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25.07.18
- 수정일
- 2025.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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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남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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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한-아세안 국제학술교류 제도화: 한동연의 실험과 그 이후 | 김형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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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은 2005년부터 2016년까지 한국동남아연구소가 추진한 한-아세안 학술교류 사업의 전개 과정과 성과, 그리고 중단 이후의 한계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동남아와의 학술 협력이 지속가능한 제도적 구조로 발전하기 위한 조건을 모색한다. ASEAN Forum, Korea Forum, Advanced Seminar 등으로 구성된 해당 사업은 동남아 현안에 대한 국내 인식 확대, 학문 후속 세대 육성, 그리고 공공 외교적 성과를 끌어낸 대표적 협력 사례였다. 그러나 사업 추진의 불연속성, 인력 및 예산의 불균형, 정부 부처와의 협력 부재 등으로 인해 제도화의 단절을 경험하였다. 이 글은 사례 분석을 통해 동남아 학술교류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협력 구조의 재설계, 학문-정책 연계 강화, 인재 순환 구조의 제도화가 필요함을 제안한다.
2005년부터 2016년까지 한국동남아연구소1)(이하 한동연)가 추진한 한-아세안 학술교류 사업은 동남아시아와의 학술교류 진전과 제도화를 위한 중요한 과정이었다. 이 글은 한동연이 실시한 한-아세안 학술교류 사업2)의 전개 과정과 성과 및 한계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동남아와의 학술 협력이 지속 가능한 제도적 구조로 발전하기 위한 조건을 모색하고자 한다.
동남아 학술교류의 의미
학술단체의 국제교류는 지식의 국제화와 학제 간 융합을 촉진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정기적 학술교류의 채널은 단일 국가의 틀 안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사회문제에 대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 학문적으로도 동남아와의 국제학술교류는 최신 이슈 및 현지 연구 동향을 접할 기회를 제공하여, 연구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동남아와의 학술교류는 연구자 개인뿐 아니라 기관 간 파트너십에도 기여하고 국제 컨퍼런스 등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제공하며, 나아가 학문적 자율성과 글로벌 협력이 균형을 이루는 거버넌스를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동남아를 비롯한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의 학술교류는 지식생산의 탈식민화(decolonization of knowledge)를 통해 연대를 형성하는 연결고리로 기능함으로써 다양한 학술 문화에서 형성된 학문적 담론을 이해하고 포괄적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3) 이를 통해 구축된 학문적 연대는 지역연구를 주도해 온 서구 시각에서의 탈피를 공동으로 모색하는 토대가 된다.
냉전 해체 이후 지역연구에 대한 전략적 투자가 서구에서 감소하는 현상에 반해 글로벌 사우스에서 진척된 자기 성찰적 학문의 성과는 변화하는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의미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동남아와의 국제학술교류는 동남아를 자료수집의 대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학문적 담론을 형성하는 학문적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식하고, 나아가 인식의 공동체(epistemic community)를 건설하는 과정으로서 의미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동남아와의 학술교류는 여러 측면에서 전략적 중요성이 있다. 첫째, 인구 규모와 경제 성장세, 지역 기구(ASEAN)를 중심으로 한 제도화 수준 등에서 동남아는 동아시아 지역 내 협력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둘째, 다언어ㆍ다종교ㆍ다민족 사회로서 동남아의 다원성은 비교 지역연구나 전 지구적 논의의 장에서 유의미한 경험을 제공한다. 셋째, 한국과 동남아는 상호 의존적인 경제ㆍ인적교류 관계를 꾸준히 확대해 왔으며, 이러한 관계의 질적 고도화를 위해서는 사회문화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학문적 교류의 내실화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국제학술 협력의 담론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실제 실행과 지속가능성의 측면에서는 현실적인 제약이 적지 않다. 특히, 동남아와의 학술교류는 몇 가지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외교적 계기나 일회성 지원에 의존하는 프로젝트성 사업이 많아, 정기성과 제도화를 담보하기 어렵다. 둘째, 국내 대학과 연구 기관 간 역할 분담이 불분명하거나 경쟁적으로 분산되어 협력의 시너지가 약화되는 경향이 있다. 셋째, 한국 내 동남아 연구자 수급과 인력풀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중장기적 학문 공동체의 기반이 취약하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한동연이 2005년부터 추진해 온 한-아세안 학술교류사업의 전개 과정과 그 이후의 단절을 통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한동연은 한-아세안협력기금을 바탕으로 ASEAN Forum(아세안 포럼), Korea Forum(코리아 포럼), Advanced Seminar(대학원생 현지 심화 세미나, 이하 심화 세미나)4) 등 정기적이고 다층적인 교류 플랫폼을 구성하고, 학문후속 세대 양성, 인식공동체의 형성, 공공외교적 파급 효과 등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2016년 이후 해당 사업의 지속성은 급격히 약화되었고, 이후 재정적 지원과 제도적 기반의 부재, 정책 환경 변화 속에서 협력 네트워크는 사실상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이 글은 이러한 ‘제도화된 협력’과 ‘구조적 단절’ 사이의 경계에서 동남아 학술교류가 지닌 성과와 과제를 평가하고, 향후 지속가능한 지식 협력 거버넌스가 어떻게 재설계될 수 있는지를 모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한동연의 학술교류 프로그램의 기획과 실행 과정을 살펴보고, 그 제도적 한계와 단절의 배경을 살펴본다. 이어서 동남아의 국제학술교류 사례를 살피고 동남아 파트너 기관과의 협력 관계에 미친 파급 효과를 고찰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제도 재설계를 위한 정 책적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한동연 프로그램의 구성과 의의: '다층적 학술교류'의 시도와 전략
한동연이 2005년부터 한-아세안협력기금을 바탕으로 추진해 온 국제학술 협력 프로그램은 단순한 학술대회 개최를 넘어, 한-아세안 지식공동체 형성과 학문후속세대 양성을 지향한 다층적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이 사업은 아세안 포럼, 코리아 포럼, 심화 세미나의 세 가지 기둥을 중심으로, 단기-중기-장기 목표를 동시에 설정하면서 비교적 체계적이고 지속가능한 협력 플랫폼 구축을 시도했다.
