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0.06.29
수정일
2023.01.11
작성자
동남아연구소
조회수
737

[6] 아시아 방역성공의 신화, 그리고 보이지 않는 노동 ㅣ 유민지

[6] 아시아 방역성공의 신화, 그리고 보이지 않는 노동 ㅣ 유민지 첨부 이미지


초록


한국과 싱가포르, 홍콩과 대만을 포함해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리던 아시아의 대표적인 경제선진국은 코로나19 초기까지만 해도 방역성공사례로 손꼽혔다. 그러나 두 나라 모두 집단감염의 증가로 방역 위기에 봉착하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이 방역성공이라는 자축에 경고를 울린 이들은 건강하게 일할 권리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이들이었다. 한국의 경우는 유연노동의 끝판왕이라는 새벽배송업체 물류센터의 노동자들이었고, 싱가포르의 경우는 제한된 시민권이 부여된 외국인 건설노동자들이었다. 전자의 경우 정보통신기술 강국 대한민국이라는 이미지 뒤에, 후자는 싱가포르의 번쩍이는 야경의 마천루의 이미지 뒤에 감춰져 그동안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합법과 불법 사이에서 적합한 보호를 받지 못하던 노동자였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그러나 코로나19는 사회의 안녕을 위협하는 존재로 이들을 세상에 드러내었다. 본고는 코로나19가 드러낸 보이지 않았던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 보고자 한다. 코로나19를 통해 보이지 않는 노동자가 노출된 사회적 불평등을 지적하고, 불평등을 양산하는 규제철폐,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거짓된 진실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경쟁과 효율이라는 최고의 시장가치에 밀려있던 연대, 상호존중, 공존의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 가치를 통해 보이지 않는 노동의 확산을 막고 사회적 불평등을 극복할 방법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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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밤 11시 전에만 주문하면 다음날 새벽에 물건을 받아볼 수 있는 ‘새벽배송’ 시대에 살고 있다. 퇴근길에 장 볼 기운 없는 그 수많은 노동자들은 스마트 폰을 꺼내 쇼핑몰 애플리케이션을 열고 장을 본다. 마트 직원들의 호객행위도 짜증나고 계산원에게 카드를 내미는 것조차 귀찮은 퇴근길에 손가락 터치만으로 바로 자택 현관문 앞까지 배송해주는 이 서비스는 실로 매력적이다.

  비대면 서비스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성장 중에 있다. 특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의 집단 발병을 방지하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비대면 서비스 시장의 확대는 더욱 빠르게 진행되는 추세이다. 대면의 피로감을 줄이기 위한 언택트(비대면) 문화가 전염병 감염의 위험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각광받게 된 것이다. 퇴근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장을 볼 수 없는 워킹맘들의 마음을 훔치며 확장한 새벽배송 시장은 봉쇄 없이 코로나19를 이겨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대형마트의 셀프체크아웃 카운터, 패스트푸드 점의 키오스크, 모바일 뱅크는 비말로 옮겨지는 전염병의 경로를 차단하는 동시에 일상의 경제활동을 가능하게 하였으니 이 또한 공을 세운 격이다. 수출 의존도 높은 대한민국이 경제활동의 정지 없이 위기를 지나가고 있으니, K-방역의 핵심에는 고도화된 ICT 산업과 비대면 서비스의 발전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정부는 이 사태를 계기로 언택트·디지털 경제를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산업 전략으로 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 비대면 서비스의 민낯이 한 새벽배송 업체 발 코로나 바이러스 지역감염으로 드러나고 말았다. 로봇과 시스템만이 존재할 것 같은 새벽배송 물류창고에 사람이 있었고, 그들은 ‘대면’하여 작업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들은 투잡, 쓰리잡을 뛰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저소득 비정규 노동자들이었고, 생계를 위한 그들의 동선은 감염경로가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던 ‘비대면’ 서비스라는 것이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비대면’을 의미하는 것일 뿐 생산단계에서는 ‘대면’이 필수적이었고, 우리의 안락한 ‘비대면’은 누군가의 ‘대면’ 노동으로 가능했던 것임이 이번 쿠팡물류창고 사건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보이지 않던 노동자(invisible labourer)가 이제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존재가 되면서, 보이는 노동자(visible labourer)로 전환되는 사건이었다.

