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3.08.21
수정일
2023.08.21
작성자
동남아연구소
조회수
504

[25] 2023 캄보디아 총선: 선거와 권력 세습 ㅣ 정연식

[25] 2023 캄보디아 총선: 선거와 권력 세습 ㅣ 정연식 첨부 이미지

초록


7월 23일 캄보디아에서 총선이 실시되었다. 집권당 캄보디아인민당이 77.89%의 득표율로 하원 의석 125석 중 120석을 석권했다. 2023년 총선에서 인민당의 승리보다 더욱 이목을 집중시킨 부분은 선거를 통해 권력 세습이 단행되었다는 점이다. 훈 센 총리의 장남 훈 마넷 총리 예정자가 총리직을 승계하는 한편 다수의 인민당 권력층이 장관직을 자녀에게 대물림하는 집단적 권력 세습이라는 점에서 극히 이례적이었고, 그만큼 선거에서의 압승이 요구되었다. 캄보디아인민당의 압승은 단기적으로는 경쟁 정당을 배제하고 선거를 치른 결과이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대안 세력이 소실하고 인민당 지지층이 확장된 결과물이다. 캄보디아와 같은 선거권위주의 체제하에서 선거의 승리는 입법 독재를 통해 합법적으로 경쟁 세력을 제거하고 승리를 복제한다. 캄보디아인민당은 2023년 총선에서 이 기제를 가동해 영구집권으로 이어지는 권력 세습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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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의 선거: 체제 변화의 변곡점


  7월 23일 캄보디아에서 총선이 실시되었다. 1993년 오랜 내전을 끝내고 유엔의 주관 아래 총선을 치른 후 일곱 번째 치르는 총선이다. 내전을 종식하는 방식으로 유엔이 제안한 선거가 채택되었고, 유엔이 주관한 선거의 결과물로는 민주주의가 전제되었기 때문에 캄보디아의 선거와 민주주의는 늘 국제사회의 각별한 관심사였다. 그러나 캄보디아에 ‘이식’된 민주주의는 안정적으로 착상하고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채 퇴행적 변화를 거듭했다. 그리고 그간의 총선은 퇴행적 변화의 변곡점으로 기록되어왔다(정연식 2015, 2018). 1993년 첫 총선은 왕실 정당인 훈신뻣(FUNCINPEC)이 승리했는데, 당시 실질적 국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캄보디아인민당(Cambodian People’s Party)이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두 명의 총리를 두는 변종 체제를 일방적으로 도입해 훈 센(Hun Sen) 정부의 집권을 연장했다. 1997년 무력을 동원해 훈신뻣을 제압한 후 치른 1998년 선거에서는 인민당이 승리하면서 체제의 권위주의적 성격이 강화되었지만, 이후 2003년 총선과 2008년 총선을 치르면서 권위주의 정부가 선거를 통해 정통성과 합법성을 확보하는 선거권위주의(electoral authoritarianism) 체제로 변화했다. 2013년 총선은 공정한 경쟁이 부재했던 이전 총선과 달리 선거를 통해 정권 교체가 가능한 수준으로까지 자유로운 경쟁이 전개되면서 폐쇄적 선거권위주의에서 경쟁적 선거권위주의 체제로 진화했고, 장기적으로는 온전한 민주주의 체제를 향한 발전적 궤도에 오른 것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권 교체 위기에 식겁한 인민당 정부가 경쟁 정당인 캄보디아구국당(Cambodia National Rescue Party)을 강제 해산했고, 그렇게 경쟁 없이 치른 2018년 총선은 인민당이 하원 의석 125석을 독점하는 결과를 낳으며 다시 폐쇄적 선거권위주의로 퇴행하는 변곡점이 되었다. 2023년 총선은 캄보디아의 정치체제에 어떤 변화를 초래했을까.