아세안 포럼은 아세안 역내 주요 정치ㆍ사회ㆍ경제 현안에 대해 동남아 학자와 실무자들을 초청하여 한국 내 연구자ㆍ전문가ㆍ일반 시민과 함께 논의하는 장이었다. 2005년부터 2016년까지 총 21차에 걸쳐 진행된 포럼은 기존의 일회성 학술회의와 달리, 아세안 각국의 이슈에 대해 시의성 있는 주제를 선정하고 관계자와 직접 소통을 통해 아세안에 대한 국내 인식을 심화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예를 들어, 2006년 말레이시아의 정치 지도자 안와르 이브라힘을 초청하여 말레이시아 정치의 미래와 이슬람 민주주의의 가능성에 대한 포럼을 개최하였는데, 당시로선 드문 외교-정치적 대화의 시도였다. 2013년에는 미얀마의 민주화 및 개헌 이슈에 대해 현지 학자를 초청해 국내 전문가와 토론을 진행하며 이슈의 복합성을 풀어내는 공간을 마련했다. 이러한 사례는 아세안 포럼이 단순한 주제 발표를 넘어서 학술과 외교, 정책, 시민사회의 접점을 구성하는 공론장의 기능을 수행했음을 보여준다.
개별 국가의 현안과 이슈뿐만 아니라 한-아세안 관계에 대해서 지난 길과 앞으로의 과제를 조망하는 기회를 가진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제2차, 10차, 12차, 14차 아세안 포럼은 한-아세안 관계, 동아시아 협력 등을 주제로 논의를 펼쳤다. 특히, 한-아세안 정상회의 직전에 제주에서 대규모로 개최된 12차 포럼은 한국의 대아세안 전략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했다. 포럼은 동아시아공동체 건설 과정에 필수적인 아세안과 한국 간의 상호 인식 제고, 공동의 관심사 창출에도 일조했다.
아세안 포럼은 역내 현안에 대한 비교 분석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20차 포럼에서는 2013년 선거를 치른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필리핀의 선거 과정과 결과, 향후 민주화 전망을 모색했다. 개별 국가의 사례에서 동남아 민주주의 추세와 잠재적 영향에 대한 변화 과정을 주제로 선정했다는 점에서 일반 학술회의에서는 다룰 수 없는 아세안 포럼의 장점을 살린 논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한-아세안 학술협력 사업’에 대한 주제를 발굴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한-아세안 현안뿐만 아니라 중국 등 동아시아 차원으로의 논의 확대도 이루어졌다. 16차 아세안 포럼은 중국의 부상에 따른 아세안 국가의 전략적 대응이 주목받는 상황에서 중국에 대한 동남아 각국의 관점을 비교 이해하는 장으로 기획되었다. 포럼에서는 남중국해를 둘러싼 중국과 동남아 각국의 갈등 구도 및 중국의 동남아 진출에 대한 동남아의 대응 방안 등에 대한 활발한 논의 가 이루어졌다. 17차 포럼은 2011년 말 한국 정부가 관심을 두고 적극적으로 외교 전략을 구상하기 시작했던 ‘메콩지역 개발’에 관한 이슈를 논의하여 외교정책 논의에 기여하기도 했다.