  밤마다 펼쳐지는 마천루 사이를 가로지르는 레이저 쇼로 일 년 내내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멈추지 않는 나라, 싱가포르 역시 이와 비슷한 사건을 겪었다. 싱가포르는 코로나 바이러스 방역모범국으로 불리다 이주 노동자 집단 거주 시설에서의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 수 급증으로 방역위기를 겪게 되었다. 지금까지 싱가포르 사회에서 보이지 않던 이주 노동자들이 이 위기를 계기로 그 존재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 아시아의 두 국가는 유래 없는 빠른 경제성장으로 아시아의 호랑이로 불렸고 유럽에 비해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의 숫자가 현저히 적어 방역 모범국으로 평가되었으나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는 팬데믹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의 집단감염이 발생되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한국의 비대면 산업 뒤에서 보이지 않게 일하고 있던 물류창고의 비정규 노동자, 빠르게 변화하는 화려한 싱가포르의 스카이라인을 뒷받침 하고 있던 이주민 건설노동자는 대중들의 인식을 벗어나, 법과 제도의 테두리 밖에서 그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오늘을 버티기 위한 노동을 이어가는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은 마치 J.K. 롤링의 소설 해리포터에 나오는 마법사의 보이지 않는 충성스러운 일꾼 집요정 ‘도비’를 생각나게 한다.

  본고는 불평등 문제로 인해 발생한 방역 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팬데믹이라는 글로벌 위기를 맞이한 아시아의 대표적 선진국, 한국과 싱가포르의 보이지 않는 노동자를 통해 펼쳐보고자 한다.


코로나19와 보이지 않는(invisible) 노동


  보이지 않는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보이지 않는 노동이 무엇인지부터 정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노동의 반대인 보이는 노동이 무엇인지 정의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노동이 무엇인지 추측해볼 수 있다. 보이는 노동은 전통적으로 노동이라고 불리는 것 즉, 고용자, 피고용인, 소비자 모두 노동이라고 인식하고 물리적으로 규정된 일터에서 이루어지는 전일제(full-time) 정규직 임금노동을 말한다. 이와는 반대인 보이지 않는 노동은 전통적 노동의 범주 밖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을 일컫는다.

  보이지 않는 노동은 1980년대부터 사회학자들을 중심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알린 다니엘(Arlene Daniel 1987)의 『보이지 않는 노동(invisible work)』은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여성들의 가사노동에 주목하여 가치 있는 노동으로 평가받지 못하는 가사노동의 젠더성을 지적함으로서 보이지 않는 노동이 존재함을 세상에 드러내는 기념비적인 논문이었고, 이후에도 보이지 않는 노동은 가정 내 여성들의 돌봄 노동을 중심으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는 경향을 보였다. 다른 한편에서는 임금노동 범주에서 보이지 않는 노동을 규정하고 발견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앨리 혹실드(Alrie Hochschild 1983)는 ‘감정노동(emotional labour)’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여 임금노동이라는 범주에서도 보이지 않는 노동이 있을 수 있음을 주장하여 보이지 않는 노동의 개념이 무임금노동에서 임금노동으로 확장되었다.

  ‘보이지 않는 노동’은 ‘보이는 노동’의 반대되는 개념으로 명확히 이를 규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보이지 않는 노동에는 일반적으로 ‘보이는 노동’이라 여겨지는 노동의 범주, 예를 들면 공식고용(formal employment), 정규고용(regular employment)의 밖에서 이루어지는 형태의 노동뿐만 아니라 ‘보이는 노동’의 범주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노동이라고 인식되지 않는 ‘감정 노동’과 실제 인정되는 노동시간 보다 더 많은 준비시간이 요구되는 직군(교사, 대학 강사의 노동은 물론, 사회적으로 천시되는 직군으로 노동 강도에 비해 노동 가치와 임금이 낮게 평가(under-paid)되는 ‘육체 노동’ 역시 포함된다. 이들은 보이는 노동의 범주에 있지만 계약상의 ‘규정된’ 노동 이외의 추가적인 노동을 하거나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함에 따라 제공한 노동보다 더 적은 임금을 받고 있을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 (또는 고용주에 의해) 덜 중요하다고 여겨짐에 따라 제3자 고용을 통해 제도적 보호 밖으로 밀려나게 되는 현상이 빈번히 발생되기도 한다. 이렇듯, 보이지 않는 노동은 명확한 개념으로 규정하기 어렵고, 위법과 합법의 모호한 경계를 넘나들며 사회적 불평등을 양산하고 있다.

