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26.04.10
- 수정일
- 2026.04.10
- 작성자
- 동남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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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인도네시아 인권 활동가 안드리 유누스 황산 테러 사건 ㅣ 풍키 인다르띠
초록
2024년, 5년 임기의 인도네시아 제8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프라보워 수비안토에 대해, 일각에서는 그가 인도네시아군(TNI)의 역할을 다시 정치·사회·경제 영역으로 확대하리라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이는 신질서 시대(1966-1998) 동안 프라보워가 당시 인도네시아공화국군대(ABRI)의 이중기능(Dwi Fungsi) 정책을 펼친 수하르토 대통령의 사위였으며, 1997~1998년 사이에 벌어진 활동가 납치 사건을 포함한 중대한 인권침해의 배후에 있는 인물로 의심받는 군 장성이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우려는 프라보워 집권 첫해에 활동가들에 대한 대규모 공격이 발생하면서 현실로 드러났다. 활동가를 향한 공격들은 국가와 국가의 지원을 받는 비국가 행위자들이 벌인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에는 인도네시아의 대표적 인권단체인 KontraS의 대외협력국장 안드리 유누스가 신원 불명의 인물들로부터 황산 테러를 당했으며, 이후 경찰 수사를 통해 해당 인물들이 인도네시아군의 전략정보국(BAIS) 소속임이 밝혀졌다. KontraS는 인도네시아 안보 부문 개혁을 위한 시민사회연합(CSC)의 일원으로서 국군법 개정 비판, 군의 민간 직위 점유 및 영리사업 참여 반대, 범죄를 저지른 군인이 지방법원에서 재판받을 수 있도록 하는 군사법원법 개정 요구 등의 활동에 목소리를 높여왔다. 안드리는 2025년 8월과 9월에 발생한 시위의 진상조사위원회(KPF) 위원으로서 해당 사태에 대한 군부 개입 의혹을 밝혀내기도 했다. 이 글은 프라보워 정부 출범 이후 정치ㆍ사회ㆍ경제 부문에서 군의 역할이 강화되는 조짐이 현저해진 가운데 발생한 안드리 테러 사건에서 출발하여, 1998년 개혁 이후로도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는 군 개혁에 대한 인도네시아 사회의 요구와 이를 위해 앞장서 온 시민사회단체들이 지속적으로 직면해 온 위험을 종합적으로 정리한다.
프라보워 정부 출범 이래 인도네시아에서는 인도네시아군(TNI, Tentara Nasional Indonesia)의 국정 복귀를 시사하는 듯한 행보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문민 우위를 실질적으로 위협한다는 비판을 받은 인도네시아국군법(UU TNI, 이하 국군법) 개정을 시작으로, 4,472명의 현역 군부 인원이 민간 직위에 배치되었고, 6개의 지역군사령부(Kodam)와 20개의 지역개발보병여단(BrigifTP), 100개의 개발보병대대(YonifTP)가 새로 창설되었다. 2025년 국가 예산에서 TNI에 배정된 예산은 165조 1,600억 루피아(약 14조 2,379억 원)로, 2025년 보건부의 예산 105조 6,000억 루피아(약 9조 1,034억 원)를 크게 상회한다. <안보 부문 개혁을 위한 시민사회연합(Civil Society Coalition for Security Sector Reform, 이하 ‘시민사회연합’)이 가장 최근에 제기한 문제는 군부가 이전까지 지방검찰청, 고등검찰청, 검찰총장 사무실 경비 임무를 맡은 데 이어 국군법 개정으로 국회의사당을 경비하는 권한까지 부여받았다는 점이다.
군부는 또한 최근 농촌 정비, 무료영양급식 프로그램(MBG, Makan Bergizi Gratis) 운영 참여, 전국 각 마을 및 면 단위의 협동조합(Merah-Putih) 설립 및 운영 참여 등, 다양한 민간 영역 업무에 광범위하게 관여하고 있다. 민간 영역에 대한 군의 개입은 신질서(New Order) 시대1) 군부(ABRI)의 이중기능(Dwifungsi)이 부활한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낳고 있다. 특히 과거 중대한 인권침해, 그중에서도 활동가 납치 사건에 연루된 바 있는 일부 군 소속 인원들이 프라보워 정부에서 핵심 요직을 차지함에 따라 이러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2)
프라보워 대통령은 여러 차례에 걸쳐 시위대, 활동가, 언론, 학생, 학자 등 자신을 비판하는 이들에게 경고해 왔다. 그는 이들이 정부의 개발 성과에 불만을 품은 외세의 앞잡이이며, 애국심 없이 인도네시아를 망치려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러한 정보를 정보기관으로부터 입수했다고 밝히며 관련 기관에 지속적인 감시를 지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대통령의 경고는 국민을 위협하고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안드리 유누스 황산 테러 사건

<사진 1> 인도네시아 인권단체 KontraS 대외협력국장 안드리 유누스
출처: KontraS 홈페이지(kontras.or.id)
안드리를 향한 이번 테러 공격의 배경은 202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안드리는 2025년 3월 3일, 시민사회연합(CSC)과 함께 인도네시아 국회가 마련한 국군법 개정 초안 내용에 대한 정보 공개를 청구했다. 그러나 해당 청구에 대한 응답은 국군법 개정안이 최종 통과될 때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안드리는 2025년 3월 15일, 시민사회연합이 주도하여 중부 자카르타 페어몬트 호텔 앞에서 연 시위에 참여한 활동가들 중 한 명이었다. 이 시위는 국군법 개정안에 대해 국회 제1위원회와 정부 대표단만이 참여하여 비공개로 연 회의를 비판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 시위는 보안요원에 의해 강제 해산되긴 했지만, 인도네시아의 군사주의 회귀 가능성을 우려하는 시민들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같은 날, 페어몬트 호텔 경비대(satpam)는 안드리를 “공공의 평화, 평온 및 질서를 교란”하였다는 혐의로 메트로 자야 지역경찰청에 신고했다.
