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0.07.23
수정일
2023.01.11
작성자
동남아연구소
조회수
690

[ 7] 캄보디아 노동중재 사례의 감소와 노동 정치적 함의 ㅣ 박진영

[ 7] 캄보디아 노동중재 사례의 감소와 노동 정치적 함의 ㅣ 박진영 첨부 이미지


초록


노동중재위원회를 포함한 캄보디아의 노사 관계 제도는 국제 사회, 특히 미국의 적극적 개입으로 2000년대 초반 그 틀이 형성되었고, 정부의 소극적 노동 정책을 배경으로 나름의 균형을 유지하며 최근까지 운영되어 왔다. 2016년 노동조합법의 도입은 노동중재위원회의 중재 건수를 급격하게 감소시킴으로써 그간 유지되어 왔던 균형에 균열을 일으켰다. 이러한 변화의 시발점은 2013/14년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에 정치적 위기의식을 느낀 정부의 노동 정책의 변화였다. 정부와 여당은 기존 법제도의 개선과 새로운 법의 도입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식을 통해 적극적으로 노동 이슈에 개입, 통제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노동자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늘리고 온정주의적인 정책을 적극 도입하여 그들의 지지와 지원을 끌어내는 한편, 노동조합의 활동을 위축시키기 위해서 노동조합법을 도입하는 등 노동운동에 대한 공세적인 통제를 실시하고 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은 정부의 온정주의를 반영하기도 하나 노동자들의 집단적인 압력이 이루어낸 성과이기도 하다. 이를 노동 운동의 성과로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는 그간 국제 사회의 역할에 크게 기대어 왔던 캄보디아 노동 운동의 당면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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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캄보디아의 노동중재위원회(AC, Arbitration Council)는 2003년대 설립 이후 캄보디아 노사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노동 조건 모니터 프로젝트인 Better Factories Cambodia와 함께 노동중재위원회는 “유일하게 제대로 기능하는 노사관계 제도”(캄보디아 주재 외국대사관 관계자 인터뷰 2018년 9월)라고 까지 여겨져 왔다. 그런데 2017년 이후 노동중재위원회의 중재 건수가 급격하게 감소하였다. 위원회 내부 자료에 따르면 2003년 설립 이후 2016년까지 한 해 평균 190여건의 중재를 실시하였으며 특히 2014년과 2015년에는 각각 361건과 338건에 이르렀으며, 노동조합법 시행 첫 해인 2016년에도 248건을 처리하였다. 그러나 2017년부터 급격하게 감소하여 2017년 50건, 2018년 59건으로까지 중재 건수가 줄어들었다.1)

  이러한 중재 건수의 감소에 대해 중재위원회의 위상과 역할 축소에 대한 우려가 일고 있다. 이와 함께 노동법원을 도입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은 노동중재위원회의 존립 근거를 위태롭게 하기까지 하였다. 실제 미국 정부는 2003년 이후 지속되었던 중재위원회에 대한 재정 지원을 2019년 중단하기로 결정하여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2) 그러한 결정에는 트럼프 행정부 내부의 정치적 상황과 함께 중재 건수의 급격한 감소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중재위원회는 보고 있었다(중재위원회 관계자 인터뷰 2019년 1월).

  이러한 변화에 대해 혹자는 캄보디아의 노사 관계가 성숙하여 노사 분규가 줄어들었다고 주장하기도 하나 이러한 주장으로는 그 급격한 변화의 추이를 충분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2016년 도입된 노동조합법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여겨진다.