아세안 포럼은 한-아세안 양측의 학자와 전문가, 그리고 신진 연구자 간 인적교류를 통해 동남 아 관련 연구를 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이바지했는데, 포럼의 주요 참석자 외에 일반 대중들의 관심도 높아서 100여 명에 이르는 청중이 포럼에 참석했다. 이런 점에서 아세안 포럼은 한-아세안에 관한 최근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여 대중적으로 확산시키고, 한-아세안 협력사업의 홍보에도 기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코리아 포럼은 아세안 포럼에 상응하여, 아세안 지역 내에서 한국 관련 이슈—한국의 대외정 책, 경제 발전 경험, 사회문화 변화—에 대한 이해 증진을 목표로 기획되었다. 코리아 포럼은 현지 연구자나 전문가, 실무관계자와의 교류를 통해 상호 인식의 균형을 도모하며 총 19차례 개최 되었다. 2차 포럼(정치와 경제 현안), 4차 포럼(경제위기 이후의 사회문화 현황), 6차와 8차 포럼 은 한국의 외교 및 대외관계 등 한국의 현안에 대한 아세안 측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기획되었다. 12차 포럼에서는 한국의 아세안, 중국, 필리핀에 대한 인식을 비교 분석하였으며, 인식 관련 논 의는 이후 상호 인식도 조사 사업으로 이어졌다. 2014년 캄보디아에서 개최된 15차 포럼은 현지 의 젊은 학자와 정책 관계자들이 한국의 아세안에 대한 정책과 대중문화의 영향을 토론하고, 향후 한-아세안 협력의 방향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다.
코리아 포럼은 학술 협력의 외연을 공공외교로 확장하는 전략적 기능도 수행하여, 한류, 문화 ODA, 한국학의 지역 확산 등 다양한 주제를 아세안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계기를 제공하였 다. 13차 포럼(베트남)과 14차 포럼(인도네시아)은 각각 해당국과의 외교관계 수립 기념을 계기로 진행되어 양자관계에 대한 다각적 분석과 논의가 전개되었다. 특히 2015년 한-아세안 수교 25주년을 기념하여 동남아 4개국에서 순차적으로 개최된 포럼 시리즈는 단순한 행사 이상의 상 징성과 지역 내 존재감을 확보하는 데 기여했다. 2015년 한-아세안 외교관계 수립 25주년을 기념한 학술대회 결과물인 ‘ASEAN-KOREA RELATIONS: 25 YEARS of PARTNERSHIP AND FRIENDSHIP’ 책자 발간을 계기로 2016년에는 베트남, 라오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에서 관련 주제로 코리아 포럼을 개최했다.
코리아 포럼은 한-아세안 협력사업 협력 및 네트워크 구축을 모색하는 장을 제공하여, The Southeast Asian Studies Regional Exchange Program(SEASREP)5)의 주요 관계자와 네트워 크 구축 및 사업 협력의 장으로 활용되었다. 초기 코리아 포럼은 SEASREP 관계자가 참여하는 라운드테이블로 진행되었고, 이후로는 심화 세미나 등에 대한 실무 협의를 진행하는 장으로 활용되었다. 2014년부터 포럼은 반일 행사에서 전일 동안 이루어지는 대규모 행사로 발전하였다. 아울러 발표 내용을 도서로 발간하는 일을 추진하여 관련 지식을 축적하고, 포럼이 보다 미래 지향적인 행사가 되기 위한 방도를 모색했다. 2014년 8월 캄보디아에서 개최된 포럼은 어드밴스 세미나 기간에 개최되어 사업 간 연계성을 높였다. 코리아 포럼을 주도한 것은 한동연 회원이었지만, 일부 한국 연구 전문가 중 동남아 연구와의 접점을 찾아냄으로써 동남아 연구자 그룹에 합류하는 등의 파급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한편, 심화 세미나는 학문후속세대 양성을 목적으로 기획된 일종의 훈련형 프로그램으로, 한국 과 동남아의 석ㆍ박사 과정 대학원생들이 참여해 공동 연구, 현지 조사, 세미나 등을 수행하는 장 기형 교류 모델로 자리 잡아 총 9차례 실시되었다. 어드밴스 세미나는 2007년 코리아 포럼에서 SEASREP 측과 심화 세미나와 관련한 실무 워크숍을 진행한 것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2007년 첫 시행 당시 ‘Focus on Malaysia’를 주제로 시작된 이 세미나는 점차 참가자의 출신 국가, 전공, 프로그램 기간이 확대됐다.
2008년부터는 국내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사전 준비 세미나를 3회 실시하여 프로그램의 성과를 높이고자 했다. 참가자들은 세미나 외에도 ICONAS (International Conference on ASEAN Studies), 코리아 포럼과 연계된 학술 행사에 동시 참여함으로써 다층적 학문 교류를 경험했고, 현지 전문가들과의 네트워킹 기회를 가졌다. 가령 2014년 태국에서 진행된 세미나의 경우 한국 측 지도교수와 인도네시아 지도교수가 각각 한국과 인도네시아에 대한 강의를 병행하였다. 회차를 거듭하며 참가의 확대 및 프로그램 기간의 확대가 이루어졌다. 특히, 사전 세미나와 후속 보고서 제출, 현지 기관과의 공동 조사 등 비교적 실천 지향적인 세미나의 구조는 참가자의 학술 성장을 구체적으로 지원하는 기제로 작용했다.