  노동의 ‘보이지 않음’은 정보통신기술(ICT,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의 성장, 세계화가 만들어낸 글로벌 노동 분업과 노동이주, 불안정 노동(precarious work)의 증가, 서비스 부문의 빠른 성장으로 가속화되고 있다. 특히, ICT의 발전은 노동으로 인식되지 않거나 저평가 되는 ‘보이지 않는 노동’에서 ‘물리적으로 보이지 않는 노동자’를 만들어내었다. 이는 온라인 공간에서의 거래를 손쉽게 만들었고 물리적 공간에서의 대면 상호작용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어 소비자가 생산자와 서비스 제공자의 존재를 망각하게 만들었다. 세계화로 탄생된 다국적 기업은 저임금 노동력, 보조금, 세금의 혜택을 쇼핑하듯 전세계를 대상으로 생산 네트워크를 구축하였다.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는 가치 사슬의 단계를 증가시켰고 그 결과 빈번한 하청과 외주화로 불안정 노동이 증가하게 되었으며 헤드쿼터 기업의 행동강령을 포함한 제도와 노동법이 미치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노동이 양산되었다. 세계화는 글로벌 노동분업과 노동이주를 가속화시켰으나 목적국들은 이주 노동자를 일시체류자로 분류하고 제한적인 시민권을 부여함으로써 저임금을 합법화 시키고, 이동의 자유와 노조결사의 자유를 제한하기도 하였다. 결국 이들은 의도적으로 법과 제도권 밖에 놓여 ‘보이지 않는’ 노동자가 되었으며 이들의 노동가치 역시 사회에서 잊혀졌다. 이와 같이 ICT의 성장으로 시각적으로 소비자들로부터 잊혀지고, 보호의 대상에서 배제됨에 따라 제도권에서 잊혀지는 등 이들의 노동이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함에 따라 노동가치가 평가 절하되는, 보이지 않는 노동자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불안정한(precarious)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를 칭하는 ‘프리카리아트(precariat)’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만큼 ‘보이지 않는’ 노동은 우리가 인지하고 있지 못하는 시간동안 우리 주변으로 스며들어 일반화되고 ‘보이지 않는’ 노동의 범위도 넓어지고 그 노동자의 숫자도 증가하고 있다. 대중들로부터 망각된 노동이 증가하고 있는 셈이다.

  

보이지 않는 노동 Ⅰ. 새벽배송 물류센터


  망각은 신의 축복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5월 하순 경기 부천시 쿠팡 물류센터로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집단감염은 망각이 더 이상 축복일 수 없음을 알렸다. 5월 23일 발견을 시작으로 경기 부천시 쿠팡 물류센터 집단 감염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 시작했다. 그 확진건수는 급속도로 증가하여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6월 16일 낮 12시 기준 물류센터 관련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총 152명이다(연합뉴스 2020/06/17).

  쿠팡 집단감염이 확인된 후 물류센터 내의 위생과 방역미비, 위기대응능력에 대한 지적이 쏟아져 나왔다. 물류센터 노동자의 코로나19 확진판정에도 불구하고 공지 없이 업무를 강행한 사실, 물류센터의 냉동실 출입을 위한 방한복의 위생문제, 작업장 내 방역 및 거리두기 실천 미비에 대한 노동자들의 증언이 잇따랐고 방역당국은 작업장에 대한 검사에 돌입했다. 작업장과 휴게실, 라커룸 등에서 체취한 67건의 검체에 대한 유전자 검사결과 안전모, 노트북, 키보드, 마우스 등 곳곳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되었음을 발표하였으며 더 충분한 시간과 인력으로 소독이 이루어져야 함이 지적되었다. 새벽배송 이용자들 사이에서 바이러스가 물품과 함께 배송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에 대해 방역당국은 그 가능성이 높지 않음을 밝히며 소비자와 시민을 안심시켰으며 앞으로 2주간 택배 터미널 등 6개 부처 소관시설 4천 300여 곳에 대한 방역 검역을 확대 실시하겠다는 방역강화 계획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5월 28일 이재명 경기지사는 부천 신선물류센터 제2공장에 대해 2주간 집합금지를 내렸다(한겨레 2020/05/28).

  3교대로 일하는 물류센터는 비정규노동자로 가득하다. 매일노동뉴스 5월 29일자 기사에 따르면 부천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3천 673명 중 70%인 2천 691명이 일용직 노동자라고 한다. 일반 제조업체와는 다르게 고객이 주문을 해야만 작업할 물량이 생기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매일 매일 주문량에 따라 고용인원을 조정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이니 이들은 그 날의 물량에 따라 여기저기 작업장을 옮겨 다니며 일할 수밖에 없다(매일노동신문 2020/05/29). 이 불안정성을 노동자가 다 떠안는 셈이다. 이러다 작업장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고 비위생적인 작업환경과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는 작업장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하게 되면, 매일매일 일자리를 따라 이동하는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일당을 벌기위해 이동했을 뿐인데 이들에게는 전염병의 지역전파자라는 꼬리표가 달리고 설상가상으로 격리되어 노동시장에서 배제된다. 코로나19는 결코 누구에게나 평등하지 않았다.