안드리는 국군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소원 심리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는데, 그 과정에서 그는 페어몬트 호텔 시위 이후 자신이 겪은 일련의 공격과 협박을 받았음을 폭로했다. 그중에는 시위 다음 날인 3월 16일 이른 새벽, 다수의 불특정 번호로부터 연속적으로 전화가 걸려 온 일과 건장한 체격의 단발 남성 3명이 기자를 사칭하며 KontraS 사무실에 접근한 사실도 포함되어 있었다. 같은 날 오후 2시경이 되자 유사한 행색의 인물 대여섯 명이 추가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KontraS의 사무실 인근에 인도네시아군(Tentara Nasional Indonesia, 이하 군의 전술 차량이 배회하며 위협의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고, 동시에 TNI는 페어몬트 호텔에도 전투 전술 차량을 배치하였다. 사회관계망서비스 X에서는 군 법무부대(Babinkum), 지역군사령부(Kodim), 면 단위 군사령부(Koramil) 등 군 관련 기관 이름을 내세운 다수의 계정이 안드리를 “외세의 앞잡이”로 규정하는 서사를 순식간에 확산시켰다. 안드리의 가족 역시 자택에서 신원 불명의 인물들로부터의 위협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25년 8월과 9월에 걸쳐 인도네시아 주요 도시에서 발생한 시위 이후, KontraS는 자카르타법률구조공단(LBH) 및 YLBHI과 함께 시민사회 진상조사위원회(KPF, Komisi Pencari Fakta)를 구성했다. 안드리 역시 위원으로 참여하였으며, 2026년 2월 28일 진상조사위원회는 “개혁 이후 청년 세대에 대한 최대 규모의 탄압 작전”(The Largest Silencing Operation Against Youth Since the Reform Era)이라는 제목의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온라인 오토바이 택시 기사 아판 쿠르니아완(Affan Kurniawan)의 사망이 시위가 폭력적인 양상으로 격화되는 촉매제가 되었음을 확인하는 한편, 군 관련 인사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선동 행위의 정황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안드리가 겪은 테러는 국내외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시민사회연합과 인도네시아 국회(DPR RI), 국가경찰위원회(Kompolnas), 국가인권위회원(Komnas HAM), 그리고 유엔이 이 사건을 강력히 규탄하며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과학수사를 통해 경찰은 목격자 진술을 확보하고 현장에서 증거와 단서들을 수집하였으며, 용의자로 추정되는 인물을 특정했다. 수사팀은 경찰의 전문성, 투명성 그리고 책임성의 일환으로 수사 진행 상황을 주기적으로 공개했고, 이러한 경찰의 조치는 적절했다고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이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경찰의 수사를 어렵게 만든 두 가지의 요소가 존재했다. 첫 번째는 가해자의 얼굴이 찍힌 CCTV 캡쳐 이미지가 불러일으킨 혼란이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포된 이 이미지는 이후 언론 보도에서도 사용되었는데, 해당 기사는 이를 근거로 안드리에 대한 황산 테러의 가해자로 지목된 두 인물이 얼굴을 가리지 않은 채 오토바이를 타고 있어 신원을 식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아직 이들을 체포하지 않은 이유에 의구심을 제기했다. 이에 따라 유포된 이미지 속 인물들을 실제 가해자로 몰아가는 여론이 형성되었고, 이들을 체포하지 않고 미적대는 경찰 대신 차라리 소방 인력을 수사에 투입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조롱 섞인 문구까지 포함된 이 기사로 경찰 조사의 신뢰성에 대한 의심까지 불러일으켰다. 경찰 조사 결과 해당 이미지는 실제 CCTV 화면을 캡쳐한 게 아니라 AI로 생성된 가짜 이미지임이 밝혀졌다. 그에 따라 이 사건은 여론을 호도하고 시민과 경찰 사이에 불신을 조장할 목적으로 안드리 가해에 연루된 세력이 의도적으로 유포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두 번째 혼선은 경찰과 군이 같은 날 서로 다른 장소에서 별도의 기자회견을 가진 사실로부터 야기되었다. 경찰은 3월 18일 수요일 오후, CCTV 영상과 통합 데이터 추적 결과를 토대로 두 명의 용의자 이름 이니셜(Mr. BHC와 Mr. MAK)과 사진을 공개하고, 아직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다른 두 명의 용의자까지 포함하여 최소 네 명 이상이 사건에 가담했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같은 시간 군부 또한 찔랑깝(Cilangkap)에 위치한 군 본부에서 열린 군사경찰사령부(Puspom TNI) 기자회견에서 사건의 용의자로 전략정보국(BAIS TNI) 본부지원대대(Denma) 소속 대위와 상등병, 중위 그리고 하사 등 4명의 군 인원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과학수사에 근거한 경찰의 수사 결과와는 달리 군부는 어떤 근거로 이들을 용의자로 특정했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군부는 이들을 즉각 체포하고 구금하여, 사실상 사건의 수사와 조사 권한을 “접수”하는 듯한 행보를 보였다. 이에 더하여 3월 25일, 전략정보국 국장인 유디 아브리만띠요(Yudi Abrimantyo) 육군 중장이 지휘 책임을 통감한다는 이유로 사임하여 이 사건이 군부 소관임을 한층 명확히 하는 듯했다.