초기 사업명이 말해주듯이 본 프로그램은 대학원생 훈련에 중점을 두고 한국의 석ㆍ박사 대학원생 위주의 현지 경험 및 지식 습득의 장 제공을 목표로 했다. 이후 아세안 국가의 대학원생들이 합류하면서 세미나는 한-아세안 차원의 신진학자 네트워크 형성과 학술교류의 장을 제공했다. 2016년에는 명칭을 “ASEAN-Korea Young Scholars Workshop”으로 바꾸고 참가인원을 100명으로 확대하여 현지조사를 포함해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진행했다. 10일간의 프로그램 진행을 통해 세미나는 참가자들 간 네트워킹 구축에 이바지했다.
심화 세미나에 참가한 한국 측 대학원생 참가자 다수가 이후 박사 과정을 마치고 동남아 연구자나 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게 된 것은 이 프로그램의 성과이다. 예를 들어 2016년 참가자 24명 중 4명이 현재 대학의 교원과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역대 한국 측 참가자 중 최소 10여 명 이 현재 동남아 전공 관련 교원이나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세미나 기간 중에는 코리아 포럼 및 ICONAS를 함께 개최하여 세미나 참가자의 이해 및 해당 행사의 저변 확대에 기여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2016년 세미나에서는 ICONAS를 함께 개최하여 코리아 포럼을 ICONAS 세션에 포 함해 진행했다.
이들 프로그램이 갖는 가장 큰 의의는 ‘지식 협력의 제도화’를 지향한 실천적 시도였다는 데 있다. 아세안 포럼은 한국 사회에 아세안 이슈를 소개하고 비전문가층의 관심을 제고함으로써 ‘외 부-내부 인식의 교차점’을 형성했고, 코리아 포럼은 한국 이슈를 동남아와 공유함으로써 상호이해의 기반을 확장했다. 심화 세미나는 국내외 신진 연구자의 발굴과 양성을 통해 향후 협력 네트워크의 지속성을 담보하려는 중장기 전략이었다.
또한 이 프로그램들은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닌, ‘상호 참여적 협력 모델’을 지향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 아세안 현지 기관과 공동 운영, 주제 선정 및 운영 과정에 있어 상호 조율, 공동 간행물 발간 등의 협업은 아세안 파트너를 ‘대상’이 아닌 ‘동반자’로 인식하는 전환을 반영한다. 이로써 동남아가 ‘자료수집의 현장’이나 ‘정치적 협력의 객체’가 아닌, 지식생산의 주체이자 공동 실천의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인식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구성에는 외형적 지속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운영상의 정합성과 내적 동력이 필요했다. 프로그램 간의 유기적 연계—예컨대 심화 세미나 참가자들이 코리아 포럼 발표자로 참여하거나, 포럼 논의를 공동 간행물로 발전시키는 등—는 국제협력 프로그램의 ‘성과 축적’ 측면에서 중요한 모델을 제공했다. 이는 특히 ‘정치적 계기성’이나 일회성 기획에 그치는 여타 국제교류 사례와 비교해, 학술적 지속성과 전략을 내포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지속가능성과 제도화의 조건: 한계 및 정책 환경 분석
한동연의 국제학술 협력 프로그램은 약 10년간의 추진을 통해 동남아지역학의 토대를 확장하고 한-아세안 학술 협력의 모델을 제공하는 데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프로그램은 점진적으로 쇠퇴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는 단지 예산 축소나 일회적 실수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적 기반의 부재, 실행 주체의 과부하, 정책 환경의 불안정성 등 구조적 요인과 맞물 린 결과였다.
우선 가장 뚜렷한 한계는 프로그램을 지속할 수 있는 운영 및 재정 구조의 부재다. 포럼과 세미나가 정기적이고 다층적으로 운영되었지만, 그것을 운영ㆍ조정할 수 있는 상설 조직, 전담 인력, 내재적 예산 구조는 사실상 마련되지 못했다. 모든 프로그램은 개별 프로젝트 단위로 제안서 작성, 예산 확보, 실행ㆍ정산을 순환하는 방식으로 운용되었는데, 이러한 프로세스는 사업 지속성을 매우 취약하게 만들었다. 특히, 2015년 한-아세안협력기금 사업 정산이 수년간 지연되면서 외교부로부터의 평가가 악화되었고, 이는 후속 사업 선정을 어렵게 만들었다. 결국 이는 단발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장기 지속성은 담보되지 못한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다.
