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25.12.31
- 수정일
- 2025.12.31
- 작성자
- 동남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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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리셋’과 ‘연정’ 사이: 2006년 이후 태국의 관리된 민주주의 ㅣ 김홍구
초록
이 글은 2006년 군부 쿠데타 이후 약 20년에 걸쳐 전개된 태국 정치의 변화를 장기적 구조 분석의 관점에서 고찰한다. 분석의 초점은 특정 정권이나 정당의 성패가 아니라, 선거ㆍ쿠데타ㆍ정당 해산ㆍ총리 해임ㆍ연정 형성이 반복적으로 등장해 온 이유와 이들이 어떻게 하나의 정치적 메커니즘으로 연결되어 작동해 왔는지에 있다. 이 글은 2006년 이후 태국 정치의 핵심 구조를, 선거를 통해 강화된 선출 권력이 기존 질서를 위협한다고 판단될 경우 군부ㆍ사법부ㆍ왕실로 대표되는 비선출 권력이 개입해 정치 질서를 ‘리셋’하는 반복적 구조로 규정한다. 이러한 리셋은 군사 쿠데타뿐 아니라 정당 해산, 헌법재판소 판결, 상원 권한 설계 등 제도적 수단을 통해 점차 정교화 되어 왔다. 동시에 이 글은 태국 정치가 단순한 정체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점에도 주목하여 연정 정치의 일상화, 정치 축의 다극화, 개혁 세력의 지속적 재등장을 점진적 변화의 흐름으로 분석한다. 이를 통해 태국 정치가 반복적 리셋과 점진적 제도 조정이라는 두 흐름이 병존하는 ‘관리된 변화’의 국면에 놓여 있음을 밝히고, 2026년 총선을 앞둔 태국 정치의 향방을 분석하는 해석 틀을 제시한다.
2006년 이후 태국 정치 20년: ‘리셋’과 ‘변화’의 구조
이 글은 2006년 군부 쿠데타 이후 약 20년에 걸쳐 전개된 태국 정치의 변화를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분석의 초점은 특정 정권이나 정당의 성패에 있지 않다. 대신 선거, 쿠데타, 정당 해산, 총리 해임, 연정 형성이라는 사건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유와, 이들이 어떠한 구조적 논리 속에서 연결되어 왔는지를 추적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이 글은 개별 사건의 나열이 아닌, 2006년 이후 태국 정치가 작동해 온 방식 자체를 설명하려는 시도이다.
이 글의 대부분은 필자가 장기간에 걸쳐 접해 온 태국 현지 언론, 국제 뉴스, 정책 보고서, 학술 연구를 종합해 재구성한 분석적 서술에 기반한다. 이러한 성격상 모든 주장에 대해 개별적인 출처를 일일이 제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여론조사 수치, 제도 변화, 정치 일정과 같이 사실관계가 논쟁의 핵심이 되는 대목에서는 가능한 한 검증 가능한 정보에 근거해 서술한다. 이 글은 엄밀한 계량 분석이나 이론 검증보다는, 장기적인 정치 변화의 맥락을 이해하는 데 목적을 둔 중범위 수준의 정치 분석에 가깝다.
표면적으로 볼 때 2006년 이후 태국 정치는 끊임없는 변화를 겪어 왔다. 정당 명칭은 수차례 바뀌었고, 젊은 정치 세대가 등장했으며, 군부와 직접 연결된 정당 대신 중도ㆍ실용주의 이미지를 내세운 정당들이 부상했다. 또한 연정 정치가 일상화되면서 과거처럼 단일 정당이 장기간 권력을 독점하는 구조도 약화되었다. 이러한 변화만 놓고 보면 태국 정치는 점진적으로 통상적인 민주적 경쟁 체제로 이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보다 거시적인 시각에서 보면, 이러한 변화의 이면에는 변하지 않은 채 지속되는 구조적 긴장이 존재한다. 선거를 통해 형성된 정부 권력과 군부ㆍ사법부ㆍ왕실로 대표되는 비선출 권력 사이의 긴장은 2006년 이후 한 번도 해소된 적이 없다. 오히려 선출 권력이 일정 수준 이상의 정치적ㆍ제도적 영향력을 확보하려 할 때마다 기존 권력 연합은 다양한 방식으로 개입해 정치 질서를 재조정해 왔다. 이 개입은 때로는 군사 쿠데타의 형태로, 때로는 헌법재판소 판결이나 정당 해산, 총리 해임과 같은 사법적ㆍ헌정적 결정의 형태로 나타났다.1)
2006년 이후 태국 정치의 핵심 구조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선거를 통해 강화된 정부 권력이 기존 질서를 위협한다고 판단될 경우, 군부ㆍ사법부ㆍ왕실이 개입해 정치 시스템을 ‘리셋’(reset)2)하는 구조이다.” 이 리셋은 단발적 사건이 아닌 반복적 메커니즘으로 작동해 왔다. 2006년과 2014년의 군사 쿠데타는 그 극단적 사례이며, 이후에는 정당 해산과 총리 해임, 상원 권한 설계와 같은 제도적 수단이 리셋의 주요 도구로 자리 잡았다. 특히 2019년 이후에는 탱크 대신 판결문이 정치 질서를 재편하는 장면이 더 자주 등장했다.