2023년 총선


  캄보디아는 의회는 양원으로 구성되는데, 총선에서 하원의원 125명을 비례대표제로 선출하고 62명으로 구성되는 상원은 하원을 통해 간접 선출된다. 7월 21일 3주간의 선거운동 기간이 끝나고 하루 냉각일을 가진 후 7월 23일 총선이 실시되었다. 선관위가 확정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캄보디아인민당이 6,398,311표를 얻어 득표율 77.89%를 기록했고, 이어서 훈신뻣이 716,490표, 득표율 8.72%로 2위에 올랐다. 그 외 134,285표(1.63%)를 획득한 크메르국가통합당(Khmer National United Party)부터 최저 득표 12,786표를 기록한 농민당(Farmer’s Party)까지 16개 정당이 뒤를 이었다. 투표율은 84.58%를 기록하며 2018년 총선이 달성했던 82.89%보다 높았다. 동트(D’Hondt) 방식에 따른 계산 결과 전체 하원 의석 125석 중 인민당이 120석, 훈신뻣이 5석을 얻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2023년 총선은 결국 2018년 총선과 다를 바 없는 인민당의 압도적인 승리로 막을 내렸다. 인민당의 압승은 충분히 예견된 결과였던 터라 국내외 시선은 선거일 직전 전격 발표된 훈 마넷(Hun Manet) 장군의 총리직 승계에 집중되었다. 5년 후로 예정되어 있던 권력 세습이 급작스레 현실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이번 2023년 총선은 권력 세습을 위한 선거였으며 권력 세습을 통해 훈 센 정부의 권위주의적 속성이 극적으로 부각되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권력 세습


  선거일 이틀 전, 공식적인 선거운동이 종료된 후 훈 센(Hun Sen) 총리가 물러나고 훈 마넷이 새 총리가 될 것이라는 발표가 있었다(Torn Chanritheara 2023/07/21). 이미 수일 전부터 훈 센 총리가 물러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훈 마넷을 총리로 하는 내각 명단까지 유출되고 있었기에 충격은 크지 않았지만, 막상 공식적으로 발표되자 선거를 둘러싼 모든 논의가 권력 세습으로 집중되었다. 

  예고했던 대로 훈 센 총리는 7월 26일 사임을 발표하고, 8월 7일 왕명에 따라 훈 마넷이 총리가 되었다. 공식적으로는 8월 22일 부자간 총리 승계가 이루어진다. 1952년생 훈 센은 1985년에 총리가 되었으니 무려 38년간 총리를 지냈고, 보도에 따르면 정확히 14,099일 만에 총리에서 물러난다. 훈 센의 장남 훈 마넷은 1977년 민주 깜뿌찌어(Democratic Kampuchea) 치하에서 태어나 미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뉴욕대학교와 브리스톨대학교에서 경제학으로 각각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고, 군 요직을 두루 거쳐 사성장군으로 육군총사령관까지 역임한 후 이번 총선에서 프놈펜 선거구 1번 후보로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권력 세습을 위한 준비는 이미 오래전 시작되어서 훈 마넷은 2022년 인민당 전당대회에서 공식적으로 2028년 총리 예정자로 추대된 후 꾸준히 차기 총리 후보의 자격으로 공개 행보를 벌여왔고, 특히 이번 총선 기간 실질적인 당 지도자의 역할을 맡아 선거운동을 주도했다. 선거운동 기간을 돌이켜보면 훈 마넷 총리의 등장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을 만큼 훈 마넷은 항상 선거운동의 최전면에 있었다(Khmer Times 2023/07/02). 하지만 일찍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은 그만큼 훈 센 총리가 여러 차례 권력 승계시기를 2028년으로 못을 박았던 데다 보안까지 철저했던 탓이다. 선거운동이 끝난 후 권력 승계를 공개한 것은 이번 총선이 권력 세습을 위한 선거로 규정되는 것을 막기 위한 고도의 책략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구국당 인사들을 포함해 누구도 권력 세습을 선거 쟁점으로 부각하기는커녕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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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총선이 권력 세습을 위한 선거였다는 것은 권력 세습의 집단적 성격에서 더욱 뚜렷이 확인할 수 있다. 훈 센 총리에서 훈 마넷 총리로 이어지는 권력 세습은 사실 다수의 장관직 세습을 담보로 성립된 것이다. 훈 센 가문의 권력 세습에 대한 인민당 권력층 내부의 반발을 사전에 차단하고 오히려 복종과 결속을 다지기 위한 차원에서 장관직 세습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우선 사르 켕(Sar Kheng) 내무장관과 띠어 반(Tea Banh) 국방장관을 꼽을 수 있다. 사르 소카(Sar Sokha, 40세) 현 교육청년체육부 차관보는 아버지 사르 켕의 내무부 장관직과 부총리직을 그대로 물려받는다. 현 시엠 리업 주 지사인 띠어 세이하(Tea Seiha, 41세)는 아버지 띠어 반의 국방부 장관과 부총리 자리를 승계한다. 그 외에도 하원 의원 당선을 기준으로 기획부 장관 짜이 탄(Chhay Than)의 아들 짜이 리티센(Chhay Rithisen), 산업기술부 장관 짬 쁘라싯(Cham Prasidh)에서 짬 니물(Cham Nimul), 농촌발전부 장관 욱 라분(Ouk Rabun)의 아들 욱 뽀니어(Ouk Ponhea), 국토개발부 장관이자 부총리인 찌어 쏘파라(Chea Sophara)의 사위 이엉 쏘팔렛(Eang Sophaleth), 부총리 임 짜이 리(Yim Chhay Ly)의 아들 임 리엇(Yim Leat), 부총리 께 낌 얀(Ke Kim Yan)의 아들 께 순 쏘피업(Ke Soun Sopheap) 등이 장관직을 세습할 것으로 예상된다(Phon Sothyroth 2023/07/18). 

