모셔와 강의를 했고 여기에 참가한 학생들은 주로 인도네시아에 관심이 있었던 대학원생들이었다고 한다. 한 반에 4-5명의 학생이 있었으며 캠퍼스 근처에 집을 빌려서 학생들이 기숙사 생활을 같이 하였다고 한다.7) 프로그램은 8주 동안 매일 8시부터 12시까지 수업이 진행되었다. 인도네시아어여름학교에 1973년에 참가했던 엘렌 라퍼티(Ellen Rafferty) 교수는 대학원생 때 처음 인도네시아어여름학교를 알게 되었고 여기에서 인도네시아어를 배우고 그 이후에 인도네시아로 현지조사를 떠났다고 한다.8) 그 당시 같이 인도네시아어를 배웠던 학생들은 현재 다른 대학에서 교수직을 역임하고 있다고 했다. 엘렌 라퍼티 교수는 언어학으로 뉴욕주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위스콘신대학교에서 조교수로 근무하기 시작해서 정교수로 최근에 은퇴를 했다. 은퇴 후에도 명예교수로서 계속 인도네시아 언어 교육에 기여하고 있다. 엘렌 라퍼티 교수는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인도네시아 언어 교육에 대한 공헌으로 감사장을 받기도 했다.

  인도네시아어여름학교가 성공적으로 몇 년간 자리를 잡은 이후에 다른 동남아 언어에도 적용시켜보자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미국 교육부가 제공하는 외국어및지역연구장학금이 일반학기와 여름학기로 나뉘는데 여름학기에 수업을 제공하는 곳이 없었으므로 연방정부 교육부에서 운영하는 국가자원센터(National Resource Center) 관련 보조를 받는 대학의 동남아연구센터들이 함께 모여서 동남아 언어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게 되었다.9) 국가자원센터는 외국어 및 지역연구에 특화된 대학교 연구소를 지원하고 있으며 동남아연구센터가 있던 대학들을 중심으로 컨소시엄을 만들었다. 대학교 컨소시엄은 아리조나대학교, 코넬대학교, 미시간주립대학교, 노던일리노이대학교, 오하이오대학교, 버클리, UCLA, 하와이대학교, 미시간대학교, 노트르담대학교, 워싱턴대학교, 위스콘신대학교, 그리고 예일대학교로 구성되었다.10) 이 컨소시엄은 미국아시아학회(Association of Asian Studies)의 멤버로서 매년 연례 컨퍼런스 때 모여 씨아시에 대해 논의하고 프로그램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왔다. 기존의 각 대학에서 제공하는 봄/가을학기 교육뿐만 아니라 여름방학에도 수업을 제공하자는 데에 동의하게 되었고 이러한 노력은 1983년에 처음 결실을 맺었다. 씨아시 창립에 참여했던 마이클 컬리네인(Michael Cullinane)에 의하면 이 컨소시엄에서 리더 역할을 했던 것은 오하이오대학교와 미시간대학교라고 한다. 그때 마이클 컬리네인은 미시간대학교 동남아연구소 부소장(Associate Director)으로 일하고 있었고 현재는 위스콘신대학교 동남아연구소에서 부소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 씨아시를 직접 시작하고, 조직하고, 운영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해온 씨아시의 산 증인이다. 제일 첫 번째 씨아시는 미시간대학교와 오하이오대학교가 나누어서 개최하였다. 위스콘신대학교 웹사이트에는 오하이오대학교가 첫 번째 개최 대학이라 쓰였지만 실제로는 두 대학이 언어들을 나누어서 개최를 했다고 마이클 컬리네인은 주장했다.11) 오하이오대학에서 처음 씨아시를 개최했을 때 중요한 역할을 했던 윌리엄 프레드릭(William Frederick) 역사학과 교수는 그 당시 오하이오대학 여러 과에 동남아 관련 교수들이 채용되어 있었고 전공분야를 넘어 동남아 언어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같이 일을 한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윌리엄 프레드릭 교수는 씨아시 모델이 나중에 남아시아언어여름학교 그리고 러시아언어여름학교가 만들어지는데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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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이후로 <표 1>에서 보여주듯이 2000년까지 컨소시엄에 속해 있는 대학들이 2년에 한번씩 캠퍼스를 바꿔가면서 개최를 하였다. 한 대학에 무리한 부담을 주는 것을 막고 각 대학이 지니고 있는 언어교육의 강점을 살려보자는 의도가 있었다. 씨아시를 개최하는데 관심이 있는 대학이 프로포절을 냈고 미국아시아학회 연례 컨퍼런스에서 투표로 개최지를 결정했다.13) 그러나 2000년 이후부터는 위스콘신대학에서 매년 지속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과거 몇 년 동안의 토론을 통해 여러 대학에서 돌아가면서 개최하는 것보다 한 장소를 결정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위스콘신대학에서 씨아시를 지속적으로 운영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매번 학교를 2년에 한 번씩 바꾸었을 경우 지속성이 없기 때문에 씨아시 운영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를 쌓기 힘든 부분이 있으며 학교 행정 쪽과 다시 협정을 맺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특히 등록금을 적정수준에 책정하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인데 학교 측의 동의를 얻어내기가 힘들기도 하다. 1994-1995년 위스콘신대학에서 개최된 씨아시가 성공적이었고 대학 측에서도 등록금 책정에 긍정적이었다. 이런 이유로 위스콘신은 씨아시를 장기적으로 개최하겠다는 프로포절을 냈고 컨소시엄에 있는 대학 관계자들의 만장일치로 지금까지 위스콘신에서 개최하고 있다. 위스콘신대학으로 씨아시를 옮긴 이후로 다른 대학들에서 씨아시를 개최하겠다는 프로포절을 제출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한다.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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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아시의 구조