둘째, 연구소 내부 인력과 거버넌스의 비대칭성 역시 주요한 제약 요인이었다. 기획, 실행, 정산, 간행 등 전 과정을 소수의 인력에 집중시키는 구조는 지속적인 사업 추진에 장애가 되었을 뿐 아니라, 연구소 내 공통의 학술 비전이나 분업 구조를 발전시키지 못한 채 개별 연구자에 의존하는 운영 방식을 고착화시켰다. 이는 특히 심화 세미나와 코리아 포럼의 기획·운영에 있어 외부와의 협조 체계가 취약해지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초기에는 SEASREP, ASEAN University Network(AUN)6) 등 외부 파트너와의 관계가 프로그램의 실질적 내용을 강화했지만, 시간이 지 나며 이들과의 연계가 약화되고, 결과적으로 ‘국내 일방형 기획’으로 회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셋째, 학회와 연구소 간의 역할 조정 실패는 제도화의 단절을 가져왔다. 애초 기획 단계에서는 한-아세안협력사업을 연구소와 학회가 공동으로 운영하되, 사업별로 역할을 나누고 협력 체계를 유지하려 했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 이후 두 주체 간 기획의 우선순위, 자원 배분, 연계 가능 성에 대한 이견이 표면화되면서 사업이 분리되어 진행되었고, 결과적으로 공동의 시너지를 발휘하는 데 실패했다. 특히 2017년 이후 외교부의 사업 방식 개편에 따라 컨소시엄 방식의 참여가 요구되었으나, 이를 위한 실질적 협력 모델을 구성하지 못하고 개별 단위 참여로 전환된 점은 기획력의 제약과 제도적 대응력 부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넷째, 정책 환경의 일관성 결여와 외교 전략의 유동성도 지속가능성을 저해하는 요인이었다. 한국 정부의 아세안에 대한 외교정책은 문화협력, 경제 연계, 외교ㆍ안보 전략 등에서 다층적으로 강조되었지만, 학술 협력을 통한 중장기 인적 기반 구축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주목을 받았다. 외교부 내에서도 학술 교류사업은 ODA나 공공외교 성과지표와 연결되기 어려운 ‘비정형 사업’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는 실질적인 재정 지원의 불확실성과 평가 기준의 부재로 이어졌다. 이런 맥락에서 2015년 한-아세안 25주년 기념행사는 성공적 사례로 회자되었지만, 이후 제도화나 예산 확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단발성 기념 이벤트로 소진된 측면이 강했다.
다섯째, 전문가 풀의 확장성과 교체 가능성의 부재도 지속가능성의 과제로 제기된다. 초기에 는 국내 동남아 연구자와 현지 전문가 간 상호 호혜적 관계가 형성되었지만, 후속 인재의 양성 및 조직 내 편입은 제한적으로 이루어졌다. 심화 세미나를 통해 육성된 신진 연구자들이 이후 포럼 기획, 공동 연구, 학회 활동 등으로 활약하는 구조적 통로가 부재했으며, 이에 따라 학술교류 사업의 ‘세대 연결성’은 미약하게 유지되었다. 물론 일부 참가자들이 이후 연구자로 성장하여 관련 기관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이는 구조적 진입 경로라기보다는 개별 경로에 가까운 양상이었다.
결국 이와 같은 한계는 제도화된 학술 협력의 지속성을 가능케 하는 조건들—조직 안정성, 예산 체계, 전략적 연계, 정책적 지원, 인적 구조—이 고루 갖추어지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이에 따라 한동연이 주도했던 포럼과 세미나의 기획 역량과 영향력은 점진적으로 약화되었고, 2020년 연구소-학회 병합 이후 국제 협력사업이 사실상 종료되면서 사업 기반 자체가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한계는 뒤집어보면 향후 동남아 학술 협력사업의 제도화를 위한 점검 목록이자, 한국의 대아세안 협력 거버넌스에서 보강되어야 할 핵심 요소이기도 하다.
해외 관련 프로그램 시사점
다양한 국가의 ASEAN 협력 프로그램은 지속가능성과 제도화 측면에서 일정한 통찰을 제공한다. 일본 Japan Foundation은 오랜 아세안 협력 경험을 바탕으로 포괄적인 학술교류 지원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호주의 뉴콜롬보 프로그램은 호주 연구자의 아세안 연구 심화를 촉진시켰다. 캐나다의 SEED는 교환협정 기반의 인적 교류와 SDGs 연계 전략이 돋보이며, 중국의 AUN 장학 프로그램은 정규 학위 지원과 AUN 네트워크를 활용한 제도화를 특징으로 한다. 오스트리 아 ASEA-UNINET은 공동 연구 기반의 예술ㆍ과학 전분야를 지원하고, Fulbright ASEAN은 외교정책과 연계된 다국 간 연구 프로젝트를 운영한다. 이들 사례는 모두 전담 조직, 전략 연계성, 장기적 기획 체계를 통해 국제협력의 제도화를 구현하고 있다.