  의원직이 입각에 필수 요건은 아니기 때문에 내각 명단이 발표되면 집단 권력 세습의 규모는 확대될 수도 있다. 인민당 발표에 따르면 부총리 10명, 장관 30명, 선임 장관 11명 중 90% 정도 젊고 참신한 인물로 교체될 것이라고 한다(Ben Sokhean 2023/07/23). 권력 세습이라는 비판에 대해 인민당은 권력 세습이 아니라 세대교체이며 이웃 동남아시아 국가들뿐만 아니라 일본을 비롯한 다수의 국가에서 선거를 통해 선대의 역할을 계승하는 현실과 다르지 않다며 캄보디아에 대해서만 왜곡된 관점이 적용된다고 비판했다. 인민당의 주장처럼 이번 총선은 선거라는 형식을 통해 집단적 권력 세습에 형식적 합법성을 부여하는 선거가 되었다. 그야말로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이루어진 권력 세습이다.

   

선거의 공정성


  선거 직후 각종 선거감시단은 2023년 총선을 자유롭고 공정하게 치러진 선거로 규정한 데 반해 미국과 EU, 그리고 UN은 성명을 통해 불공정 선거였다고 비판했다(Samban Chandra 2023/07/25). 사실 선거 현장에서는 과거와 달리 부정선거로 의심할 만한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선거감시단의 감시 결과가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반면 불공정 선거라는 비판은 촛불당(Candlelight Party)이 선거에서 배제된 사실을 근거로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촛불당의 전신은 삼랑시당(Sam Rainsy Party)으로, 삼랑시당과 인권당(Human Rights Party)이 2013년 총선을 앞두고 캄보디아구국당(Cambodian National Rescue Party)으로 합당한 뒤 2017년 강제 해산되자 2018년 촛불당으로 개명해 재창당한 정당이다. 비록 선거법에 따라 삼 랑시를 대표로 세울 수 없지만,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촛불당은 삼 랑시의 당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가택 구금 상태에 있는 껨 소카(Kem Sokha) 전 구국당 대표와 삼 랑시는 완전히 결별한 상태여서 촛불당이 전 구국당을 온전히 대체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당 전 껨 소카가 이끌었던 인권당 세력은 정당으로 재조직화되지 않고 있어서 촛불당이 반 인민당 세력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정당으로 부상한 후 그 존재감을 키워오던 터에 선거에서 배제된 것이다. 인민당이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선거 구도에서 그나마 인민당과 경쟁할 만한 유일한 정당을 배제한 것이다. 

