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25.11.11
- 수정일
- 2025.11.11
- 작성자
- 동남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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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인도네시아 경찰 개혁: 1998년 레포르마시부터 2025년 8월 시위까지 | 풍키 인다르띠
초록
1998년 레포르마시(Reformasi)로부터 27년이 지난 2025년 8월,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다시 한번 인도네시아 경찰(POLRI)의 개혁을 촉구하며 거리에 섰다. 대중 시위 진압 과정에서 경찰의 과도한 폭력 사용으로 인해 발행한 인명피해는 개혁을 향한 오랜 여정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의 경찰 문화 개혁이 충분히 실현되지 않았음을 드러냈다. 경찰의 폭력적인 대응은 국회(DPR)를 해산하라며 거리로 나선 국민의 분노가 경찰을 향해 방향을 바꾸도록 만들었다. 지금이야말로 레포르마시 이후로도 완수되지 못한, ‘시민의 경찰’에 대한 국민의 오랜 염원을 인도네시아 경찰이 진지하게 받아들여 실질적인 경찰 문화 개혁에 나서야 할 때이다.
국회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대규모 시위
2025년 8월,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국회의원들의 부실한 의정 활동에 분노한 대중이 국회의 해산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발발했다. 특정 조직의 주도나 지휘 체계 없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한 이번 시위는 불특정 다수의 대중이 국회 앞에 모여 공동 행동을 촉구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시위대의 핵심 요구는 월 1억 루피아(한화 약 862만 원, 1원=11.60 루피아)를 초과하는 과도한 의원 수당, 특히 월 5천만 루피아(약 431만 원)에 달하는 주거 수당의 지급을 철회하라는 것이었다. 주거 수당은 국회의원들이 더 이상 공관을 제공받지 않음에도 지급되는 것으로, 날로 빈곤해지는 국민들의 소득 수준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어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수많은 국민이 해고와 실업으로 빈곤에 허덕이는 상황에 아랑곳없이 국민을 대표해야 할 의원들이 막대한 수당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대중은 크게 분노했다.
유권자를 경시하는 듯한 국회의원들의 오만한 태도 또한 시위를 부추긴 또 다른 원인으로 작용했다. 집권 연정의 나스뎀당(NasDem: Partai Nasional Demokrat) 소속 의원 아흐마드 사흐로니(Ahmad Sahroni)가 “국회를 해산하라고 외치는 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들이다!”라고 발언한 일이나, 국민수권당(PAN: Partai Amanat Nasional) 의원 에코 파트리오(Eko Patrio)와 우야 쿠야(Uya Kuya)가 대통령-국회 간담회 후 흡사 의원 수당 인상을 기뻐하듯 춤을 추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된 일 등은 이를 한층 자극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한 나스뎀당 의원 나파 우르바흐(Nafa Urbach)는 의회 단지 근처의 비싼 임대료를 근거로 주택 수당 지급을 옹호하여 비난을 샀다. 이를 배경으로 발발한 시위의 요구 사항들은 일반 국민이 처한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지극히 정당한 것이라 여겨졌고, 그에 따라 시위는 대학생, 고등학생, 온라인 오토바이 택시 기사, 노동자 등 다양한 계층의 합류로 이어졌다.
국회를 향한 대중의 분노는 빠른 속도로 확산하여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를 촉발하였다. 참가자의 대다수는 MZ 세대가 주축인 젊은 층이었다. 시위 참여 독려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루어졌고, 조직적 지도부 없이도 시위대는 국회 및 각 주·군·시 의회 건물을 향해 자발적으로 집결했다. 시위대가 기대했던 것은 대표자들과의 대화였지만, 이들은 아무런 응답도 받지 못했다. 응답 주체인 인도네시아 국회의원 전원과 직원들이 시위대를 피해 재택근무로 전환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일부 의원들이 시급한 국내 현안에 사용해야 할 국가 예산을 해외 출장 명목으로 유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시위대의 분노는 더욱 증폭되었다. 결국 시위대는 돌, 생수병, 목재 등을 국회에 투척하고 국회 단지 울타리를 파괴하였으며, 벽면에 항의 구호를 그려 넣고 국회 경호 경찰들을 공격하는 등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에 경찰이 강경 대응에 나서 시위를 진압한 이후에야 시위대는 해산되었다.