이 글은 이러한 “리셋의 정치”를 태국 정치의 병리나 일탈로만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이는 선출 권력과 비선출 권력이 공존하는 조건 속에서 체제 안정과 권력 통제를 동시에 달성하려는 하나의 정치적 작동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동시에 이 글은 태국 정치가 정체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연정 구조의 다극화, 상원 권한의 점진적 변화, 개혁 세력의 지속적인 재등장은 정치 경쟁의 규칙이 서서히 조정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 글은 두 가지 흐름을 동시에 추적한다. 하나는 쿠데타와 사법 개입, 정당 해산으로 대표되는 반복적 리셋의 흐름이고, 다른 하나는 연정 협상과 제도 경쟁을 통해 나타나는 점진적 변화의 흐름이다. 이후 장들에서는 이 두 흐름이 탁신 계열 정당, 개혁 세력, 중도 실용 정당이라는 세 갈래 정치 축 속에서 어떻게 교차해 왔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이를 통해 2026년 총선을 앞둔 태국 정치가 또 한 번의 급격한 리셋으로 향하고 있는지, 아니면 불안정성을 감수하면서도 ‘연정 민주주의’3)라는 새로운 균형을 모색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탁신 계열 정당: 반복적 리셋과 제한된 집권의 정치
전술한 바와 같이, 2006년 이후 태국 정치의 기본 구조는 선출 권력과 비선출 권력 사이의 반복적 긴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여러 정치 세력에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작동해 왔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일관되게 영향을 받아 온 축은 바로 탁신 계열 정당이다.
이 장에서는 2001년 이후 탁신 친나왓(Thaksin Shinawatra)과 그의 정치 네트워크가 어떻게 태국 정치의 중심축을 형성해 왔는지, 그리고 이 세력이 왜 반복적으로 ‘리셋’의 주요 대상이 되어 왔는지를 살펴본다.
탁신 계열 정당은 선거에서 지속적으로 대중적 지지를 확보해 왔음에도, 쿠데타ㆍ정당 해산ㆍ총리 해임 등 제도적ㆍ사법적 개입을 반복적으로 경험한 세력이다. 이러한 과정을 분석하는 것은 이후 장에서 다룰 개혁 세력(쁘라차촌당)과 중도 연정 세력의 위치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출발점이 된다.
선거의 승자이자 리셋의 대상
탁신은 2001년 총선 승리를 통해 집권한 이래, 지지와 반대를 막론하고 태국 정치의 중심인물로 자리해 왔다. 타이락타이당(Thai Rak Thai Party, 1998~2007년)에서 시작된 그의 정치 프로젝트는 대규모 복지 정책, 농촌과 도시 하층을 결합한 새로운 유권자 연합, 강력한 중앙집권적 리더십을 특징으로 했다. 이는 선거 경쟁의 규칙을 근본적으로 바꾸었지만, 동시에 기존 권력 연합에게는 체제 위협으로 인식되었다.
탁신 계열 정당은 선거를 통해 반복적으로 대중적 정당성을 확보했으나, 그만큼 강한 반발도 불러왔다. 2006년 쿠데타 이후 타이락타이당 해산, 2008년 팔랑쁘라차촌당(Palang Prachachon Party; People’s Power Party) 해산, 이후 프어타이당(Phue Thai Party; Party for Thailand)에 대한 반복적인 사법 압박은 이러한 긴장이 제도적으로 표출된 결과였다. 이 과정에서 핵심 인사들은 정치 활동 금지, 형사 기소, 재산 몰수 등 다양한 형태의 제재를 경험했으며, 정당은 해산과 재창당을 반복했다.
2006년과 2014년, 두 차례의 군사 쿠데타라는 극단적인 결말로 귀결되기까지 탁신 계열 정당이 겪은 주된 사법 압박 사건은 <그림 1>과 같다.

<그림 1> 탁신 계열 정당에 대한 주요 사법 압박 사건(2006~2014)
중요한 점은 이 과정이 단절이 아닌 연속의 형태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탁신 계열 정당은 해산 이후에도 인적 구성과 정책 노선을 상당 부분 유지한 채 새로운 이름으로 재등장했고, 유권자 역시 이를 동일한 정치 세력으로 인식했다. 즉 리셋은 탁신 계열 정치 세력을 완전히 제거하기보다는, 그 영향력을 일정 수준 이하로 통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해 왔다.
2023년 총선 이후 프어타이당의 선택
2023년 총선은 이러한 구조를 다시 한번 분명하게 드러냈다. 선거에서 까우끌라이당(Move Forward Party)이 제1당으로 부상했음에도, 총리 선출은 상원의 거부권에 막혀 좌절되었다. 이 상황에서 프어타이당은 두 가지 선택지 앞에 놓였다. 하나는 까우끌라이당과의 개혁 연대를 유지하며 장기적 대결을 감수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상원 및 보수 진영과 타협해 집권을 선택하는 것이었다.4)
프어타이당은 후자를 택했다. 이는 쎗타 타위씬(Srettha Thavisin) 총리의 선출로 이어졌으며, 단기적으로는 정권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 선택은 정치적 비용을 수반했다. ‘원칙 없는 타협’이라는 비판 속에서 개혁 지지층의 실망과 이탈이 뒤따랐고, 결과적으로 당의 정체성은 개혁 세력과 보수 세력 사이의 모호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쎗타 체제의 취약성은 곧 드러났다. 그는 강력한 당내 기반이나 독자적 정치 조직을 갖추지 못한 채, 친나왓 가문과 보수 엘리트 사이를 중재하는 과도기적 총리로 기능했다. 경제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복지ㆍ재분배 공약은 연정 파트너와의 조정 과정에서 후순위로 밀렸다. 결국 쎗타 총리는 전과 전력이 있는 인사를 장관으로 임명한 것이 공직 윤리 기준에 위배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취임 1년도 되지 않아 해임되었다.
쎗타의 퇴진은 프어타이당에게 또 하나의 신호였다. 선거를 통해 집권하더라도, 비선출 권력의 신뢰를 완전히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언제든 사법적 리셋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 다시 확인된 것이다.