  이들은 코로나19의 물류센터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되기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노동자들이다. 집단감염이 일어난 물류센터는 로켓배송, 새벽배송을 준비하는 곳으로 ICT의 발전으로 보편화된 비대면 배송 서비스를 대표하는 산업의 핵심이다. 소비자는 몇 번의 클릭과 터치로 간편하게 주문을 완료함으로써 물류센터의 노동자를 그들의 소비과정 속에서 인식하지 못한다. 배송된 물건만이 현관 앞에 놓여있으니 배송기사가 이 서비스 생산과정에 존재함을 역시 쉽게 잊어버린다. 비대면 서비스의 확장은 그 서비스를 생산하고 전달하는 ‘사람’을 시각적으로 보이지 않게 만들어버리니 이들은 말 그대로 보이지 않는 노동자가 되고 만다. 이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은 비정규노동자들이고 매일 매일 필요한 인원만큼 고용하는 작업장을 수요에 따라 옮겨 다니고 있으니 노동조합이니 단체교섭이니 하는 말들은 파편화된 그들에게 남의 나라 말처럼 들릴 것이다. 결국 이들은 집단대응을 통해 대표성을 갖는 것이 불가능하고 대중들의 지지도 확보하는데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 그 보이지 않음 역시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는 보이지 않던 이들을 사회가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그것도 사회의 안전과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로.


보이지 않는 노동 Ⅱ. 싱가포르 이주 노동자


  보이지 않는 노동자였다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사회의 안녕을 위협하는 존재로 떠오른 이들이 싱가포르에도 있다. 올해 초, 싱가포르는 우한 발 코로나가 지역사회로 전파될 것을 우려하여 빠른 선제조치를 시행하였다. 주요 감염지를 방문한 이력이 있는지 없는지와 상관없이 모든 유증상자에 대해 검사를 시행하였으며 광범위한 추적조사를 초기단계부터 도입하였다. 해외유입인구에 대한 방역 수준을 높이고, 이들에 대한 자가 격리 및 시설 격리 시행, 후베이 성발 입국자 제한, 재택근무를 도입하는 등 이동 인구를 최소화 시키는 정책을 펼쳤으며 정부의 적극적인 확산방지 캠페인을 벌였다(김종호 2020; 김희숙 외 2020). 선진국이라는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10만 명이 넘는(6월 18일 기준 이탈리아가 23.8만 명, 영국이 29.9만 명, 독일이 19만 명, 프랑스가 15.8만 명) 누적 확진자수를 기록하는 와중에 첫 코로나 바이러스 발병지인 중국과 지리적·사회적·경제적으로 높은 연관성을 지닌 싱가포르는 이와 같은 발 빠른 대처는 수개월 간 200명 내외의 누적 확진자 수를 유지하여 아시아의 방역 모범국 사례로 손꼽혔다.

  그러나 4월로 접어들어 코로나 확진자의 수가 급속도로 증가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여전히 지역감염은 한 자릿수 퍼센트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이주 노동자 기숙사에서 집단 감염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싱가포르 방역의 허점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12명에서 20명이 한 방에서 거주하고(Han 2020/04/17) 최대 24,000명이 한 기숙사에서 공동생활을 하는 열악한 생활환경(Ratcliffe 2020/04/23)이 전 세계에 보도되며,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싱가포르의 이주 노동자들이 수면위로 떠오르게 되었다. 싱가포르에는 인도, 방글라데시, 미얀마 등 동남아 출신 이주 노동자 30만 명이 건설 현장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

  싱가포르 경제는 이주 노동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싱가포르 인력부에 따르면, 2019년 12월 기준 싱가포르 총 노동인구 약 351만 명 중 약 143만 명이 이주 노동자로 싱가포르 노동력의 33%를 차지하고 있다(Ministry of Manpower 2020). 이 중 약 83.9%에 속하는 120만 명 정도가 숙련 및 반숙련 노동자에 속하고, 이 중 100만 명 정도가 중국, 인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미얀마, 태국, 필리핀 등 아세안 역내 개발도상국 출신이며 반숙련 직군, 예를 들면 건설, 제조업, 조선업, 돌봄 서비스 등의 서비스 산업에 종사한다. 이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싱가포르의 이미지 - 고도로 발전된 IT강국, 아시아 금융 중심지, 래플스 플레이스의 마천루 사이를 거니는 사람들과 화려한 레이저 쇼 - 뒤에 이들이 존재했고, 이 이미지 속에 망각된 이들이 싱가포르의 경제를 떠받치고 있었다.