  씨아시 동남아 언어 강좌는 총 8주 프로그램이다. 학생들은 8주 동안 8학점을 이수하고 위스콘신대학교에서 주는 공식 성적표를 받게 된다. 이수한 학점은 학생들이 속해 있는 대학교와 학점교류가 가능하다. 두학기에 걸쳐 배울 내용을 8주 동안 배우는 것이므로 프로그램이 훨씬 집중적이다. 학생들이 두 학기에 걸쳐 언어를 배우든 8주에 걸쳐 배우든 학습성과가 같아야 하기 때문에 아주 집중된 8주를 같이 보내게 된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레벨테스트를 통해 학생들의 레벨을 정한다. 동남아 언어를 배운 경험이 전혀 없는 경우는 초급에서 시작하지만 현지에 살아본 경험이 있거나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는 학생들은 레벨테스트를 하게 된다. 레벨테스트는 구술시험과 필기시험으로 나뉜다. 구술시험은 듣기와 말하기 중심이고 필기시험은 어휘, 문법 그리고 글쓰기를 보게 된다. 구술시험은 화상통화를 통해 여름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치루게 되고 필기시험은 학기 시작 첫날 보게 된다. 동남아 언어 레벨은 초급, 중급 그리고 고급으로 나뉜다. 각 레벨마다 가르치는 강사가 정해져 있지만 학생들이 다른 강사한테도 익숙해질 수 있도록 강사들이 수업을 바꾸어서 들어가기도 한다.

  수업은 오전 8시부터 12시까지 이어지고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로 나누어져 있다. 평가는 주로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같은 시험 중심 보다는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하게 된다. 주제를 주고 관계자들을 인터뷰하고 인터뷰를 바탕으로 글을 써 마지막에는 발표도 한다. 이를 통해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목적이다. 수업은 초급반도 최대한 현지어로 진행한다. 오후에는 학생들이 3-4시간을 투자해서 수업내용을 공부하고 숙제를 해야만 수업을 따라갈 수 있다. 학점은 A, AB, B, BC, C, D, F로 나뉜다.

강사와 학생 비율은 보통 한 명의 강사가 6-7명의 학생들을 가르친다. 물론 등록인원이 낮아지면 한 강사가 4-5명의 학생을 담당하기도 한다. 씨아시에서 수학 가능한 언어는 버마어, 필리핀어, 인도네시아어, 캄보디아어(크메르어), 라오어, 태국어, 자바어, 몽어 그리고 베트남어이다. 이 중, <표 2>에서 보여 지듯이, 인도네시아어와 태국어가 참가 학생수가 제일 많고 그 다음으로는 베트남어와 필리핀어가 학생수가 많다. 이외에도 버마어, 크메르어, 그리고 라오어도 많은 학생수는 아니지만 신청하는 학생들이 꾸준히 있는 편이다. 자바어는 학생수가 많지는 않지만 가르치는 곳이 없으므로 신청하는 학생이 있다면 수업을 개설한다. 인도네시아어를 가르치는 교수님 중에 자바어도 가르칠 수도 있는 분을 초빙하여 수업을 개설하게 한다.