군부가 안드리에 대한 황산 테러 가해자가 군 소속일 수 있다고 발표함에 따라, 경찰 수사관들은 수사를 지속할 법적 근거를 상실하게 되었다. 인도네시아 군사법원법에 따르면 군부 구성원에 대한 수사 권한은 군사경찰사령부(Puspom TNI)에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프라보워 대통령 또한 경찰청장에게 해당 사건을 경찰에서 군으로 이관하도록 지시했다.
안드리 테러 사건에 대한 수사권이 군부로부터 경찰로 이관되자 시민사회연합은 군부가 이 사건을 투명하고 책임 있게, 그리고 정의와 법적 확실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처리하리라곤 믿을 수 없다며 프라보워 대통령에게 독립적인 진상조사팀(TGPF, Tim Gabungan Pencari Fakta)을 즉각 구성하라고 촉구하였다. 현재까지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아무 대응을 보이지 않고 있으나, 민주당 소속의 베니 까부르 하르만(Benny Kabur Harman) 의원을 포함한 일부 국회의원들이 독립 진상조사팀 구성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신질서 시대부터 프라보워 정부까지: 인권활동가들의 험난한 투쟁
인도네시아의 인권활동가들은 군부 압제로 점철된 신질서(Orde baru) 시대는 물론이고 1998년에 이루어진 개혁(Reformasi)으로 더 나아졌어야 하는 오늘날까지도, 활동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치명적인 위협에 시달려 왔다. 인권활동가들은 예나 지금이나 계속 협박과 재정적 압박, 형사 처벌, 통신 채널 해킹, 심지어 살해 위협에까지 이르는 다양한 형태의 물리적·심리적 폭력을 경험하고 있다. 신질서 시대에는 수많은 활동가가 체포와 구금, 납치와 살해 등 직접적인 신체적 폭력의 표적이 되었다. 1993년 군부에 의해 살해된, 사후 한참이 지난 2025년에야 프라보워 대통령에 의해 국가영웅으로 추서된 노동운동가 마르시나(Marsinah)가 대표적인 예이다.5)
아쩨(Aceh)와 인도네시아에 속해 있던 시기의 동티모르, 파푸아 등 여러 분쟁 지역에서 활동해 온 인권활동가들은 평화적으로 인권 옹호 활동을 펼치는 중에조차 잔혹하고도 치명적인 탄압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일례로 KontraS와 인권단체 Imparsial의 창립자인 인권활동가 무니르 사이드 탈립(Munir Said Thalib)이 2004년 네덜란드로 향하는 가루다 인도네시아 항공편에서 비소 독살로 목숨을 잃은 사건을 들 수 있다. 무니르 사망 사건의 전모를 규명하기 위한 수사 과정에서 인도네시아 경찰은 국가정보원(BIN) 전 제5부/정보동원 부원장이자 육군 특수부대인 꼬빠수스(Kopassus) 전 사령관인 묵디 뿌르워쁘란조노(Muchdi Purwoprandjono) 육군 소장을 포함한 여러 군 인사를 기소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사건 담당 판사들은 2008년 남자카르타 지방법원 판결에서 묵디에게 무죄를 선고하였고, 그는 오늘날까지 자유의 몸으로 살아간다. 무니르 독살 사건은 결국 가루다 항공 부기장인 뽈리카르뿌스 부디하리 쁘리얀또(Pollycarpus Budihari Prijanto)와 이사 인드라 스띠아완(Indra Setiawan), 그리고 직원인 로하이닐 아이니(Rohainil Aini) 등 항공사 관계자들만을 살해 공모 혐의로 유죄 판결한 데 그친 채 종료되었다.

<사진 2> “비소에서 황산까지”. 비소 독살과 황산 테러의 피해자인 무니르(좌)와 안드리(우)의 모습.