(1) Japan Foundation
JF는 양자간 신뢰 및 네트워크 기반 강화, 양방향 학술 교류를 통한 글로벌 이슈에 공동으로 대응하고, 나아가 학술 생태계 구축을 위해 대표적으로 다음의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일본 및 아세안 내 비영리기관을 대상으로 국제회의, 워크숍, 연수 등 정책 지향적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Grant Program for Japan‑ASEAN Global Partnership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인건비 및 출판비 등 제반 비용을 지원한다. 동남아 국적의 박사급 연구자 또는 7년 이상 실무 경험자를 대상으로 일본 내 기관에서 3~12개월 연구 수행을 지원하는 JFSEAP Visiting Fellowship에는 교토대 동남아연구소 등 일본 내 주요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동남아 싱크탱크, 연구소 소속 차 세대 연구자 10명 내외를 초청하여 약 10개월 간 강연 및 워크숍 등의 연수를 지원하는 JFSEAP Group Invitation Program도 운영되고 있다. 박사급 이상 전문가를 주 대상으로 하며 정책 연구와 연계한다는 것이 JF 프로그램의 특징이며, 주로 일본이 주도하지만 경우에 따라 공동기획의 형태로 추진되기도 한다.7) 특히, 2023년 ASEAN-일본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향후 10년간 일본 과 ASEAN의 차세대 인재 육성, 인적 네트워크 강화를 위해 기획한 With Asia 2.0 프로젝트는 주목할 만하다. 핵심 사업으로 지식ㆍ문화의 양방향 교류를 위해 기후변화, 재해 예방 등 이슈에 대한 지적 대화 및 공동 연구를 지원하고, 예술,연극, 음악, 영상, 스포츠 분야에서의 인적 네트 워킹 및 협력 프로젝트를 포함하는 야심찬 프로그램이다. 교토대 동남아지역연구센터(CSEAS)가 이 프로젝트의 협력기관으로 참여하고 있다.8)
(2) New Colombo Plan (호주)
뉴콜롬보플랜은 호주 외교통상부 주도로 호주 학부생이 인도ㆍ태평양 지역(ASEAN 포함)에서 학업ㆍ언어훈련ㆍ인턴십등을 통해 지식과 문화 이해를 심화함으로써, 호주 내 인도ㆍ태평양 이 해 역량을 강화하고 양방향 인적 네트워크 형성을 목표로 한다. 핵심 프로그램으로 호주 국적 학부생에 대해 현지에서 학업, 언어연수, 인턴십을 지원하는 장학 프로그램과, 각 대학의 모빌리티 프로그램에 정부 지원금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그리고 현지 인턴십, 멘토링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호주 프로그램은 아세안에 한정된 것은 아니지만 학업뿐 아니라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교육부 및 산학연계를 중심으로 진행한다는 점이 특징이다.9)
(3) Canada–ASEAN Scholarships & Educational Exchanges for Development (SEED)
캐나다 정부는 2017년 8월, 2030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달성 및 ASEAN 개발도상국의 빈곤 감소를 목적으로 SEED 프로그램을 출범시켰다. 본 프로그램은 ASEAN 회원국 출신의 대학(원)생에게 캐나다 고등교육기관에서 단기 유학 또는 연구를 수행할 기회를 제공한다. 아세안 회원국 내 고등교육기관에 전일제로 재학 중인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하는 이 프로그램에서 특징적인 점은 캐나다 대학과 해당 대학 간 교환협정 또는 협력 관계를 통해 운영된다는 점이다. 이 프로그램은 캐나다 교육기관이 이미 아세안 해당 대학과 수업료 면제형 교환협정 체결하고 국제처를 통해 신청 절차를 일원화해야 참여할 수 있다. SDGs를 목표로 내세웠다는 것과 사람 중심의 교류를 목표로 한다.10)
(4) China-AUN Scholarship
중국의 교육부와 AUN(ASEAN University Network) 간 협력으로 진행되는 대학원생 대상 전액 장학사업으로, 2008년에 시작되었다. 매년 30명의 아세안 출신 대학원생을 선발하여, 석사과정은 최대 3년, 박사과정은 최대 4년을 지원하며, 정규 학업 과정 및 중국어 학습을 포함한다. 등록금 전액 면제와 생활비 및 의료보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유인 요인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11)
(5) ASEA-UNINET & SEARCA Mobility Grants
ASEA-UNINET 프로젝트는 오스트리아 회원 대학과 ASEAN 회원국(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파키스탄, 필리핀, 태국, 베트남) 간의 양자 또는 다자 협력 프로젝트를 지원하며, 대상은 모든 학문 분야를 포함한다. 연구자, 박사과정생을 주 대상으로하는 1~2년을, 학부생 대상 교환프로그램은 1주~3개월을 지원한다. 단기 학술 협력에 대한 재정 지원 사 업으로 예술, 의학, 사회과학 등 모든 영역을 포함하는 연구 중심 공동 프로젝트로서 특징이 있 다.12)
(6) Fulbright ASEAN Research Program
미국 학자들의 학술 활동 지원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ASEAN 2~3개국에서 현지 기관과 공동 연구를 수행하며, 미국–ASEAN 관계 및 지역 주요 과제에 대한 학술적 이해 심화와 협력 기반 제공을 목표로 한다. 연구를 통해 ASEAN 사무국(자카르타) 방문 및 보고 기회를 제공한다. 체류 기간은 3~6개월이며, 아세안 2~3개국에서의 프로젝트 수행이 필수적이다. 박사 학위(예정) 이상의 학력을 가진 연구자를 대상으로 하며, 연구 분야에 대한 제한은 없다. 연구비, 항공료, 생활비를 차등적으로 지원한다.13)
이상의 프로그램들은 모두 상설 조직, 전담 예산, 명확한 정책 연계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학술교류 형식을 띠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외교 소프트 자산으로 인식하여 지역 및 글로벌 현안과 연계하는 모습을 보인다.