  씨아시의 교수진들은 언어를 효율적으로 가르치는 데 필요한 교수법을 지속적으로 연구하면서 강의에 뛰어난 분들을 초빙한다. 씨아시에 동남아 언어 선생님으로 초빙되었다는 것은 강사로 자질을 인정받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언어를 가르치는 강사들은 대학컨소시엄에 속해 있는 대학의 교수들을 모셔오거나 필요할 시에는 현지에서 언어교육의 경험이 많은 분들을 모셔 오기도 한다. 보통 학생수에 따라 달라지지만 선생님의 수는 13명에서 25명 사이이고 각 언어마다 언어 코디네이터가 있다. 각 언어 코디네이터는 강의도 하지만 강의계획서를 만들고 점검하며 강의의 질, 각 반의 진도, 학습 과제 성과들을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매주 회의를 통해 강사들이 힘든 점들을 상의하기도 한다. 각 언어 코디네이터 위에는 씨아시 총괄 언어 디렉터가 있다. 씨아시 총괄 언어 디렉터는 레벨테스트부터 각 언어의 강의계획서를 점검하고, 수업을 참관하여 수업에 대한 피드백도 주며 학습평가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 주기도 한다. 총괄 언어 디렉터는 언어교습법을 전공한 교수가 주로 담당하며 학생중심의 효과적인 언어 교육 방법을 연구하면서 씨아시 언어 강좌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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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아시 참가 규모는 매년 다르지만 최소 84명(1984년)에서 최고 206명(1995년)까지 참석한 적이 있다. 2015년에서 2019년까지 학생수가 100명 이내로 약간 줄어드는 경향이 있었지만 2020년에 다시 늘어났다. 특히 2020년과 2021년에는 코로나 여파로 인해 대면수업을 하지 않고 온라인 수업으로만 학생들이 참가했다. 코로나로 직접 현지에 가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씨아시에서 동남아 언어를 배우려는 학생들이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온라인 수업을 매끄럽게 진행하기 위해 개강 전에 강사들과 학생들이 모두 수업에 사용할 Zoom이나 Canvas 관련 교육을 받도록 했다. 2022년에는 처음으로 하이브리드 모델을 사용했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은 대면 수업을 했고 각 반에 한두 명 정도 실시간 온라인으로 참가하는 학생들이 있었다고 한다. 온라인으로 참가하던 학생들은 수업 강도를 견디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두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15) 강사들은 하이브리드 모델을 할 경우 언어교습법에 더 신경을 많이 써야 하고 온라인 학생과 대면 학생 모두 아우르기 힘든 탓에 선호하지는 않지만 하이브리드 모델에 대한 학생들의 수요가 있기 때문에 이 방식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하이브리드 모델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경우 그에 맞는 효율적인 언어 교습법을 찾는 것이 주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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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가하는 학생들을 보면 대학컨소시엄에 속해 있는 재학생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씨아시에 참가할 수 있다. 2021년의 예를 들어 보면, 대략 60개 이상의 대학에서 학생들을 보내왔다. 그 중 컨소시엄 대학에 재학 중인 대학원생이 36명이었고 학부생은 18명이며 이중 위스콘신대학교 대학원생은 7명, 학부생은 2명이었다. 컨소시엄에 속해 있지 않은 대학에서 온 대학원생은 50명이고 학부생은 23명이었다. 대부분의 대학교마다 한 명씩 참가하는 경우가 제일 많다. 컨소시엄에 참가하지 않으면서 학생을 보낸 대학들은 시카고, 스탠포드, MIT, 프린스턴, 노쓰웨스턴, 조지타운대학교와 같은 사립명문대들도 있고 조지아, 캔자스, 켄터키, 미네소타, 네바다, 몬타나, 오레곤 그리고 아이오와대학교 같은 우수한 주립대학들도 있다.17) 참가 학생들 중 대학원생이 제일 많으며 대학생이 두 번째이고, 대학원 지원 전에 수업을 듣는 학생들도 있다. 직장인들도 수업에 참가하는 경우가 많은데 군인, 외교관, 외신 기자, 교사 그리고 교수 등 다양한 직업군에서 참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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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아시 학생들 중 동남아에서 온 이민자나 이민자 후세대들도 씨아시에 관심을 많이 보이고참가하고 있다. <표 4>에서 볼 수 있듯이 지난 10년간 동남아권 이민자나 그 후손의 참가비율이 21%에서 36%로 증가했다. 자신들의 모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거나 자신의 뿌리를 찾아 연구를 해보겠다는 학생들도 있고 다른 동남아 언어를 습득하여 동남아에 대한 비교 지역연구에 관심을 가지는 경우도 많다. 