출처: Greenpeace Indonesia 인스타그램(@greenpeaceid)
인도네시아의 인권활동가들은 인도네시아 헌법 제28조, 1999년 인권법 제39호,6) 국가인권위원회(Komnas HAM) 규정 제5호(2015)7)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법적 보호의 실질적 이행은 매우 미흡하여 많은 인권활동가들이 활동 과정에서 위험에 처하는 사례가 속출한다.
앰네스티 인도네시아(Amnesty International Indonesia)의 보고에 따르면, 프라보워 정부 출범 1년 동안 인권활동가들을 대상으로 자행된 공격은 268건에 달한다. 고발(46건), 체포(17건), 형사 처벌(35건), 살인 미수(6건), 신체 공격(153건), 활동 공간에 대한 공격(11건) 등 다양한 형태의 공격을 받았는데, 특히 언론인과 원주민 권리 활동가가 각각 112건과 81건으로 가장 많은 공격을 받은 것으로 확인된다. 그중에는 파푸아 자야푸라에 위치한 JUBI 언론사 사무실에 대한 군인들의 화염병 공격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 사건은 수사로 이어지지조차 않았다. 이 외에도 디지털 공격이 14건, 정보통신법 위반 혐의에 따른 형사 처벌도 20건을 기록하였다.
군사법원 개혁
1998년 개혁의 핵심 과제는 군부를 병영으로 복귀시키고, 지역군사령부 체계(Kodam, Korem, Koramil)를 해체하며, 군사법원법을 개정하여 일반 형사범죄를 저지른 군인이 민간 법원에서 재판받도록 하고, 군부의 임무를 법률로 규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중 어느 것도 이행되지 않고 있다.
인도네시아 헌법 제30조 제3항은 육군, 해군, 공군으로 구성된 군부가 국가 통합과 주권을 수호ㆍ보호ㆍ유지하는 임무를 담당하고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 형사범죄를 저지른 군인에 대한 처벌 관련 개혁 과제를 군부는 여전히 이행하지 않고 있다. 2004년 34호 국군법 제65조 제2항에는 군인이 군법을 위반하는 경우 군사법원이, 일반 형사법을 위반하는 경우 민간법원이 관할한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22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군사법원법 개정 약속은 이행되지 않고 있다. 이는 곧 일반 형사범죄를 저지른 군인에 대한 처벌이 여전히 민간법원의 관할권에서 벗어나 있음을 의미한다. 국민들은 군사법원이 군부 구성원들의 범죄 행위를 엄중히 처벌하기보다는 오히려 면책 특권을 보장하는 온상이라며 강력히 비판해 왔다. 안드리 테러 사건이 경찰에서 군으로 이관됨에 따라 재판을 맡게 된 군사법원이 공정하게 심리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인도네시아 대중이 깊은 회의를 표하는 이유다.
군에 관한 법률 제65조는 법 앞에서의 평등이라는 원칙을 강조하지만, 오늘날까지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은 다른 선행 요건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조항의 적용은 새로운 군사법원을 규율하는 법령이 마련된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명시한 동법 제74조 제1항 및 제2항의 경과 규정이 그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를 가능케 할 현행 군사법원법에 대한 개정은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곧 개정안이 제정ㆍ시행될 때까지 군사법원 체계는 1997년 제31호 군사법원법을 계속 따라야 함을 의미한다.
안드리 사건과 함께 이 문제는 사회적으로 첨예한 논란거리로 부상하였다. 특히 군부에 의한 폭력 피해자들과 연대해 온 시민사회 단체들은 안드리 사건을 군부로 이관한 데 대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그간 군인들은 폭행, 집단 폭력, 살인, 마약 밀매 등, 비교적 경미한 범죄에서 중대 범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범죄로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은 경우가 많았는데, 군사법원의 선고는 매우 관대하여 정의 실현이나 법적 확실성의 구현과는 거리가 멀었다. 군사법원이 군인들의 면책 특권을 보장하는 온상임을 보여주는 몇 가지 대표적인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사례 1>
2010년 11월 11일 목요일, 자야푸라 제3-19 군사법원은 파푸아 뿐짝 자야(Puncak Jaya)의 띵기남붓(Tingginambut)에서 여러 명의 파푸아 원주민을 학대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군인 네 명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가해 장면을 영상으로 촬영하기까지 했는데, 이 영상이 온라인을 통해 퍼져나가면서 국제적으로 인도네시아를 향한 강력한 비난 여론이 일었다. 가해자는 코스모스(Cosmos) 보병 중위와 그의 부하인 상등병 시아미난 루비스와 이등병 조코 수리스티요노, 드위 푸르완토였다. 이 사건을 맡은 군사법원 재판부가 선고한 형량은 코스모스 중위가 징역 7개월, 나머지 세 명은 징역 5개월에 불과했다. 코스모스 중위의 형량은 군검찰의 구형량인 징역 4개월보다 3개월 더 무거운 것에 불과했으며, 부하 세 명에 대한 군검찰의 구형량은 징역 3개월이었다. 판결의 근거는 보병 제753 아르가 비라 따마(Arga Vira Tama) 대대 소속의 분쟁취약지역 경비대(Pam Rawan) 대원인 피고인들이 임무 수행 중 상관 명령에 불복종하는 군사 범죄를 저질러 이를 명시한 제103조 제1항8)을 위반했다는 것이었다. 아울러 재판부는 이들의 행위가 군인 선서와 군의 8대 의무에 위배되며, 사회생활의 근간을 훼손하고 국내외적으로 군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만 판시하였다. 요컨대 군사법원 재판부는 명령 불복종과 군인 의무 위반 등, 명백히 군사 범죄에 해당한다고 본 행위에 대해서만 이들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이들이 군사법원에 선 순간, 파푸아에서 이들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이라는 행위는 아예 범죄로 성립되지도 못한 채 증발해 버렸다.