  이들은 싱가포르라는 경제선진국 이미지에만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보이지 않는 곳에 거주해왔다. 싱가포르 정부는 외국인 취업비자 보유자를 위한 주거의 종류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는데, 건설직 노동자의 주거 종류는 주로 외국인 노동자를 수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진 기숙사, 공장이나 창고 건물의 일부를 기숙사로 개조한 형태, 공사 현장 일부의 공간에 마련된 형태의 주거공간으로 분류된다. 싱가포르에서 인도와 방글라데시 이주 노동자를 연구해 온 샐리 예아(Sallie Yea)에 따르면 최근 집단감염이 발생한 이주 노동자 기숙사라는 주거 형태는 반숙련 외국인 노동자의 주거권에 대한 시민사회의 운동에 정부가 대응한 것으로 최근 들어 보편화 된 것이다(Yea 2020). 기숙사 조성은 이주 노동자의 주거권 향상이라는 명목을 지니지만 한편으로는 이들을 싱가포르인들로부터 분리하여 관리하고자 하는 의도 역시 담고 있어 도시 외곽에 위치하고 있으며 비위생적이고 열악한 주거환경임이 여러 외신들을 통하여 보도되었다. 예아(2020)는 이와 같은 집단거주시설에서 이미 여러 전염병과 수인성질환이 휩쓸었던 사실을 제시하며 이번 코로나19 집단감염은 피할 수 없는 사태였다고 말한다. 결국 싱가포르의 이주 노동자들은 한 사회의 경제를 기저부에서 떠받치고 있었지만 시민의 지위를 제한받음으로써 그 노동가치가 저평가되어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채 보이지 않는 공간으로 격리되었고, 이번 사태는 이들에 대한 제도적, 사회적 차별이 만들어낸 비극이었다. 싱가포르 보건부에 따르면 6월 17일 기준, 싱가포르 인구 5,381,000명 중 확진자 1,806명으로 지역사회 유병률은 0.03%인데 반해 기숙사 거주 외국인 노동자 323,000명 중 확진자 38,829명으로 외국인 노동자의 유병률은 12.02%1)에 달한다. 외국인 노동자의 유병률이 지역사회 유병률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현실은 이 비극이 현재 진행 중임을 보여준다.

  싱가포르 정부는 기숙사 집단감염이 지역사회로 전파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방역에 온 힘을 쏟고 있는 듯하다. 기숙사를 고립지역으로 지정하고 기숙사 내의 이동을 제한하고, 전담 지원팀을 배치하여 청결 및 위생 등을 관리하고 개인 방역을 위한 위생용품과 체온계를 제공하기도 하였다.2) 뿐만 아니라 필수 업종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 약 7,000명을 이주시켜 감염으로부터 보호하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가장 최근에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여 모든 노동자들이 자신의 건강상태를 모니터링하고 보고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추적조사 앱을 설치·가동하도록 하고 고용주가 노동자들의 이동 동선을 확인하고 파악하도록 하였다(양영란, 김희숙 2020). 이주 노동자들의 건강상태에 대한 모니터링은 이들에게 빠른 의료적 대응이 가능하다는 면에서 그 노력을 높게 평가해야할 것이나 신선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 복도를 거니는 것만이 그들에게 주어진 자유라고 말하는 노동자들의 인터뷰(Yea 2020; Yeoh and Smalley 2020/05/23)는 이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방역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한다.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과 보이지 않는 노동(invisible labour)