  본고에서 필자는 현지 조사 과정에서 입수한 자료를 이용하여 노동조합법이 노동쟁의 중재 사례 수 변화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볼 것이다. 나아가 중재 건수의 변화를 캄보디아의 산업화 과정과 노사관계 제도의 도입 및 발전을 둘러싼 사회, 정치적 맥락과 연관지어 살펴볼 것이다. 즉, 노동 중재 사례 수의 축소는 단순한 수치의 감소뿐만 아니라 더 커다란 정치, 사회적 맥락의 변화 과정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캄보디아의 노사분규 조정 제도와 노동조합법의 영향


  캄보디아 노사분규 조정제도는 작업장 단위의 협상(negotiation), 노동부에서의 조정(conciliation), 노동중재위원회에서의 중재(arbitration)의 세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캄보디아 노동법(제300조~제317조)은 개별 분규와 집단 분규를 구분하여 정의하고 처리 절차를 달리하고 있다. 개별 분규는 사용주와 노동자 개인 혹은 다인과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근로계약서, 단협, 노동법의 해석이나 적용과 관련된 분쟁으로 정의한다. 집단 분규는 하나 또는 일인 혹은 다인의 사용주와 몇 명의 노동자 간 노동조건, 노동조합의 권리 행사, 사업장 내 노조 인정, 노사 관계 등과 관련된 것으로, 기업의 효율적 운영이나 사회 안정을 위태롭게 할 만한 이슈를 둘러싼 분쟁으로 규정된다. 개별 분규와 집단적 분규 모두 노동부에 조정 신청을 할 수 있는데, 조정 과정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한 집단 분규만이 노동중재위원회로 이관되게 된다. 노동조합법 도입 이전까지 노조가 개입되어 있는 경우 통상적으로 집단 분규로 조정을 신청할 수 있었다(노조 간부 인터뷰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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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동중재위원회의 역할과 현 상황

  노동중재위원회는 노사분규를 다루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위원회는 노사 양측에서 높은 공신력을 얻고 있는데 이는 부패가 만연한 것으로 비판받고 있는 캄보디아 공공 기관에서 극히 예외적인 사례로 인정받고 있다. 노동중재위원회의 판결 결과는 분쟁 당사자 양측 모두가 동의하는 경우에만 법률적인 구속력을 가진다는 점에서 그 영향력이 제한적이기는 하나, 노동조합은 중재 결과를 법률 이외의 방법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노동자들은 주로 다국적 의류 브랜드인 원청 기업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고용주인 하청기업에 압력을 행사해 중재 결과를 이행토록 하는 전략에 중재 결과를 이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쟁의 해결에 있어 노동중재위원회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지 조사 과정에서 만난 주요 노조의 간부에 따르면, 노조들은 사업장에서의 협상이나 노동부에서의 조정을 “중재위원회로 가기 위한 다리 역할”(노조 간부 인터뷰 2018년 11월)로 간주하고 있다.

  2016년 도입된 노동조합법은 노사 분규 조정 절차에 영향력을 발휘하여 중재위원회로 이관되는 사례를 축소시키고 있었다. 아래의 표는 필자가 2018년 10월 현지 조사 기간에 해당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노동부 관료를 통해 입수한 노동부 내부 데이터이다. 아래의 표는 2014년부터 2018년 9월까지 조정을 위해 접수된 노사 분규 사례수를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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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표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노동부에 조정을 위해 접수된 사례는 2015년 1,166건으로 정점을 찍은 후 점점 감소하고 있는데, 특히 집단적 분규 사례가 대폭 감소하고 있다. 조정 절차에 접수된 전체 분규 사례 중 집단적 분규 사례의 비중은 2016년까지 70~80%에 이르다가 2017년과 2018년에는 각각 21%와 26%로 감소하였다. 이 중에도 특히 노동중재위원회로 이관 대상이 되는 사례인 미합의 집단 분규 사례는 2015년 586건에서 2018년 46건으로 2015년 대비 약 8%의 수준으로 감소하였다. 이는 노동부의 조정 단계에서 많은 사례가 집단적 분규가 아닌 개별 분쟁으로 접수되었을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조정 담당 공무원 역시 개별 분규 사례가 비정상적으로 증가하였다고 인정하고 있었다(조정 담당 공무원 인터뷰 2018년 12월).