패텅탄 체제와 가문 정치의 재부상
쎗타 총리 퇴진 이후 프어타이당은 패텅탄 친나왓(Paetongtarn Shinawatra)을 전면에 내세우며 가문 정치5)의 재부상을 선택했다. 이는 탁신 귀국 이후 축적된 정치적 타협의 결과이자, 프어타이당이 여전히 친나왓 가문을 중심으로 결속되는 정당임을 재확인시킨 선택이었다. 패텅탄은 세대교체와 이미지 쇄신을 상징하는 인물로 기대를 모았지만, 동시에 가문 정치의 노출 비용을 다시 한번 드러내는 존재이기도 했다.
2025년 국경 위기와 외교 논란은 이러한 취약성을 극대화했다. 위기 대응 과정에서 나타난 혼선과 통화 유출 사건은 패텅탄 체제의 정당성을 빠르게 약화시켰고, 결국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그녀 역시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는 2006년 이후 반복되어 온 패턴—선출된 총리가 사법적 결정으로 중도 퇴진하는 패턴—이 다시금 재현된 사례였다.
패텅탄 체제의 붕괴 이후 프어타이당은 정치적 공백 상태에 놓였다. 흥미롭게도 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전략에서도 마찬가지로 가문 정치에 기대는 쪽을 선택하여 탁신의 조카를 2026년 총선을 향한 1순위 총리 후보로 내세웠다.6) 이는 핵심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동시에 보수 엘리트와 사법 기관의 경계를 다시 자극할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정당의 위치: 제거되지 않는 위협, 허용된 경쟁자
이상의 과정을 종합하면, 탁신 계열 정당은 태국 정치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들은 선거에서 반복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대중적 기반을 갖추었지만, 동시에 완전한 권력 장악은 허용되지 않는 세력이다. 리셋 메커니즘은 이들을 정치에서 완전히 제거하지는 않지만, 집권 기회와 제도 개편의 범위를 지속적으로 제한해 왔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탁신 계열 정당은 늘 선택을 강요받아 왔다. 체제와의 정면충돌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통제된 타협을 통해 제한적 집권을 감수할 것인가 하는 선택이다. 프어타이당의 2023년 이후 선택은 후자에 가까웠으며, 이는 단기적 생존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장기적 신뢰와 정치적 정체성에는 부담을 남겼다.
이상에서 살펴본 탁신 계열 정당의 궤적은 이후 장에서 논의할 개혁 세력과 중도 연정 세력의 위치를 이해하는 중요한 기준점이 된다. 다음 장에서는 까우끌라이당 해산과 쁘라차촌당의 등장, 그리고 개혁 세력이 직면한 새로운 딜레마를 중심으로 논의를 이어간다.
개혁 세력: 체제 충돌과 반복적 재편의 정치
탁신 계열 정당이 태국 정치에서 반복적 리셋의 주요 대상이었다면, 이 장에서 다룰 개혁 세력은 그보다 더욱 도전적인 방식으로 기존 체제와 충돌하며 또 다른 형태의 리셋을 경험해 온 축이다. 2018년 아나콧마이당(Future Forward Party)의 등장 이후 이어진 개혁 세력의 궤적은 태국 정치의 구조적 한계, 즉 선출 권력의 확장과 비선출 권력의 제도적 견제가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개혁 세력의 등장과 첫 번째 리셋: 아나콧마이당에서 까우끌라이당으로
2018년 창당된 아나콧마이당은 젊은 정치 지도층, 디지털 기반의 캠페인, 군부ㆍ관료 중심의 정치 구조 개혁이라는 이슈를 전면에 내세우며 빠르게 정치적 존재감을 확보했다. 2019년 총선에서 제3당으로 도약한 이후 이들은 군부의 정치 개입 축소, 상원 권한 조정, 형사법 112조(왕실모독죄) 개정 등 체제의 핵심 규칙에 직접적으로 도전하는 개혁 의제를 제시했다. 이러한 급진적 노선은 젊은 세대의 광범위한 지지를 이끌어냈지만, 동시에 기존 권력 연합의 강력한 저항을 초래했다.
아나콧마이당은 2020년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되었다. 당에서 당 대표인 타나턴 쭝룽르엉낏(Thanathorn Juangroongruangkit)으로부터 1억 9,120만 바트(약 6백만 달러)를 빌린 것을 사실상의 불법 정치기부로 보고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판결하여 당을 해산한 것이다. 그에 따라 당 대표와 핵심 간부들은 10년간의 정치 활동 금지를 선고받았고, 선출된 의원들은 탈당한 뒤 까우끌라이당(Move Forward Party)으로 재편되었다. 이 과정은 개혁 세력 또한 탁신 계열 정당과 마찬가지로 제도적 리셋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확인시켜 준 사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 세력은 정치적 지지를 잃지 않았다. 까우끌라이당은 2023년 총선에서 제1당으로 부상하며 정치권과 사회 전반에 강한 충격을 주었다.
제1당의 집권 실패: 선거와 권력 사이의 단절
2023년 총선에서 까우끌라이당은 151석을 확보하며 단일 정당 기준 제1당으로 부상했다.7) 이는 젊은 세대의 정치적 각성, 디지털 기반 선거운동, 그리고 군부 중심 정치 질서에 대한 누적된 피로감이 결합된 결과였다. 특히 방콕과 대도시를 중심으로 한 중산층ㆍ청년층 유권자들은 까우끌라이당을 기존 정치에 대한 가장 분명한 대안으로 인식했다.
그러나 총선 승리가 곧바로 집권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당시 헌법에 따르면 총리는 하원 500명과 상원 250명이 공동으로 의결에 참여하여, 그 절반인 376표 이상의 찬성을 받아야 선출될 수 있다. 까우끌라이당은 하원에서 과반에 가까운 연합을 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군부가 임명한 상원으로부터 거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그로 인해 총리 후보로 나선 피타 림짜른랏(Pita Limjaroenrat)은 반복된 표결에서 필요한 득표수를 확보하지 못했고, 결국 총리 선출이 무산되었다.