8월 25일 월요일의 시위는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지만, 목요일인 8월 28일에 다시 시위가 재개되었다. 시위는 두 가지 형태로 전개되었다. 첫 번째는 사이드 이크발(Said Ikbal)1)이 주도한 노동자 시위로, 시위대는 아웃소싱(outsourcing) 폐지와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아침 시간대에 평화롭게 행진하는 방식으로 시위를 진행했다. 오후에 열린 두 번째 시위에서는 대학생, 고등학생, 그리고 플랫폼 기반 오토바이 택시 기사들이 주요 주체로 나섰다. 시위는 초반까진 평화롭게 진행되었지만, 국회 지도부나 의원 누구도 시위대의 면담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서 정오 무렵부터 폭력적인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정오부터 해질녘까지 과격한 양상으로 전개된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경찰은 물대포와 최루가스를 동원하였다.
시위 과잉 진압과 경찰 개혁 요구의 대두
국회의원들의 방만한 의정활동에 대한 분노로 촉발된 8월의 시위는 한 사건을 계기로 일순간 방향을 바꾸었다. 폭력적인 양상으로 치달은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경찰기동대(Police Mobile Brigade Corps)의 장갑차가 오토바이 택시 기사인 아판 쿠르니아완(Affan Kurniawan)을 치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무고한 시민의 죽음에 대중의 주요 비판 대상은 순식간에 국회에서 경찰로 전환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인도네시아 경찰의 책임을 묻는 과격 행동이 나라 전역에서 발발하기 시작했다. 분노한 시위대는 경찰서를 공격하고 공공시설을 방화하는 등의 폭력적 대응을 전개하였다. 이 소요로 자카르타에서는 7개의 톨게이트와 7개의 버스정류장, 4개의 경찰초소, 1개의 경찰 지구대가, 동자카르타에서는 5개의 경찰서 등 여러 공공시설이 불길에 휩싸였다. 마카사르에서는 주의회 건물(DPRD) 방화로 직원 3명이 사망하였고, 혼란 중에 한 오토바이 기사가 정부요원이라는 의혹을 받아 대중에게 구타당해 사망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수라바야에서는 역사적 건축물인 동부자바 주지사 청사의 동쪽 측면과 여러 곳의 지구대 및 경찰 초소가 폭도들에 의해 불에 탔다. 족자카르타에서는 지방경찰청의 운전면허갱신소와 민원 구역이, 반둥에서는 서부자바주 의회 건물 맞은편에 위치한 국민협의회 건물이 방화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폭력 사태에 대한 대응으로 경찰은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시위 가담자로 추정되는 6,719명을 체포했고, 이 중 청소년 295명을 포함하여 총 959명을 피의자로 입건하였다.
이처럼 대규모의 조직적인 혼돈 사태로 최소 10명이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라보워(Prabowo)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독립적인 진상조사단을 구성하라는 대중의 요구를 거부한 채 국가인권위원회(Komnas HAM)와 기타 국가 위원회들의 독립 조사만을 허용하였다. 이러한 결정은 국민들에게 깊은 실망감을 안겨주었는데, 대통령이 사태에 대한 공감 능력을 결여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가 이미 배후 세력을 인지하고 있다는 의혹까지 불러일으켰다. 인도네시아의 거의 모든 주요 도시에서 조직적으로 발생한 이 혼돈 사태와 공공시설 파괴의 배후에 군부가 통제 불가능한 대중의 분노를 핑계로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도록 유도함으로써 경찰로부터 치안권을 장악하려는 공작이 있다는 의혹이었다.
이와 더불어 대중의 관심은 인도네시아 경찰의 시위 진압 방식에로 향하여, 시위대에 대한 구타와 발길질, 그리고 유효기간이 지난 최루탄 사용을 포함한 최루가스 발사 등 과도한 무력을 사용한 경찰에 대한 광범위한 비판이 쇄도했다. 경찰의 무력 사용은 시위대뿐만 아니라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행인들까지 패닉 상태에 빠뜨렸다. 무고한 시민들까지 최루가스를 흡입하여 호흡 곤란 등의 증상을 겪게 된 상황은 과잉대응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했다.