  조정 과정에서 개별적 사례로 접수되었다는 것은 조정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고 해도 노동중재위원회에 접근할 기회가 없음을 의미한다. 위 표에서 제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2017년 노동부에 조정 신청을 한 총 603건의 사례 중 집단적 분규는 127건이었으며, 이 중 합의에 이르지 못한 70건의 사례만이 노동중재위원회로 이관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참고로, 2017년중재위원회에서 중재한 사례 수는 50건이었다.

  이러한 변화를 가져온 것은 앞서 언급한 2016년 도입된 노동조합법이다. 새로운 노조법은 30%를 초과하는 노동자를 조직한 다수 노조만이 노동부에 집단 사례를 위한 조정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수의 소수 노조들만 존재하고 다수 노조가 없는 사업장의 경우 30%를 초과하는 노동자들이 지문 날인을 통해 집단적 분규 조정신청을 할 수 있는 예외를 두었다. 600여개 사업장에 3,000여개 노동조합이 난립하고 있는 캄보디아의 상황에서 대다수 노조들은 집단적 분규로 조정 신청을 하기 어려웠으며, 이들이 제소한 대다수의 조정 신청이 개별 사례로 접수되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중재위원회의 중재 사례 축소로 이어졌다.


2) 노동중재 사례 축소의 영향

  노동중재 대상 사례의 대폭 축소는 여러 가지 측면에 영향을 미쳤다. 우선 노동중재위원회 운영 관련 어려움을 야기하였다. 2000년대 초반 ILO와 미국 정부 등 해외의 인적 물적 지원에 기반하여 설립된 이후 미국 정부의 지속적인 재정적 지원을 받아왔던 노동중재위원회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재정지원 중단 결정이 그 중 하나이다. 이후 부족한 재정은 스웨덴 정부 기금과 더불어 캄보디아 정부가 지원하기로 하였으나, 기관 운영과 관련하여 캄보디아 정부로부터의 독립성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노동조합이 그간 이용해왔던 효과적인 도구를 잃게 되었다는 점이다. 캄보디아의 노조들은 노동중재위원회의 판결을 활용하여, 원청 브랜드들에게 하청 기업에서 발생한 부당 노동행위 구제를 위해 개입하도록 요구하는 국제캠페인을 전개해왔다. 위원회의 판결은 그 법적 구속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중재위원회의 공신력과 중립성, 그리고 전문성 덕분에 현지 노사뿐만 아니라 원청 브랜드들의 신뢰를 얻고 있었다. 현지에서 만난 한 유럽 의류 브랜드 관계자는 “노동중재위원회의 판결이 있으면 우리는 반드시 그것을 존중하며 우리 파트너(하청기업)들도 이를 따르도록 한다”고 말하였다. 현지에서 만난 노조 간부 역시도 중재위원회의 판결 없이는 원청 브랜드들을 압박하여 하청 기업으로 하여금 노동법을 준수토록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특히 캄보디아 정부의 미약한 행정력과 현장에서의 노동법 위반 사례로 인해 발생하는 노사분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전략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최근의 변화는 캄보디아 노동조합의 주요 성과 중 하나였던 국제 캠페인과 브랜드에 대한 압력을 통해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얻어낼 기회를 제약하게 된다.

  노동중재위원회가 이처럼 공신력을 가지게 된 배경 중 하나는 위원회가 가진 역사와 크게 관련이 있다. 다음 장에서는 캄보다이의 산업화 과정과 노사관계 제도의 도입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캄보디아의 산업화와 노사관계 제도의 도입