  씨아시는 동남아 언어 강좌 이외에도 여러 학술과 문화 활동 기회를 부여한다. 학술 활동과 문화 활동이 동남아 언어를 더 빨리 배우고 잘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학술 활동의 예로서는 매주 동남아를 연구하는 학자들을 초대해서 특별 강연을 제공하는데 최소 몇명은 씨아시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 중 학자로 성장한 분들을 초청한다. 또한 씨아시에 참가하는 학생들이 연구논문을 발표하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씨아시 컨퍼러스도 매년 개최한다. 씨아시 컨퍼런스의 기조발표자도 예전에 씨아시에 참가했던 학생들 중에서 학자로 성장한 분으로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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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관련 활동은 아주 다양하다. 첫째, 인도네시아 전통악기 합주곡인 가물란 수업이 오후에 있다. 이 수업은 1학점 수업으로 등록금을 더 내지 않고도 이수할 수 있다. 이 수업에 참석했던 학생들이 씨아시 마지막 주에 가물란 앙상블을 연다. 이 때는 씨아시 학생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참석해서 앙상블을 즐길 수 있다. 둘째는 동남아 언어로 시 창작과 낭독을 할 수 있는 행사를 개최해서 동남아 언어로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준다. 셋째, 씨아시에는 각종 파티가 있다. 개강 바로 전에는 환영파티를 하고 학기가 끝나기 전에는 환송회도 한다. 환송회는 “씨아시의 밤”이라고도 불린다. “씨아시의 밤” 에서는 각 언어 그룹이 장기 자랑도 하게 된다. 씨아시 여름학기 중간에는 동남아 음식을 각자 요리해서 같이 나누어 먹는 포틀럭 파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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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외에도 팀웍을 높이기 위해 필자가 참가했던 씨아시에서는 언어별로 배구팀을 조직해서 연습하고 토너먼트를 통해 가장 우수한 팀을 선발하기도 했다. 팀이 언어별로 조직되기 때문에 각 언어별로 팀웍을 조성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어떤 해에는 인도네시아 당둣(인도네시아 대중음악의 한 장르) 댄스 파티를 열어 씨아시 학생 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유학생도 초대하여 교류의 자리를 만들기도 했다. 참가하는 학생들의 성향에 따라 문화활동이 달라질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요리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 많으면 오후에 요리 교실을 열기도 했다. 이런 모든 행사들은 씨아시에 참석하는 학생들이 동남아 언어문화에 더 익숙해지고 동남아 연구자들이 친분을 쌓고 네트워크와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준다. 이렇게 쌓인 친분과 네트워크는 씨아시가 끝나더라도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대학원생들의 경우 현지조사 전에 씨아시에서 수업을 듣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들이 비슷한 시기에 현지조사를 하고 논문을 끝내면서 학회 발표나 활동을 같이 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이슈페이퍼를 쓰면서 씨아시에 참석했던 학생들에게 씨아시의 장점을 물어보니 동남아에 관심있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같이 모여 그 안에서 공동체를 만들고 언어를 배우면서 우정을 쌓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고 한다. 씨아시에 참가하는 많은 학생들이 속한 대학에서는 동남아연구 프로그램이 없거나 크지 않기 때문에 다른 연구자들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다. 2004년과 2005년에 베트남어를 배운 반리(Van Ly)는 “베트남 연구자들과 함께하는 느낌이 들어 아주 좋았다”고 말했다. 현재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페이지 존슨 탄(Paige Johnson Tan)은 1994년과 1997년에 씨아시에서 인도네시아어를 배웠는데 자신이 다니던 대학원에서 혼자 하던 공부를 다른 연구자들과 같이 할 수 있어 좋았고 집중적으로 언어를 배우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어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씨아시의 재정