  5월 선관위는 총선 참여를 신청한 20개 정당 가운데 촛불당을 포함한 두 개의 정당에 대해 자격 미달로 선거 참여 불가 판정을 내렸다. 사유는 제출 서류 미비다. 선관위에 따르면 촛불당은 정당 등록증 원본이 아닌 사본을 제출했고 법에 명시된 바에 따라 원본 제출을 요구했지만 제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촛불당은 헌법위원회에 선관위 결정에 대한 적법 심사를 요청했지만, 헌법위원회는 적법 판정을 내렸다. 촛불당은 무기력하게 결과에 순응했다. 선거 후에도 적법 절차라는 올가미에서 탈출하지 못한 채 이번 선거의 불공정성 문제는 거론하지 않고 합법적으로 다음 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Soth Koemsoeun 2023/08/09).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서 득표율 22.2%를 기록한 정당을 서류 미비를 이유로 선거 참여 자격을 박탈한 것은 선거와 공정한 경쟁이 갖는 가치를 기준으로 판단할 때 분명 과도한 법 집행이라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이번 총선에서 공정성이 결여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촛불당 선거 배제가 야기한 불공정성 문제가 선거 자체를 부정하기에 충분한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1997년 무력으로 훈신뻣을 제압하고 치른 1998년 선거에서도 선거의 공정성 문제가 불거졌지만, 결과를 무효화할 수 있는 논리와 수단이 없었다. 2017년 구국당을 해산할 목적으로 선거법을 개정한 후 새 선거법에 따라 구국당을 해체했을 때에도 선거 불공정성 문제가 강력히 제기되었고 EU는 경제 제재까지 가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으며 구국당 해산은 정당하게 의법 처리되었다는 인민당의 논리를 제압하지도 못했다. 하물며 이번 촛불당 참여 불허 판단은 기존의 규정을 엄격하게 집행한 것에 불과하다는 인민당의 주장에 대해 더 이상의 비판은 이미 실종된 상태다. 


인민당의 압승


  캄보디아 정치체제의 성격과 관련해 2023년 총선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인민당이 획득한 높은 지지율이다. 인민당은 84.58%의 투표율과 77.89%의 득표율을 기록했는데, 환산하면 전체 유권자의 65.88%가 인민당을 지지한 셈이며 선거권위주의체제가 추구하는 ‘자발적 복종’과 ‘합법적 독재’를 실현하는 비상한 지지율이다. 분명한 것은 경쟁 정당을 제거하고 권력을 독점하는 인민당이지만 지지율은 더욱 증가했다는 것이다. 


(1) 대안 세력의 소실

  2013년 총선에서 인민당 장기 집권을 위협했던 캄보디아구국당은 법적으로 해산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민당의 집요한 탄압으로 인해 실질적으로도 거의 와해한 상태다. 구국당의 두 축이었던 삼 랑시와 껨 소카는 완전히 결별한 상태이며 서로 상대에 대해 언급조차 않을 정도로 견원지간이 된 듯하다. 껨 소카가 장기간의 구금과 재판을 겪는 동안, 그리고 지난 3월 27년 가택구금형과 피선거권 박탈이 선고되었을 때에도 삼 랑시는 껨 소카에 대한 언급을 회피했다. 두 세력 간 연대와 협력은 거론조차 된 적이 없다. 