이 과정은 태국 정치의 구조적 모순을 명확히 드러냈다. 선거를 통해 민의가 표현되었음에도, 비선출 권력이 제도적으로 이를 차단할 수 있는 구조가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까우끌라이당의 집권 실패는 단순히 연정 협상 실패나 정치적 미숙의 결과라기보다는, 선거와 권력 사이의 단절이 제도적으로 설계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체제 도전 세력으로의 규정과 정당 해산
집권에 실패한 이후에도 까우끌라이당은 강력한 야당으로서 존재감을 유지했다. 그러나 이 시점부터 이 정당은 단순한 개혁 정당이 아닌, 체제 질서에 도전하는 세력으로 규정되기 시작했다. 그 핵심 쟁점이 바로 형법 제112조, 즉 왕실모독죄 개정 공약이었다. 이 공약은 표현의 자유와 법치의 관점에서 개혁을 요구하는 지지층에게는 정당한 입법 과제로 인식되었지만, 보수 엘리트와 왕실 지지 세력에게는 체제 근간을 흔드는 도전으로 해석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곧 제도적 대응으로 이어졌다. 까우끌라이당은 왕실모독죄 개정 추진을 이유로 헌정 질서를 위협한 정당으로 판단되었고, 2024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해산되었다. 이는 2020년 아나콧마이당 해산에 이은 두 번째 개혁 정당 해산으로, 개혁 세력이 제도 내에서 허용되는 범위를 명확히 제한한 사건이었다.
정당 해산은 단순히 조직 하나가 사라진 사건이 아니었다. 이는 개혁 세력에게 “선거를 통해 의석을 확보하는 것”과 “체제 개편을 실제로 추진하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경계가 존재한다는 신호였다. 다시 말해 개혁 담론은 허용되지만, 그것이 헌법적·상징적 핵심 영역에 닿을 경우 제도적 차단이 가동된다는 메시지였다.
쁘라차촌당의 등장과 제한된 연속성
까우끌라이당 해산 이후, 해당 정당 소속 의원들은 쁘라차촌당으로 재편되었다. 인적 구성과 정책 노선, 지지 기반은 상당 부분 유지되었고, 유권자들 역시 이를 동일한 정치 세력의 연속으로 인식했다. 이러한 점에서 쁘라차촌당의 등장은 단절이 아닌 제한된 연속성의 사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연속성은 완전하지 않았다. 정당 해산과 동시에 개혁 세력은 새로운 조건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전보다 더욱 강화된 사법적 감시와 윤리 심사, 그리고 언제든 재가동될 수 있는 제도적 리스크가 그것이었다. 특히 형법 112조 개정 추진 과정에 관여했던 일부 의원들은 별도의 윤리ㆍ법적 절차의 대상이 되었고, 이는 정당 해산 이후에도 개혁 세력을 압박하는 지속적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다.8)
이러한 상황은 쁘라차촌당에게 전략적 선택을 강요했다. 단독 집권을 목표로 강경한 개혁 노선을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제도적 한계를 인정한 상태에서 점진적 개혁과 협상에 무게를 둘 것인지의 문제였다. 결과적으로 쁘라차촌당은 후자를 택하며, 원칙적 개혁을 주장하되 정치적 계산을 병행하는 노선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개혁 세력의 딜레마: 지지와 집권 사이
쁘라차촌당이 직면한 핵심 딜레마는 지지율과 집권 가능성 사이의 간극이다. 여론조사에서 이 정당은 여전히 높은 지지를 받고 있으며, 특히 도시 지역과 젊은 유권자층에서는 다른 정당을 크게 앞서고 있다.9) 그러나 이러한 지지가 곧바로 집권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구조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상원, 사법부, 헌법적 해석 권한을 보유한 기관들이 여전히 강력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쁘라차촌당은 스스로를 가장 개혁적인 정당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계산적인 정치 행위자로 재정의하게 되었다. 이 정당은 단기적으로는 캐스팅보트 역할을 수행하며 정책적 양보를 얻어내고, 장기적으로는 제도 개편의 조건을 축적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이는 급진적 개혁보다는 점진적 제도 변화에 초점을 맞춘 선택이지만, 동시에 지지층 일부에게는 타협으로 비칠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까우끌라이당 이후의 정치 공간
까우끌라이당 해산과 쁘라차촌당의 등장은 태국 정치의 개혁 공간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공간은 이전보다 좁아졌고, 더 많은 조건과 제약 속에서만 허용되고 있다. 개혁 세력은 여전히 선거 경쟁에 참여할 수 있지만, 체제의 핵심을 직접적으로 건드릴 경우 즉각적인 제도적 대응에 직면한다.
종합하면 개혁 세력은 태국 정치에서 가장 변화를 지향하는 축이지만, 동시에 기존 권력 연합과 가장 격렬하게 충돌하는 축이기도 하다. 이들은 반복적 해산과 재창당이라는 구조 속에서도 꾸준히 정치적 기반을 유지해 왔으며, 이는 태국 정치의 장기적 변화 가능성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제도적 리셋이 이러한 부상을 상시적으로 제약해 왔다는 점에서, 개혁 세력의 정치적 궤적은 태국 정치의 구조적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례이다. 다음 장에서는 이러한 개혁 세력의 부상을 제약하는 조건 속에서 중도ㆍ실용 연정 세력이 어떤 방식으로 권력을 조정하고, 태국 정치의 틈새 공간을 점유해 왔는지를 살펴본다.