  씨아시의 재정은 그 명성에 비해 넉넉한 편은 아니다. 씨아시 재정의 50%는 학생들이 납부한 수업료로 충당하고 있다. 등록하는 학생수가 줄어들면 그만큼 씨아시 재정이 많이 어려워진다. 씨아시의 공식적인 수업료는 위스콘신대학교의 여름학기에 제공되는 다른 수업과 다르지 않지만 장학금을 통해 학생들의 부담을 줄여준다. 예를 들어, 여름학기 수업료는 여름학기 학점에 따라 등록금이 정해지는데 8학점 기준으로 위스콘신 거주자는 3,616달러이고 다른 주 거주자들은 13,159달러이며 국제학생들은 13,493달러를 내야한다. 그러나 씨아시는 위스콘신대학과의 협상을 통해 개인 수업료 비용이 8학점 기준으로 일인당 4,300달러 이상 넘어가지 않도록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정부의 등록금 보조금이 여름에는 5,000달러 이상을 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5,000달러 이상으로 책정할 경우 학생들의 개인 부담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등록금액을 제한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씨아시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8학점 기준 보통 2,000달러에서 4,300달러 사이의 수업료를 내게 된다. 또한, 씨아시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기숙사를 사용할 수 있지만 기숙사 비용은 따로 내야한다. 기숙사 비용은 한 달 기준 650달러에서 750달러다. 기숙사에서 지내기 싫은 학생들은 여름에는 캠퍼스 근처의 아파트들이 많이 비게 되므로 학교 근처 아파트를 렌트해서 사용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수업료 이외에 씨아시 재정에 중요한 기여를 하는 부분은 미국교육부에서 운영하는 외국어및지역연구장학금이다. 이 장학금이 씨아시 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25%가 된다. 미국 교육부는 대학교나 대학 컨소시엄 중 우수한 대학 또는 대학 컨소시엄을 4년 주기로 한 번씩 선발한다. 지원을 받은 대학교들은 학내 경쟁을 통해서 매년 학생들을 선발하고 이 학생들이 씨아시에서 수강하면 외국어및지역연구장학금으로 씨아시 등록금을 충당한다. 학생들이 씨아시를 선택하는 이유는 중급이나 고급 레벨의 동남아 언어를 가르치는 대학교가 많이 없고 특히 여름에 이러한 수업을 개설하는 대학은 거의 없으므로 씨아시가 유일한 선택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장학금은 미국 시민권자이거나 영주권을 소지하고 있는 학부생이나 대학원생은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일년 장학금을 받을 경우 대학원생은 등록금 면제와 생활비 18,000달러를 받고 학부생은 등록금 면제와 함께 생활비 10,000달러를 받는다. 여름 언어 장학금의 경우 학부생과 대학원생은 등록금 5,000달러를 보조받고 2,500달러의 생활비를 보조받게 된다. 그 외에 나머지 25%의 비용은 위스콘신대학교 동남아연구소(Center for Southeast Asian Studies) 일반 예산에서 충당하고 있다. 위스콘신대학의 동남아연구소는 국립자원센터(National Resource Center)의 지원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 씨아시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유지하는 것이 연구소가 지원을 계속 수주하는데 도움이 되므로 일반 예산을 사용한다.