  노동중재위원회의 도입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미국이었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지속된 내전이 끝난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시작된 경제 개발과 산업화 과정에서 국제사회의 지원은 필수적이었는데, 특히 미국은 재정적 지원뿐만 아니라 노사관계 제도 구축에 주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내전은 전체 인구의 1/3의 사망을 초래했을 정도로 캄보디아 사회 전반을 초토화시켰으며, 특히 크메르루즈에 의해 인민의 적으로 지목되었던 지식인층의 대다수는 사망하거나 도피하여 인적 자원의 손실이 컸다. 예를 들어, 베트남이 크메르루즈를 수도 프놈펜에서 국경지역으로 밀어냈던 1979년 국내에 생존해 있던 법대 졸업생이 10명에 불과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였다(Hall 2000: 120). 초토화된 산업 기반 및 인적 자원, 풍부하지 못한 천연 자원 등의 조건에서 캄보디아의 산업화 전략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노동집약적인 의류, 봉제업을 중심으로 한 수출 지향적 산업화 전략으로 전환되었다. 이에 따라 국제 브랜드들을 위한 하청 생산 위주의 의류 산업이 급격하게 성장한다. 1995년 20개에 불과하던 의류 공장은 대만, 홍콩,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한국 자본을 바탕으로 한 공장 설립을 통해 2000년에 190개, 2017년에 660여개로 증가하였다. 이러한 산업화 구조는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의류 산업은 최근 캄보디아 수출 재정의 90%를 차지하며 70만 명을 고용하고 있는, 제조업의 가장 큰 부문으로 성장하였으며, 고용주의 95%가 중국, 대만, 한국 등에서 온 외국인이다.

  의류 산업의 성장 배경에는 미국과 유럽 시장의 관세 혜택 및 지원이 큰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클린턴 행정부 시절 캄보디아를 자유 무역을 통한 경제 성장과 노동권 보호 우수 사례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의류 공장에서의 노동 조건이 개선될 경우 미국 의류 시장의 쿼터를 늘려주는 미-캄보디아 섬유 의류 무역 협정(the US-Cambodia Textile and Apparel Trade Agreement)이 대표적이었다(Arnold and Shih 2010).

  이 협정의 요구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미국은 국제노동기구(ILO, 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를 지원하여 노사 관계와 관련된 두 가지 제도를 만들게 되는데, 노동 조건 모니터 프로젝트인 Better Factories Cambodia(BFC)와 노동분쟁중재 기구인 노동중재위원회 Arbitration Council(AC)이 그것이다. 이 협정에 따르면, 미국은 캄보디아 의류 수출에 대한 무관세 쿼터를 매년 6% 증가시키는 것과 동시에 노동조건이 실질적으로 개선될 경우 최고 14%까지 추가로 쿼터를 늘려주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노동조건의 개선을 보장할 제도와 이를 운영할 신뢰할 만한 기관이 필요하였고, ILO가 그 역할을 담당하였다. 2001년 ILO의 의류 공장 노동 조건 모니터링 프로젝트(ILO Garment Sector Project)의 주요 목적은 노동 조건 개선 여부를 미국 정보에 보고하는 것이었다. 2004년 섬유 쿼터를 규율했던 다자간섬유협정(Multi-Fiber Arrangement) 종료 이후 미국이 더 이상 섬유 쿼터를 부여할 수 없게 되자, BFC로 이름을 변경한 동 프로젝트는 국제 의류 브랜드들로 타겟을 바꾸고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이와 함께 빈번하게 발생하는 노사 갈등을 규율할 제도로서 노사중재위원회가 오랜 준비 끝에 2003년 시작되었다.