중도ㆍ실용 연정 세력: 권력 조정과 관리의 정치
개혁 세력이 체제와의 구조적 충돌 속에서 반복적인 리셋을 경험해 왔다면, 태국 정치의 또 다른 핵심 축은 이와 정반대의 방식으로 권력 구조 내부에 자리해 온 중도ㆍ실용 연정 세력이다. 이들은 군부ㆍ사법부ㆍ왕실로 이어지는 비선출 권력과 직접 충돌하지 않으면서도, 선거와 의회 정치 속에서 실질적인 권력 조정자로 기능해 왔다. 특히 2023년 총선 이후 아누틴 찬위라꾼을 중심으로 한 연정 체제가 형성되면서, 중도 세력은 태국 정치에서 ‘체제와의 협력’을 핵심 전략으로 삼는 제3의 축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중도ㆍ실용 연정 세력의 중심에는 품짜이타이당(Bhumjaithai Party)이 있다. 이 정당은 정치 지형이 요동칠 때마다 안정적 협력 파트너로 작동하며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이들은 군부 정권 시기에는 제도적 연속성을 유지하는 데 협력했고, 민선 정부 시기에는 연정 파트너로서 권력 재편의 한 축을 담당했다.
2023년 총선 이후 형성된 연정은 이러한 중도 세력의 전략적 위상을 더욱 굳건히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 장에서는 2025년 국경 분쟁과 패텅탄 내각 붕괴를 둘러싼 위기 속에서 중도 연정이 어떻게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았는지를 분석한다.
국경 분쟁의 재점화와 위기관리 실패
2025년 중반부터 본격화된 태국–캄보디아 국경 분쟁은 단순한 외교ㆍ안보 사건을 넘어, 이미 취약해져 있던 태국 정치 체제의 균열을 증폭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과거 프레아 비히어(Preah Vihear) 사원을 둘러싼 분쟁이 상징적 충돌의 성격을 띠었다면, 2025년의 갈등은 동북부와 동부 국경 전반으로 확산되며 보다 복합적인 양상을 보였다. 국경 마을에서의 충돌과 민간인 피해, 대규모 피난 사태는 안보 문제를 일상 정치의 주변부가 아닌 중심 의제로 끌어올렸다.
7월 말 양국 간 직접 협상이 교착되자 말레이시아가 아세안 의장국 자격으로 중재에 나서, 7월 28일 푸트라자야에서 즉각적 휴전에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어 10월 26일 쿠알라룸푸르 정상급 회담에서는 중화기 철수와 아세안 감시단 파견 등을 포함한 포괄적 휴전 협정이 체결되었다. 그러나 연말로 갈수록 국경 지역에서 재격화 조짐이 나타났고, 이후의 추가 중재 시도는 제한적인 성과에 그쳤다.10)
이 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진 문제는 정부의 위기 대응이 일관성을 결여했다는 점이다. 국경 관리 권한을 둘러싼 군부와 민간 정부 간의 조율은 원활하지 않았고, 외교적 메시지 또한 명확한 방향성을 유지하지 못했다. 패텅탄 내각은 강경 대응과 협상 노선을 오가며 분명한 전략을 제시하지 못했고, 이는 곧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신뢰 약화로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국경 분쟁은 외부적 충격이라기보다는, 이미 누적되어 있던 정치적 취약성과 제도적 불안정을 드러내는 촉매로 기능했다.
통화 유출 사건과 패텅탄 체제의 붕괴
국경 위기의 정치적 파장은 패텅탄 총리와 캄보디아 지도부 간의 비공식 통화 내용이 외부로 공개되면서 급격히 확대되었다. 해당 통화에서 드러난 발언들은 개인적 외교 판단의 문제를 넘어, 국가 안보와 주권 사안을 사적 관계와 비공식 채널을 통해 다루었다는 인식을 낳으며 국내 여론의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왔다. 야당과 시민사회는 이를 국가 이익을 훼손한 중대한 윤리 위반으로 규정하고 사퇴와 의회 해산을 요구했다.
패텅탄은 사과와 해명을 시도했으나 여론을 반전시키지는 못했다. 헌법재판소는 7월 1일 그녀의 직무를 정지시킨 데 이어, 8월 29일 해당 통화가 총리로서의 윤리 기준을 중대하게 위반하고 국가 이익보다 개인적 관계를 우선시한 행위라고 판단해 패텅탄을 총리직에서 파면했다.11) 이 사건은 쎗타 총리 해임에 이어 또 한 명의 친나왓계 총리가 사법적 결정으로 중도 퇴진한 사례로 기록되었으며, 외교ㆍ안보 위기가 사법적 리셋 장치와 결합될 경우 정치적 파급력이 얼마나 커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권력 공백과 중도·실용 연정의 부상
패텅탄 체제의 붕괴 이후 태국 정치에는 즉각적인 권력 공백이 발생했다. 프어타이당은 내부 정비와 사법 리스크 관리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쁘라차촌당은 여전히 집권을 허용받기 어려운 위치에 있었다. 이 상황에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부상한 것은 품짜이타이당을 중심으로 한 중도 연정이었다.
품짜이타이당은 그동안 보건 정책, 지역 인프라, 관광 회복 등 가시적인 행정 성과를 강조하며 실용적 정당 이미지를 구축해 왔다. 이 당은 어느 진영과도 연정을 구성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강점으로 삼았고, 위기 국면에서는 이 점이 오히려 안정의 상징으로 작용했다. 국경 분쟁과 정치 혼란 속에서 품짜이타이당은 “관리 가능한 정부”를 자임하며 정치적 존재감을 빠르게 확대했다.