  삼 랑시를 비롯한 구국당 망명 인사들은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캄보디아 국민들로부터 지리적 거리만큼 심정적으로도 멀어졌다. 소셜미디어에 의존하는 적극적 지지자들과의 소통조차 빈도와 규모에서 모두 쇠락하는 모양새다. 아울러 지적되는 문제는 이들이 뚜렷한 전략조차 제시하지 못하는 무력한 세력으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삼 랑시는 두 차례나 공언했던 귀국 시도에서 모두 실패했는데, 그 어설픈 과정은 지지자들을 실망케 했다. 게다가 훈 마넷 미국 육사 졸업 허위와 같은 근거가 박약한 주장들을 남발하며 스스로 신뢰도를 갉아먹었다. 2018년 총선에서는 ‘깨끗한 손가락’ 캠페인을 벌이며 선거 보이콧 운동을 전개했는데, 손가락 잉크 유무가 사회적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비현실적인 전략으로 오히려 투표율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해 인민당에 면죄부만 선사한 꼴이 되었다. 만약 당시에 무효표 운동을 벌였더라면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구국당 인사들은 뒤늦게 이를 깨닫고 이번 총선에서는 무효표 운동을 벌였으나 인민당의 적극적인 방어책에 막힌 표심은 무효표 운동에 동참하지 않았다. 


(2) 인민당 지지층 확대

  2013년 총선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투표율, 그리고 무효표와 인민당 득표율이다. 우선 투표율을 보면 2018년 83.02%에서 2023년 84.58%로 증가했다. 이는 투표를 독려하는 대대적인 캠페인이 장기간 이어졌고 그에 따라 깨끗한 손가락이 받게 될 유무형의 사회적 압력이 증가한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훈 센 정부는 득표를 극대화하여 정통성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의 목적이기 때문에 모든 매체를 동원해 투표 독려에 나섰다. 선거일인 7월 23일 전후로 사흘을 묶어 공휴일로 지정하고 유권자들이 귀향하는 데 무료 교통편을 제공하는 등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7월 24일부터 최소 일주일간 깨끗한 검지가 초래할 시선과 압력은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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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기표소는 비밀이 보장되는 공간이기 때문에 인민당 정부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유권자라면 무효표 운동에 동참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효표는 440,154표(5.36%)에 그쳤고 이는 2018년 총선의 8.59%에 비해 오히려 감소한 수치다. 무효표 운동 실패의 최대 수혜자는 훈신뻣이다. 2018년 5.89% 득표에 그치며 소멸 직전까지 갔던 훈신뻣은 8.72%로 득표율을 끌어올리며 5석을 확보하고 극적으로 소생했다. 2021년 말 라나릇(Ranariddh) 왕자 사망 이후 짜끄라웃(Chakravuth) 왕자가 훈신뻣 재건에 나서 결국 의석을 확보하는 수준으로까지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극적으로 회생한 훈신뻣은 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충성 야당이 될 것을 천명했다(Soth Koemsoeun 2023/08/08). 촛불당, 즉 과거 삼랑시당의 뿌리가 훈신뻣이었으니 촛불당 지지자들이 차선책으로 훈신뻣을 선택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무효표가 5.36%에 그쳤다는 사실이며 과거 구국당을 지지했던 유권자들 다수가 구국당을 포기한 것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인민당은 6,398,311표를 얻어 77.89%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는 2018년 총선의 76.85% 대비 1% 포인트 이상 증가한 것이다. 사실 일곱 차례 총선을 치르는 동안 인민당 지지율은 삼랑시당과 인권당이 구국당으로 통합해서 도전했던 2013년 총선을 제외하고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왔다. 특히 인민당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들은 선택지가 제거된 2018년 총선에서 대거 인민당 지지로 선회했고, 그 추세가 2023년 총선에서 반복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대세에 대한 승복과 편승 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대안이 사라진 상황에서 적극적인 저항을 선택하기에 충분한 명분과 사유가 없다면 대세 편승은 그리 어려운 선택이 아니다. 특히 저항의 대가가 크고 전향에 대한 보상도 크다면 더욱 그러하다. 인민당 정부는 집요하고도 치밀하게 반대자들을 탄압하는 한편 전향자들에게는 큰 보상을 제공하며 반대 세력을 와해시키는 전략에 주력해왔고, 총선을 통해 그 효과는 확인되었다. 2023년 총선을 앞두고도 수개월 전부터 야당 탈당, 인민당 입당 사례들이 줄을 이었다. 전향자들에게는 반드시 보상이 주어진다. 훈 센 총리는 인민당은 삼 랑시를 제외하고 누구든지 환영한다고 수시로 공언한다. 최근 사례를 하나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한국에서 반정부 활동을 이끌었던 임 시난(Yim Sinan)은 총선 3개월 전 인민당 지지로 전향하면서 노동부 차차관보(Undersecretary of State)로 임명되었고 총선 직후 차차관(Secretary of State)으로 승진했다(Khmer Times 2023/08/05).