  전문적인 역량을 바탕으로 공정한 판결을 내리는 노사중재위원회와 더불어 신뢰할만한 국제기구인 ILO가 운영하는 BFC 프로젝트는 제3세계 노동자들의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으로 악명 높은 국제 의류 산업 생산구조에서도 캄보디아를 윤리적인 생산지로 브랜드화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캄보디아의 정치 상황 변동과 노동 정책


1) 정치적 안정과 소극적 노동 정책

  의류 수출을 통한 산업화 및 경제 발전 과정에서 외국, 특히 미국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상황에서 1990년대 이후 장기 집권을 하고 있는 훈센 총리 하의 캄보디아 정부는 노사 관계에 소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노동 정책이나 노사 관계 정책은 오랫동안 정책적인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었다. 노동 관련법의 제·개정은 물론이고, 제정된 법의 시행조차도 무기한 연기되는 일이 빈번했다. 그 예 중 하나가 2002년 제정된 사회보장법(National Social Security Law)이다. 동 법은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 보장 제도를 담고 있으나, 그 시행 관련 일정이 불투명한 상태였다가 2016년에야 시행되게 된다.

  캄보디아 정부는 정책을 통하기 보다는 친정부 노조를 통해 노사 관계를 안정화시키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캄보디아의 노동조합은 그 정치적 성향에 따라 세 그룹으로 구분되는데 친정부, 친야당, 그리고 정치 세력으로부터 독립적인 노조가 그것이다. 이 중 친정부 노조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데, 3,000여개의 단위노조, 120여개 노동조합연맹 중 대다수가 이 그룹에 속하며 나머지 두 그룹에 속하는 노조 연맹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친정부 노조의 지도자들에게는 정부에서 노동사안 자문위원이라는 직책이 부여되며, 친정부 노조의 경우 여타의 노조들에 비해 파업의 빈도가 현저하게 낮다(Nuon et al. 2018).


2) 2013/14년 노동자 시위와 최저임금

  2013년 노동자들의 대규모 시위는 정부의 이러한 소극적 노동 정책을 극적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노동 이슈는 중요한 정치 이슈로 대두되었다. 2013년 노동자들의 대규모 시위를 촉발시킨 계기는 최저임금 인상 요구였다. 캄보디아의 최저임금은 산업 노동자들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의류 산업 종사 노동자들에게 적용된다. 최저임금은 그 명목과는 달리 노동자들이 받는 기본급이 된다. 즉, 최저임금에 몇 가지 수당을 더한 금액이 노동자들이 실질적으로 받게 되는 임금인 셈이다. 또한 의류 산업에서의 최저임금 인상은 다른 산업에서의 임금을 견인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따라서 최저임금 결정은 노동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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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캄보디아의 최저임금이 최초로 도입된 것은 1997년으로, 노조와 협의 과정 없이 정부와 기업은 최저임금을 40달러로 결정하였다. 이후 최저임금은 부정기적으로 인상되었는데 인상의 동인은 노동자들의 시위였다. 노동자들의 시위는 최저임금을 2000년 45불, 2009년 56불로 인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2010년은 최저임금 인상 요구가 대규모로 확산된 시기였다. 2010년 노조 추산 200,000명(경영자 단체 추산 30,000명)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 이후 최저임금은 61불로 인상된다. 이는 그 때까지의 노동자 시위 중 가장 대규모였다.

  2010년 이후 최저임금은 점점 주요한 사회, 정치적 이슈로 부상하였으며 2013년 총선 국면을 맞아 최대의 정치적인 사안이 되었다. 당시 야당이었던 Cambodia National Rescue Party(CNRP)는 선거에 승리할 경우 당시 80불이던 최저임금을 160불로 인상하겠다고 약속하였다. 비록 야당이 4% 차이로 선거에서 패배하였으나 이는 1990년 이후 의회의 절대 다수를 장악해왔던 집권 여당에게는 선거 패배와 마찬가지로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나 선거 이후 이어졌던 2013년 말부터 2014년 초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졌던,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수십만 노동자들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는 집권 여당의 절대적인 정치적 위기로 등장하였다.