쁘라차촌당의 조건부 선택과 아누틴 총리 선출
아누틴 찬위라꾼(Anutin Charnvirakul)이 총리로 선출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은 쁘라차촌당의 선택이었다. 까우끌라이당 해산 이후 가장 많은 의석을 보유한 야당이었던 쁘라차촌당은, 패텅탄 내각 붕괴 이후 세 가지 선택지 앞에 놓였다. 프어타이당과 다시 손잡는 길, 독자적인 집권을 시도하는 길, 또는 중도 연정을 조건부로 지지하는 길이었다.
결국 쁘라차촌당은 세 번째 길을 선택했다. 이 정당은 아누틴 총리 선출을 지지하되, 내각에는 참여하지 않고 야당으로 남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신 조기 총선 실시와 헌법 개정 논의 재개, 상원 권한 축소와 정당 해산 제도 개선을 주요 조건으로 제시했다. 이는 이념적 순수성과 현실 정치 사이에서 내려진 전략적 선택이었다.12)
아누틴은 이러한 조건을 큰 틀에서 수용하며 총리로 선출되었고, 쁘라차촌당은 정부를 떠받치는 캐스팅보트 야당으로 자리 잡았다. 이로써 태국 정치는 친나왓 가문 중심의 구도에서 벗어나, 중도 실용 연정과 조건부 야당이라는 새로운 조합으로 재편되었다.
아누틴 체제의 성격과 한계
아누틴 체제는 ‘안정’과 ‘관리’라는 명확한 목표를 내세웠다. 국경 위기 수습, 행정 정상화, 정치적 충돌 완화가 주요 과제로 제시되었다. 단기적으로 이 체제는 정치적 혼란을 진정시키는 데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구조적 한계 역시 분명했다. 홍수 대응 실패, 보수 표밭에서의 민주당 부상,13) 그리고 개헌 약속의 지연은 아누틴 체제의 취약성을 빠르게 노출시켰다.
무엇보다 중요한 한계는 이 체제가 본질적으로 과도기적 성격을 지닌다는 점이었다. 아누틴 정부는 장기적 개혁을 추진하기보다는 다음 선거로의 이행을 관리하는 역할에 가까웠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조기 해산에 관한 논의가 점차 현실적인 선택지로 부상했고, 결국 2025년 12월 하원 조기 해산으로 이어졌다.
이 장에서 살펴본 국경 위기와 아누틴 체제의 성립은, 태국 정치가 위기 국면에서 어떻게 중도 연정이라는 관리형 해법을 선택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다음 장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2026년 2월 8일 총선을 어떤 성격의 선거로 만들고 있는지, 그리고 세 갈래 정치 축이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균형을 모색할 것인지를 전망한다.
2026년 총선을 향한 태국 정치의 향방
2025년 12월 하원 조기 해산은 단일 사건의 결과라기보다, 2023년 총선 이후 누적되어 온 정치적 긴장의 종합적 귀결이었다. 개혁 세력은 높은 지지에도 불구하고 상원의 거부권과 사법적 리셋 장치에 가로막혀 있었고, 프어타이당은 반복되는 사법 리스크와 지도부 교체로 정치적 신뢰를 상실한 상태였다. 중도 연정으로 출범한 아누틴 체제는 일정 수준의 위기관리 성과를 보였지만, 체제 전반을 안정적으로 이끌 장기적 통치 정당성을 확보하기에는 한계가 뚜렷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조기 해산은 혼란을 봉합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자, 정치적 책임을 다시 유권자의 손에 넘기는 방식으로 기능했다.14)
조기 해산에 따라 태국은 2026년 2월 8일 총선을 실시하게 되었다. 이는 단순한 정기 선거가 아니라, 2006년 이후 반복되어 온 리셋의 정치와 연정 실험이 어디로 수렴할지를 가늠하는 중대한 분기점이다. 선거의 쟁점은 개별 정책 공약보다는, 어떤 정치 세력이 ‘관리 가능한 통치 주체’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더 가깝다. 다시 말해 이번 총선은 변화의 속도와 방향을 둘러싼 선택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누가 가장 덜 위험한 방식으로 관리할 수 있는지를 묻는 선거라고 할 수 있다.
2025년 4분기 여론조사는 이러한 분위기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는 쁘라차촌당이 여전히 선두를 유지하고 있지만, 과반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프어타이당은 지지율 회복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품짜이타이당은 중도 연정의 피로감 속에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완만하지만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며 보수 유권자층의 재결집을 이끌고 있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총리 선호도 조사에서 ‘적합한 인물이 없다’는 응답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유권자 다수가 현 정치 엘리트 전반에 대해 유보적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의미한다.15)
이러한 여론 지형은 선거 이후 정부 구성이 단기간에 마무리되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단일 정당이 과반을 확보할 가능성은 낮고, 복수의 연정 시나리오가 동시에 열려 있다. 쁘라차촌당이 제1당이 되더라도 단독 집권은 구조적으로 어렵고, 프어타이당 역시 단독으로 정부를 구성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결국 선거 이후의 핵심 변수는 의석수 자체보다, 연정 협상 과정에서 누가 신뢰 가능한 조정자로 인식되느냐에 달려 있다.