  ‘보이지 않는 손’이란 영국의 정치경제학자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제시한 개념으로 시장스스로의 자율적 조정기능을 상징한다. 보이지 않는 손은 공공선과 개인의 이익을 충돌 없이 조절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개개인이 자유롭게 개인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한 경제활동을 하면 된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시장은 가장 효율적으로 재화와 자원을 배분하고, 사회 전체의 경제적 잉여가 커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시장경제의 핵심으로 여겨지고 탈규제를 외치는 이들에게 강력한 논거로 사용된다. 그러나 경제학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지식이 있는 이들은 보이지 않는 손이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전제(현실에선 불가능한 전제)가 필요함을 안다. 아담 스미스는 이 전제조건을 완전경쟁시장이라 했다. 완전경쟁시장에서는 다수의 수요자와 공급자가 존재하여 개별 생산자와 소비자는 가격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어야 하며, 생산자가 만드는 모든 재화는 동질하여 대체 가능해야 한다. 또한 생산요소의 완전한 이동이 가능하여야 한다. 즉, 시장으로의 진입과 퇴거가 완전히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경제주체가 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 정보의 비대칭성이 발생하면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이러한 시장은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이 만드는 시장의 효율이라는 것은 거짓된 진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거짓된 진실에 대한 강력한 믿음 위에 살고 있다. 그 강력한 믿음이 이를 실재하게 만들고 이를 조종하는 이들 역시 존재함을 부정할 수 없다(Bauman 2013). 정부 역시 이 조종자 중 하나인데 우리는 정부정책은 공공선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라는 암묵적 전제로 이를 용인한다. 결국 우리의 믿음이 ‘보이지 않는 손’을 실재하도록 하는 격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우리의 믿음으로 실제화 된 ‘보이지 않는 손’이 실재하는 ‘보이지 않는 노동’을 양산하고 있다. 특히, 국제기구, 경제관료, 글로벌 기업들이 외치는 탈규제는 보이지 않는 노동의 범주를 확대하는데 기여한다(LeBaron and Phillips 2019; Mayer and Phillips 2017). 비정규 노동은 보이지 않는 노동의 대표적인 예로,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비정규직 비율을 증가시키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를 확대시킨다. 0.1%가 99.9%의 부를 차지하고 있다는 오늘 날, 경제발전은 법과 제도 밖 놓인 비정규직의 상대적 박탈감을 증폭시키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사투를 벌이도록 방치한다. 고소득의 프리랜서나 대기업 임원이라면 모를까 최저임금 수준을 받는 이들에게 노동의 양을 선택할 자유란 없으니 이는 곧 현대판 무자유 노동(unfree labour)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비정규 노동, 고용유연화의 끝판왕인 쿠팡과 같은플랫폼 노동자3)들은 이러한 현실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주 노동자들의 현실도 이와 다를 것이 없다. 각국 정부는 저렴한 비용으로 국내 노동력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단기 이주 정책을 마련, 이들에게 제한적인 시민권을 부여함으로써 이들을 제도화된 보이지 않는 노동자로 양산한다. 앞서 다루었던 싱가포르의 경우에는 앞선 표가 보여주듯 이주 노동자들의 직종, 업무숙련도, 임금수준에 따라 차등을 둔 비자를 발급하고 이에 따라 거주와 노동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김종호 2020). 건설노동자의 경우 도심 외곽이나 산업단지 주변으로 거주지가 정해지기 때문에 고소득 이주 노동자나 싱가포르 시민들과 격리된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어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는 노동자였을 뿐만 아니라 노동가치가 저평가되거나 착취당함에 따라 상징적으로도 보이지 않는 노동자이다. 이번 집단감염 사태로 드러난 이주 노동자에 대한 임금체불은 이주 노동자들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낸 예이다. 싱가포르 여성 이주 노동자 특히 돌봄 노동자가 ‘보이지 않음’으로 겪는 인권문제는 오랫동안 연구자들이 관심을 기울인 분야이다(Yeoh et al. 2020). 이와 같이 싱가포르 정부는 저숙련 또는 반숙련 노동자들에 대해 차등적 권리와 자유를 부여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노동을 제도화하고 생산 비용을 절감한다. 이러한 비용 절감이 사회 전체의 부로 이어지지 않을 것임은 드러내지 않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진실이다.

  비정규 노동자와 차등화된 이주 노동자는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강력한 믿음 위에 만들어진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이다. 보이지 않는 손의 자정기능을 믿고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하겠다는 정부의 정책은 아이러니하게도 규제 철폐라는 탈을 쓴 차별적 제도였던 것이다. 그 결과 보이지 않는 노동자의 수는 더욱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코로나19의 팬데믹은 ‘보이지 않는 노동’의 현실을 드러내는 기회가 되었다. 3월 1일자 뉴욕타임즈의 한 기사는 “아프면 집에서 쉬어라, 의사의 진찰을 받아라, 다른 사람들과는 별도의 화장실을 사용하라, 재택 근무하라”는 미국 질병관리본부의 권고사항이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불평등한 조치라고 지적했다. 상상할 수 있다시피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종은 매우 제한적이다. 관리직이나 전문직 종사자들은 원격근무가 가능하지만 한국의 수많은 식당, 소매업, 서비스업 등의 자영업자 및 비정규노동자들은 유급휴가의 혜택을 누릴 수 없으니 “아프면 집에서 쉬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의료보험의 무게까지 짊어져야하는 미국의 상황을 이보다 더 심각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Miller et al. 2020/03/01). 6월 2일자 중앙일보는 부천 쿠팡 물류센터발 코로나19 확진자가 112명까지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른 물류센터에는 입장을 위해 길게 늘어선 이들의 현실을 보도했다. 코로나19로 고용 여건이 악화된 상황에서 물류센터의 아르바이트는 당장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한 방법으로 최선이기 때문이다(중앙일보2020/06/03). 아무리 방역당국이 촘촘한 방역수칙과 행정명령을 내리고 실태 점검을 하고 있더라도 재화의 생산과 서비스 전달이 사람들 간의 접촉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 그리고 이런 환경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감염원에 노출될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렇게 불평등한 노동현실을 드러내는 기회가 되었으니 어쩌면 코로나19야말로 노동시장의 자정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코로나19가 드러낸 보이지 않았던 노동자들이 계속 우리의 시야에 인식 속에 체류할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6월 1일 제6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을 두 축으로 하는 한국판 뉴딜을 강력히 추진할 것임을 밝혔다. 디지털 뉴딜은 “DNA생태계와 비대면 산업을 육성하면서 국가 기반 시설을 대대적으로 디지털화”하겠다는 경제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4) 그러나 우리는 이미 부천 쿠팡 물류센터발 코로나19 확산이라는 사건으로 비대면 산업의 육성은 보이지 않는 노동자를 양산하는 구조가 될 수 있음을 보았다. 비대면 산업의 대표주자격인 플랫폼 또는 긱 이코노미(Gig Economy)는 플랫폼이 중개하는 서비스에 따라 유연한 노동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노동 기회가 증가할 뿐만 아니라 노동 시간, 종류, 강도를 노동자가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고용 지위가 명확하지 않아 노동자의 권리와 보호 면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보이지 않는 불안정한 노동만이 양산될 가능성이 높다.