3) 최근의 정치 국면과 노동정책의 변화

  2014년 이후 캄보디아 정부는 다양한 제도와 정책 도입을 통해 노동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한편 노동조합을 통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지지를 유도하기 위한 유화 정책으로 대표적인 것은 훈센 총리가 2주에 한 번씩(2018년 총선 국면에는 주 2회) 모든 공장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는 자리를 마련하여 정부 정책을 선전하고 노동자들의 애로를 청취하며 직접 해결해 주는 것이다. 해당 날짜에 지정된 사업체들은 하루 휴업하고 노동자들에게 유급 휴가를 주어 행사에 참여시켜야 했다. 한 관계자의 말을 빌자면, 정부 고위 관리가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는 일조차 없었던 캄보디아에서 총리가 움직이는 초유의 상황인 것이다. 훈센 총리는 이 행사에서 노동자들을 “내 조카들”(nephews and nieces)이라고 호칭하며, 노동자들의 애로를 위로하고 보살피는 자애로운 모습을 연출하는 한편으로, 이 때 접수된 노동자들의 요구 사항을 직접 정책에 반영하기도 한다. 대중 행사에 참여한 노동자들에게 현금을 선물로 지불하고, 임신 여성 노동자를 위한 현금 지원을 위해 4백만 달러 이상의 예산을 책정했다고 발표하거나(The Japan Times 2018/06/15) 사업체 폐업으로 인해 퇴직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애로 사항에 노동법을 개정하여 근속보상금제도 도입과 중간 정산 법제화한 것도 그 예이다.

  법제도 개선 역시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 노동부 산하에 법률팀(Legal Team)이라는 비공식적인 특별 부서를 설치하여 해외에서 교육받거나 국제단체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젊은 엘리트들을 채용하여 이들에게 법제도의 검토 및 새로운 법안 수립의 역할을 담당하게 하였다 (담당 공무원 인터뷰 2018년 12월). 노동법을 개정하여 해고 수당(indemnity pay)을 근속 보상 수당(seniority pay)으로 변경하고 중간 정산 의무화(2018년)와 앞서 언급했던 2002년 제정된 이후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던 사회보장법(National Social Security Law)에 근거한 직장의료보험(2016년) 등도 시행된다(OECD 2017). 또한 최저임금 인상에 있어서도 온정주의적인 태도를 보여주고자 하고 있다. 즉, 노사정으로 이루어진 최저임금결정기구(LAC, Labor Advisory Committee, 2019년부터는 최저임금위원회)가 논의를 통해 결정해 정부에 승인을 요청한 금액에 정부가 일정 금액을 더 얹어 최종 인상 금액을 발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19년 정부 발표 최저임금은 182불이었는데 이는 최저임금 결정 기구가 논의를 통해 정부에 요청한 177불보다 5불 많은 금액이었으며, 2020년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위원회가 요청한 187불보다 3불 많은 190불로 발표되었다.

  이러한 유인책과 함께 정부는 노동조합 통제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주로 법, 제도의 틀을 이용하고 있다. 우선 2013년과 2014년에 걸친 대규모 노동자 시위와 관련하여 다수의 주요 노조 간부들을 사회 안정 저해 혐의로 기소하고, 이후에도 파업 관련하여 노조 연맹 대표를 기소하는 등의 방식으로 노조 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 노동조합 통제에 가장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법 중 하나는 앞서 언급한 노동조합법이다. 1997년 제정된 노동법 이외에는 노동조합을 규율할 법이 없는 상황에서 노동조합법의 제정은 이전에도 몇 차례 논의되었으나 모두 무산된 상태였다. 2016년 노동조합법은 노조, 특히 친정부 노조 이외의 노조들이 반대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강력한 정책적 의지로 제정되었다.