  전향에 필요한 명분은 인민당이 제공한다. 발전과 평화의 수사는 모든 매체를 동원해 무한 반복된다. 성장과 발전은 모두가 체험하는 것이며 그 성과를 인민당 정부에서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발전의 수사는 인민당 지지에 충분한 명분을 제공한다. 인민당 정부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산티피업(santiphap), 즉 평화다. 캄보디아에서 평화라는 단어는 전쟁과 죽음의 부재를 가리키며 그것은 곧 민주 깜뿌찌어의 종식, 그리고 그 끔찍했던 시대를 끝낸 인민당과 베트남의 공로를 함축한다. 이는 반 베트남 정서에 의존하는 반대 세력은 캄보디아를 평화가 실종된 과거로 회귀시킬 것이며 인민당만이 이를 막을 수 있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각종 행사와 저작물이 이 산티피업의 수사를 재현하며 기억의 정치를 구현한다. 

  77.89%의 득표율은 이렇게 구축된 것이며 인민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압도적인 지지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압도적 지지 위에 구축된 권위주의 체제가 그리 특별하거나 불가능한 현상은 아니다. 2023년 총선을 통해 캄보디아 정치체제에 관해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인민당 정부의 권위주의적 속성이 아니라 인민당 일당지배체제의 불가해성이다. 


의사민주주의의 고착화


(1) 선거권위주의와 입법독재

  훈 센 가문이 지배하는 인민당은 영구집권을 추구하고 있으며, 그 수단으로 선거를 활용한다. 선거에서의 승리는 정통성과 합법성을 부여하며 통치 비용을 최소화할 뿐만 아니라 입법 권력을 이용해 비판을 제거하고 경쟁자를 제거함으로써 차기 선거에서의 승리를 보장한다. 선거권위주의체제로 지칭할 수 있는 이 기제는 2017년 구국당 강제 해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2017년 지방선거에서 구국당이 43.83%를 득표하며 50.76%를 얻은 인민당을 위협하자 인민당은 선거법을 개정해 구국당을 해산한 후 2018년 총선을 경쟁 없는 선거로 만들어 125석 전체를 석권했다. 입법 권력을 독점한 인민당은 차기 선거 승리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모든 조치를 법제화했다. 

  2023년 총선의 전초전 격인 2022년 지방선거에서 촛불당이 22.2%를 득표하며 급부상하자 인민당은 촛불당을 제압할 묘수를 찾아야 했다. 인민당 계산으로는 총선에서 최소 20석을 확보할 수 있는 득표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선관위에서 촛불당의 선거 참여를 불허한 것이다. 촛불당에 정당 등록증 원본이 없다는 사실을 인민당이 사전에 인지하고 기획한 것인지 아니면 촛불당을 제거할 명분을 찾고 있던 훈 센 정부에게 우연히 찾아온 횡재인지 단정하기는 어렵다. 어쨌든 정당 등록증 원본이 없는 촛불당은 총선에서 배제되었고, 결과적으로 인민당은 안정적인 입법 권력을 다시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촛불당이 배제된 후 무효표 운동이 전개되자 인민당은 7월 초 선거 직전에 선거법을 개정해 무효표 선동죄를 추가한 후 바로 무효표 운동에 가담한 인사들을 색출하는 작업에 나섰다(Soth Koemsoeun 2023/07/06). 아울러 미투표자에 대해 추후 총선 2회 피선거권을 박탈한다는 조항도 추가했다(Hang Punreay 2023/07/06). 7월 17일 선관위는 선거법 개정안에 의거해 삼 랑시를 포함한 전 구국당 인사 17명에 대해 무효표 선동 혐의로 피선거권 20년 정지를 명령했다. 선거가 끝난 후에도 무효표 운동에 대한 추적, 색출 작업을 벌여 선관위는 해외 거주 활동가 21명에 대해 같은 혐의로 피선거권 20년 정지를 명령했다. 경찰은 무효표 선동 혐의로 국내 거주자 44명을 공개 수배하고 검거에 나섰다(Buth Reaksmey Kongkea 2023/07/25).