  싱가포르 정부의 대응 역시 이주 노동자들을 얼마나 가시화 해낼 것인지 주목해야할 지점이다. 싱가포르는 노동자 기숙사를 고립시키고 이동을 제한함과 동시에 수용된 이주 노동자에 대한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4월 21일 리셴룽 총리는 이주 노동자들을 싱가포르인과 동일하게 돌볼 것임을 공언하였다. 이 약속이 단지 이 위기를 이겨내기 위한 단기적인 대응인지 장기적으로 싱가포르 저숙련(반숙련)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으로 나아갈 것인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미 싱가포르에서는 지난해 인도 노동자가 도로 사고로 사망한 후, 리틀 인디아 교회에서 폭동이 일어났으며, 이는 싱가포르 이주 노동자들의 현실을 드러내는 계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를 ‘불복종 폭도들의 불법행위’로 규정 지었다. 이로 인해 이주 노동자의 노동조건 및 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기회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이주 노동자에 대한 싱가포르인들의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변화까지 이끌어 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 ILO는 12월 18일 세계이주민의 날을 기념하여 아세안 출신 이주민의 주요 목적국인 일본,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대중들의 이주 노동자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이 연구를 통해 보면 싱가포르 응답자의 53%는 이주 노동자가 자국에 사회적 문화적 위협이 된다고 답했고, 응답자의 반 이상이 이주노동자의 유입이 높은 범죄율로 이어질 것이라 답했으며, 응답자의 25%는 이주 노동자가 필요없다고 응답했다(ILO 2019). 이는 목적국의 대중들의 많은 수가 이주 노동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였다. 이주 노동자의 노동 및 생활 조건 개선을 위한 정부 정책은 대중들의 압력과 지지가 요구됨을 고려해 보았을 때, 이미 한차례 기회를 저버린 싱가포르 정부가 이주 노동자에 대해 얼마나 실효성 있는 정책을 만들고 이를 수행할 것인지 앞으로 지켜봐야 할 것이다.

  한 가지 반가운 소식은 우리 정부가 전국민 고용보험의 기초를 놓는 등 고용안전망을 대대적으로 확충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위한 인력 양성, 교육 훈련 및 취업 훈련 등 포용적인 디지털 경제를 위해 사람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는 점이다. 우리정부는 코로나19를 21세기 새로운 사회계약의 시작으로 삼고자 하는 듯하다. 루즈벨트의 ‘뉴딜’이 경제 공황으로 위기에 빠진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회보장을 강화하며 새로운 미국을 꿈꿨듯이 우리 정부 역시 한국판 뉴딜을 제시하며 코로나19가 가져온 경제위기를 기회로 불평등을 해소하고 보다 정의로운 사회로 나가고자 하는 기조를 전달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정책이 사회로부터의 공감과 지지를 받아내지 못한다면 이는 ‘더 빠른 5G 인터넷 환경 제공’ 이상의 결과를 얻어낼 수 없으며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정부의 포용적인 디지털 경제는 비대면 서비스와 디지털화 이면에 있는 보이지 않는 사람을 발견하고 이들에 대한 고용안전망을 마련해야 할 것이며 디지털 뉴딜로 사라지는 일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제조업의 구조를 고도화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쏘아올린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의 재편성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었고 제조업 자국주의로 리쇼어링도 본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제조업의 고도화는 우리에게 필연적인 과업이며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우리의 미래를 희망차게만 보지 않는다. 바우만(Bauman 2013: 5, 22)이 말하듯 우리가 의심조차 하지 않는 거짓된 믿음이 너무나 견고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추구라는 명제, 보이지 않는 손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확신, 노동조합의 활동은 기업의 생산 활동을 방해하는 것이라는 믿음, 이주 노동자가 내국인 일자리를 빼앗고 복지 혜택을 받고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 이주 노동자의 증가는 범죄율 상승으로 이어지고 사회의 안정을 해칠 것이라는 부정적 인식은 이 보이지 않는 노동이 계속 확장되고 증가할 바탕을 견고히 한다. 이러한 믿음이 계속 유지되는 한 어느 순간 우리도 보이지 않는 노동자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연대와 공존의 가치