  노조들은 동법이 노동조합의 설립과 운영, 해산에 정부의 개입 여지를 확대하고 노조 활동에 여러 가지 제약을 두어 노조 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비판한다. 동법 시행 이후, 노조 설립 시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서류를 요구하거나 접수된 서류를 빈번하게 반려함으로써 친정부 노조 연맹에 연계되지 않은 단위노조들의 설립을 어렵게 하는 한편, 노조 운영 관련해서 다양한 자료와 문서를 정부에 보고토록 의무화하며, 파업 요건을 강화하는 등 노조 운영에 많은 제약을 가함으로써 노동자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내용 중 하나가 앞서 논의한 노사 분규의 협상과 조정과 관련된 내용이다. 노동조합법은 분쟁 협상과 조정 과정에서 상급 연맹의 개입을 금지하여 상대적으로 법적 지식과 관련 전문 인력이 부족한 단위 노조는 분쟁 처리 절차에서 고용주에 비해 상대적인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부분은 앞서 언급한 다수 노조 지위를 가진 노조만이 노사분쟁사례를 노동중재위원회에 제소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소규모 노조가 난립하고 있는 캄보디아 노동 운동 상황에서 대다수의 노조들은 노사 분규를 노동중재위원회에 제소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이는 특히 캄보디아 노동운동의 전략이 작업장 내 분쟁 해결을 위해 내부 협상력보다는 국제 연대를 통한 외부의 힘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조합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영향력 있는 도구를 잃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그 영향이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2016년 노동조합법을 둘러싼 논란 중 하나는 노동법원의 설립이었다. 노동법원은 1997년 제정된 노동법에 처음 언급되고 있으나 설립 관련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16년 노동조합법이 노동법원의 역할을 보다 구체적이고 포괄적으로 제시하면서부터였다. 동 법은 노동법원이 노조의 등록 취소, 노조와 사용자 단체의 해산 권한, 노조 관련 선거 관할, 파업과 직장 폐쇄의 합/불법 판단 권한 등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캄보디아 정부는 2017년 노동법원을 개원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Khmer Times 2016/07/06). 그러나 국제 사회는 부패가 만연한 캄보디아 사법 체계를 고려할 때 노동법원의 설립이 노동권을 보호하는데 도움이 될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인 한편, 노동법원 설립이 중재위원회를 약화시킬 것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였다(국제기구 관계자 인터뷰 2018년 9월). 결국 캄보디아 정부는 2018년 노동법원이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으로 선회하였다(The Phnompenh Post 2018/02/07).


나가며


  캄보디아의 사례는 국제 사회의 개입을 통해 구축된 제도의 성과와 그 한계를 보여주는 예가될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영향력 하에 만들어진 노동중재위원회를 포함한 캄보디아의 노사 관계 제도는 캄보디아 국내의 여타 제도에서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운영되면서 일정의 성과를 거두었다. 노동중재위원회는 전문적이고도 공신력 있는 판결을 통해 노동조합이 원청 브랜드와 국제 사회에의 호소를 통해 노동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였고, 작업장 모니터링 프로젝트는 일정 정도 노동 조건의 개선을 이루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캄보디아 정치 상황의 변동은 이러한 성과의 지속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가장 큰 요인은 캄보디아 내부 정치 상황의 변화이다. 2013년 9월부터 2014년 1월에 걸쳐 수십만 노동자들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는, 시위대를 향한 경찰의 발포로 인한 희생자를 내고서야 마무리되었다. 이 시위는 캄보디아 노동운동사 뿐만 아니라 캄보디아 역사 전반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시위로 기록되었다. 한 가지 특기할만한 점은 이 시위가 노조에 의해 주도되기보다는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폭발적으로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노조가 시위를 계획했던 시점인 10월보다 한 발 앞서 9월부터 시위가 촉발, 확산되었던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시위대의 요구는 다른 어떤 사안보다도 노동자들에게 호소력이 있는 이슈였다. 2013/14년 노동자들의 시위는 캄보디아의 노동운동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최저임금 이슈는 특히 선거와 결합하여 폭발적인 양상으로 나타나 1990년대 후반 현 정권이 수립된 이후 최초의 심각한 정치적 도전으로 대두되었으며, 선거 이후 이어진 대규모 시위는 동안 간과되었던 노동 대중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간 노사 관계 제도의 설립과 운영 과정에서 소극적으로 개입하였던 캄보디아 정부는 노동이슈가 정치 영역으로 확산되자 그동안의 입장을 바꾸어 유인과 통제를 통한 적극적 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노동자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늘리고 온정주의적인 정책을 적극 도입하여 그들의 지지와 지원을 끌어내는 한편으로, 노동조합의 활동을 위축시키기 위해서 법제도를 통한 공세적인 통제를 실시하고 있다. 특히 법제도의 변화는 노동중재위원회의 역할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무엇보다도 커다란 변화는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이다. 1997년 도입 이후 40달러로 시작되어 세 번의 부정기적인 인상을 제외하고 지속적으로 정체되어 있다가 2012년 61달러에서 2013년 80달러, 2014년 100불로 급격히 상승하게 된다. 그 이후 최저임금은 매년 상승하여 2019년 182달러, 2020년 190달러까지 인상되었다. 이는 다른 무엇보다도 노동자들의 집단적인 압력이 이뤄낸 정치적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성과를 정부의 온정주의로 치환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캄보디아 노동운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노동운동의 역량 강화로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는 그간 국제 연대에 기대어 발전해 왔던 캄보디아 노동조합의 향후 성장을 위한 과제가 될 것이다.