8월 시위는 유명인사와 네티즌들을 포함한 사회 각계의 우려를 낳았으며, 이후 17개의 단기 요구와 8개의 장기 요구로 구성된, 이른바 ‘17+8’ 요구사항의 도출로 이어졌다. ‘17+8’은 다양한 대중의 목소리를 집약한 것으로, 대통령과 국회, 정당 대표, 경찰, 군부, 그리고 경제 부처 장관들을 대상으로 삼았다. 요구사항의 이행 기한으로 단기 요구는 2025년 9월 5일을, 장기 요구는 2026년 8월 31일을 제시하였고, 이를 주도한 유명인사와 네티즌, 그리고 학생들은 모든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정기적으로 시위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17+8’ 요구사항 가운데 즉각적인 경찰 개혁을 요구하는 항목은 오토바이 택시 기사 아판 쿠르니아완의 사망 사건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에 응하여 프라보워 대통령은 2025년 9월 11일 대통령궁에서 신타 누리야 와히드(Shinta Nariyah Wahid) 전(前) 영부인과 종교 지도자 등의 주요 인사들이 결성한 ‘국민양심운동’(Gerakan Nurani Bangsa)과 면담을 진행한 후 경찰 조직 쇄신을 위한 ‘경찰개혁위원회’(National Police Reform Committee)의 즉각적인 구성을 약속했다.
한편, 인도네시아 경찰은 대중의 요구에 응답하기 위한 자체 준비에 착수했다. 그중 하나가 2025년 9월 17일 경찰청장이 1999년부터 진행되어 온 경찰 개혁의 이행 과정을 평가하기 위해 52명의 경찰관으로 구성된 ‘경찰혁신추진단’(National Police Transformation Acceleration Team) 설립을 골자로 한 훈령을 발표한 것이다. 경찰개혁위원회를 구성하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은 아직 이행되지 않았지만, 8월 시위는 1999년 이후로도 미완으로 남아 있는 인도네시아 경찰 문화 개혁이라는 오랜 과제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중요한 모멘텀을 제공하였다.
경찰 문화 개혁의 중요성: ‘시민의 경찰’로의 전환
인도네시아 경찰을 전문적이고 인도적인 ‘시민의 경찰’로 변혁시키기 위해서는 경찰 문화 개혁을 다시 추진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하비비(B. J. Habibie) 전 대통령이 재임 시 국군(TNI)과 경찰의 분리를 명시한 「1999년 대통령령 제2호」를 발령하면서 시작된 경찰 개혁은 2025년을 맞아 26년차에 접어들었다.
경찰 개혁은 크게 세 차원, 즉 국가 제도 내 경찰의 위상, 조직 형태, 구조 및 지위의 변화를 포괄하는 구조적 측면, 조직 철학, 강령, 권한 및 역량 면에서 혁신을 꾀하는 기능적 측면, 그리고 지도부와 구성원들의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의 변화를 의미하는 문화적 측면으로 구성된다. 이 세 가지 차원 중 경찰 문화 개혁의 핵심은 경찰 조직 전체를 전문적인 ‘시민의 경찰’로 재편하는 데 목표를 둔다. 구체적으로는 경찰 지도부와 구성원들이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시민을 보호하며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는 데 최상의 목표를 두어 법을 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인권을 존중하여 과도한 폭력 사용과 군사주의적 행동을 지양하고, 호화로운 생활 방식과 시민에 대한 오만한 태도를 삼갈 것을 요구한다. 나아가 이러한 변화가 채용 시스템과 교육, 예산, 인사, 운영 관리 및 경찰의 작전 수행 전반에 이르기까지 조직 전체에 반영될 것을 요구한다.