  영구집권을 위한 입법 권력 행사는 언론법과 시민사회단체법에서도 위력을 발휘한다. 특히 회계 재정과 같은 취약한 부분을 의법 공략함으로써 언론에 재갈을 물리거나 폐쇄하기도 한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미 크게 위축되어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거의 사그라든 상태다. 게다가 일명 LANGO로 지칭되는 개정 시민단체법은 모든 시민사회단체의 회계 공개를 의무화하고 있다. 현재 시민사회단체들이 이를 거부하고 있는 형국인데, 조만간 유예 기간이 종료되면 시민사회단체들에 대한 공권력 행사가 대대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2) 합법적 의사민주주의

  인민당 정부의 권위주의적 지배는 모두 입법 권력이 제공하는 합법성을 획득한다. 모든 비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행위가 법의 테두리 내에서 이뤄지며, 원초적 권위주의체제에서 빈번히 행사되는 초법적, 탈법적 지배는 불필요하다. 요컨대 인민당 정부는 항상 합법적이다. 명백히 비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행태에 대한 내외부의 비판과 제재도 이 형식적 합법성의 논리를 넘지 못한다. 총선 참여 불가 통보를 받은 후 촛불당은 뻔한 결론이 예상되는 헌법위원회 재심을 청구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러한 형식적 합법성을 격파하는 방법은 선거 승리 혹은 혁명적 전환뿐이다. 입법 권력을 장악한 안정적인 선거권위주의체제에서 선거를 통해 그 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지극히 낮다. 선거를 통한 권력 교체 가능성이 보인다면 체제는 입법을 통해 그 가능성을 제거하기 때문이다. 혁명적 전환의 가능성도 마찬가지다. 77.89%가 지지하는 체제를 전복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비상한 상황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2023년 캄보디아 총선은 인민당 영구집권을 향한 선거권위주의체제 궤도를 완성하는 선거가 되었다. 이제 캄보디아는 전형적인 의사민주주의(pseudo-democracy)로 고착되어 장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선거 직후 유럽과 미국이 불공정 선거라 규정하고 비판한 데 반해 중국을 비롯한 캄보디아에 우호적인 국가들로부터는 축하 메시지들이 쇄도했다. 8월 초에는 태국의 탁신 전 총리와 잉락 전 총리가 함께 훈 센 총리의 생일잔치에 등장해 인민당의 선거 승리를 축하하고, 훈 마넷 총리와 나란히 앉아 담소하는 모습이 보도되면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특히 리 셴 룽(Lee Hsien Loong) 싱가포르 총리가 보낸 축하 서한은 모든 언론이 총동원되어 전파했다(Woon 2023/08/07). 싱가포르를 비판하지 않는다면 캄보디아도 비판할 수 없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체제의 유사성과 합법적 권력 세습까지 닮은꼴이라 든든한 후원군을 얻은 셈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개념적 필수 요건을 갖추지 못한 가짜 민주주의들이며, 장기간 고착화에 따른 무감각과 무저항이 비민주적 속성을 위장하는 효과를 발휘할 뿐 진성 민주주의가 될 수는 없다.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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