  우리는 보이지 않게 함으로써 불편한 감정에서 해방된다. 우리 사회에선 대표적으로 청소 노동자가 그러하다. 우리 사회에서 더럽거나 천시 받는 직업이라고 여겨지는 ‘청소노동’은 늘 보이지 않는 새벽시간에 건물 이용자가 많은 시간을 피해서 일해야만 한다. 인천국제공항의 청소노동자들은 높은 사람들이 지나가면 숨어야 한다고도 했다(프레시안 2013/12/24). 직업의 귀천이 없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가치가 진리가 되어갈수록 사람들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진리와 이 씁쓸한 현실의 괴리가 만들어내는 불편함을 걷어내기 위하여 ‘더럽고 천시 받는 직업군’을 보이지 않게 만든다. 보이지 않음은 약자를 보호해야한다고 배워온 우리의 죄의식을 걷어가기도 한다.

  대한민국의 쿠팡 노동자와 싱가포르 이주 노동자 사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당한 처우를 기대할 수 없는 이들이 글로벌 재난을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발생되는지를 여실히 드러내었다. 그들이 보이지 않았기에 우리는 편안했고, 보이지 않았기에 우리는 그들의 고통을 나눌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그저 정당한 시장가격을 지불한 그래서 ‘권리 있는 사용자’의 역할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는 역으로 이들을 세상에 드러내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얼마나 촘촘히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두 국가의 확진자 수 증가로 현재 우리 사회는 그들을 보이지 않도록 만들고 누렸던 그 편안함의 대가를 치루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시장이 주는 ‘사용자’의 안락함을 버리고 우리는 공생의 방법을 찾아야 할 때이다. 『해리포터』의 ‘도비’가 자유를 찾는 방법을 기억하는가? 이 충성스러운 집 요정을 자유롭게 하는 방법은 이들에게 ‘옷’을 선물하는 것이다. 주인공 해리는 자신의 양말을 도비 주인의 물건에 몰래 끼워놓고 양말이 도비에게 전달되도록 함으로써 도비를 해방시킨다. 주인공 해리는 아주 작은 몸에 허름한 천을 걸친 도비의 존재를 발견하고 도비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주었고 또 다른 주인공 헤르미온느는 해방 후에도 턱없이 낮은 임금으로 일하는 집 요정들의 권리 옹호를 위해 집 요정 해방 전선(Society for the Promotion of Elfish Welfare)을 꾸린다. 집 요정에 대한 『해리포터』의 주인공들의 태도에서 코로나 팬데믹이 보여준 보이지 않는 노동자 이슈에 대한 우리의 대응이 무엇이어야 할지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해리포터가 도비의 존재를 발견하고 아주 작지만 관심과 연대의 정신을 놓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도 이들의 존재를 인식하고 연대하려고 한다면,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거짓된 믿음에도 불구하고 망각되어가는 노동자들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이 바로 경쟁과 자유의 가치 뒷전에 놓여있던 연대, 공존, 상호 신뢰와 존중의 가치를 다시 상기시킬 때이다. 이것이 K-방역의 힘이었듯이 말이다.



* 각주

1) https://www.moh.gov.sg/docs/librariesprovider5/2019-ncov/situation-report---17-june-2020.pdf

2) https://www.mom.gov.sg/newsroom/press-releases/2020/0506-greater-observance-of-safedistancing-measures-in-foreign-worker-housing

3) 한국노동연구원 장지연 외(2020)는 “디지털 시대의 고용안전망-플랫폼 노동 확산에 대한 대응을 중심으로”에서 플랫폼과 플랫폼 노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플랫폼은 알고리즘 방식으로 거래를 조율하는 디지털 네트워크”이며(Eurofound 2018) “디지털 플랫폼은 재화와 서비스(노동)가 교환되는 구조화된 디지털 공간인데, 이 공간에서 거래되는 서비스가 플랫폼 노동이다.”

4) http://www.korea.kr/news/blueHouseView.do?newsId=148873006&gubun=blueHouse&pageIndex=1&yearCode=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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