한-아세안 학술교류의 주요 재정 기반인 한-아세안 협력기금(AKCF)은 1990년 100만 달러에서 2023년에는 2천만 달러, 2027년까지 3,200만 달러로 확대될 계획이다. 신남방정책, 한-아세안연대구상 등 지난 정권에서 시행된 대 아세안 정책과 연계되면서 재정 규모가 확대된 것이 다. 기금 규모가 확대되면서 교육, 문화, 환경, 디지털 경제, 재난 대응 등 아세안 공동체 3대 축과 연계된 총 27개의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14)
학술교류와 관련해서는 HEAT(Higher Education for ASEAN Talents) 프로그램을 통해 아세안 출신 대학교수들의 박사 학위 취득을 지원하고, Technical and Vocational Education and Training through ASEAN Mobility(TEAM) 프로그램을 통해 기술 및 직업교육 교사나 학생의 한국 현장 연수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주로 이공계 대상이며 일부 국가의 참여가 집중되고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한 방향의 학술 트레이닝 기회 제공이라는 점에서 파트너로서의 학술교류와는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HEAT 프로그램의 경우 학술적 교류에 기여한다는 비전을 공유하므로 한국동남아학회의 사업과 연계할 필요성이 있다. 학술교류의 제도화를 위한 구조적 연계와 상호 참여적 모델은 미비하다.
2025년 한국동남아학회는 2017년 이후 단절되었던 학술교류사업 재개를 위해 2025년 6월 한-아세안협력기금(AKCF)을 공식 수주하였다. 현지조사 지원 프로그램과 국제학술대회를 핵심 프로그램으로 계획하고 있다. 학술사업의 학문후속세대 양성과 양방향 상호 이해 증진을 위한 중요한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앞서 언급한 타 동남아 학술 협력 프로그램과 비교할 때 양방향 학술 교류의 성격이 강하고 아세안 내의 학술현지 조사를 지원하여 아세안공동체 건설에 기여한다는 점은 중요한 차별점이다. 협력기금의 운영에 있어 아세안측의 주도성을 보장한다는 명분이 있으나 실제 사업 제안과 심사 과정에서 과도한 행정적 절차와 경직성을 가지는 문제도 드러난다. 한동연의 경험과 동남아를 대상으로 추진되는 다양한 국제교육협력 프로그램을 고려하여 장기적 발전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결론 및 제언: 협력의 재정립과 지속가능한 거버넌스를 위하여
동남아 지역과의 국제학술교류는 단지 연구 성과의 공유를 넘어, 새로운 지식 질서의 형성과 상호이해의 기반을 구축하는 과정이다. 한동연이 추진해 온 포럼과 세미나는 동남아 현안을 중심으로 시의성 있는 주제를 발굴하고, 학문후속세대의 육성과 지역학의 사회적 확산이라는 측면에서 분명한 성과를 남겼다. 그러나 제도화의 기반이 취약했던 만큼, 이들 프로그램은 정책과 예산, 인력, 협력 구조가 균형을 이루지 못한 채 단절의 위기를 맞았다.
앞서 살펴본 한동연 사례는 한국의 동남아 국제학술협력사업이 어느 수준까지 실질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한편, 그 한계를 통해 향후 유사 사업 기획 시 고려해야 할 조건을 시사한다. 2025년 한국동남아학회의 한-아세안협력기금 사업 수주를 통해 현지 조사 지원 사업, 한-아세안학술대회 개최 재개를 앞두고 있다. 향후 동남아 학술 협력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해 다음을 고려할 수 있다.