구조적 개혁의 실제 이행 성과는 확인이 가능하다. 지난 38년간 국군(ABRI)에 통합되어 국방부 장관 겸 국군 총사령관의 지휘하에 있던 인도네시아 경찰이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변경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구조적 개혁과 더불어 기능적 차원에서의 개혁 약속 역시 이행되었다. 경찰이 인도적이며 인권을 존중하는 ‘시민의 경찰’임을 명시한 「인도네시아 경찰에 관한 2002년 법률 제2호」 및 여타 규정들을 비준한 것이 그에 해당한다. 그러나 경찰 문화 개혁은 착수하기는 했으나 실질적인 변혁에 이르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경찰 문화의 개혁은 단기간에 이뤄지기 어려운, 관점과 사고방식, 그리고 행동의 변화를 요구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개혁기 동안 인도네시아 경찰은 일정 수준 개선되어 대중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과도한 공권력 사용 사례들이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더욱이, 일부 경찰들이 여전히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하면서 시민들에게 오만하고 위압적으로 굴고, 심지어 부당한 금품 수수에 연루된 정황까지 드러나는 등 시민을 보살피고 보호하며 봉사하는 경찰이 되어주길 바라는 국민의 기대를 꺾는 일들이 종종 발생한다.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경찰들의 이러한 행태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경찰 문화 개혁을 추진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밤방 헨다르소 다누리(Bambang Hendarso Danuri) 청장 재임 시기(2008-2010)의 경찰 문화 개혁은 「공권력 사용에 관한 경찰청장 시행규칙 2009년 제1호」와 「인도네시아 경찰 임무 수행시 인권 원칙 및 기준 이행에 관한 경찰청장 시행규칙 2009년 제8호」, 두 건의 경찰청장 시행규칙을 제정하면서 구체화되었다. 이 두 시행규칙의 제정은 모든 경찰 구성원들의 행동을 크게 변화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개혁은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채 현재까지도 온전히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경찰 문화 개혁은 티토 카르나비안(Toto Karnavian) 청장 재임기(2016-2019)에 경찰들의 부패, 사치스러운 생활 방식, 그리고 과도한 폭력 사용이 계속되면서 다시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에 티토 청장은 대국민 서비스 관련 경찰의 전문성, 현대성, 신뢰성 제고를 목표로 하는 ‘프로모터’(PRPMOTER: Professional, Modern, Trustworthy)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으로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고자 했다. 티토 청장이 추진한 프로모터 프로그램은 긍정적인 성과를 거두어 경찰 조직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도 점진적으로 높아졌다. 이를 입증하듯, 2016년까지만 해도 국민에게 가장 신뢰받지 못하는 3대 기관 중 하나였던 인도네시아 경찰은 이후 다양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가장 신뢰받는 3대 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콤파스 연구개발(Kompas Research & Development)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경찰에 대한 국민의 만족도는 2014년 46.7%에서 2015년 51.2%, 2016년 70.2%로 지속 상승하여, 2018년에는 82.9%로까지 올랐다. 티토 청장은 경찰 문화 개혁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세 가지의 경찰청장 시행규칙을 내놓기도 했다. 「공직자재산신고(LHKPN)에 관한 경찰청장 시행규칙 2017년 제8호」, 「경찰 공무원의 사업에 관한 경찰청장 시행규칙 2017년 제9호」, 「사치품에 관한 경찰청장 시행규칙 2017년 제10호」가 그것이다. 이 프로모터 프로그램은 이드함 아지스(Idham Azis) 청장 재임기(2019-2021)에도 이어졌고, 이드함 청장은 지시공문2)을 통해 모든 경찰관이 호화로운 생활 방식을 과시하는 일을 금지하기도 했다.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리스트요 시깃 프라보워(Ristyo Sigit Prabowo) 청장(2021-현재) 재임 초기 정부의 코로나19 확산 방지 및 지역사회 경제력 강화를 포함한 공동체 회복력 증진 노력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보인 긍정적인 역할에 힘입어 높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인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2022년 경찰 고위간부(2성급)가 부하 직원 2명을 살해한 삼보(Sambo) 사건, 말랑의 칸주루한(Kanjuruhan) 경기장에서 경찰이 발사한 최루가스로 혼돈에 빠진 축구팬들이 경기장 출구로 몰리면서 135명이 압사한 칸주루한 참사, 그리고 2성급의 경찰 고위간부가 마약을 판매한 테디 미나하사(Teddy Minahasa)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사상 최저치인 48.5%로 추락했다.