* 각주

1) 중재위원회가 2017년부터 연례보고서를 공식적으로 발간하고 있지 않고 있기에 2019년의 중재 사례 수를 알기 어려우나, 한 신문 보도에 의하면 2003년부터 2019년까지 중재위원회가 다룬 사례는 총 2,882건이라고 한다(The Phnompenh post 2020/02/27). 이에 근거하면 2019년 중재위원회의 처리 사례는 117건이다. 처리 건수의 증가는 노동조합법의 노동부령(prakat)에 따른 집단적 노사 관계 제소 자격 요건의 완화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2018년 7월 2일 발표된 노동부령 제 303호 ‘다수 노조와 다수 노조 지위 획득 절차와 과정에 관한 노동부령’에 따르면 사업장 내 노조가 없거나 다수 노조가 없는 경우 노동자들의 대표가 집단적 분쟁을 해결하는 당사자가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2) 미국의 재정 지원은 2020년 재개되었다.


* 참고문헌

Arnold, Dennis and Toh Han Shih. 2010. “A Fair Model of Globalisation? Labour and Global Production in Cambodia.” Journal of Contemporary Asia 40 (3): 401-424.

Hall, John A. 2000. "Human Rights and the Garment Industry in Contemporary Cambodia." Stanford Journal of International Law 36(1): 119-174.

Khmer Times. 2016. “Labour Court to be Ready Next Year.” July 06. (https:// www.khmertimeskh.com/25492/laborcourt-to-be-ready-next-year/)

Nuon, Veasna and Melisa Serrano. 2018. “Unions and Development in Cambodia.” Unpublished report: Friedrich Ebert Stiftung.

OECD. 2017. Social Protection System Review of Cambodia. Paris: OECD Development Pathways, OECD Publishing.

The Japan Times. “Crack Down and Cash: Hun Sen’s Recipe for Victory in Cambodian Election.” June 15. (https://www.japantimes.co.jp/news/2018/06/15/asia-pacific/politics -diplomacy-asia-pacific/crackdown-cash-hunsens-recipe-victory-cambodian-election/#.XvABK_1K ipo)

The Phnompenh Post. 2018. “Hun Sen Says No Need for Labour Courts, Proposes Solution to Mass Faintings.” Feb. 07. (https://www.phnompenhpost.com/national/hun-sen-says-no-need-labour-courts-proposes-solution-massfaintings)

The Phnompenh Post. 2020. “Arbitration Council Receives Funds from the US, Sweden.” 02/27. (https://www.phnompenhpost.com/national/arbitration-council-receives-funds-us-sw e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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