씨아시의 성과와 한계


  씨아시의 성과는 여러 분야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현지에 가지 않고도 동남아 언어를 익힐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커리큘럼이 잘 구성되어 수업을 듣는 것만으로 동남아 언어를 체계적으로 익히고 구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또한 씨아시는 언어교육장이라는 의미를 넘어 강연이나 학회를 통해 동남아 지역연구에 대해 지식을 쌓고 동남아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제공해준다. 예를 들어, 동조자(The Sympathizer)라는 소설로 2016년에 퓰리처상을 받은 베트남계 미국인 비엣 타인 응우엔(Viet Thanh Ngyen)은 남가주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 중인데 이분도 씨아시에서 수업을 들었었다. 둘째, 씨아시의 시작과 성공의 비결은 대학 간의 경쟁보다는 대화와 협력을 통해 각 대학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극복했다는 데에 있다. 이러한 협력은 더 많은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했고 전문가를 키우는 데에 큰 기여를 해왔다. 또한 씨아시는 대학 간의 새로운 협력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씨아시는 연방정부와 대학 간의 협력이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 사례이다. 대학은 연방정부 장학금으로 동남아 연구분야의 인재를 양성할 수 있었고 정부는 국익에 전략적으로 필요한 언어나 지역연구 전문가를 고용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씨아시의 성과가 뛰어나기는 하지만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학에서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등록인원이 낮은 언어 수업을 폐강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동남아 언어를 비롯한 다른 희귀언어들의 강습이 많이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동남아 언어를 가르치던 교수들이 은퇴하면서 동남아 언어교육은 주로 계약직 강사가 맡는 경우가 많아 대학 내에서 그들의 파워가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예전에는 주요 대학에 동남아 언어를 가르치는 교수들이 정년트랙으로 재직했기 때문에 서로 교류하며 외부재단이나 연방정부에서 재정을 마련하였으나 계약직 강사신분으로서는 강의 이외에 다른 부분에 신경 쓰기가 힘들어진다. 동남아 언어교육이 전반적으로 약해지고 있다고 하겠다. 이 뿐만 아니라 연방정부에서 지원하는 외국어및지역연구장학금 예산도 매 주기마다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다. 언어를 잘하는 지역연구인력을 키우기보다 테크놀로지를 바탕으로 한 안보 관련 투자가 늘어나고 있다. 미국의 대학정책이 인문사회과학교육을 등한시하며 주로 과학, 테크놀로지, 엔지니어링과 수학(STEM: 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nd Math) 교육에 투자하는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언어 및 지역연구 교육이 설 곳이 점점 좁아지고 있는 상황이다.18)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대학은 연방정부와 소통하여 외국어및지역연구장학금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대학은 수요와 공급을 계산하는 시장논리보다 동남아 언어 같은 희귀언어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희귀언어 교육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대학은 학문의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고 서구언어 위주의 교육을 벗어나 진정한 국제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각주

1) George Kahin, “The Making of Southeast Asian Studies: Cornell’s Experience,” Bulletin of Concerned Asian Scholars 29(1), 1997, pp. 38-42.

2) https://history.house.gov/HouseRecord/Detail/15032436195

3) https://cseas.yale.edu/history-southeast-asia-studies-yale

4) https://einaudi.cornell.edu/programs/southeast-asia-program/about-us

5) Russell Fifield, “Southeast Asian Studies: Origins, Development, Future,” Journal of Southeast Asian Studies 7(2), 1976, p. 154.

6) 앞의 글, p. 154. 

7) 엘렌 라퍼티(Ellen Rafferty) 교수와의 인터뷰, 2022년 10월 18일.

8) 엘렌 라퍼티 교수와의 인터뷰, 2022년 10월 18일.

9) 윌리엄 프레드릭(William Frederick) 교수 인터뷰, 2022년 11월 11일.

10) https://seassi.wisc.edu/history/

11) 위스콘신대학교 동남아연구소 부소장인 마이클 컬리네인(Michael Cullinane) 인터뷰, 2022년 7월 15일.

12) 오하이오대학교 윌리엄 프레드릭 역사학과 교수 인터뷰, 2022년 11월 11일.

13) 오하이오대학교 윌리엄 프레드릭 역사학과 교수 인터뷰, 2022년 11월 11일.

14) 위스콘신 대학교 마이클 컬리네인(Michael Cullinane) 부소장 인터뷰, 2022년 7월 15일.

15) 씨아시 언어디렉터인 에를린 바나드(Erlin Barnard) 교수 인터뷰, 2022년 11월 23일. 에를린 바나드 교수는 지난 3년 동안 씨아시 총괄 언어디렉터 역할을 해왔다.

16) 인도네시아어 강사이며 인도네시아어 코디네이터였던 삭티 수르야니(Sakti Suryani) 인터뷰. 2022년 11월 1일. 

17) 삭티 수르야니 인터뷰. 2022년 11월 1일. 

18) Thonchai Winichakul, “Southeast Asian Studies in Asia in the Age of Disruption,” 『東南アジア -歴史と文化』 49, 2020, pp.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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