인도네시아 경찰의 문화 개혁, 1998년 레포르마시(Reformasi)3) 이후 국민의 염원
경찰 조직에 대한 인도네시아 국민의 핵심적인 불만은 경찰들의 사고방식과 문화가 신질서(New Order, Orde baru) 시대4) 이후로도 개선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오랜 개혁 시도에도 불구하고 경찰 문화의 개혁만큼은 여전히 부진하다는 인식이 팽배한 것이다. 국민들은 여전히 경찰 구성원들의 부패와 과도한 폭력 사용, 비전문적 행태는 물론 일반 국민보다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심지어 현실 정치에 개입하는 행태까지도 목도한다. 게다가 2025년 138조 5천억 루피아(약 11조 9,400억 원), 2026년 145조 7천억 루피아(약 12조 5,60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할당받고도 그에 상응하는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국민들의 분노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인도네시아 경찰의 인적 자원 쇄신은 경찰 개혁의 첫 번째 과제로 꼽힌다. 이는 투명한 채용 과정을 통해 역량과 자질을 갖춘 인력을 선발하는 일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사실 채용 과정의 투명성 문제는 경찰 조직만의 문제는 아니다. 거의 모든 정부 부처의 채용 과정이 담합과 부패, 연고주의 등으로 얼룩져 있으며, 이는 오늘날까지 근절되지 않는 신질서 시대의 유산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 경찰 개혁이 이토록 어려운 것은, 이처럼 시스템 자체가 여전히 부패를 용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국민 대다수는 경찰 채용 과정이 불투명하다고 인식한다. 채용에 합격시켜 주는 대가로 돈을 받는 ‘뇌물 수수’ 관행은 공공연한 비밀이며, 건네지는 돈의 액수도 상당하다. 경찰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최소 1억 루피아(약 8백만 원)를, 경찰사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10억 루피아(약 8,600만 원)에 달하는 돈을 건네는 일도 횡행한다.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경찰 측은 이를 부인하며 ‘베타(BETAH: Bersih[청렴], Transparan[투명], Akuntabel[책임], Humanis[인도주의]) 시스템’ 아래 채용이 투명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경찰이 되기 위해서는 막대한 금전적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믿고 있다.
실제로 경찰 채용 과정에서 뇌물 수수가 적발되어 기소 절차가 진행 중인 사건은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건이 기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어서, 수면 위로 드러나 대중의 이목이 쏠린 경우에만 사법처리가 이루어질 뿐이다. 이러한 뇌물 수수 사건은 명백히 형사 범죄에 해당함에도 통상 가벼운 처벌에 그치는 ‘윤리 강령 절차’를 통해 처리되며, 형사 소송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사건이 적발되더라도 뇌물로 받은 금액을 단순히 반환하는 선에서 마무리되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범죄 억제 효과는 미미하다. 비슷한 사례가 매년 되풀이되는 이유다. 뇌물수수 사건에 연루된 일선 경찰관들이 윤리 강령 절차에 따라 징계를 받기도 하지만, 징계는 대체로 하위 직급 수준에서 멈출 뿐, 상급 지휘선에까지 닿는 포괄적인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국민들이 경찰 채용 비리에 대한 소식을 해마다 접하게 되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러한 부정 채용 관행은 이후 경찰관의 배치 및 보직 발령을 포함한 전반적인 인사 과정에도 당연히 악영향을 미친다. 부하들을 감독해야 할 상급자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승진을 위한 자금원을 찾는 데에 더 몰두하며, 부하 직원들에게 금품을 상납하도록 강요하기까지 한다.
국민들은 특히 경찰들이 시위 대응 과정에서 여전히 군사주의적 태도를 보이는 데 불만을 제기한다. 「인도네시아 경찰 임무 수행 시 인권 원칙 및 기준 이행에 관한 경찰청장 시행규칙 2009년 제8호」에도 불구하고, 경찰학교와 경찰사관학교의 훈련 과정에서 이 원칙에 대한 체득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교육 과정에서 인권 관련 논의와 실습의 부족은 경찰과 폭력이 지속적으로 연계되는 현상의 주된 요인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국민들이 여전히 2022년 칸주루한 참사와 2024년 렘팡(Rempang) 사건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시위대 해산을 위해 최루가스 사용을 고수하고 있는 데 대한 불만도 높다. 135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칸주루한 참사는 경찰의 최루가스 발포가 아레마니아(Aremania) 축구팬들의 혼란을 유발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렘팡 사건에서는 경찰이 산업단지 이전에 반대하는 렘팡 주민들의 시위를 해산시키기 위해 과도한 최루가스를 살포하는 바람에 11명의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실신하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하였다.
수사 과정에서의 고문이나 사건 처리 과정에서의 금품 요구 관행도 경찰에 대한 국민의 주된 불만 사항으로 꼽힌다. 신질서 시대에는 ‘인도네시아 형법’(KUHP: Kitab Undang-Undang Hukum Pidana)이라는 용어가 각 단어의 두문자를 그대로 딴 “돈을 주면 사건은 끝난다”(Kasih Uang Habis Perkara)는 냉소적인 말로 회자되기도 했는데, 어떤 죄를 지었건 수사관에게 돈을 건네면 원만히 사건을 끝낼 수 있다는 뜻이었다. 국가경찰위원회(Kompolnas)의 자료에 따르면 연간 접수되는 전체 민원의 90%가량이 경찰 수사국의 업무 처리에 관한 민원으로, 연평균 4,000건에 달한다.