<사례 2>
현재 군사법원법과 관련하여 두 명의 인도네시아 시민, 즉 레니 다마닉(Lenny Damanik, 이하 레니)과 에바 멜리아니 보루 빠사르이부(Eva Meliani Boru Pasaribu, 이하 에바)가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이다.
레니는 고(故) 미카엘 히스똔 시땅강(당시 15세, Michael Histon Sitanggang, 이하 ‘미카엘’)의 어머니이다. 미카엘은 2024년 5월 24일, 메단(Medan) 시의 뜨갈 사리 만달라 Ⅱ동(Tegal Sari Mandala)과 뗌붕(Tembung) 동 사이 철로에서 발생한 패싸움을 말리는 과정에서 군인에 의해 폭행을 당해 다음 날 새벽 3시 30분에 사망했다. 피해자의 어머니인 레니는 아들의 사망 직후 메단 시의 숭갈(Sunggal) 경찰서에 이 사건을 신고했다. 그러나 경찰은 군인이 피해자의 사망에 관여한 것이니 해당 지역의 군사경찰파견대(Denpom Ⅰ/5 BB Medan)에 신고하라고 안내했다. 레니는 이 안내에 따라 5월 28일에 사건을 신고했고, 접수 번호가 기재된 신고접수증(TBLP-58/V/2024)도 받았다. 그렇지만 이 신고에 대한 조치는 해를 넘겨 2025년 1월 7일이 되어서야 이루어졌고, 레자 팔레비(Reza Pahlevi, 이하 ‘레자’)라는 이름의 군 하사가 피의자로 지명되었다.
2025년 7월 9일, 피고인 레자 하사에 대한 심리가 메단의 군사법원에서 진행되었다. 피고인이 미카엘에게 저지른 범행에 대해 군검찰은 주위적ㆍ예비적 공소를 제기했다. 주위적 공소사실로는 2014년 제35호 아동보호법 제76조 다목 및 제80조 제3항을 결합하여 적용하였고9), 예비적 공소사실로는 형법 제359조 위반 혐의를 적용하였다. 그런데, 이동학대 혐의로 기소되었음에도 피고인 레자는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구금되지 않았으며, 심지어 소속 부대에서 복무까지 계속했다.
재판 과정에서 군검찰은 공소사실을 성실히 입증하지 않았다. 현장을 직접 목격한 핵심 증인인 이스마일 사뿌뜨라 땀뿌볼론(Ismail Saputra Tampubolon)이 법정에 서지 않았음에도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이를 방증한다. 군검찰은 피고인에게 징역 1년과 벌금 5억 루피아(보조형 징역 3개월)를, 피해자의 가족에 대해서는 배상금으로 1,277만 7,100루피아(한화 약 1억 4천만 원) 지급을 구형했다. 재판부가 내린 판결은 이보다 더 관대했다. 군검찰이 구형한 것보다 적은 징역 10개월에, 구형한 과 동일한 액수의 배상금을 피해자 가족에게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배상금을 지급하지 않을 시에는 징역 3개월로 대체할 수 있다고도 했다.
재판 결과에 대해 피해자의 어머니 레니는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으며, 피고인에게 오히려 특권을 부여하는 형태로 차별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수사 단계부터 재판에 이르기까지 피고인은 한 차례도 구금되지 않았으며, 또한 피고인에게 적용된 공소 내용의 최고형이 징역 15년임에도 군검찰이 1년의 징역형만을 구형했다는 점에서 피해자를 위한 정의 실현과도 거리가 멀었다. 자식의 생명을 앗아간 범행에 대해 재판부가 검찰의 구형보다 더 낮은 형량인 10개월을 선고한 사실은 불의에 대한 느낌만을 더욱 깊게 만들었을 뿐이다.
군사법원법에 헌법소원을 제기한 또 다른 인물인 에바는 아버지 리꼬 슴뿌르나 빠사르이부(Rico Sempurna Pasaribu, 이하 리꼬)를 비롯한 가족을 잃었다. 생전에 리꼬는 언론인으로서, 군 소속 상병(Koptu)인 헤르만 부낏(Herman Bukit)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도박 사업을 취재한 이후 계획적 방화 살인의 표적이 되어 자택에서 일가족 4명과 함께 살해되었다. 2024년 6월 27일 발생한 이 방화 사건으로 에바의 아버지인 리꼬와 어머니 엘빠리다(Elparida), 동생 수디(Sudi Investi Pasaribu)와 그의 아이인 루인(Louin Situngkir)이 목숨을 잃었다.