이 지점에서 중도ㆍ실용 정당의 역할은 다시 한번 중요해진다. 품짜이타이당은 지지율 하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연정 구성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 역시 과거처럼 독자 집권을 노리기보다는 연정 파트너로서 협상력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차기 정부는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다당 연정의 형태를 띨 가능성이 크며, 총리 선출과 내각 구성은 상당한 시간과 정치적 거래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전망은 태국 정치가 이미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음을 시사한다. 2006년과 2014년의 쿠데타는 정치 시스템을 일거에 리셋하는 방식이었지만, 최근의 리셋은 선거라는 제도적 절차는 유지하는 대신 그 결과를 조정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정당 해산, 총리 해임, 윤리 심판과 같은 제도적 장치들은 정치 경쟁을 완전히 중단시키기보다는, 경쟁의 범위와 속도를 통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는 태국 정치가 권위주의로의 단순한 회귀가 아니라, 통제된 경쟁과 연정 협상이 결합된 독특한 체제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글에서 ‘태국식 연정 민주주의’16)라 부른 현상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서구적 의미의 안정적 연정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있지만, 동시에 군사 통치나 일당 지배 체제로의 회귀와도 구별된다. 선거는 계속되고, 정당 간 경쟁은 유지되지만, 체제의 핵심을 위협하는 변화는 제도적으로 관리된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타협은 불가피한 선택이자, 동시에 지속적인 불만과 긴장을 낳는 원천이 된다.
2026년 총선 이후 태국 정치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선거 결과에 따라 또 한 번의 급격한 리셋이 발생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동시에 연정과 제도 경쟁을 통해 불안정하나마 균형을 유지하려는 시도 역시 계속될 것이다. 중요한 점은 태국 정치가 더 이상 단순한 쿠데타의 반복이나 선거의 형식적 절차로만 설명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20년에 걸친 경험은 태국 정치가 충돌과 타협, 리셋과 적응을 동시에 내포한 복합적 체제로 진화해 왔음을 보여준다.
결국 2026년 총선은 태국 민주주의의 완성이나 실패를 판정하는 시험이라기보다는, 이 복합적 체제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스스로를 유지하고 조정해 나갈지를 가늠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유권자, 정당, 사법 기관, 그리고 비선출 권력 모두가 이 과정에 참여하는 가운데, 태국 정치는 다시 또 한 차례 불확실한 선택의 순간에 서 있다.
* 각주
1) 2006년~2025년 사이 태국에는 두 차례의 쿠데타와 최소 다섯 차례의 주요 정당 해산, 그리고 네 명의 총리 퇴진이 반복되었다.
2) 이 글에서 ‘리셋’은 ‘사법화된 정치’와 군부 개입을 결합한 태국 특유의 시스템 재조정 메커니즘을 가리키는 서술적 개념으로 사용한다.
3) 여기서 말하는 ‘연정 민주주의’는 엄밀한 이론 개념이나 규범적 모델을 지칭하기보다는, 태국 정치에서 실제로 관찰되는 권력 운영 방식과 제도적 관행을 설명하기 위한 분석적·서술적 용어로 사용한다.
4) 태국의 개혁 세력은 아나콧마이당(Future Forward Party, 2018~2020년)에서 출발해 까우끌라이당(Move Forward Party, 2020~2024년)으로 재편되었고, 2024년 정당 해산 이후에는 쁘라차촌당(People’s Party)으로 계승되었다.
5) 탁신 친나왓(타이락타이당, 2001–2006년), 쏨차이 웡싸왓(팔랑쁘라차촌당, 2008년), 잉락 친나왓(프어타이당, 2011–2014년), 그리고 패텅탄 친나왓(프어타이당, 2024–2025년)이 친나왓 정치 네트워크를 통해 총리를 역임했다.
6) 프어타이당은 탁신 친나왓의 조카(여동생의 아들)인 욧차난 웡싸왓(Yodchanan Wongsawat)을 총리 후보 1순위로 지명함으로써 친나왓 가문 정치의 연속성과 관리형 리더십을 결합하려는 전략을 보여주고 있다.
7) 총선 결과는 까우끌라이당 151석, 프어타이당 141석, 품짜이타이당 71석 순이었다(하원 총의석수 500석).
8) 2023년 총선 이후 까우끌라이당은 형법 112조 개정을 핵심 공약으로 추진했으며, 이는 왕실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되어 강한 제도적 반발을 불러왔다. 2024년 헌법재판소의 정당 해산 판결 이후 해당 정당 출신 의원들은 쁘라차촌당으로 재편되었으나, 112조 개정에 관여한 의원들(25명)에 대한 사법적 압박은 계속되고 있다. 국가반부패위원회(NACC)는 이 과정이 국회의원 윤리 기준과 헌법 질서를 훼손했는지를 조사 중이며, 조사 결과에 따라 개혁 세력의 의회 내 영향력에 중대한 제약이 가해질 가능성이 남아 있다.
9) 2025년 3분기 NIDA Poll은 태국 정치에서 개혁 세력의 지지 우위와 동시에 뚜렷한 정치적 유보층의 존재를 보여주었다.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 쁘라차촌당은 33%를 넘는 지지를 얻어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으며, 이는 정당 해산과 사법적 압박 이후에도 개혁 성향 유권자층의 결집이 유지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반면 프어타이당과 품짜이타이당(Bhumjaithai Party)에 대한 지지도는 10%대 초반에 머물렀다. 총리 선호도 조사에서는 “적합한 후보가 없다”는 응답이 약 27%로 가장 높았고, 쁘라차촌당의 낫타퐁 르엉빤야웃(Natthaphong Ruengpanyawut)이 22%로 개별 후보 중 최고 지지를 얻었다. 이는 유권자들이 정당 차원에서는 개혁 세력을 선호하면서도, 지도자 선택에는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음을 의미한다(https://tinyurl.com/2bcx4s48, 검색일: 2025/12/20).
10) 양국 간 직접 협상에 관해서는 The White House 2025/10/26(https://tinyurl.com/28c8obqu) 및 Christou and Agencies 2025/12/13(https://tinyurl.com/27u4segw) 참고.