이처럼 경찰에 대한 국민의 불만은 여전히 크지만, 이에 부응하는 감독 및 법 집행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로 인해 경찰들의 위법 행위는 계속해서 재발하고 있으며, 이는 온라인상에서 경찰의 직권 남용 사례를 다룬 게시물과 함께 “#경찰에신고해봤자소용없다”(#percumalaporpolri)라는 해시태그가 광범위하게 확산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러한 현상은 1998년 레포르마시 때 상황과는 극명하게 대비를 이룬다. 당시 국민들은 경찰이 군부(ABRI)에 통합될 경우 조직을 약화하고 전문성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하여 경찰의 독립을 강력하게 옹호했다. 지금은 다르다. 소방서에 대한 높은 평가와는 달리 경찰은 “센트럴아시아은행(BCA) 은행 보안요원”에 비유할 정도로, 치안 담당 기관으로서 경찰을 보호하고 유지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경찰을 현재와 같이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유지하기보다는 특정 부처 산하로 재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경찰이 대통령과 정치 엘리트들의 정치적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하는 한편, 국방부 장관 산하에 있는 국군(TNI)과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논리에 기반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군조차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현실로 보자면, 특정 부처 산하로의 재배치가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는 방편이 되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렵다.
결론
레포르마시 이후 1999년부터 시작된 인도네시아의 경찰 개혁은, 경찰을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배치하는 ‘구조적 개혁’, 관련 법률과 규정들을 개정하여 경찰을 전문적이고 인도적이며 인권을 존중하는 ‘시민의 경찰’ 조직으로 만드는 ‘기능적 개혁’, 그리고 ‘시민의 경찰’이 되기 위한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의 변화를 꾀하고 군사주의적 행태, 부패 문화, 사치스러운 생활 방식과 오만한 태도를 청산하고 전문성을 높이는 ‘문화 개혁’이라는 세 차원에서 추진되었다.
올해 8월의 시위 사태가 말해 주듯 오랜 개혁 시도에도 불구하고 경찰 문화 개혁은 오늘까지도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지지부진한 경찰 문화의 개혁을 위해서는 지도부를 비롯한 모든 경찰 구성원이 국민의 요구와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사고방식과 문화의 총체적 변화가 요구된다. 특히 전문성을 우선시하는 투명한 채용 과정에서부터 교육, 보직 발령, 엄격한 지도와 감독, 분명한 보상과 처벌에 이르기까지 모든 측면에서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국민들은 이러한 변화가 진정으로 구현될 때까지 개혁의 과정을 지속적으로 감시해야 한다. 경찰이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보호하며, 법 집행을 통해 공공질서와 안보를 유지하는 임무 수행에 있어 전문적이고 청렴하며 인권을 존중하는 ‘시민의 경찰’로 거듭날 수 있도록 새로운 경찰 문화가 확립되는, 바로 그날까지!
<각주>
1) [역주] 인도네시아근로조합총연맹(KSPI, Konfederasi Serikat Pekerja Indonesia) 노총 위원장.
2) 「ST/30SXI/HUM.3.4/2019/DivPropam」
3) [역주] 1966년부터 32년간 집권한 인도네시아의 제2대 대통령 수하르토(Suharto)가 1998년 5월 경제위기로 인한 폭동 및 민주화 시위로 사임하고 부대통령인
하비비가 대통령직을 승계하여 언론·집회의 자유와 정당 설립 허용 입법, 조기 총선 실시 등의 정치 및 경제 개혁이 이루어진 시기.
4) [역주] 수하르토(Suharto) 정권의 명칭. 수하르토는 수카르노(Sukarno) 초대 대통령과의 정치적 차별화를 위해 수카르노 재임기를 ‘구질서’(Orde lama)로,
자신의 정권을 ‘신질서’로 명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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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Against All Odds: Workers’ Resistance in Post-Coup Myanmar | Ma Cheria & Ko Maung동남아연구소 2025-08-18 17:04:1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