사건 초기 경찰은 피해자 자택의 화재 원인을 실화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언론인안전위원회(KKJ, Komite Keselamatan Jurnalis)가 조사하여 언론위원회에 제출한 보고를 통해 이 사건은 실화나 자연 발화가 아닌 군 소속 인사들이 자행한 계획적 방화임이 밝혀졌다. 이후 해당 지역 경찰은 베바스 긴띵(Bebas Ginting), 루디 셈비링(Rudi Sembiring), 유누스 따리간(Yunus Tarigan) 등 민간인 3명을 용의자로 지목했다. 그런데 이 세 명 중 한 명이 군부의 심복으로서 대중조직과 언론으로부터 도박 사업의 운영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에 따라 이 사건의 배후가 결정적 이해 당사자인 헤르만 부낏이며, 그가 이 계획적 살인에 가담했을 수 있다는 강력한 의혹이 제기되었다.
피해자 가족은 2024년 7월 12일 육군군사경찰사령부(Puspomad)에 이 사건을 신고했으며, 이후 사령부의 안내에 따라 7월 18일 지역군사령부 군사경찰대(PondamⅠ/Bukit Barisan)에 신고를 접수했다. 이후 헤르만 부낏의 연루 사실을 뒷받침하는 여러 증거가 제출되었다. 그렇지만 군사경찰대는 헌법소원이 제기될 때까지 별다른 수사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며, 수사 진행 상황에 관한 어떠한 정보도 가족에게 공유하거나 통지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세 명의 민간인 용의자에게 무기징역을 판결했다. 그러나 이 사건의 배후로 강력히 의심받은 헤르만 부낏에 대한 조사와 수사는 현재까지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사진 3> 헌법소원 청구인인 레니와 에바가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안드리 연대 시위에 참석하여 성명서를 낭독하는 모습
출처: Poengky Indarti (2026.04.08.)
2025년 7월 3일 목요일, 아사한(Asahan) 지역에서 1.2톤이라는 막대한 양의 천산갑 비늘 밀수에 가담한 군인 두 명이 메단 군사법원(MedanⅠ-02) 법정에 섰다. 2024년 11월에 발생한 이 밀수 사건은 두 명의 민간인과 함께 아사한 경찰서 소속 알피 하리아디 시레가르(Alfi Hariadi Siregar) 경위가 가담한 범죄였다. 쥬나에디(Djunaedi)가 재판장을 맡은 재판부는 이 사건의 주범인 모하마드(Mohammad Yusuf Harahap) 상사와 라흐마다니 하사(Rahmadani Syahputra)에게 각각 징역 1년과 벌금 1억 루피아(미납 시 징역 1개월로 대체)라는 아주 경미한 형을 선고했다. 한편, 이들과 달리 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은 민간인 아미르(Amir Simatung)는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이는 주범인 모하마드와 라흐마다니보다 훨씬 높은 형량이었는데, 사실 이 범행에서 아미르가 맡은 역할이라곤 천산갑 비늘을 포장한 일에 불과했다. 경찰인 알피는 징역 9년을 선고받았다.
국가 공무원인 군 소속 군인들에 대한 처벌은 민간인보다 무거워야 마땅하다. 인도네시아에서 천산갑 비늘 거래는 매우 중대한 생태 범죄에 해당한다. 그런데, 국가가 보호하는 야생동물을 불법적으로 거래하는 일을 막는 데 앞장서야 할 위치에 있는 이들이 오히려 밀거래 조직의 일원으로서 범죄에 가담하고도 가벼운 처벌만 받은 이 사건은 군사법원의 공정성에 대한 의심을 더욱 부추긴 사례라 할 수 있다.
<사례 4>
2024년 11월 11일, 메단의 포병 대대(Medan-2 Kilap Sumagan) 소속 군인 십여 명이 부대 인근의 민간인 마을을 습격한 혐의로 기소되어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다. 사건의 발단은 이들이 도로에서 오토바이를 운전하던 마을 주민과 시비가 붙으며 촉발되었다. 군인들이 마을을 휩쓸고 다니며 주택에 침입하고 주민들을 끌어내어 폭행함에 따라 주민 다수가 부상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라덴 바루스(Raden Barus)라는 이름의 60세 주민이 사망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그렇지만 재판에 넘겨진 십여 명의 군인들 가운데 현재까지 선고를 받은 것은 두 명뿐이다. 주민 한 명을 사망에까지 이르게 한 사건임에도 이들에 대한 처벌은 가벼워, 상병 사웃(Saut Maruli Siahaan)은 징역 7개월 24일을, 이등병인 드위(Dwi Maulan Kusuma)는 징역 9개월만을 선고받았을 뿐이다.