11) 언론과 헌법재판소가 문제 삼은 핵심은 크게 세 가지였다. 1) 패텅탄이 캄보디아 전 총리 훈 센(Hun Sen)을 “삼촌(uncle)” 등 친근한 호칭으로 부르며, 국경 문제를 국가 이익보다 개인ㆍ가문 관계에 기대어 해결하려 했다는 점, 2) 자국 군 수뇌부에 대한 비판적 발언과 일부 국경 관리ㆍ경제 협력 사안에서 캄보디아에 유리한 양보 의사를 밝힌 정황, 3) 이러한 내용이 비공개ㆍ비공식 경로를 통해 논의되었고, 내각ㆍ의회에 충분히 공유되지 않았다는 점이다(https://tinyurl.com/2ycljstl, 검색일: 2025/12/11).
12) 국회에는 상원 권한 축소, 정당 해산 제도 개편, 선거제도 조정을 핵심으로 하는 여러 헌법 개정안이 상정되어 있다. 개정안들은 상원의 총리 선출권 종료를 헌법적으로 확정하고, 헌법기관 인사에 대한 상원의 영향력을 제한하는 한편, 일부 상원을 간접 선출 또는 직선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포함한다. 또한 정당 해산 사유를 축소하고, 지도부 개인의 위법 행위와 정당 전체의 책임을 분리함으로써 헌법재판소의 정당 해산 권한을 절차적으로 재조정하려는 시도도 제기되고 있다. 이는 반복된 정당 해산으로 누적된 정당체계의 불안정성에 대한 제도적 대응으로 해석된다. 아울러 비례대표 배분 방식과 지역구 획정 기준을 조정해 대정당 중심 체제를 유지할지, 아니면 다당제를 제도적으로 허용할지를 둘러싼 정치적 선택이 주요 쟁점으로 부상하였다.
13) NIDA Poll 2025년 4분기 조사에서 민주당의 정당 지지도는 3분기 5.5%에서 11.8%로, 아피씻 웻차치와 대표의 총리 선호도는 약 1%대에서 10.8%로 각각 뚜렷하게 상승했다. 이는 홍수 대응 실패와 헌법 개정 약속 지연으로 아누틴 체제에 대한 신뢰가 약화하면서, 보수 유권자층 일부가 민주당과 아피씻으로 이동한 결과로 해석된다(https://tinyurl.com/27w3t7ab, 검색일: 2025/12/20).
14) 2025년 말 태국 정국은 개헌과 불신임을 둘러싼 절차 경쟁이 격화하며 급속히 경직되었다. 12월 25~26일로 예정되었던 개헌안 3차 심의(최종 표결)는 상원의 권한과 표결 요건을 둘러싼 갈등으로 불확실성이 크게 높아졌다. 특히 ‘상원 3분의 1 동의(또는 저지) 요건’이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여야 간 충돌이 더욱 격화하였다. 야권은 이 요건이 개헌을 구조적으로 차단하는 안전판으로 작동한다고 비판한 반면, 여권과 보수 진영은 체제 안정을 위한 필수 장치라고 주장했다. 이에 병행하여 야권은 정부에 대한 불신임 추진을 공개적으로 거론했고, 정부는 이를 국정 마비 시도로 규정하며 대응 전략을 모색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경 위기가 재발해 안보 프레임이 다시 부상하면서 정치적 긴장은 빠르게 고조되었다. 결국 아누틴 총리가 2025년 12월 12일 하원을 조기 해산함에 따라 정국은 헌정 절차에 따른 조기 총선 국면으로 전환되었다(https://tinyurl.com/2y8y9usm, 검색일:2025/12/12; https://tinyurl.com/299rk4ux, 검색일: 2025/12/15).
한편, 헌법 개정안은 3차 독회(최종 표결)에 이르기 전에 하원이 해산되면서 해당 회기의 입법 절차가 종료되었다. 이에 따라 개정안은 효력을 상실했으며, 2026년 총선 이후 새 정부와 새 의회가 다시 발의해 절차를 처음부터 재개하는 방식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15) 2025년 4분기 NIDA Poll은 3분기와 비교해 태국 유권자들의 정치적 불확실성과 피로감이 더욱 심화하였음을 보여준다.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 쁘라차촌당은 단일 정당 기준 1위를 유지했으나 지지율은 25%대로 하락했고, “지지할 정당이 없다”는 응답이 30%를 넘어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는 기존 정당 전반에 대한 불신이 확대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총리 선호도 조사에서는 “적합한 총리 후보가 없다”는 응답이 40% 넘게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으며, 개별 후보에 대한 지지는 전반적으로 분산되었다. 이는 특정 지도자가 정치적 안정의 상징으로 자리 잡지 못한 상황을 반영한다. 종합하면 4분기 조사 결과는 개혁 정당의 상대적 우위가 관찰되었던 3분기와 달리, 정당과 지도자 전반에 대한 유보와 불확실성이 크게 확대된 국면을 보여준다(https://tinyurl.com/27w3t7ab, 검색일: 2025/12/20).
16) ‘태국식 연정 민주주의’는 쿠데타나 헌법재판소를 중심으로 한 예외 상태가 완전히 종식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권 교체와 권력 재조정의 주요 무대가 군사적 개입의 영역에서 의회 내 연정 협상과 개헌 경쟁으로 점차 이동하고 있음을 개념적으로 묘사하기 위한 표현이다. 이런 점에서 ‘연정 민주주의’는 1) 1당 단독 집권이 구조적으로 어려운 다당제, 2) 군부ㆍ사법부ㆍ왕실의 개입 가능성을 의식한 연정 설계, 3) 개헌ㆍ불신임ㆍ조기 해산을 둘러싼 의회 내 제도 경쟁을 핵심 정치 메커니즘으로 삼는 체제를 가리키는 서술적 표현이다(https://tinyurl.com/2xra6v6j, 검색일: 2025/12/20).
* 참고문헌은 본문 파일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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