첫째, 전담 조직을 통한 거버넌스 구조 정립이다. 단기 과제 중심의 프로젝트 방식에서 벗어나, 상설 운영 기구와 전담 인력을 갖춘 플랫폼이 마련되어야 하며, 해당 조직이 중장기 계획과 연차별 기획ㆍ보고를 책임지는 거버넌스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2025년 한국동남아학회의 학술 교류 사업 수주를 계기로 이와 같은 전담 인력 확보가 가능해진바, 외교부와의 제도적 협력을 통 해 장기 사업으로서의 거버넌스 구조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둘째, 기념성 행사 중심에서 ‘과정 중심 연속 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25주년, 30주년과 같은 외교적 이정표에 맞춘 일회성 행사는 국제사회에서 가시성은 확보할 수 있지만, 학문적ㆍ제도적 심화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지속 가능한 인적ㆍ제도적 협력은 다년간의 축적과 성과 전환 과정이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한동연이 추진했던 포럼 및 현지 세미나의 요소를 포함하기 위한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사업 확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셋째, 다층적 인재 순환 구조와 후속 세대의 제도적 편입 장치가 필요하다. 심화 세미나 및 Young Scholars Workshop 사례에서 확인된 것처럼, 신진 연구자 양성은 학술 협력의 핵심 축 중 하나다. 그러나 이들을 단기 프로그램 참여자에 그치게 하지 않고, 학술대회 발표 및 향후 연구비 지원 등으로 연결할 수 있는 제도적 루트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넷째, 외교정책과 지역연구의 연계성과 전략화를 높여야 한다. 한국의 대아세안 외교는 점점 더 복합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문화, 안보, 개발, 디지털, 기후 협력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역연구는 정책 이해를 위한 자료 제공자 역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 방향을 설정하고 장기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플랫폼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는 곧 학술 협력의 정책 기여 효과를 평가 지표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동남아 현지 연구 기관 및 학자와의 대등한 협력 관계 구축이 필요하다. 과거에는 현지 연구자 초청 및 발표 중심의 형식에 머무른 경우가 많았으나, 한-아세안 학술교류는 단순한 국제화가 아니라, 지식생산 자체를 공유하고 상호 의존적 관계를 구축하는 ‘연대의 제도화’로 나아가는 핵심 기반이다. 글로벌 사우스의 지식 주체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 역시 제도화된 협력 모델을 재설계함으로써 국제적 연대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단절된 흐름을 다시 잇는 것은 과거의 복원이나 단순한 계승이 아닌, 제도와 담론, 인적 기반을 새롭게 엮는 창조적 개입의 과정일 것이다. 이를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협력의 지속’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협력’을 설계하는 상상력과 실행력이다.
* 각주
1) 1990년 설립된 ‘동남아정치연구회’가 ‘동남아지역연구회’를 거쳐 2003년 한국동남아연구소가 설립되었고 2004년 3월 외교통상부로부터 사단법인 설립을 승인받았다. 2020년 연구 집중과 효율성 제고를 위해 한국동남아학회와 통합 이후 사단법인 한국동남아학회 산하의 연구기관으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한동연 설립의 배경과 의미에 대해서는 전제성, “한국의 동남아 연구 동향과 과제: ‘제3세대’ 연구자 선언을 기대하며”(『동아연구』 52, 2006), 19-23쪽 참조.
2) 한-아세안학술협력사업은 한국동남아학회와 AUN이 주관한 한-아세안 학술교류사업을 통해 지원한 현지조사 지원 프로그램 및 학술대회와 한동연이 주관한 한-아세안 학술포럼과 Advance Seminar로 각각 진행되었다. 이 글에서는 한동연의 학술교류 사업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3) Raewyn Connell. Southern Theory: The global dynamics of knowledge in social science (Routledge: London, 2007).
4) 최초 “동남아지역학 전공 신진학자 훈련사업”으로 기획되었으며 1차 행사의 주제인 “Advanced Seminar on Southeast Asian Studies: Focus on Malaysia”로 인해 어드밴스 세미나로 불렸다.
5) SEASREP은 1994년 설립 논의를 시작해 1997년 필리핀에 등록되었으며, 2007년 ASEAN 공인 시민사회단 체로 인증받았다. 1995년부터 2015년까지 도요타재단과 일본재단의 지원으로 동남아 석ㆍ박사 과정, 언어훈련, 연구협력, 학부생 교류 프로그램 등을 운영했으며, 이후에는 학술 세미나, 공동연구, 출판, 역량 강화에 집중해왔다. 2016년부터는 동남아 신진 연구자들의 논문을 다루는 온라인 학술지 RJSEAS 를 발간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약 2,000명의 동남아 연구자들과 50여 개 대학·연구기관이 SEASREP 활동에 참여해 왔다. https:// www.seasrepfoundation.org/about/ 참조.
6) AUN은 1995년 11월 설립되어 ASEAN 10개국의 주요 대학을 연결하는 고등교육 네트워크로, 현재 30개 핵 회원 대학이 참여 중이며, 설립 목적은 역내 대학 간 협력 강화ㆍ인적자원 개발ㆍ공동 연구 및 학습 촉진을 통한 지역 정체성과 연대 확립이다. 상세 내용은 AUN 홈페이지(https://www.aunsec.org) 참고.
7) https://www.jpf.go.jp/e/project/intel/exchange/jfseap/index.html
8) https://www.jpf.go.jp/e/project/special/bunkanowa2/index.html
9) https://www.dfat.gov.au/people-to-people/new-colombo-plan/about
10) https://www.educanada.ca/scholarships-bourses/can/institutions/asean-anase.aspx?lang=eng
11) https://aunsec.org/aun-action/scholarships/china-aun-scholarship
12) https://asea-uninet.org/scholarships-grants/project-support/
13) https://fulbrightscholars.org/award/asean-research-program-7
14) AKCF, ASEAN-Korea Cooperation Fund Annual Report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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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음식, 미낭까바우 그리고 서부수마트라주 | 정정훈동남아연구소 2025-07-16 11:54:11.0