이러한 재판부의 판결은 정의에 대한 대중의 기대에 심각한 상처를 입혔다. 폭력과 살인을 저지른 군인들에게 내려진 가벼운 처벌은 군부가 법 앞에서 누리는 면책 특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군 소속 폭력 가해자에 대한 미약한 법 집행은 그들에게 부여된 면책 특권을 더욱 공고히 하고, 나아가 군 개혁까지 가로막는다. 군사법원 체계 역시 매우 불투명하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예를 들어 사건추적정보시스템(Case Tracking Information System)에는 범죄 사실의 세부 내용에 담은 공소장이 공개되지 않으며, 일부 사건에서는 피고인의 이름이 익명으로 처리되어 있기까지 하다. 이로 인해 일반 대중과 언론, 특히 피해자와 그 가족이 재판 진행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기가 매우 어렵다.
이러한 사례들을 상기하며 인도네시아의 시민들은 1998년 개혁 이래 군부 개혁의 일환으로 제기되었던 군사법원법 개정을 다시금 촉구하고 있다. 사실 군인들이 저지른 일반 형사 범죄는 군사 사법 체계가 아니라 일반 사법 체계를 통해 재판되어야 한다. 이는 모든 시민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원칙을 차별 없이 이행하는 데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2004년부터 2009년까지 인도네시아 국회와 정부가 진행한 군사법원법 개정 논의는 군부가 경찰 수사와 검찰의 기소를 거부하면서 교착 상태에 빠졌다. 군부는 경찰이 군인을 상급자처럼 여기는 심리적 위압감으로 인해 쉽게 수사에 나서지 못할 것이며, 마찬가지로 검찰 역시 같은 이유로 군인을 기소하지 못할 것이라며 종전대로 군경찰에 의한 수사와 군검찰에 의한 기소 체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당시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Susilo Bambang Yudhoyono) 대통령은 군부가 경찰 수사와 검찰 기소를 받아들일 준비가 될 때까지 5년의 시범 기간을 두자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반면,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는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결국 오늘날까지도 군사법원법 개정에 관한 논의는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법 앞의 평등’이라는 원칙은 정의와 모든 시민에 대한 평등한 대우를 보장하는 법체계의 핵심 기둥 중 하나이다. 이는 군인을 포함한 모든 개인이 동일한 법률의 적용을 받고, 사법 절차에서도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군인이 군사 임무와 무관한 형사범죄에 연루되었을 때 민간 사법 체계 아래 판결받기를 거부함에 따라 관련 사건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일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이는 군인에 대한 특별 대우 혹은 면책 특권을 부여하고, 이들이 일반 사법 체계에서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지운다. 이는 법 앞의 평등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군사법원 개혁에 대한 관심 부재는 인도네시아의 군사법원 체계와 법 집행 전반에 걸쳐 불충분한 감독, 변칙, 위반, 범죄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군사 기관에 대한 감독은 국회 제1위원회가 맡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 역할은 효과적으로 수행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정보기관과 군부에 대한 감독이 부실해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발생한 부패 사건들은 국가의 핵심 기관들을 제대로 감시하려는 노력을 저해한다.
감독의 부재는 군부가 본연의 전문적인 역할과 책무에서 벗어나는 활동들에 과도하게 관여하는 결과로도 이어진다. 이러한 행태는 민주적 정부의 통제하에 있어야 할 민간 영역에 대한 군의 개입을 초래하며, 민간인을 향한 폭력이나 위협이 발생하기 쉬운 환경을 만든다.
앞서 제시한 사례들을 통해서도 분명히 알 수 있듯이, 인도네시아 대중이 안드리 테러 사건에 대한 군사경찰(POM TNI)의 수사와 군사법원에서의 재판을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충분하다. 지금은 시민사회가 군사법원법 개정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목소리 높여 주장하고, 군부 개혁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를 평가할 결정적인 계기이다.

<사진 4> “우리는 안드리와 함께 한다(Kami bersama Andrie).”
헌법재판소 앞에 열린 안드리 유누스 연대 시위 현장 광경
출처: Poengky Indarti (2026.04.08.)
경찰은 안드리가 겪은 테러 사건에 대한 수사를 계속 진전시키고 관련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 가해자가 군 소속이라는 이유로 군 내부 수사가 폐쇄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프라보워 대통령이 군부로부터 수사 진행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을 때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왜곡된 정보를 받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경찰은 안드리 사건에 관한 처리를 감시하고, 군사법원법 개정과 군부 개혁 평가의 동력을 강화하기 위해 시민사회 단체들과 긴밀히 협력하고 공조해야 한다.
시민사회 단체와 언론은 이 사건의 수사 및 조사 과정에서부터 재판에 이르는 전 과정을 지속적으로 추적하고, 국내외 네트워크를 결집하여 더욱 촘촘하게 감시하여 사건 처리 과정에서의 조작 가능성을 줄이고 군부의 면책 특권이 더 이상 고착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각주
1) 신질서(1966~1998)는 인도네시아 제2대 대통령 수하르토(Suharto) 치하의 통치 시기를 가리킨다. 육군 대장 출신인 수하르토는 건국의 아버지이자 구질서(Old Order1945~1966) 시기를 이끈 민간인 대통령 수카르노(Sukarno)의 뒤를 이어 32년간 집권했다. 신질서 시대에 수하르토는 인도네시아공화국군대(ABRI)로 통합된 인도네시아군(TNI)과 경찰(Polri)을 활용하여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유지했다. 또한 통제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각종 단체를 강제로 통합하였는데, 노동조합을 인도네시아전국근로조합연맹(SPSI)으로 통합하고, 정당 역시 두 개의 정당과 하나의 직능집단만 남도록 합당시켜 수하르토의 정치를 지원하게 하는 한편, 수하르토 본인과 그의 가족 및 측근에게 유리한 규정을 만들었다. 그의 집권 기간은 군부와 정부, 수하르토 지지 세력에 의해 자행된 수많은 인권침해로 점철되었으며, 아체, 동티모르, 파푸아에서의 인권침해가 대표적이다. 수카르노에서 수하르토로의 권력 이양 과정에서는 공산당(PKI)과 군부간 이념적 주도권 다툼이 발생하여 육군 장교 6명이 살해되는 9·30 사건(G30S)이 일어났으며,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인도네시아 공산당원 및 동조자 50만 명에서 3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희생자를 낳은 대학살이 자행되었다. 신질서는 1998년 5월 수하르토가 대중의 압력에 의해 하야하면서 개혁시대(Reformasi)로 대체되었다.
2) 활동가 납치 사건은 1997년과 1998년에 발생했다. 당시 수하르토 정부에 비판적이었던 청년 활동가 단체가 납치의 표적이 되었으며, 이 중 13명은 현재까지도 행방불명 상태로 남아있다. 생환한 활동가들은 당시 군 중장 프라보워 수비안토의 지휘하에 있던 육군 특수부대 코빠수스(Kopassus)의 마와르(Mawar) 팀에 의해 자신들이 납치되었다고 밝혔다. 납치된 활동가들은 자카르타 찌잔뚱(Cijantung)에 위치한 코파수스 본부로 이송되었으며, 억류 상태에서 협박과 고문을 당했다고 증언하였다.
3) Komisi untuk Orang Hilang dan Korban Tindak Kekerasan(실종및폭력피해자대책위원회). 1998년 인도네시아 민주화 이행기에 설립된 인권단체로, 강제실종, 고문, 초법적 처형, 국가폭력 등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의 기록·조사·옹호 활동을 수행한다. 인도네시아 국내뿐 아니라 국제사회와의 연대를 통해 피해자 지원 및 책임자 처벌을 위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4) 시민사회가 비판하는 국군법 개정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현역 군 소속 인원이 맡을 수 있는 민간 직위의 확대이다. 이는 과거 군부의 이중기능(사회적·정치적 기능)을 부활시키고 국가공무원의 직업 구조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둘째, 군의 영리사업 참여 금지 조항의 삭제로, 이는 군부 개혁에 명백히 역행하는 것이다. 셋째, 군사법원법이 아직 개정되지 않아 일반 형사범죄를 저지른 군인이 여전히 민간법원에서 재판받을 수 없으며, 군부 지원 임무에 관한 법률이 아직 제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오히려 지역군사령부 체계가 부활하고 있다는 점이다.
5) 마르시나 사건은 1993년 동부자바의 시도아르조(Sidoarjo) 포롱(Porong) 소재 주식회사 짜뚜르 뿌뜨라 수리아(Catur Putra Surya/CPS)에 근무하던 노동운동가 마르시나가 잔혹한 고문 끝에 사망한 사건이다. 고문은 시도아르조 제0816 지역군사령부(Kodim 0816) 인원에 의해 해당 사령부 내에서 자행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마르시나 사망 이후 군과 경찰은 CPS사의 경영진이 마르시나 살해를 공모한 것처럼 사건을 꾸몄고 경영진은 경찰에 의해 체포·구금되어 마르시나 살해 모의 혐의를 받았다. 구금 중 경영진은 잔혹한 고문을 당했는데, 대표이사 유디 수산또(Yudi Susanto)와 인사부장 무띠아리(Mutiari)가 대표적인 피해자였다. 유디 수산또는 구타를 당하는 것은 물론 군인의 소변을 마시고 화장실 바닥을 핥도록 강요받았다. 무띠아리는 신체적·심리적 고문을 받다가 뱃 속에 있던 아이를 잃었다.
6) 국민이 인도네시아에서의 인권 이행과 보호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할 수 있는 공간을 보장한다.
7) 인권활동가 보호 절차에 관한 규정
8) 군인이 복무 명령을 거부 또는 고의로 이행하지 아니하거나 명령의 범위를 벗어난 행위를 한 경우, 고의적 항명죄로 최대 2년 4개월의 징역에 처한다.
9) 누구든지 아동에 대한 폭력을 가하거나, 이를 방치하거나, 직접 행하거나, 지시하거나 또는 이에 가담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안된다(아동보호법 제76조 다목). 제76조 다목의 규정을 위반한 자는 최대 3년 6개월 의 징역 및/또는 7,200만 루피아(한화 약 62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아동보호법 제80조 1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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